RV에서 14년 살던 부부, 크루즈로 삶의 무대를 옮겨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플로리다는 현대적인 크루즈 여행이 탄생한 곳이며, 대형 크루즈 선박들의 출발지이자 경유지이다. 크루즈 선박들이 일년 내내 플로리다 해변을 떠다니기 때문에 해변가를 거닐거나 낚시를 즐기다 이들을 목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재정적 시간적 여유가 있고 크루즈 여행의 묘미에 빠진 사람들은 보통 3~4 개월 동안 크루즈 여행을 즐기고 있고, 최근에는 아예 주거지를 크루즈 선박으로 옮기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남부플로리다 오클랜드 파크의 짐 굴드(71)와 크리스 굴드(72) 부부가 바로 이같은 경우다.

막 시작한 이들 부부의 선박생활 이야기가 <마이애미선센티널>과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지역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은퇴을 앞둔 사람들 뿐 아니라 젊은층 원격 근무자들에게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4월부터 크루즈선 '빌라 비 오디세이(Villa Vie Odyssey)'에 올라타 전 세계를 여행하며 풀타임으로 선상생활을 시작하는 굴드 부부의 이야기는 보통사람들이 한번 쯤은 도전해 볼 수 있는 꿈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은 지난 14년간 미국 48개 주를 RV(레크리에이션 차량)로 여행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이들은 15년간 거주할 수 있는 크루즈 객실을 구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들 부부가 탑승할 '빌라 비 오디세이'호는 3년 반 동안 140여 개국 425개 항구를 도는 '지속형 세계일주 항해' 중이다. 굴드 부부는 4월 20일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항구에서 승선해 최소 7년 이상 살 계획이다.

크리스는 "우리 방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매일 아침 운동 수업이 열리는 체육관에 가고, 뷔페 식당과 오후의 다양한 공연을 즐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배는 2023년 영국의 프레드 올센 크루즈 라인으로부터 구매됐으며, 현재는 플로리다 펨브룩파인스에 본사를 둔 빌라 비 레지던스(Villa Vie Residences)의 기함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480개 객실 중 354개가 장기 거주자에게 판매됐다.

이배의 소유주 미카엘 페터슨 회장은 "짐과 크리스를 곧 배에서 맞이하게 되어 기쁘다"라며 "그들이 이 생활을 사랑하게 될 거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컴퓨터와 여행으로 이어진 인연

1980~90년대, 크리스는 어머니와 함께 '컴퓨터 새비'라는 컴퓨터 교육 센터를 운영했고, 짐은 컴퓨터 설치 및 네트워크 작업을 하던 회사에서 근무했다. 크리스가 센터에 필요한 컴퓨터를 주문했고, 짐은 이를 설치하면서 두 사람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크리스는 짐을 자신의 회사로 영입했고, 두 사람은 다이빙과 여행, 컴퓨터에 대한 공통된 취미를 공유하며 가까워졌다.

1990년대 말 크리스가 센터를 정리한 후, 부부는 첫 집을 팔고 RV를 구입해 2003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을 여행했다. 그들은 ‘그릭스 온 투어(Geeks on Tour)'라는 회사를 설립해 인터넷 사용법과 컴퓨터 교육 세미나를 열었고, 유튜브에는 900개 이상의 교육 및 여행 관련 영상을 올렸다. 이들은 여전히 그들의 대표 상징인 프로펠러 모자를 쓰고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굴드 부부는 오클랜드파크에 다시 정착한 지 7년 만에 교통 체증과 쇼핑의 번거로움 없는 새로운 여행을 꿈꾸고 있다. 그들은 현재 유튜브 구독자 1만6700명, 유료 회원 약 1000명을 보유 중이며, 선상에서도 지속적으로 교육 영상을 올릴 계획이다. 짐은 "이 배에는 원격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라며 크루즈 안팎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영상 콘텐츠를 예고했다.

현재 이 배에는 다양한 유튜버들이 탑승해 콘텐츠를 제작 중이다. '리빙 라이프 온 어크루즈(Living Life on a Cruise)', '미드라이프 크루징(MidLife Cruising)', '디시 히든 젬스(DC Hidden Gems)' 등의 채널이 이에 해당하며, 각각의 일상을 소개하고 있다.

생활비, 구매 옵션, 그리고 결정적 계기

굴드 부부는 처음에는 발코니가 있는 객실을 고려했지만, 선상에서 식사, 오락, 피트니스센터, 세탁 등의 서비스를 포함해 월 8000달러의 유지비용에 34만 달러의 초기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대신 창문은 있지만 발코니는 없는 140제곱피트 크기의 객실을 택했고, 이 경우 초기 비용은 17만 달러, 월 비용은 5000달러로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여행에 쓴 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절약이 될 수도 있다"라고 크리스는 말했다. 시범 체류 기간 동안 여러 분야 전문가들과 교류하며 이들의 선상 강연도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들의 결정이 모두에게 환영받은 건 아니다. 짐의 전 혼인 관계에서 낳은 아들은 처음엔 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크리스는 "우린 아직 젊고 건강하다. 인생의 마지막 한 챕터를 새롭게 열기에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말했다.

이들의 다음 여정은 이제 바다 위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