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더이상 피를 흘려서는 안 된다

(뉴욕=미주뉴스앤조이) 손현 기자 = 지난 9일 앨라배마주 셀마에서는 ‘피의 일요일’ 60주년을 기념한 행진이 이어졌다.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셀마 행진’을 기념하기위해 열린 이번 행사는 트럼프 정부가 추진하는 다양성 정책(DEI) 폐지 등에 대한 항의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셀마 행진’은 1965년 3월 흑인들의 참정권을 요구하며 셀마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너 행진하던 시위대를 군과 경찰이 강경 진압하며 발생한 사건이다. 셀마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던 흑인이 투표권을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에 시작된 시위였다.

수많은 인권 운동가들이 흑인 참정권을 요구하면서 80번 고속도로를 따라 셀마에서 주도인 몽고메리까지 87km를 행진했다. 총 세차례 시도 끝에 성공한 이 행진에서 지미 리 잭슨이 총격에 사망했고, 제임스 리브라는 백인도 함께하다 인종차별주의자 백인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사망했다.

2번째 행진부터 참가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영향력으로 이 운동은 규모가 커졌고 결국 3번짼 행진을 통해 목적지인 몽고메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행진을 통해 린든 존슨 대통령은 같은 해 8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투표권 보장을 골자로 하는 투표권법에 서명했다.

역사적으로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는 1905년 1월 22일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노동자 청원 행진이 원조라 할 수 있다.

러시아 정교회의 사제 게오르기 가폰 신부가 주도해 진행된 청원 행진은 ‘8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제’ 등 착취, 빈곤, 전쟁에 허덕이던 러시아 민중의 소박한 요구를 대변한 것이었다.

이들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와 기독교 성화 상, 그리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은 청원서를 손에 들고 차르의 겨울 궁전으로 평화적으로 행진했다. 하지만, 당시 실권자인 그레고리 라스푸틴의 유혈 진압 지시로 600여명의 사망자와 수천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차르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군대까지 결합하면서 ‘전함 포템킨’ 사건으로 이어졌고, 훗날 2월과 7월 혁명으로 이어졌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다른 피의 일요일은 1972년 1월 31일 북아일랜드 런던데리시에서 발생했다. 가톨릭을 믿는 북아일랜드 시위대 1만여명이 신교파인 영국인들과 동등한 시민권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다 영국 공수부대원들의 발포로 13명이 현장에서 숨지고 14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아일랜드 공화군(IRA)가 본격적으로 무장 투쟁으로 나서게 된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영국 군인이 먼저 총격을 가한 명백한 살인행위였지만 영국 정부는 계속해서 거짓으로 사건을 부인하다 1988년 토니 블레어 총리의 지시로 사건 수사가 이뤄졌고, 38년만인 2010년 공개 사과를 하게된다.

2002년 개봉된 영화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는 일요일 하루 동안 북아일랜드 시민들의 행진과 이들에 대한 영국의 무자비한 진압을 다룬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결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피의 일요일’은 극단적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적 행위(미국)와 라스푸틴과 같은 거짓 종교인의 국정 농단(러시아), 명백한 살인을 거짓으로 철저히 감춘 정부 지도자(영국)이 만들어 낸 역사적 비극이다.

3월은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의 의역된 명언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는 말을 되새기게 하는 달이다.

작금의 한국은 이러한 ‘피의 일요일’의 배후세력인 극우세력, 사이비 종교인, 거짓 정부 지도자가 삼위일체가되어 날뛰고 있는 형국이다. 더이상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키우기 위해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 이 어려운 시국을 슬기롭게 넘길 수 있는 냉철한 판단과 결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