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성 알츠하이머 환자, 실험 약물로 발병 시기 늦춰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알츠하이머 발병이 사실상 예정된 일부 유전 환자들에게서 실험 치료제가 증상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관련 연구는 미국 정부의 예산 지연에 가로막힐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연구진이 진행 중인 이번 연구는 가족력이 있는 희귀 유전 돌연변이 보유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 유전자는 보통 40~50대에 알츠하이머 증상을 일으키며, 발병 시기도 유전되는 특징이 있다. 연구진은 이들 중 일부에게 평균 8년 동안 아밀로이드 제거 약물을 투여했고, 그 결과 증상 발현 위험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초기 결과를 ‘랜싯 뉴롤로지’(Lancet Neurology)에 발표했다.

연구에 참여한 뉴욕의 제이크 하인리히스(50)는 "이 실험 덕분에 예상치 못했던 삶의 연장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이 알츠하이머로 숨진 것과 같은 유전자를 지녔지만, 현재까지 10년 넘게 증상 없이 지내고 있다. 그의 아내 레이첼 차브킨은 "이 임상시험은 남편의 생명줄"이라며, 예산 중단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에겐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을까"라고 우려했다.

조기 제거가 효과적일까…검증 필요

현재 미국에서 판매 중인 두 약물은 아밀로이드라는 끈적한 단백질을 제거해 초기 알츠하이머 진행을 일부 늦춘다. 그러나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 단계에서 아밀로이드를 제거해 질병 자체를 지연시킬 수 있다는 증거는 이번이 처음이다.

워싱턴대의 랜달 베이트먼 박사는 "앞으로 5년간 치료를 지속하면 얼마나 강력한 보호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할 계획"이라며, "이들이 끝내 알츠하이머 증상을 겪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자금이다. 베이트먼 박사는 국립보건원(NIH) 예산 지원을 기다리는 동안 별도 기금을 모아 연구를 이어가고 있지만, NIH의 예산 검토 과정이 취소되며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다. 이는 최근 NIH가 예산 삭감과 대규모 해고로 수많은 연구를 중단한 사례 중 하나다.

게다가 NIH 차기 국장으로 지명된 제이 바타차리아 박사는 "NIH가 충분히 다양한 가설을 지원하지 않아 알츠하이머 연구가 정체됐다"고 주장해, 아밀로이드 중심 연구가 예산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치 아닌 생명을 위한 지원 필요"

알츠하이머는 미국에서 약 700만 명이 앓고 있으며, 대부분 노년기에 발병한다. 하지만 증상이 나타나기 20여 년 전부터 뇌에서는 조용한 변화가 시작되며, 아밀로이드는 이 병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아밀로이드가 일정 수준 이상 축적되면 타우라는 단백질이 신경세포를 파괴해 인지기능 저하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타우 단백질을 표적으로 한 약물, 염증과 면역세포, 바이러스 등 다양한 요인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하지만 NIH의 지원이 없다면 아밀로이드 제거 치료의 가능성을 입증할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에 사는 연구 참여자 준 워드는 "이 치료 덕분에 어머니보다 두 살 더 많은 지금까지도 건강하다"며, "알츠하이머가 내 인생을 앗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정말 흥분된다"고 말했다.

하인리히스는 세 살배기 아들이 "어릴 적 내가 아버지를 보며 겪었던 슬픔과 고통을 겪지 않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 차브킨은 "NIH는 정치에 흔들려선 안 된다. 이건 생명을 지키는 문제이며, 지금은 내 남편의 생존이 걸려 있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