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 목적으로 18세기 ‘전시법령’ 적용 논란

(올랜도=코리아위클리) 김명곤 기자 = 트럼프 행정부가 법원의 일시 중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이민자를 엘살바도로 추방했다고 미 정부 관계자들이 밝혔다. 법원 명령이 내려질 당시 일부 이민자를 태운 항공편은 이미 공중에 떠 있었다.

미 연방 지방법원 판사 제임스 E. 보스버그는 15일 베네수엘라 갱단 단원들을 겨냥한 18세기 전시(戰時) 법령에 따른 추방을 일시적으로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이미 두 대의 항공기가 이륙해 있었으며, 한 대는 엘살바도로, 다른 한 대는 온두라스로 향하고 있었다고 법원에 보고했다.

보스버그 판사는 구두로 항공기의 회항을 지시했으나, 이 명령은 서면 결정문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항공기는 예정대로 목적지에 도착한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리빗은 16일 성명을 통해 법원 명령을 어겼다는 의혹에 대해 "행정부가 법원 명령을 준수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법적 근거가 없는 명령이 테러리스트 TdA 외국인들이 미국 영토를 떠난 이후에 내려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TdA는 트렌 데 아라구아(Tren de Aragua) 갱단을 지칭하는 약어로, 트럼프 대통령은 15일 이 갱단을 겨냥한 특별 포고령을 발표한 바 있다.

트럼프 "지금은 전시 상황, 범죄자 유입은 침략"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행정부가 법원 명령을 어겼는지에 대한 질문에 "나는 모른다. 변호사들에게 물어보라"고 답했다. 다만, 추방 조치에 대해서는 강하게 옹호하며 "이들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대통령 전시 권한을 발동한 것에 대해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범죄 이민자들의 유입은 침략"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조치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엘살바도르 대통령 나이브 부켈레는 소셜미디어 X에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이미 늦었다"라는 글을 올리며 보스버그 판사의 결정과 관련된 기사를 공유했다. 부켈레 정부는 미국과의 협약을 통해 약 300명의 이민자를 1년간 수감하는 대가로 60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이번 추방은 트럼프 대통령이 1798년 제정된 '외국 적법(Alien Enemies Act)'을 발동한 이후 이뤄졌다. 이 법은 미국이 전쟁 상태에 있음을 선언해야만 적용될 수 있으며, 대통령에게 특정 외국인을 구금하거나 추방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한다.

이 법은 미국 역사상 세 차례(1812년 전쟁,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만 사용되었으며, 마지막 적용 사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이었다.

전시법 발동에 법적 공방 지속될 듯

베네수엘라 정부는16일 성명을 통해 트럼프의 법 적용을 강력히 비판하며, 이를 "노예제부터 나치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들을 연상시키는 조치"라고 규탄했다.

트렌 데 아라구아는 베네수엘라 아라구아 주의 악명 높은 교도소에서 시작된 범죄 조직으로, 최근 몇 년간 수백만 명의 베네수엘라 이민자들과 함께 해외로 확산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에서 이 갱단을 부각하며 미국 내 이민자 문제를 범죄 문제로 연결짓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추방된 이민자들이 실제로 트렌 데 아라구아 소속인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으며, 그들이 미국에서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16일 엘살바도르 정부가 공개한 영상에는 수갑과 족쇄를 찬 채 비행기에서 내리는 남성들의 모습이 담겼다. 무장 경찰이 이들을 억누르며 고개를 숙이게 했고, 이후 교도소로 이동시켰다.

트럼프 행정부는 14일 밤 "트렌 데 아라구아가 미국을 침공했다"라고 공식 발표했으며, 같은 날 늦은 밤부터 일부 베네수엘라인들을 텍사스로 이송해 추방 준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민 변호사들이 긴급 소송을 제기했다.

워싱턴 라틴아메리카 연구소(WOLA)의 애덤 아이작슨은 X에 "사실상 미국 내 모든 베네수엘라 시민이 트렌 데 아라구아 소속이라는 명목으로 방어 기회도 없이 추방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