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젤렌스키와 트럼프의 회담 장면을 보았다.

혹 보았다면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

정장을 차려입지 않았던 젤렌스키에게서 결연함을 보았다. 하지만 그런 결기는 제국의 힘 앞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것은 다만 빈정거림의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꺼내지도 못했는데 말이 많다는 트럼프의 지적과 함께 입을 닫아야 했고,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난 회담 후 그는 속절없이 미국과 트럼프를 존경한다는 메시지를 내야했다.

한편으로는 막무가내인 트럼프를 통해 협상의 진수를 보았다. 모름지기 협상은 트럼프와 같이 해야 한다. 새삼 그와 협상의 대상이었던 김정은이 대단했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아무런 성과도 없었지만 최소한 김정은은 젤렌스키와 같이 면전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며 무시당하지는 않았다.

미국은 그동안 미국의 진짜 얼굴을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이념 속에 숨겨온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숨겨온 진면목이 트럼프의 두 번째 집권 시기에 일목요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주변에 포석된 인물들은 그야말로 정신병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그런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렇게 선택된 미국은 미국의 진짜 정체성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그 진면목은 바로 제국이다.

제국의 속성 중 하나는 민족을 이간질하고 쪼개 분할통치하고 내전을 일으키는 일이다.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꼭두각시 정부를 만들기 위해 분봉왕·총독을 파견하고, 반정부 집단을 세우고 내전을 통해 정부를 무너뜨린다. 오래전 바빌론·페르시아·로마제국이 하던 그 역할을 19세기에는 영국이 담당했고, 20세기엔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수많은 민족 갈등과 내전을 양산했다. 미소 합작 군사 강점과 분할통치로 일어난 한국전쟁뿐 아니라, 베트남전쟁, 니카라과 내전,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등 지난 세기 전 세계에서 일어난 전쟁의 배후에는 항상 제국의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 중국을 그토록 견제하는 이유도 중국 역시 또 다른 제국이기 때문이다. 제국은 평화를 도모하기 마련이다. 그 평화는 무력으로 이루는 과거 로마의 방식으로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불리던 것이다.

제국으로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서의 전쟁은 물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도 끝낼 수 있다. 평화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라 제국인 미국을 위한 평화에 지나지 않는다. 제국이 아닌 다른 나라들은 그 대가를 미국에 치러야 한다. 모든 문물이 로마로 향했듯이 미국 역시 그것을 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광물에 대한 협상권은 시작에 불과하다. 전쟁이 끝나고 이루어질 복원사업으로부터 미국이 거둬드릴 이익은 그동안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적 지원과 비교할 수 없다. 미국은 그동안 투자를 한 것일 뿐이다.

어느 나라든 그런 미국을 지향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미국처럼 세계 최고의 강대국이 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미국에 머리를 조아리고 좋은 관계를 위해 알아서 기는 자세를 취한다. 얼마 전 일본에서는 그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동안 노골적이지 않았던 제국으로서의 미국의 진면목이 바야흐로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미국과의 동맹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태극기부대야말로 치도곤을 치르게 될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이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반응하며 자신의 의도에 복종할 때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그야말로 표리부동한 제국이다. 태극기 부대들은 자신들이 휘두르던 성조기의 진면목을 반드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함께 식민지에는 예외 없이 선교사들이 선봉에 서서 들어왔다. 선교사와 함께 물질이 따라오면 교회가 건축되고 신학교가 만들어진다. 공개된 예배와 각종 프로그램이 돌아가며 선교사를 돕는 현지인·교인들에 의해 공개적인 선교가 진행되기 마련이다. 그것이 지난 수백 년간 서방 국가의 가톨릭·개신교가 진행한 '위로부터의 선교'였다. 아프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도 카불에 세워진 친미 정부에 의해 아프간 사회는 서구 문명과 접목되며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기독교 복음도 전파됐다. 그로 인해 여성들의 교육과 인권이 신장되기도 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그리스도교는 이처럼 제국주의의 시녀로 전락했다. 어떻게 비폭력 평화의 복음인 예수의 복음이 폭력의 대명사인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역사 속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고,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그리스도교 자체가 폭력적인 제국주의의 신학을 공고하게 구축해놓았기 때문이다. 신국론이나 정당한 전쟁론과 같은 것들이 그런 예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광훈과 손현보를 지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자들과 선을 그어 자신들이 그런 자들과 같지 않음을 입증하려고 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미 그리스도교는 제국주의의 시녀로 또 다른 그리스도교 제국주의가 되었다. 전광훈과 손현보와 손절하거나 그들과 자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대부분 그들과 그 근본에 있어 차이가 없다. 폭력을 근간으로 삼고 용인한다는 점에 있어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나는 최근 최서원의 딸인 정유라가 자신은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지금과 같이 만든 윤석열을 미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기사를 보았다. 놀라운 일이다. 정유라의 입에서 자신이 원수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나는 정유라를 통해 평화의 복음인 예수의 복음이 어떻게 제국주의의 복음이 될 수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속한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진면목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제국주의 그리스도교라는 사실을 볼 수 있게 해준다면 즉시 그곳에서 탈출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면면히 이어져온 평화의 복음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복음은 죽지 않는다. 다만 가려질 수 있을 뿐이다.

이와 함께 자신들이 평화의 복음을 간직한 평화 교회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화 교회의 전통 속으로 들어가 제국주의 그리스도교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를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그만큼 평화의 복음은 급진적이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십자가는 여전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십거리이고 십자가로 이루는 평화는 멀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은 그 길을 가야한다. 그 길만이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