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장로교회(PCA), ‘정부 명령에 불복종은 죄’ 사과 성명

(뉴욕=미주 스앤조이) 편집부 = 보수 개신교 교단인 미국장로교회(PCA,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가 이민자들에게 기본적인 인권 정보를 제공한 것에 대해 "회개"하는 사태가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PCA의 북미 교회 개척 및 선교를 담당하는 선교기관인 ‘북미 선교부(Mission to North America, MNA)’는 지난 1월 9일, 2025년 미국 이민 정책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교회가 이민자와 이민 공동체를 돕기 위한 정보를 담은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후인 2월 12일, 해당 웹사이트를 삭제한 후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MNA가 개설한 웹사이트는 미국 내 이민자, 특히 불법 체류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자료들을 제공했다. 이 사이트에는 체포될 가능성이 있는 이민자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 이민 단속 중에 취해야 할 행동, 그리고 교회 및 지역사회가 이민자를 지원하는 방법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단순히 불법 행위를 조장하거나 법을 어기라는 것이 아니라, 미국 및 국제법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보 제공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강경 이민 정책이 다시 부각되는 가운데, 이러한 정보 제공조차 정치적 논란이 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PCA 내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강한 반발이 나타났다.

2월 12일, MNA는 웹사이트를 삭제하고 "회개와 사과"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MNA는 성명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는 기독교인의 의무로서 합법적인 시민 정부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들의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WCF 23.4; 로마서 13:1-4; 베드로전서 2:13-14). 그렇지 않도록 조언하는 것은 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성경적 및 신앙 고백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회개하며 사과드립니다. 또한 교회 내 혼란과 불안을 초래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드립니다.”

또한 MNA는 "우리의 난민 및 이민 사역은 교회가 이방인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을 충실히 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며, 우리는 법률 자문이나 정치 활동, 정당을 지지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MNA의 이 같은 태도 변화는 PCA 내 보수적인 신학적, 정치적 성향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 보수 개신교 내에서는 이민 정책에 대해 점점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며, 이번 사태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에서는 모든 사람, 심지어 사형을 선고받은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법과 국내법의 원칙이다. 그러나 PCA와 MNA가 기본적인 법적 권리를 알리는 것조차 정치적 행위로 간주하고 회개까지 선언한 것은, 보수 개신교 내부에서 점점 더 이민자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다루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저스트 빙>(Just Being)의 노먼 비스 기자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권리를 알려주는 것이 죄라는 개념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이는 성경적 가치와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도널드 트럼프가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을 범죄자와 강간범으로 묘사하며 반이민 정서를 조장한 이후, 10년 동안 서서히 이민자에 대한 비인간화가 진행되어 왔다"며 "이제 보수 개신교 내부에서는 불법 행위를 조장하는 것과 단순히 권리를 알리는 것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우려했다.

MNA의 발표 이후, PCA 내부에서도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일부 보수 성향의 교인들은 MNA의 결정을 지지하며 "교회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가 이방인을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성경적 가르침을 강조하는 이들도 많다.

이번 사건이 특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PCA가 이민자를 직접 돕는 활동이 아닌 단순한 정보 제공조차 스스로 "죄"라고 규정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개혁신학을 따르는 일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성경은 이방인과 소외된 자들을 보호하라고 명령하고 있다"며, PCA가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치적 이념에 굴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PCA와 유사한 신학적 배경을 공유하는 다른 개신교 교단들에서도 이번 사건을 주목하고 있다. 이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보수 개신교의 정치적 방향성이 점점 강경 보수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보수 개신교의 정치적 색채가 점점 짙어지면서, 교회가 사회적 약자와 이방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해졌다. 성경이 강조하는 ‘이방인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신학적 해석이 충돌하는 가운데, 교회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이번 사건은 단순히 PCA라는 특정 교단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기독교계가 앞으로 교회와 사회 정의,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적 도전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그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본보 제휴 <미주 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