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학문으로서의 신학이 인류 지성사와의 유기적인 통섭을 통해 함께 변화하고 성장하는 살아있는 인간의 사유 탐구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전통'으로 불리는 교리와 신학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얼마나 혁명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신과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였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문자 그대로 박제하여 그저 의심 없이 확신하는 것을 믿음이라, 신앙이라 착각한다.”

인상적인 내용이라 스크랩해두었던 내용이다. <뉴스엔조이> 기사에서였던 것 같다.

이 글의 내용은 적확하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박제된 교리 때문에 살아 있는 복음이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화석이 되었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화석은 생명의 흔적으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생명이 없다. 그리고 생명이 없는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교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그리스도교가 화석이 되었다고 말하는 이유이고 그 원인은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박제된 교리를 의심 없이 확신하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글쓴이는 박제된 교리를 의심 없이 확신하는 것에 문제성을 지적하면서 교리와 신학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얼마나 혁명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신과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였다는 바람직한 측면만을 서술했다. 나는 글쓴이가 더 중요한 한 가지를 간과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권력을 장악하여 자신의 논리에 절대성을 부여하려는 카인의 사고가 신학에 작용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반복해서 밀라노칙령으로 주어진 신앙의 자유가 그리스도교만을 위한 신앙의 자유가 아니라 모든 종교의 신앙의 자유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신앙의 자유 이후의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신앙의 자유를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로 생각한다. 물론 그리스도교에도 신앙의 자유가 허락된 것은 맞지만 종교의 시장이었던 로마의 종교에 그리스도교가 하나 더해진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리스도교는 유일한 종교로서가 아니라 다른 종교들과 경합하는 종교로서 힘과 영향력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리스도교 역시 다른 종교와 함께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권력을 장악해서 다른 종교들을 병합해서는 안 되었지만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됨으로써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게 되었고, 평화의 종교여야 할 그리스도교가 폭력의 종교가 됨으로써 그리스도교 본연의 복음이 변질되었고, 그것이 교리로 집대성되어 그리스도교가 복음이 아닌 교리 중심의 그리스도교가 되었다.

그 중심에 콘스탄티누스와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전형적인 카인의 후예였다. 그는 자신과 다른 견해를 지닌 그리스도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관철했다. 그는 뇌물의 사용은 물론 폭력적으로 그런 일들을 수행했고 그 일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라. 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 그랬다면 그 이후의 신학은 어땠을까? 두 말 할 필요 없이 이후의 신학은 권력을 지닌 자들의 견해가 되었다. 물론 그들 역시 위에 인용한 글의 내용처럼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혁명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신과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신학의 아버지로부터 전해진 신학의 바탕 자체가 평화의 복음과는 거리가 있는 폭력적인 사고가 지배하고 있다면 이후의 신학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신학은 인간의 학문이다. 시대적 상황 속에서 혁명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하나님과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라 할지라도 신학을 신학이 되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 서는 것이기에 그것이 학문이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제한하는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보라.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아지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생각해보라.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알지만 어린아이가 아는 아버지가 아버지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학이다.

또한 어린아이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약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지혜롭다.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하다. 그러나 신학은 이 반대로 작동한다.

신학자들이 지혜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신학자들은 지혜 있는 자들이다. 지혜 있는 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위 말씀에서 밝히고 있지만 그런 지혜 있는 자들은 자신의 지혜가 하나님의 어리석음과도 비교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가 어렵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며,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신다.

그래서 나는 기꺼이 교리 무용론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을 내가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신앙인이 되었다고 착각하지 말라. 나는 가장 이성적이 되어 시대와 상황 속에서 복음을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절대적으로 확신하게 된 그런 내 복음 이해조차도 하나님의 어리석음 앞에서 언제든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나는 가장 이성적으로 사고하지만 결코 내가 알고 이해하게 된 것에 절대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언제든 배울 수 있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언제든 주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할 수 있고 이끌릴 수 있다.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 마귀의 졸개들이 그들의 적인 그리스도인이 “진리의 조각”을 발견한 것을 놓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을 보고 마귀가 웃으며 말한다.

“적(그리스도인)들이 진리의 조각을 발견하고 그것을 전부로 아는 것보다 안전한 경우는 없다.”

나는 교리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를 지혜 없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를 본 적이 없다. 하나님을 안다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모두가 겸손한 신학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