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는 한 몸... 대북•통일정책에서 절차적 민주성 회복해야

(서울=오마이뉴스) 정일영 기자 = 2025년을 맞으며 엄중한 국내외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2024년 연말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과 내란 시도는 온 국민의 저항으로 실패했지만, 혼란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내란 세력이 북한을 도발해 계엄의 명분을 만들려 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안보와 한반도 평화를 모색해야 할 정부가 분단체제의 약한 고리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한 것이다. 일련의 충격적인 사건들을 되돌아보며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가 한 몸임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다.

하지만 충격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한반도 평화를 재정비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였나?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위협과 이에 동조하는 종북 반국가 세력의 척결을 계엄의 이유로 든 것이다.

하지만 내란 주모자들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내란 세력들이 북한을 도발해 계엄을 정당화하려 했고 계엄군이 북한의 인민군으로 위장해 사회 교란 행위를 준비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계획이 가능했던 것일까?

정부는 한반도 문제, 특히 대북•통일정책에 있어 배타적 권한을 독점해 왔다. 누구도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북한과 접촉할 수 없으며 공식적인 남북회담 또한 정부가 독점해 왔다. 국회조차도 독자적인 대북 접촉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부의 독점을 견제할 장치는 없었을까? 정부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5년마다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연차 보고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국회 동의 사항이 아닐뿐더러 여름이나 연말이 다 돼서야 계획을 보고하는 경우도 허다했다(관련 기사: 늦어도 너무 늦은 계획수립, 통일부 왜 이러나, https://omn.kr/28vbb).

결국 윤석열 정부는 통제받지 않는 배타적 권한으로 '힘에 의한 평화'나 '즉•강•끝'(즉시•강력히•끝까지)을 외치며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하며 스스로 '반공전체주의'에 빠져들었다.

이 작업은 2023년 7월 극우 통일부 장관과 10월 강경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며 구체화 되었다(관련 기사: 남북 충돌 불사하는 듯한 윤 정부... 위험 신호 3가지, https://omn.kr/25urg). 특히 통일부는 정부 내에서 극단적인 남북 대결을 견제하고 남북 간 대화를 통해 긴장 완화를 추구해야 할 '안전장치'이다. 하지만 통일부는 구호뿐인 북한 인권과 노골적인 흡수통일론인 '통일 독트린'을 주장하며 북한을 자극하고 정부의 폭주를 견제할 능력을 상실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고 내란 세력을 구속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정부의 배타적 권한을 해체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대북•통일정책에서 정부의 배타적 권한을 해체하고 절차적 민주성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관련하여 국회와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 등 법률에 따라 수립되는 정부의 각종 계획에 대한 국회의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 최소한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과 연차계획에 대해서는 단순 보고가 아닌 국회의 동의 권한을 보장하고 정책 수행과정에서 이를 위반할 경우, 국회의 견제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관련하여 정부와 국회는 남북관계발전 기본계획 등 각종 계획을 수립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자문을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독점하고 있는 대북 접촉 및 회담 대표 권한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대북 접촉 및 회담 대표 권한 독점은 남북협상 과정에서 효율적일지 모르나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새로운 논의를 시작할 출구를 찾지 못하는 문제를 노출해 왔다. 관련하여 정부가 아닌 국회, 혹은 입법, 사법, 행정부가 구성원을 추천하는 별도의 위원회에서 대북 접촉 및 회담 대표 권한을 관리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통일부가 자신의 정체성, 즉 '남북대화와 교류•협력'에 충실할 수 있도록 북한 인권 관련 업무를 국가인권위원회와 법무부(북한인권기록센터)로 분리 이관할 필요가 있다(관련 기사: 윤석열 정부는 북한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 https://omn.kr/252th).

두 번째, 대화와 타협의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야당과 타협하지 않는 대북정책을 펼쳐왔다. 이런 이유로 정권교체는 대북•통일정책을 180도 뒤집는 일이었고 남북관계 또한 불안정이 반복되어왔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권교체는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정권교체로 인한 남북관계의 단절과 불안정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한반도 분단체제하에서 보수와 진보 정부의 대북정책은 상당한 간극을 지속해 왔다. 이는 대북정책의 차이뿐만 아니라 국내 정치와도 연결된 복잡한 방정식으로 얽혀 있다. 이대로는 해결 방안이 없다.

결국 정부•여당이 야당과 대화하고 자신의 정책을 일부 양보하더라도 야당의 정책을 최소한으로 반영하는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정권교체와 함께 모든 것이 뒤바뀌는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남북관계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이 정부의 배타적 권한을 국회와 시민사회가 나누는 제도적 작업과 함께 진행된다면 남북관계의 불안정을 점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관련 기사: 정권 교체하면 '리셋'? 남북관계, 이대로는 안 된다, https://omn.kr/25iiu).

정치권의 논의와 함께 시민사회가 공론의 장을 만들고 보수와 진보, 중도와 종교를 아우르는 토론을 주도해야 한다. 우리 시민사회는 2021년 진보와 보수, 중도와 종교계가 숙의 토론을 통해 '통일국민협약'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관련 자료: 통일국민협약 https://www.korea.kr/special/policyCurationView.do?newsId=148897704). 안타깝게도 시민사회가 주도한 통일 논의는 윤석열 정부가 '통일 독트린'을 전면에 내세우며 중단되고 말았다. 관련하여 통일부가 시민사회와 폭넓게 소통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 특보를 신설하는 방안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남북관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평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남북관계를 제도화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롤러코스터를 탄 이유도 있지만 그 자체로 불안정을 내재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불안정은 남과 북이 서로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결과이다. 아니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인가?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서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라는데 합의했다. 이는 우리 법률(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도 반영되어 있다.

남북이 서로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님을 선언한 것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함으로써 상호 교류와 협력을 민족 내부의 문제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호 규정이 남북의 약속, 즉 남북합의서가 조약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선의에 의한 약속, 즉 '신사협정'에 준한 것으로 격하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남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정상 합의를 포함한 수많은 남북합의서(168건)를 체결했다. 그러나 남북 합의가 제도적으로 그 효력을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 합의는 무력화되기 일쑤였다. 이는 남북이 서로를 불신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관련하여 남과 북 모두 남북 합의를 이행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과거 '동서독기본조약'과 같이 조약의 형태로 '남북기본조약'을 체결해 근거 조약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관련 기사: 남북합의서, 그 참을 수 없는 나약함에 대하여, https://omn.kr/1yqn9).

한반도 분단 체제하에서 남북의 합의는 정지되거나 사문화될 수도 있다. 다만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다툼이 있는 사항은 새롭게 보완하는 실효적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 관련하여 남북 합의의 이행과 정지, 그리고 분쟁 사항을 논의하고 재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공동기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국제기구나 EU 등 남북이 신뢰할 수 있는 제3자가 참여하는 방안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탄핵 이후,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계엄군에 의한 국회, 선거관리위원회 침탈, 그리고 주요 정치인에 대한 납치 시도는 그가 그리도 숭배하던 '자유민주주의'를 스스로 무너뜨린 폭거였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리서치앤리서치(동아일보 의뢰)가 2024년 12월 28~29일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4%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인용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제 탄핵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된다면 다시 한번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대통령 선거는 어느 정당의 어느 후보를 뽑느냐의 문제로 치환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느 정당이 집권당이 되든 두 번 다시 분단 상황을 이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특정 후보, 사람에 대한 '희망 사항'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

바로 지금부터 대북•통일정책에서 절차적 민주성을 제도화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일영씨는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관심분야는 북한 사회통제체제, 남북관계 제도화, 한반도 평화체제 등으로, <한반도 오디세이>, <한반도 스케치北>, <북한 사회통제체제의 기원> 등 집필에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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