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바야흐로 법이 난무하고 있다. 저마다 합헌을 떠들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점점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이 나도 아마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법의 판단에 의한 복종만이 절대적으로 힘을 가질 뿐 그것은 정의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

그러면 정의란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내 생각은 ‘그렇다’이다. 정의란 각 사람의 처한 상황에 따라 달리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의조차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정의는 가변적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저마다 말하는 정의는 결코 모든 사람들이 동의하는 정의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서로가 다르게 주장하는 정의가 있기에 정의는 그나마 정의로서 작동할 수 있다. 아마도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인간사가 이럴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사에 절대적인 옳고 그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중대한 원칙을 발견한다. 무엇에든 인간이 자신의 옳음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순간 그것은 오히려 정의로부터 멀어지는 첩경이라는 사실이다. 정의는 옳고 그름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결국에는 힘(폭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초기의 모든 기독교 지식인들은 정의가 근본적으로 인간의 문제임에 동의하고 있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정의롭게 되고, 정의로운 환경에서 살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고, 당시에 많은 바울 이전 이후 사람들이 법을 그 해답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반대했다. 법은 결코 정의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봤다. 여기서 바울의 천재성이 돋보인다. 바울이 보기에 당시 법은 완전히 실패했는데, 모세의 법에 따르면 메시아 예수는 저주받았고, 로마법은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최선의 두 가지 법이 메시아로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와 완전히 대립되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다. 종교, 정치, 법, 그 모든 것이 종합된 이러한 체계 자체로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정의는 절대 만들 수 없는데, 이때 정의는 과부, 노예, 모든 사회적 약자에게도 적용되는 정의를 말한다. 법은 언제나 그 테두리 안에 힘을 가진 이들의 그 이해관계에 따라 만들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래서 법은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는다고 말했던 것이다.”(테드 제닝스, <무법적 정의>)

테드 제닝스가 말하는 것은 법으로는 정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로마서를 통해 바울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대로 최고의 법이었던 로마의 법과, 최고의 신의 법이었던 율법 모두 정의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법이 근본적으로 폭력을 기반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작금의 상황을 잘 살펴보라.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동인은 결국은 힘이다. 다수결이란 근본적으로 다수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그 힘이 타협이나 상생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발전된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소수는 다수의 횡포를 견뎌야 하고, 다시 다수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윤석열의 계엄령선포는 그러나 기다림을 계엄령선포라는 또 다른 폭력으로 반전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법에도 정당한 폭력과 불법적인 폭력은 구분되어 있고, 윤석열을 불법적인 폭력을 정당한 폭력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희생양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더 큰 힘을 가진 자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힘이 없는 자들에게는 불의가 된다. 그들이 서로 법을 내세우는 것은 결국 폭력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지만 아무리 법의 판단에 의해 정당성이 가려져도 그것에 의해서는 정의가 구현될 수 없다.

“바울은 하나님이 요구하는 정의를 만들기 위해 종교적 기독교와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상상했’으며, 지금 교회가 하는 것처럼 칭의로 개인 구원을 말한 적도 없다.”(위의 책)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추구하고 따라야 하는 삶의 방식이 하나님이 요구하는 정의, 다시 말해 하나님의 정의라는 사실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들은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들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다. 그래서 그들의 장례식은 ‘천국환송회’라는 이름으로 열리고 그들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서 오히려 기뻐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고인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장례식이라면 모름지기 하나님의 정의가 고인의 인생을 돌아보는 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고인의 유지를 받들던, 아니면 잘못된 고인의 삶을 반성하던 장례식의 의미는 하나님의 정의가 묵상되고, 나누어지는 믿음의 계승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종교적 기독교 이전의 기독교로 돌아가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위한 삶의 방식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도, 분배도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관용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정의에 대해서 상상했다. 그는 하나님의 관용에 사로잡히면 우리도 그런 관용을 드러낼 존재가 되리라고, 그리스도가 환영하고 받아들이고 용서한 것처럼 똑같이 된다고 확신했는데, 이건 확신이라고밖에 달리 말할 수가 없다. 바울은 단순히 정의를 구현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 사상가가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낸 운동가였다. 당시 로마 제국의 서쪽 반을 차지하는 곳들을 다니며 조그마한 커뮤니티(들)를 만들었다. 커뮤니티마다 관용을 나누는 사람들이 되라고 했으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요구하는 정의를 실현하는 집단을 만들어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확신이 있던 사람이다. 따라서 바울의 사상은 절대 한 개인을 목적으로 두지 않으며, 한 개인의 칭의를 말한 적이 없다. 커뮤니티로서 그것을 실현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행동한 사람이 바울이다.”(위의 책)

나는 테드 제닝스의 복음이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법은 정의를 만들어낼 수 없다. 애초에 윤석열은 폭력적인 사고를 지닌 법 전문가였고,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 우리의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 것은 살펴볼수록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법조인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에게서는 바람직한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는 사회적인 인식이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우리의 역사적 유산은 그 사고를 불식시키거나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테드 제닝스가 이해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새로운 사회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자신들이 이루어낸 사회(교회)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관용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관용을 드러낼 때 우리 사회의 정의가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자 믿음이다.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하나님의 경제에 따라 세상의 벽들을 허물어가는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운 이유이며, 그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님의 일하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자 판단이다.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는 사회는 법이 없는 사회다. 사람들은 좋은 사람을 일컬어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잘도 하면서도 안타깝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관용에 사로잡히지 않았기에 실제로는 이것을 상상할 수 없다. 내 마음속에 타고 있는 이 불을 주님은 아실 것이다. 그것은 곧 주님의 마음이기도 하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내 삶을 불태울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