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팔랑게’는 히말라야에 있는 마을의 주민으로 석청을 따는 사람이다. 그는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절벽에 있는 석청을 긴 대나무를 이용해 딴다. 매우 위험한 일이고 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어제 티브이에서 팔랑게가 석청을 따는 모습을 보았다. 생명을 걸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생명을 걸지 않더라도 벌에 쏘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힘들게 딴 석청은 모두 마을 공동의 것이 된다.

내가 주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딴 석청이 마을 공동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자본과 자유를 신성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불의한 일이고 무질서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일을 오래 전 에스비에스에서 방영했던 “아누타 섬 이야기”에서도 보았다. 그곳에서도 팔랑게와 같은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마을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소유를 실천하는 것은 그곳 모든 일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누타 섬에서 그와 같은 삶의 방식이 채택된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누타 섬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런 삶의 방식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아누타 섬 사람들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서로 싸웠다. 그런데 그렇게 싸우다보니 남자들이 모두 죽었다. 마침내 남자가 세 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타협이 이루어졌다. 싸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아누타 섬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인 “아로파”가 시작되었다. 나는 아누타 섬 사람들의 아로파를 보고 하나님 나라의 삶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아누타 섬이나 히말라야 마을의 삶은 매우 척박하다. 협동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런 곳에서 자연스럽게 협동이 이루어졌고,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것이 경쟁하며 사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먼저 ‘팔랑게’의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보자. 팔랑게는 아무나 될 수 없다. 그래서 가장 뛰어난 체력과 용기를 지닌 사람이 팔랑게가 된다. 그러나 팔랑게는 그런 자신의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마을 전체를 위해 사용한다. 티브이에는 방영되지 않았지만 석청에 대한 우선권을 인정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처분권을 팔랑게가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팔랑게는 자신의 능력으로 석청을 땄지만 그 석청의 처분권을 마을에 줌으로써 마을 전체를 위해 그의 능력을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그동안 내가 계속해서 말해왔던 비 능력이다. 비 능력은 무능력이 아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능력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만 사용되지 않고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한 다른 사람들, 즉 마을 전체를 위해 사용된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말하는 섬김이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아누타 섬 이야기에서도 나는 똑같은 것을 보았다. 건장한 남자들은 험한 파도를 넘어가 물고기를 잡아온다. 그리고 잡아온 물고기를 모두가 함께 먹는다. 건장한 남자들의 능력이 비 능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아누타 섬 모든 사람들의 능력은 이처럼 비 능력이 되어 마을 전체를 위해 사용된다. 그곳의 어린아이로부터 늙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굶주리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은 모두 동등한 존재로 존중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생각해보라. 경쟁을 질서로 주장하고, 능력을 자유로 인식하는 우리 사회가 지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제로 섬 게임(Zero sum game)이 벌어지는 경쟁사회, 자본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는 신자유주의체제가 주장하는 자유는 사실 자유가 아니라 불평등을 질서로 인식하고 불의를 정의로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좌빨 종북이며 공산주의자인가?

신중하게 대답해보라. 자신이 얼마나 지옥 자식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교인들을 배나 더 지옥 자식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은혜가 임하기를 바란다.

내가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 공동의 소유를 말하면 내 말을 듣는 이들은 내가 가난한 것을 본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는 무의식의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의 재물이 아까워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결론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나는 수도 없이 이 말씀을 인용해왔다. 이 말씀이야말로 開國(개국)선언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개국을 선언하셨다. 바야흐로 제자들을 통해 새로운 나라가 건설되었다. 그 나라의 국민은 예수의 제자들이다. 이 말씀에서 말하는 “너희”가 바로 그들이다.

히말라야의 팔랑게와 아누타 섬의 건장한 젊은이들은 위대한 능력을 가진 자로서 섬기는 사람이 된 사람들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통치자가 되지 않았고, 고관들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마을과 섬사람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이 자신의 가진 능력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모두를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비 능력이다. 능력이 비 능력이 됨으로써 모두가 잘 사는 곳이 되었다.

박해의 시기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가와 자신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고 피력하게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가난뱅이들의 모임인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다가와 그들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말하게 만들었는가.

나는 그것이 바로 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제자들의 사회는 비 능력이 삶의 방식이 되는 곳이다. 가난뱅이들이 모인 곳이지만 그곳은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회가 되고, 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는 곳이 된다. 경쟁이란 필연적으로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다.

비 능력은 경쟁이 사라지게 함으로써 폭력이 없는 평화를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존엄이 이루어지는 평등 사회를 이루게 한다. 물론 그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들로서 서로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 역시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기 교회의 모습은 바로 이렇게 이루어진 교회였고, 그들은 자신들 가운데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여주었다. 왜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망설이는가?

능력주의가 횡행하는 오늘날 그리스도교와 교회에서 나오라! 척박한 광야의 막막함을 지나야 하겠지만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 비 능력이 지닌 놀라운 위력을 보게 될 것이며 새롭게 열리는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될 것이다.

공동의 소유는 이처럼 비 능력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끄 엘륄이 복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비 능력이라는 사실은 그의 놀라운 통찰력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