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어두움과 혼란의 시간을 간직한 채 을사년 새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막판에는 참척의 아픔과 슬픔이 온 대한민국을 뒤덮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모두가 많이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완치된 줄로 알고 안심하고 살다가 느닷없이 튀쳐나온 암 덩어리에 놀란 가슴처럼, 우리는 시대 착오적이고 불법적인 비상계엄의 여파로 불안, 초조, 탄식의 감정의 순환을 경험하고 있는 중입나다.

한국사회는 부조리와 불공정과 무능하기 짝이 없는 정부에 의해 수렁에 빠졌고, 수 십 년 동안 엄청난 피의 대가로 가까스로 세워진 민주주의는 큰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결국 민주주의의 요체인 자유와 정의와 평등이 무너지면서 우리 모두는 민주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었고, 수치심과 좌절의 늪에 빠져 당황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몸 담은 언론 생태계도 갖은 계략과 탄압에 의해 언론의 자유가 심하게 훼손되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사실은 감추어지고 진실은 왜곡되어 언론의 신뢰도는 더욱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고집합니다. 더딜지라도 역사의 진보를 추동하는 존재들이 우리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캄캄하고 어두운 시기에 저마다 감추어둔 빛을 들고 나선 시민들이 있듯, 오로지 진실추구에 천착하며 불의에 무릎꿇기를 거부하는, 곡필아세(曲筆阿世)하지 않는 ‘남은자 언론인들’(remnants)이 있습니다. 역사는 거대한 적과 맞서 싸워 자유와 정의를 쟁취한 이름 없는 얼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어둡고 혼란한 시절에도 희망을 고집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희망이 희망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희망이 실상이 되기 위해서는 희망을 갖는 주체의 능동적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결국 희망은 책임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바라는 것들은 책임이 다해질 때만이 실상이 됩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촛불들기’의 책임 행위로 이어질 때 민주주의 열매를 가져 오듯 참 언론에 대한 희망 역시 척박한 현실에서나마 언론인으로서의 본분을 다 해야만 실상이 될 수 있습니다.

푸른 뱀의 해는 ‘변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뱀이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나듯 언론인들도 구각(舊殼)을 탈피하고자 하는 다짐과 각고의 노력이 따라야만 합니다.

피폐한 언론 현실이 정상화 되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자조와 자포자기로 시류에 편승하는 일은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개개 언론인이 먼저 반성하고 스스로를 담금질 하고 훈련해야만 합니다.

언론인 개개인이 밝은 빛으로 책임을 다할 때 거대한 발광체가 되어 언론 생태계를 정상화 시키는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새해는 재외 언론인 모두가 밝은 빛이 되기를 다짐하고 실천하는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늬 꽃샘을 뚫고 조만간 돌아올 봄날을 기대하듯, 을사년 새해에는 막힌 곳이 뚫리고, 굽은 것이 곧아지며, 골짜기가 메워지는 나라, 자유와 정의와 평등이 넓게 펼쳐지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무안 비행기 사고로 숨진 179명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남겨진 유족들에게도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다하여 위로를 드립니다.


(사)세계한인언론인협회
회장
김명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