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히,스토리] 당정 협의로 칼바람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권성동 원내대표(현 당대표 권한대행) 체제는 제2차 탄핵소추 표결 이틀 전인 지난 12일 출범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권성동 체제'는 두 가지 패착을 범했다. 이 체제는 12일 그날 권성동 원내대표의 입을 통해 "현재로선 탄핵 반대가 당론"이라고 밝히고, 제2차 표결 당일인 14일에는 의원총회를 열어 이 당론을 재확인했다.

탄핵소추 다음날인 15일,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국정 정상화를 위한 초당적 협력체, 국회·정부가 함께하는 국정안정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이날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제안을 거부하면서 "당정 협의를 통해 여당으로서 책임 있는 정치를 끝까지 하려고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민주당의 손길을 뿌리치고 한덕수 대통령권한대행 체제의 손을 잡겠다는 뜻을 표시한 셈이다.

또한 탄핵 반대 당론은 친윤계와 국민의힘이 국민 다수와 척을 지도록 만들었다. 8년 전처럼 국민의 편에 서서 탄핵소추를 찬성해야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데도 그 길을 외면했다. 거기다가 국정안정협의체 거부는 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막아버린 꼴이 됐다.

두 가지 패착은 친윤과 국민의힘의 생존 가능성을 떨어트린다. 이들이 자신들의 생존보다 남의 대선 승리를 더 걱정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긴다.

불안한 권한대행체제

권성동 체제는 민주당을 거부하고 한덕수 체제에 손을 내밀었다. 여야 모두와 손잡는 게 아니라면, 이런 제휴는 한덕수 체제에도 불리하다.

한덕수 대행은 윤석열 대통령에 비하면 차분하고 합리적인 인상을 풍긴다. 노무현 정부 때도 경제부총리에 이어 국무총리를 지내서 국정 경험도 풍부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과도정부를 이끄는 데 한계를 띠고 있다.

윤석열과 김용현은 사병 부대가 아닌 군경을 동원해 내란을 일으켰다. 공권력을 이용해 불법 군사행동을 벌이는 사람들은 훗날의 사법 리스크에 대비해 합법성의 흔적을 남기는 데 치중하기 마련이다. 혁명을 통해 새로운 체제나 국가를 건설할 생각이 아니라면, 대개 다 합법적 군사행동의 외양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둔다.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전두환은 최측근 허삼수 등에게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을 지시했다. 그런 뒤,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였다가 엿새 전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규하의 재가를 얻기 위해 6시 30분에 삼청동 총리공관에 도착했다.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저항으로 상황이 긴박했던 그날 밤, 전두환은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을 얻느라고 진땀을 뺐다. 계엄사령관 연행에 대한 승인이 떨어진 것은 13일 새벽 4시 50분이 지난 뒤였다. 전두환이 대통령 재가에 장시간을 소비한 사실은 합법적 군사행동의 모양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한다.

12·3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주역이기 때문에 대통령 재가가 당연히 불필요했다. 이 경우에는 대통령의 행위를 외형상 합법화시켜 줄 국무회의 심의가 절실했다.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계엄을 선포하도록 한 헌법 제89조 제5호에 입각한 군사행동이었다는 표지를 남길 필요가 있었다.

이 같은 이번 사안의 성격상, 그날의 심야 국무회의에 참석한 11명의 국무위원들은 내란 동조의 혐의를 피할 수 없다. 그날 군대 동원 못지않게 중요했던 것이 국무회의 심의였으므로 그들은 책임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전두환이 정승화 연행을 빌미로 난을 일으킨 것은 정승화가 10·26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초청을 받고 시해 현장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법 리스크에 걸린 그는 결국 쿠데타군의 기습으로 몰락했다. 11명의 국무위원들은 정승화만큼은 아니지만 위험에 빠져 있다. 향후 정부청사에 그대로 있을 수도 있고, 경찰이나 공수처 혹은 검찰 청사에 가게 될 수도 있다.

의결제 국무회의가 아니라 심의제 국무회의이므로,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에 찬성했는가 안 했는가는 결정적이지 않다. 윤석열 역시 그 점에 개의치 않았으므로 국무위원들의 동의를 절실히 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국무회의가 사전에 열렸다는 외양을 만드는 데 치중했다고 할 수 있다.

한덕수 체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체제가 아닌 데다가 위와 같은 사법 리스크까지 안고 있다. 외국에서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 16일 자 로이터통신은 한국에서 뉴질랜드대사로 근무했던 필립 터너가 "새 대통령이 선출되고 새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 수개월간의 불확실성"이 존재할 것이라고 전망한 사실을 보도했다.

15일 자 <뉴욕타임스>는 "탄핵이 상층부의 정치적 공백을 만들었다"라며 "정부 서열 2위 관료인 한덕수 총리가 과도 지도자로 나섰지만, 그는 선거에 의한 위임을 갖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는 "외교·경제 등 모든 면에서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권한대행체제가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갈지 어떨지 낙관할 수 없다"라고 평했다.

한덕수와 권성동 조합, 공멸로 가는 길

한국 현대사에서 '과도정부 수반'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허정은 이승만 하야성명 전날인 1960년 4월 25일 외무부 장관이 되고 27일부터 수석 국무위원 자격으로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다. 그는 이승만의 제자이지만 3·15 부정선거 당시의 국무위원은 아니었다. 그래서 비교적 자유롭게 과도정부를 이끌 수 있었다. 제2공화국 헌법 시행일인 그해 6월 15일부터 8일간 권한대행을 수행한 민의원의장 곽상훈과 8월 8일부터 4일간 수행한 백낙준 참의원의장도 마찬가지였다.

5·16 쿠데타 1년 뒤 윤보선 대통령의 사임으로 권한대행이 된 박정희는 그 자신이 군사정부를 이끌고 있었기 때문에 법적 리스크를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10·26 뒤의 최규하는 정승화와 달리 현장 부근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염려를 할 필요가 없었다.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한 1980년 8월 16일부터 10일간 권한대행을 지낸 박충훈도 사법 리스크를 겪지 않았다. 그는 정식 임명을 받지 않은 총리서리 자격으로 권한을 대행했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전두환이 국정을 이끌던 때였으므로 그 점 역시 과도정부의 위상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노무현 탄핵 때의 고건 총리와 박근혜 탄핵 때의 황교안 총리 역시 탄핵의 원인이 된 사건과 떨어져 있었다.

한덕수 체제처럼 고도의 사법 리스크를 안고 출범한 비상정부는 없었다. 법적 리스크 측면에서 총 10차례(9명)의 권한대행체제 중 최약체다.

이런 상태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의 말처럼 당정 협의만으로 국정이 굴러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똑같이 욕을 먹는 두 집단이 손을 잡는 것은 둘 다 공멸로 가는 길이다. 한덕수 체제는 물론이고 권성동 체제도 여론과 야당의 도움 없이는 난국을 헤쳐나가기 힘들다.

그런데도 권성동 체제는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한 데 이어 민주당의 제안마저 거부했다. 바람직한 제안은 아니지만,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한 가닥 희망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걷어찬 것은 친윤계와 국민의힘이 판단력을 심하게 상실했음을 보여준다. 몸이 위험에 빠졌다면 판단력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지금 그들은 판단력마저 8년 전보다 못하다.

윤석열은 12일 담화에서 칼춤 운운했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과 친윤계 앞에는 칼바람이 불고 있다. 권성동 체제는 이 칼바람을 헤쳐나가기가 쉽지 않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