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싱톤 사귐의 교회 주일설교 / 사도행전 27장 21-26절

(김영봉 목사(와싱톤 사귐의 교회)는 최근 조국에서 선포된 비상 계엄령 사태를 계기로, 믿음의 본질과 그 실천적 차원을 돌아보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김 목사는 설교를 통해 "믿음은 평안한 시기보다 위기의 때에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며, 이번 사태를 통해 믿음의 진정성이 시험받는 모습을 지적했습니다. 김 목사는 믿음의 사람들은 위기 상황에서 (1) 고난을 회피하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며, (2) 탐욕이나 이익이 아닌 진리를 선택하고, (3) 절망 중에도 희망을 전하며 사람들을 격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조국의 사태에서 정의를 택하며 희생을 감수한 어는 인물의 행동이 우리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고 말하며, 믿음의 실력을 위기의 때에 증명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김 목사는 설교 말미에 "우리의 믿음은 개인의 위기뿐 아니라 공동체와 국가적 위기에서도 빛을 발해야 한다"며, 교우들이 정의와 희망을 실천하며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전했습니다. - 편집자 주 -)

(뉴욕=미주뉴스앤조이)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이 식상한 인사말이 갑자기 무겁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한국에 사시는 분들이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한밤중에 도둑같이 선포된 비상 계엄령으로 인해 온 국민이 혼란을 겪고 있고, 세계민의 이목이 한국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금방 해제되기는 했지만, 속속 드러나는 그날의 상황을 보면서 정말 큰일 날 뻔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합니다. 아니, 사실은 큰일이 이미 일어났습니다. 이 일로 인해 우리 조국은 상당한 시간 동안 혼란의 진통을 겪을 것 같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 지난 며칠 동안 일어난 일들만 보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디, 사건의 진상이 남김 없이 밝혀지고, 책임 있는 사람들이 정당한 심판을 받아,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또한 조국의 우리 동포들이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이 사건이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 중 하나는 “그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날 리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은 과거 역사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들 중에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깨우쳐 주었습니다. 히틀러가 자행했던 홀로 코스트도 조건만 갖추어지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죄 성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일 중 하나는 인간의 타락성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선한 지 악한 지를 알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주어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걸, 주어 보아야 압니까? “된장인지 뭔 지 먹어 보아야 아느냐?”는 말이 있지요. 절대 권력을 가지고도 타락한 본성을 제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과거 역사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일들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믿는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의 현실을 정면으로 대면하고 하나님의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크든 작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에게 기대하시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의 정의는 우리만의 정의가 되거나 방향을 잃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의를 이루는 일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어서 위로부터 내려 주시는 능력이 아니고는 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27장과 28장은 바울 사도가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입니다. 벨릭스 총독의 직무 유기로 인해 2년 동안 가이사랴에서 가택 연금 상태로 있던 바울은 베스도 총독의 재가로 율리오 백부장의 인솔을 따라 다른 죄수들과 함께 로마 행 배를 탑니다.

그들은 가이사랴를 떠나 시돈에서 잠시 정박 했다가 다시 출항하여 키프로스 섬 을 거쳐 크레타 섬 남쪽에 있는 작은 해변 도시에 정박합니다. 그 항구의 이름이 Fair Havens입니다. 우리 말로는 ‘미항’ 혹은 ‘아름다운 항구’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아래 지도에서 동그라미 친 부분에서부터 다음 동그라미 까지를 말합니다.

9절에 보면 “금식기간이 이미 지났으므로”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이 사건은10월 중순경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지중해에서는 10월 중순경부터 12월까지 항해를 자제했습니다. 유라굴로라는 이름의 무서운 태풍이 발생하는 기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동안 여러 차례 배여행을 했기 때문에 이 기간에 항해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그는 자신이 겪은 고난에 대해 열거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고후 11:25)

아마도 그는 이 기간에 배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파선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겨울을 나기까지 그 항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백부장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그의 제안을 무시하고 선주와 선장의 의견을 따릅니다.

당시에 그 배에는 267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겨울을 지내기에 그 항구가 너무 작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선주와 선장은 마음 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항해 기간을 줄이면 그만큼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단 크레타 섬의 서쪽 끝에 있는 뵈닉스 항구까지 가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풍이 불어왔기에 그들은 “역시, 잘 선택 했어!” 하고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자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북동풍이 거세게 불어옵니다. 그 무서운 유라굴로 폭풍이 불어온 것입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피할 수 있었던 위기였습니다. 그들은 그 화를 자초한 셈입니다. 그들은 바람과 풍랑에 맞서 싸워 보았지만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자 배에 실은 물품을 내어 버립니다. 선주와 선원들에게는 돈덩이와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태풍과 풍랑은 계속되었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에 탄 사람들은 기진하여 물 속에 매장되는 것 아닌가, 두려워 떨었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이 타고 있던 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닮았습니다. 267명이 타고 있던 그 배에서 바울과 그 일행은 소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미결수의 신분이었습니다. 그 배 안에서 신분으로 따지면 가장 낮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백부장에게 항해를 미루자는 의견을 냈지만, 보기 좋게 묵살당했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 속에서 바울과 그 일행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습니다.

유라굴로 태풍은 지중해의 기후 조건이 맞으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백부장과 선주는 항해를 감행했습니까? 그런 조건이 조성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잠시 정박했던 그 항구에서 보는 지중해 풍경은 그 항구의 이름 그대로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웠습니다. 그런 무서운 태풍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선주와 선원들은 그 위험한 기간에 안전하게 항해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별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마침 남풍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에 속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건과 상황이 조성되면 유라굴로 태풍 같은 일이 일어나 순식간에 일상을 뒤집어 놓습니다. 개인에게도 그렇고, 국가에게도 그렇습니다. 자동차 사고 하나로 인해 방금 전까지 평화롭던 일상이 한 순간에 뒤죽박죽 됩니다. 이번 비상 계엄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깨어졌을까요? 그 혼란이 얼마나 지속될까요?

문제는 그런 조건과 상황이 형성되기 전에는 그런 사태의 징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웃 나라에 미사일 폭격을 감행할 권력자가 존재할 거라고 누가 상상했습니까? 멀쩡한 몸 속에서 암덩어리가 자라고 있는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세계 십 위 권의 경제 대국이요 K 문화로 세계를 평정한 나라를 군사력으로 통치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이 있을지, 누가 알았습니까?

그런데 때로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탐욕 때문입니다. 탐욕의 가장 큰 문제는 눈을 멀게 한다는 것입니다. 선주와 선장은 탐욕에 눈 멀어 판단력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위기를 자초했고, 결국 화물만이 아니라 배까지 파선하는 재앙을 만납니다.

탐욕이라고 해서 대단한 욕심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마음이 탐욕입니다. 우리도 선주와 선원들처럼 작은 욕심을 따라 행하다가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는 재앙에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만 피해를 보면 그래도 다행입니다. 우리의 작은 탐욕을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힙니다. 때로는 한 공동체를, 한 나라를 망가뜨려 놓습니다.

267명이 탄 배에서 믿는 사람은 절대 소수였습니다. 이것도 역시 절대 다수의 불신자 혹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 섞여 사는 우리의 상황과 매우 닮았습니다. 배가 위기를 만났을 때 바울 사도가 취한 행동을 통해 우리는, 세속적인 세상에서 소수자로 사는 우리 믿는 이들이 위기를 만났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첫째, 바울은 위기를 만날 때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그는 믿음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이 다 겪는 고난을 면제받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바울도 다른 사람들처럼 수장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고, 다른 사람들처럼 멀미를 겪으며 속에 있는 물까지 다 토해냈을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들여 다들 당하는 고통을 면제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것이 ‘기복신앙’이요 그것이 prosperity gospel 즉 ‘번영의 복음’입니다. 한국 교회도, 미국 교회도 다수가 이 왜곡된 복음을 전하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신앙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대신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려는 이유는 다들 멀미할 때 혼자만 멀쩡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멀미를 겪으면서 이웃을 돌아볼 힘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은 탐욕이 아니라 진실을 따랐습니다. 선주와 선원들이 금전적인 이익 때문에 뻔한 위험을 보면서도 출항하려 할 때, 바울 사도는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금전적인 이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이들은 이익을 탐하여 눈이 어두워진 사람들 사이에서 진리를 찾고 옳은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소수이기에 그 목소리가 무시당할 수 있습니다. 혹은 진실을 따름으로 인해 손해를 당할 수도 있고 박해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주, 조국에서 들려오는 여러가지 보도를 접하면서 저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 이야기가 있습니다. 법무부의 어느 고위직에 있던 사람이 장관의 회의 소집을 받고 회의장으로 갔다고 하지요.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의 일입니다. 그는 장관에게 “이 회의가 계엄령 실행에 관한 회의입니까?”라고 물었고, 장관이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불법 계엄령에 대해서는 따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회의장을 떠나 즉시로 사표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그 기사를 보고 저는 그분의 종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뒤져 보았습니다. 그것이 위기의 상황에 처했을 때 믿음의 사람에게서 나타나야 할 태도와 행동이라고 배웠고 그렇게 믿어왔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고분고분하고 착하게 행동하는 것이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필요하다면 희생을 각오하고서 라도 진리와 정의를 따르는 것이 성숙한 믿음입니다. 그분의 행동은 이 사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 대다수는 처벌을 면하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혹은 이번 기회에 누군가의 눈에 들려고 거짓말과 책임 회피를 일삼고 있습니다. 인간성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들입니다. 그들 중에 믿음 좋은 사람으로 알려진 사람도 끼어 있습니다. 사람 좋은 인상을 하고 책임 회피적인 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낍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저는, 저 자신이 믿음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판단하고 선택해 왔는지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탐욕이 기준이요 원리가 된 이 세상에서 과연 나는 진리와 정의를 따라 살기를 힘쓰고 있는지를 자문해 봅니다. 만일 제가 고위 장성이거나 정치인이었다면, 제가 믿는 주님의 뜻을 따라 진실하고 정의롭게 행동했을까,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교우들께도 스스로 자문해 보기를 청합니다.

이 대목에서 안중근 의사의 휘호로 유명해진 ‘논어’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하고, 위기를 보면 생명을 바친다.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면 의를 생각하고, 위기를 보면 생명을 바친다.
이 구절은 그 내용에 있어서 성경 말씀과 통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방식이었고, 그분의 제자들이라면 누구나 품어야 할 말씀입니다. 잘 아시듯, 안중근 의사는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분은 위기의 순간에 정의를 따랐고, 그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것은 위기 상황을 즉시로 바꾸지 못했지만, 그런 분이 존재했다는 것 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와 희망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셋째, 바울은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희망을 가졌고 희망을 전했습니다. 바울도 탈진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육신적인 탈진과 정신적인 두려움을 딛고 일어설, 다른 사람에게는 없던 힘이 있었습니다. 위기의 때에 더욱 깊이 찾고 의지했던 하나님에게서 오는 힘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게 해 달라고, 오래도록, 간절히 기도해 왔습니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믿었기에, 2년 동안 가택 연금 상태에 있다가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자 하나님의 응답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로 가는 길에 물에 장사 지내게 된 것입니다.

그는 멀미에 지쳐 허덕이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이르면 기도 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로마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는지,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끝나게 되어 있는지, 하나님께 여쭈었을 것입니다. 그 깊은 절망의 늪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을 주셨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본 것입니다.

영적 체험을 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실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주님이 함께 하시며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드는 순간, 새로운 힘이 생겨납니다.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사라지고 열정과 용기가 차오릅니다.

그는 먼저 자신을 추슬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그는 먼저, 이번 위기는 그들이 이익을 선택함으로 인해 자초한 일이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지난 밤에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서 꿈에서 나타나셨는데, 화물과 배는 모두 잃겠지만 목숨을 잃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고 전해줍니다. 그에 의하면, 천사가 이렇게 말해 주었다는 겁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는 반드시 황제 앞에 서야 한다. 보아라, 하나님께서는 너와 함께 타고 가는 모든 사람의 안전을 너에게 맡겨 주셨다. 그러므로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어떤 섬으로 밀려가 닿게 될 것입니다. (24-26절)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반신반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대로, 얼마 후에 배가 육지에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자 바울 사도는 다시 일어나 사람들 앞에서 음식 먹는 모습을 보여 주며 모두 음식을 먹고 힘을 차리자고 격려합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믿고 따릅니다. 가지고 있던 음식을 먹고 남은 것을 버린 다음, 배가 육지에 닿기를 기다립니다. 배가 몰타 섬에서 파산하자, 그들은 헤엄 쳐서 육지로 올라가 모두 목숨을 건졌습니다. 천사가 말한 그대로,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목숨이 바울의 손에 맡겨졌고, 바울은 그들 모두를 구해낸 것입니다. 가장 존재감이 없던 바울이 위기의 때에 존재감이 가장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편안하고 안전할 때는 믿는 이들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법입니다. 믿는 이들의 존재감과 차별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위기를 만날 때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 고통을 함께 나누어 지게 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따르게 하며, 곁에 있는 사람들을 격려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비로소 믿는 이들의 존재감과 차별성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항상 하나님을 깊이 사귀어야 합니다. 평상시에 그렇게 살아야 위기의 때에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위기의 때일수록 하나님은 더 가까이 오셔서 힘을 주시고 말씀을 주십니다. 직접 말씀하실 때도 있지만,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의 마음에 말씀해 주십니다.

그 말씀의 능력으로 우리는, 모두가 기진할 때 힘을 차리고 일어설 수 있고, 모두가 절망할 때 희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나누어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신 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믿는 이들의 존재감이어야 하고 차별성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은 겨울철의 지중해와 같습니다. 지형과 기후 조건이 맞으면 언제든지 풍랑이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의 개인적인 삶에서도 풍랑은 일어날 수 있고, 가정이나 교회 혹은 직장에도 큰 태풍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한 국가의 운명에도 그런 사태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믿는 이들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더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바라보는 십자가는 인간의 타락성을 기억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타락성에 있어서 누구도 예외가 아니기에, 누구에 대해서도 “그럴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라고 할 수 없고, 어떤 일에 대해서도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고 단정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조건이 갖추어지면 어떤 악이든 행할 수 있고, 세상은 조건이 갖추어지면 어떤 사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믿는 이들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사태들에 대해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태가 일어날 때 놀라거나 혼란스러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타락성이 빚어낸 일임을 알고,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죄의 대가를 나누어 져야 합니다.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고통을 대신 짊어지기를 힘써야 합니다.

또한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은 위기의 때에 이익을 따라 행하지 않고 진실을 따라 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참되게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 위에 서서 희망을 전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믿음은 진가를 드러냅니다.

이번 조국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 시대에 존재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믿음의 실력자들이 왜 이렇게도 드물까, 생각합니다. 그 생각은 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작거나 크거나 간에, 위기의 때에 나의 믿음은 진가를 드러내게 될까, 자문해 봅니다. 부디, 그렇게 되기를 손 모아 빕니다. 저 만이 아니라,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모두 교우들이 위기의 때에 믿음의 실력자로 증명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김영봉 목사 / <와싱톤 사귐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