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통신] 한식 세계화의 명암, 그 이면의 과제… 이제는 품질이 관건이다

(파리=동포저널) 이석수 기자(프랑스존 발행인) = 최근 몇 년간 K-드라마와 K-팝의 글로벌 인기는 한식의 매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해외 주요 도시마다 한국 식재료를 파는 마트가 생기고, 한식당이 줄지어 문을 열고 있다. 김치, 비빔밥, 떡볶이는 더 이상 생소한 음식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한식당은 이미 300개를 넘어 섰다

한식당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불고기, 비빔밥, 삼계탕, 한국식 치킨, 김밥 등 특화된 전문점들과 정통 한식을 넘어 현지화된 다양한 퓨전 한식도 등장하고 있는데, 최근엔 정통 한식이라 보기 어려운 ‘짝퉁 한식당’, 특히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한식당이 빠르게 확산하며, 현지 한식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짝퉁 한식당, 문제는 정체성의 왜곡

최근 KBS를 통해 보도된 특파원 리포트에서도 이를 지적했다.

리포트에 따르면, 파리 중심가의 한 유명 상권의 한 음식점 앞에 어마어마한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익숙한 한글 간판에 ‘코리안 스트리트 푸드’라는 문구까지. 한인 사회에서는 들어본 적 없는 새로운 한식당이었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니 어딘가 낯선 분위기가 흘렀다. 메뉴판의 치즈 닭갈비는 프랑스 현지인들 사이에서 베스트셀러였지만, 정작 한국 음식의 정체성을 묻기엔 애매한 면이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이 식당을 비롯해 파리 시내에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또 다른 ‘한식당’들이 모두 중국인 자본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치즈 닭갈비, 크림짬뽕, 매운 소불고기… 메뉴는 한국식 이름을 달고 있지만, 그 맛은 어디서도 접해본 적 없는 낯선 퓨전 요리였다.

파리 시내에서 체인점을 늘려가고 있는 A•B•C 식당 모두 이런 특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네온사인에 오타가 난 한글 문구나 잘못된 한국 영화 포스터는 그들이 한식을 표방하면서도 그 정체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인이 운영하는 일부 한식당에서는 한국식 메뉴명을 내세우면서도 맛과 재료는 완전히 다른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식 국수”라는 메뉴가 중국의 탄탄면과 비슷한 맛을 내거나, 김치에 식초를 첨가해 발효의 깊은 맛 대신 시큼한 맛을 내는 사례가 많다.

이런 음식은 한식을 처음 접하는 현지인들에게 한식의 정체성을 왜곡된 형태로 전달한다. 한식의 본래 매력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이를 정통 한식으로 인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식의 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

한식당, 중국 자본의 타깃이 되다

문제는 이런 중국계 한식당들이 단순히 새로운 식당을 여는 데 그치지 않고 기존 한국인들이 운영하던 한식당들을 인수하며 세를 넓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현금을 들고 찾아와 높은 가격을 제안하며 식당을 인수하는 방식은 자본력이 부족한 한인들에게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고, 방송에서도 이를 지적했다.

높은 권리금을 제안하며 한국 식당을 매입한 뒤, 처음엔 그대로 이어가다가도 메뉴와 운영 방식을 변경해 현지화된 ‘짝퉁 한식당’으로 탈바꿈시키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용경 프랑스 한식문화협회장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이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현금을 잔뜩 들고 찾아와 식당을 팔라고 했다는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럴 경우 한식당을 운영하는 많은 한인들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같은 한국인에게 식당을 인계하고 싶지만, 자본의 힘을 무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제시하는 가격보다 더 높은 권리금을 제안하며 식당 인수 의사를 밝히기 때문에 자본의 격차를 무시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틱톡, 인스타, 유튜브 등 SNS를 활용한 공격적인 홍보를 통해 중국계 한식당들은 현지 인플루언서와 유튜버들에게 막대한 비용을 들여 홍보를 맡기며 ‘핫플’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실제 한식을 접해보지 못한 현지인들은 이 식당들을 ‘정통 한식당’으로 인식하며 찾는 경우가 많았다.

확산되는 짝퉁 한식당, 해결책은?

한식 인증제 도입이 시급하다. 예전부터 제안되고 수차례 지적하고 있는 사안이지만, 아직까지 시행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과 태국은 이미 자국 음식의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인증제를 도입했다. 일본은 정통 요리법과 재료 기준을 충족한 식당에 인증 마크를 부여하고, 태국은 정통 태국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에 공식 인증을 시행하고 있다.

한식 역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통 한식을 제공하는 식당과 그렇지 않은 식당을 명확히 구분해야 현지인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

또한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가 협력해 해외 한식당 지원과 홍보를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통 한식 레시피와 조리법을 알리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한식 셰프 양성을 지원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해외 교민들은 한식당 운영과 한식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교민 사회가 적극적으로 한식의 정체성을 지키고, 지역 내 한식당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 서로의 성공을 돕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현지 소비자들이 한식의 정체성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돕는 노력도 중요하다. 현지 문화와 결합한 한식 축제를 열거나, 유명 셰프와 협업해 한식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정통 한식의 매력을 알릴 수 있다.

프랑스 한식문화협회의 역할

한식의 세계화와 프랑스 현지에서의 확산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조율하고 중심을 잡아줄 구심점의 부재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프랑스의 한식문화협회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에 열거한 문제들의 대안도 제시하고, 함께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나 큰 그림을 보여 주어야 함에도 협회의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전보다 활동의 보폭이 줄었다. 행사에는 많이 참여하는 듯 보이지만 프랑스에서 열리는 다양한 한식 관련 행사들에 대해서 협력과 연대의 시너지가 부족한 실정이다.

프랑스에서는 한식 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행사들이 연중 이어지고 있다. 문체부와 콘진원이 주최하는 K-엑스포, Porte Versailles PARIS EXPO에서 열리는 KOREAN EXPO, 프랑스 한인회가 주최하는 한가위 축제, 15구에서 열리는 K-STREET 페스티벌, 15구청 광장에서 열리는 코리안엑스포 등 수 많은 한국문화 행사들이 열리고 있지만, 이러한 행사들이 대사관, 한인회, 경제인협회, 한식당 등 다양한 기관과의 유기적 협력 없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한식의 확산 효과를 극대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프랑스에서 한식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고 있는 지금, 한식문화협회는 단순히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한식의 확산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적 중심이 되어야 한다. 협회는 좀 더 내실을 다지고, 더 큰 비전을 제시하며, 이를 통해 한식당과 관련 업계 관계자들이 함께 성장하고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자칫 협회가 ‘공익’을 내세운 단체의 이름으로 소수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국가기관의 지원금과 행사 기금은 사회 발전과 문화 증진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위해 마련된 귀중한 자원이다. 이러한 자원을 개인적 이익이나 특정 집단의 내부적 이익만을 위해 남용한다면, 본래의 취지를 훼손하게 되고, 이는 곧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협회는 공익에 대한 ‘책임’이 있다. 더 큰 비전을 가지고 프랑스 내에서 K-Food, 한식이 한 때의 유행이 아닌, 대세로 정착될 수 있도록, 협회가 그 책임을 다하고, 사회에 진정한 가치를 더하는 단체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권고한다.

K드라마와 K팝이 이끄는 한식의 인기는 세계 곳곳에서 한식당의 문턱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한식의 정체성과 품질을 지키기 위한 체계적 관리가 없으면, 정체불명의 ‘짝퉁 한식당’이 오히려 한식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제는 단순히 한식당의 숫자를 늘리는 것을 넘어, 한식의 품질과 정체성을 보호하고 세계 속에서 그 가치를 확고히 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이를 통해 한식은 단순한 음식 문화를 넘어 한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중요한 문화 자산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석수 기자 / 프랑스 한 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