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끄 엘륄은 가난의 성서적 정의를 하나님 이외에는 희망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나는 가난을 통과하면서 그런 가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배웠다. 하나님 이외에는 희망이 없는 상태란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 막막함은 어떤 사람이 말했듯이 로또에 당첨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리스도인들은 늘 자신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뢰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착각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진정한 가난에 처했을 때, 다시 말해 하나님 이외에는 다른 아무 희망도 남지 않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 그 진위가 드러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버려두고, 사람에게 문제를 의뢰한다. 그것은 문제해결의 최종 방식이 돈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하나님께 의뢰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문제의 해결방식이 늘 사람의 상상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의 문제해결은 문제를 가진 당사자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방식은 자신이 원하던 방식이 아니었지만 더 나은, 아니 완전한 문제해결방식이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인간은 그런 하나님의 해결방식을 거듭 경험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곤란한 상황들을 거듭 통과해야 한다. 그것도 한 번이나 몇 번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상황들을 지나야 한다. 그럼에도 막막한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믿음이 생긴다. 어떠한 경우에도 궁극적인 낙관에 도달할 것이라는 절망하지 않는 희망도 생긴다.

최근 내게 일어난 일련의 일들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나를 추스르게 만드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낀다. 물론 감사한 일이라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런 감사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들은 감내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괜찮다. 나는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해도 실망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오히려 그렇게 내게 다가오는 절망의 상황이 내겐 정말 소중한 성찰의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상황뿐만이 아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존재다. 무엇인가를 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일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이 하는 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중용하신다.

잘 보면 누구나 자신의 일로 자신을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무엇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의 하나님이 된다. 그래서 교회도, 선교도, 구제와, 이웃이 되는 일마저 하나님을 대신하게 된다. 물론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나, 하나님 때문에 그 일들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그 일을 하고, 그 일은 하나님을 대신한다.

이 사실을 발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특히 자신의 하는 일이 그렇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이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완전히 매료되어 하나님을 잊었음에도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일로 착각한다. 그 일이 자기 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따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하는 사람을 오랜 시간 고독하게 만드신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통해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불러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신다. 우리는 그것을 모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나는 오래도록 이 대답에는 모세의 하나님에 대한 항의가 들어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그런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모세는 오랜 시간 동안의 무력함을 통해, 다시 말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긴 시간을 통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대답에는 그런 그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모세에게 그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 상태에 다다르기가 어려운 것은 그것이 근본적인 존재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를 도모하는 존재다. 그런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인간의 존재 자체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렇게 존재가 달라진 이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그 사람에게 하게 하신다.

나는 그리스도교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하나님이 아니라 일 중심의 교회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신앙의 자유와 함께 이루어진 그리스도교의 종말이다. 로마의 재정으로 빈민을 구제하는 빈민구제소를 설치함과 동시에 그리스도교는 하나님 대신 일을 하나님으로 착각하는 그리스도교가 되었다.

한때지만 나는 교회 밖으로 헌금이 나가지 못하는 개신교 교회들을 보며 공공선을 추구하고 행하는 가톨릭을 의롭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공공선은 하나님의 정의의 구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의 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사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 분위기가 그리스도교 전체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내 글에서 모순을 발견하고 나를 비난하며 떠난 사람이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목사님이 갇혀계신 그 세계는 미안하지만 그리스도의 나라가 아닌 듯 보입니다.”

나는 이 말에 안도감을 느낀다. 그 사람이 속해 있는 가톨릭과 내가 속해 있는 하나님 나라가 다르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아뢰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다음에, 너희가 이 산 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징표는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자신이 징표가 되신다.

그렇다. 발견하기 어렵지만 자신의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한다. 발견하기 어려운 영적인 올무다. 오직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을 어렵사리 배운다. 나는 그 일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으로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