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 = 내일은 금요일이다. 손자 녀석이 오는 날이다. 어린이집이 끝나자마자 우리 집으로 달려온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녀석은 화단 텃밭으로 달려가 토마토, 가지, 오이, 고추 등을 딴다. 녀석이 딸 수 있도록 나는 금요일에 수확을 맞춘다. 녀석이 오지 않은 날에도 녀석이 내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녀석이 오면 집안도 엉망이 되고, 함께 춤(내 평생 해보지 않은)도 춰주어야 하고, 보라매공원으로 가서 녀석을 안고 물놀이 기구 사이를 뛰어다녀야 한다. 주일 아침 녀석이 떠나면 맥이 풀린다.

나는 녀석을 통해 존재를 인식한다. 그 녀석과 어떤 일을 하느냐,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녀석과 함께 있는 것이다. 장소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조금 편리할 따름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녀석이 온다는 것이고, 함께 있다는 것이다. 녀석이 옆방에서 잠을 잘 때도, 아침에 일어나 몰래 뒷문으로 들어올 때도 녀석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겐 기쁨이다.

함께 있는 것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녀석이 안 오는 주일부터 금요일 오후까지도 녀석에 대해 궁금하다. 잘 있는지, 잘 노는지, 무슨 일을 하며 놀았는지 모든 것이 궁금하다. 그래서 카톡에 ‘울애기’라는 문자를 보내면 사진을 보내든지, 영상전화가 걸려온다. 녀석이 없을 때도 녀석은 나와 함께 있다.

나는 이런 손자 녀석을 통해 존재(being)라는 것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존재란 만남을 의미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부재 역시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불가에서 말하는 만나면 괴롭고, 못 만나면 그리운 것이 아니라 만나서 행복하고 못 만나도 행복하다. 나는 이것으로 신앙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실감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좀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이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 말을 곧잘 하면서도 존재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아니 존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는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가장 큰 적이 행위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은 행위에 몰두하는 존재다. 그리고 행위로 인정을 하고 인정을 받으려는 존재다. 인간은 행위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모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것을 배우지도 못한다.

적어도 나와 잠시라도 교제를 나누었던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나 같은 사람을 만날 이유도 없다. 나를 만나려는 사람들 가운데는 무임목사들이 가장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내게 많은 것을 배웠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앞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청빙을 받아 가게 되면 나와의 교제가 끊어진다. 사실상 교회는 일이다. 교회를 맡는 순간 목사는 일에 함몰된다. 무언가를 해내려 하고, 무언가를 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행위에 함몰된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로 자신들의 가치를 입증하려 한다. 교회가 커지는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찾아다니고 찾으면 열심히 그들을 돕는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할 일을 위해 가난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이 섬김이며 하나님의 일이라는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진다.

“가인은 주님 앞을 떠나서, 에덴의 동쪽 놋 땅에서 살았다. 가인이 자기 아내와 동침하니, 아내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았다. 그 때에 가인은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를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에녹이라고 하였다.”

가인은 하나님을 떠났다. 존재의 분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런 가인이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녹이라 지었다. 에녹이란 몇 가지 의미가 있지만 핵심은 봉헌이다.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이다. 도시를 세우고 그 도시의 이름도 에녹이라 지었다. 그 도시 역시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라. 하나님께서 가인의 아들을 받으셨는가? 가인이 세운 도시에 거하시겠는가?

간단하게 대답하지 말고 깊이 생각해보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 가인의 에녹은 가인의 착각이다. 존재의 분리가 일어난 가인이 하나님께 봉헌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나는 이 일이 오늘날 교회에서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인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성서는 그것을 분명하게 천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의 계보는 에노스로 이어지고 가인의 계보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성서는 분명하게 밝히며 선을 긋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과 존재의 분리가 일어난 사람들은 행위에 몰두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의 결과물을 하나님께 봉헌한다. 그것은 진심일 수 있다. 하지만 무의미한 진심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존재의 일치가 이루어지면 행위는 무의미해진다. 무엇을 해도 좋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 존재 자체로 이미 모든 것은 변화되었고,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신앙의 가장 큰 적은 행위로 자신의 믿음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헤롯의 누룩’이라고 하셨다. 헤롯은 유대인의 신임을 얻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지었다.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건설들을 연이어갔다. 헤롯은 행위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고, 유대교인도 아니었다.

나는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헤롯의 누룩에 감염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커지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장을 한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이 일에 함몰되었고, 그런 자신들이 가인의 후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

이 장면을 잘 보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그분에게 성령이 임했다. 그 결과로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말씀을 들었다. 존재의 확인이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종결되었다.

그렇다. 그리스도교 최대의 적은 행위(일)다. 내가 말하는 행위의 부정은 ‘이신칭의’를 말함이 아니다. 신앙의 관건은 존재의 변화다. 행위는 그 다음이다. 존재의 변화가 일어난 후의 모든 행위는 사랑이며 자유다. 이 순서가 중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는 존재의 변화가 일어난 신앙인에게 주어지는 자유다.

나는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여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위에 몰두하게 됨으로써 하나님 앞을 떠나는 것을 슬프게 바라본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들은 행위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 하지 않는다. 업적 따위는 필요 없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행복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