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나는 안양중앙시장에 가서 김밥을 사고 다른 여러 것들도 산다. 그곳은 값이 싼 것이 많다. 물론 맛이 좋은 것도 있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것은 가성비다. 그래서 색을 매고 전철을 타고 안양에 내려 한참을 걸어 그곳엘 간다. 김밥을 좋아하는 분을 위해 김밥은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산다. 김밥 한 줄이 이천오백 원이다. 더구나 가늘지 않고 두툼하다. 다른 곳에서는 비슷한 김밥이 최소한 삼천오백 원이다. 게다가 김밥의 맛이 상당히 고급이다. 김밥 외에도 아내가 좋아하는 흑임자 모시떡도 사고 닭강정이나 닭바비큐를 사기도 한다. 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식혜도 2리터에 오천 원 하는 곳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이 역시 맛도 좋다. 그 외에도 순대복음이나 족발 등등을 산다. 그것으로 파티를 열곤 한다.

오랜만에 안양시장을 가려고 전철역을 지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보니 산에서 사는 노숙자였다. 그에게 요즘도 산에서 지내시느냐고 물었더니 밤에 그곳으로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밥값을 달라고 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려면 현금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약간의 현금을 남기고 이만 원을 주었다.

이럴 때마다 나는 내가 참 웃긴다는 생각을 한다. 겨우 몇 천 원을 절약하기 위해 안양시장까지 가는 내가 그렇게 몇 만 원을 주고 나면 손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돈을 드리고 나면 기분이 좋다. 내가 찾아가서 해야 할 일을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시장을 향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내게 돈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노숙자 선생님들이나 걸인분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간다. 내가 그분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내게 구원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은 당신을 위해 옥합을 깬 여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자들의 마음을 읽으셨기 때문이다. 비싼 옥합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더 낫다는 제자들의 마음속의 생각을 읽으신 것이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을 잘 읽어볼 필요가 있다. 초기교회의 기사를 보면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늘 제자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는가. 나는 이 말씀에서 누룩의 비유의 의미를 본다. 제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라진다. 집 있는 자와 땅 있는 자들이 그것을 팔아 사도들의 발아래 가져다 두었고, 그들은 물건을 서로 통용했기 때문이다. 네 것, 내 것이 없는 소유를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교회는 세상의 등불이다. 세상의 등불이라는 것은 여전히 세상이 어둡다는 것을 상정한다. 초기교회에서와 같이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사회가 이루어지면 그것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등불에 이끌려 그곳으로 다가온다. 그러면 가난한 사람도 더 이상 가난하지 않게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초기교회는 세상의 누룩이 되어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를 부풀리는 역할을 한다. 세상은 그렇게 변한다. 그 핵심에 가난의 문제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이 선교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을 자선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 물질을 제공함으로써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에는 선교사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지도 않았고 가끔씩 예배에 참석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구호물자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구호물자를 주기만 할 뿐 자신들의 것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 재물을 공유하지도 않았고, 그들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 있는 우리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것이 가난 나라 사람들에게 물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선교지역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끔은 특별한 사람이 나타나 현지인들과 같은 것을 먹고 마시며 같은 수준의 삶을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들이 현지인들보다 우월한 지위를 지닌다.

신대원 시절 나는 개강수련회에서 선교사 한 분이 강사로 와서 한 말들에 감동을 받았다. 그분은 감비아의 선교사였는데 자신의 자녀들을 감비아 사람들의 학교에 보냈고(대부분의 선교사의 자녀들은 영국에 있는 선교사들의 자녀를 위한 학교에 보낸다), 그들과 같은 것을 먹고 마시기 위해 차가운 콜라는 물론 차가운 물까지 포기했다고도 했다. 섭씨 사십 도가 넘는 곳에서 마시는 콜라 한 모금, 차가운 물 한 모금의 의미를 우리는 알 수 없다고도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기후변화가 심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감비아에서의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우리는 감동을 받았다. 그분은 우리에게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라는 찬양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했다.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물론 대단한 선교사님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특별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감동을 받은 것은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밝히 드러낸다. 초기교회에서는 그런 일들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박해에도 불구하고 로마를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아비투스”였다는 사실을 수도 없이 강조했다.

아비투스란 영어의 Habit이라는 의미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들의 습관이었다. 여기서 습관이라는 의미는 그들의 일상임은 물론이요, 그들이 반사적으로 행하게 되는 습관이다. 나는 이것을 말씀의 육화로 이해한다. 성육신은 그리스도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이다. 그리고 그런 말씀의 육화가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되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봉사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봉사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봉사아 없었다는 의미는 그들에게 내가 봉사한다는 의식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월감을 가지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었으며, 거기에는 어떤 우월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 바로 섬김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한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모르게 하였다. 그 일은 의식적으로 하려고 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삶 자체가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는 삶이 되고, 반사적으로 드러나는 습관이 될 때 가능한 일이다.

이제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능했던 그 일이 우리들에게도 가능한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가난한 사람들이 늘 우리와 함께 있다. 나는 나 때문에 내 곁에 있는 가난한 사람이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그분들은 나를 위해 가난하다. 그분들은 내가 섬김을 행할 수 있게 해주고, 그것이 나의 구원의 도구가 된다. 그러니 어찌 내가 그분들에게 미안하지 않고,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늘 두리번거리며 길을 간다. 그런 분들을 발견하면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가 돈을 받아주는 그분들에게 내 고마움을 전한다. 그래서 나는 돈을 드리고 기쁜 마음이 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해준 내 가난에 감사한다. 가난이야말로 복음전파의 수단이며 복음의 도화선이라는 사실을 이제 나는 안다.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이 말씀의 의미를 알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