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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5.18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김종성의 히,스토리] 영화 <송암동> 관람기... 광주 학살은 베트남전 학살과 닮았다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5·18 때 대한민국 국가가 잘못했다는 점은 이미 오래전에 공인됐다. 1990년 8월 6일 제정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5·18보상법)'은 배상이 아닌 보상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했다. 1980년 당시의 대한민국 국가가 비민주적이었음을 입법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5·18에 승복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느냐 마느냐 하는 지금 상황에서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망언이 터져 나온다. 5·18을 왜곡하는 사람이 하필이면 진실화해위원장 직에 앉아 있는 것도 참담한 현실을 상징한다.

또 학살 현장에서 총칼을 휘둘러놓고도 반성하지 않는 전직 군인들도 부지기수다. 그들도 어떤 면에서는 피해자이지만, 이들 상당수가 참회하는 마음을 표시하고 살았다면 우리 사회의 5·18 해결은 한 차원 높게 진행됐을 것이다. 양심선언을 하는 전직 군인들도 있었지만, 아직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이런 분위기가 베트남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솔직히 시인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일부의 분위기가 5·18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 인디스페이스에서 노회찬재단 주관으로 열린 '영화 <송암동> 상영회 및 관객과의 대화'는 그런 관련성에 대한 생각의 기회를 제공했다.


▲ 영화 <송암동> 포스터. ⓒ 영화 <송암동>

송암동에선 어떤 일이 일어났나

이 영화의 무대는 1980년 5월 24일 광주 송암동이다. 다큐와 극영화 형식이 절충된 이 작품이 비춰주는 송암동은 5·18의 주 무대인 전남도청과 떨어진 광주 남부의 외곽이다.

5월 24일은 시민군이 전남도청을 접수하는 21일과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점령하는 27일의 중간이다. 공수부대가 도청을 버리고 조선대학교로 철수한 21일 오후 5시 반 뒤로는 양측 사이에 소강상태가 나타났다. 22일에는 헌혈을 호소하는 시민군 차량들이 돌아다녔고, 23일에는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총기를 회수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던 24일이었다. 그런 날의 광주 외곽이었기 때문에 24일 송암동의 긴장감은 광주 시내보다 상대적으로 덜했다.

영화 <송암동>은 아이들이 물가에서 놀고 나이든 남자들이 장기를 두고 가게 앞 마루에서 주민들이 한담을 나누는 장면을 보여준다. 자녀에게 가져다 줄 밥과 김치를 고무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지나가던 한복 차림 여성은 이 주민들에게서 우유를 얻어 마신 뒤, 답례로 대야 안의 김치를 손으로 쭉 찢어 건네준다.

시신을 관에 담아 실어주는 시민군 트럭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이곳은 광주 시내보다 평온했다. 그런데 이런 데서도 계엄군의 무차별 사격과 학살이 벌어졌다.

<송암동>은 계엄군이 물가에서 놀던 아이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장면, 일반 주택에 마구 진입해 방안에서 사람을 끌어내 총을 쏘고 개머리판을 휘두르는 장면, 하수구에 숨었던 한복 차림의 그 여성이 하얀 밥과 빨간 김치와 함께 시체로 발견되는 장면 등을 보여준다.


▲ 영화 <송암동>에서 묘사한 시민군의 연행 과정. ⓒ 영화 <송암동>

영화는 주민 이십 명을 일렬로 세워놓고 머리 뒤에서 총을 쏘는 장면도 보여준다. 시민군이 아닌 게 분명한 주민들에 대해서도 야만적인 학살이 자행됐던 것이다. 1980년 그날 현장에 있었던 특전사 11공수여단 군인은 영화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발음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줄임표로 표시했다.

"애들이 그 주위에 가서 젊은 애들 다 잡아 왔어. 포승줄로 묶어다 잡아 놓고, 그 아래 밭에 가서(...)고랑에 앉혀놓고, 엎드려놓고(...)보내주세요 보내주세요 그러더라구. (...)많았어. 많았어. 내가 볼 땐 한 이십 명은 돼."

얼굴을 공개한 또 다른 전직 군인은 "동료들은 다쳐 있지 저희들도 심리적으로 극도로 흥분돼 있는 상태이고 하니까 사실 마땅하게 분풀이할 데도 없고 하니까 근처 민가를 수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라며 "저쪽 기와집입니다"라고 가리킨 뒤 그 집에서 나온 사람을 이렇게 묘사한다.

"저 집에서(...)츄리닝을 입고 있었습니다, 한 분이. 운동화를 꾸겨 신고 전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습니다. 선량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시민마저도 개머리판으로 찍고 손을 뒤로 올리게 하고 마구 때려 얼굴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뒤 엎드리게 해놓고 총을 쏘고, M16 소총을 자동으로 놓고 확인 사살을 했다고 전직 군인은 말한다.

광주 학살과 베트남전 학살은 닮았다

참전 군인들이 전해준 베트남 전쟁의 이미지 중 하나는 누가 베트콩(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인지 누가 시민인지 식별하기 힘든 상태에서 한국군이 전투를 치르는 장면이다. 이 이미지는 상당부분은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일반 시민을 마구 학살한 일에 대한 변명의 근거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그날 송암동에는 소수의 시민군이 잠시 머물긴 했지만, 분명히 평화로운 동네였다. 이런 데서도 시민과 시민군을 가리지 않고 총을 난사하는 모습은 베트남에서 학살을 자행한 일부 한국군을 떠올리게 만든다.

위의 전직 계엄군인들이 묘사한 학살 장면이 베트남전이나 5·18 광주 때만 있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도 있었고,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다. 그런데도 베트남전과 5·18을 연결하는 게 유효한 것은 5·18 학살에 참여한 일부 군인들이 베트남전쟁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1979년 12·12 쿠데타는 구군부와 신군부의 세대교체를 이루었다. 두 군부는 흔히 '비정규 육사 출신인가 정규 육사 출신인가'로 구분되지만, 어느 전쟁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는가로도 갈라진다. 해방공간에서 육사를 단기로 졸업한 구군부는 한국전쟁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데 비해, 1955년에 육사를 졸업한 11기 이하의 신군부는 주로 베트남전에서 실전 경험을 쌓았다.


▲ 베트남 전쟁 중 작전 중인 한국군 ⓒ 책 ‘파월한국군 전사 사진집’

한국군의 베트남 주둔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있었다. 이때의 경험을 가진 장교나 부사관 일부가 1980년 광주 학살에 가담했다. 이들의 베트남전 경험이 5·18 진압에 투영됐다는 증언도 있다. 2017년 5월 15일자 <광주일보> 인터뷰에 등장하는 당시 특전사 제11공수여단 63대대 중위는 베트남전을 경험한 자기 부대의 하급자들이 광주 학살을 주도한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아이, 진짜 악랄했지. 경험이 있었으니까. 월남에 다녀온 사람들 아니오. (중략)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아 공수부대 내에서도 전투력이 월등했지. (중략) 팀 단위로 움직이는 공수부대에서 스물서너 살 초급장교 말을 고분고분 들었겠느냐고."

베트남전 경험이 5·18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베트남에서 한국군과 함께 싸운 미군의 인식에서도 나타난다. 1980년 6월 9일 미 국방정보국(DIA)이 작성한 'T0402_07_일부 계엄령하 조치에 대한 의견'에서 그런 인식이 확인된다. 2020년에 <역사비평> 제131호에 실린 김정한 서강대 HK연구교수의 논문 '광주학살의 내재성 – 쿠데타, 베트남전쟁, 내전'은 DIA 문건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5·18 직후 미 국방정보국(DIA)은 계엄군의 '잘못된 과잉 대응'이 일어난 이유에 대해 '현 군부의 실세인 전두환·노태우·정호용이 한국전쟁이 아니라 베트남전쟁에서 실전 경험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으며, '광주를 한국의 미라이라고 지칭'하고 '한국군이 점령군의 태도를 견지하면서 광주 시민을 외국인처럼 다뤘다'고 보고했다. 베트남의 미라이 마을은 미군이 양민을 대량 학살한 곳이다. 5·18 광주를 베트남에 비유하고 광주 시민을 외국인처럼 취급했다는 보고서는 단순한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보기 어렵다."

광주 학살이 베트남전 학살과 닮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5·18 진상규명에 저항하는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만만치 않은 이유 중 하나를 설명한다.

베트남전 학살에 개입하고도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5·18에도 연루됐다. 이들은 베트남전 참전을 근거로 국가유공자가 되어 있다. 이들을 보호하는 막이 법적으로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들의 에너지는 베트남전 학살 문제뿐 아니라 5·18 학살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기 쉽다. 이는 베트남전뿐 아니라 제주 4·3,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의 학살 문제에 유기적 접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4년 6월 04일, 화 6: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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