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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친절한 인도자,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시인을 애도하며
[독서만세] 독자들 한국 시로 이끈 책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서울=오마이뉴스) 김성호 기자 = 책모임을 가진 지 어언 십 년이다. 모임 횟수로는 삼백 차례를 훌쩍 넘어섰다. 경험은 인간을 변화시키게 마련, 책모임 또한 어떤 방향으로든 나를 변화시킨 게 사실이다.

수없이 많은 깨달음 가운데 한 가지, 모두에게 옳은 책은 없다. 걸작은 반드시 통한다는 어릴 적의 믿음이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수없이 겪었다. 내게는 졸작조차 누군가에게는 인생책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내게는 졸작에 그치는 어느 책으로부터 누구는 땅을 짚고 일어설 용기를, 오만을 경계하는 배움을, 해묵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누가 있어 그를 거짓이라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다만 답을 보다 수월케 찾는 법을 안내할 수는 있는 일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라 이야기한 것이 루이 아라공이었던가. 그의 말이 옳다. 독서에도 선생님이 있다면 그는 그저 희망을 제시하는 이일 테다.

한국 시 세계로 이끈 인도자가 떠나다

시는 죽어가는 장르라고들 한다. 한때 문학의 정점이라 불리며 글 쓰고 글 읽는 이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았던 이 장르가 이제는 읽는 이 없는 천덕꾸러기쯤으로 남겨져 버렸다. 언제라고 시가 잘 나가던 때가 있었더냐 하는 이에게도 명백히 추락하는 시분야 도서 판매량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을 일깨운다.

출판계가 죽고 있다지만, 그중 문학이 더 빨리 죽고, 시는 진작에 죽어 있는지 아직은 살아 있는지 알기도 어려운 지경이 아닐까.

한 장르의 쇠퇴며 소멸이 그저 그 장르만의 죽음으로 그칠 리 없다. 내일이라는 단어가 미래를, 약속을, 다음을 기약하는 수많은 개념을 탄생시켰듯이, 시의 죽음은 수많은 시어들의 소멸을, 시로부터 피어난 마음과 가치들의 패퇴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시가 불러온 좋은 것을 지키려는 이들이 시를 퍼뜨리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내게 좋은 것이 어디 남에게도 좋은 것인가. 내게는 더없이 좋은 시가 남에게는 난해하고 지루한 글 덩어리, 혹은 그조차 되지 못한 파편들일지 모를 일이다.

나와 남 사이에 놓인 턱을 낮추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시 안에 희망이 있다고, 그 희망을 가리키는 작업, 즉 시의 세계로의 안내가 더없이 필요한 시대다. 일반 독자를 시 세계로 이끄는 인도자를 자처하는 이, 시인 신경림이 내게는, 또 많은 한국 독자들에게 그와 같은 이였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하고 울부짖던 생생한 목소리를 떠올린다. 형편 때문에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그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가 울려온 지 수십 년이다. 시인 신경림 선생이 22일 오전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농무" "가난한 사랑노래" 쓴 대표 민중시인 신경림 별세 5월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민중시인 신경림 씨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 연합뉴스

신경림은 그러나 시인으로만 남지는 않았다. 그는 한 명의 친절한 인도자로서 시의 이로움을 알지 못하는 이들과 기억돼 마땅한 한국의 훌륭한 시인들을 연결해 왔다. 그의 역작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통해서다.

시인 발자취를 좇은 또 다른 시인

1998년 출간된 이 책은 한국의 시인 수십 명의 발자취와 그들이 남긴 작품을 찾아 살핀 결과물이다. 1995년부터 3년 간 답사하고 연구한 결과물을 공들여 묶은 한 권 책으로 펴냈다. 집필 당시 작고한 시인들의 묶음으로 첫 권을 펴냈고, 책이 거둔 성과에 힘입어 활동 중인 시인을 묶어 두 번째 권을 내놓았다.

좋은 책을 알아보는 눈 밝은 이들이 있어, 또 시의 몰락을 어떻게든 늦추려는 뜻 있는 이들 덕분에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는 그 어느 시 관련 서적보다도 성공의 길을 걸었다. 출간 직후 바로 여러 매체에 소개되었고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는 일까지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각급 학교 학생들의 필독도서로 지정된 건 물론이다. 시간의 냉엄한 심판까지 이겨내며 쇄를 거듭하는 스테디셀러로 자리했다.

책은 지난 시대의 시와 신경림의 만남이라 해도 좋다. 여느 시 해설서와 이 책의 차이라면 저자가 수년 동안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시와 얽힌 장소들을 찾아 얻은 감상의 기록이란 점에 있을 테다. 때로는 시인의 생가이고, 때로는 시인이 자주 거닌 장소이며, 또 때로는 시와 제가 얽힌 사연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한 명의 시인으로서 이미 떠난 시인을 이 시간과 저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장에서 만나 대화하는 듯한 이야기가 색다른 멋과 맛을 던진다.

신동엽의 '종로오가' 속 서울 도심으로부터 박인환의 고향인 강원도 인제까지를, 백석의 <사슴>을 구해 읽은 청계천 일대 고서점과 김수영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읽던 시절의 한적한 거리를 독자는 신경림과 함께 거니는 기회를 얻는다.


▲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책 표지 ⓒ 우리교육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중략)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는 백석의 시를 읽으며 힘든 계절을 견뎌낸 시인의 한 때를 생각한다. 그와 같은 글을 읽으며 간신히 버텨냈던 나의 어느 계절 또한 떠올린다.

기행문이기도, 시해설집이기도 한 신경림의 산문은 그렇게 독자를 시간과 공간을 건너 시의 힘이 작용하는 세계로 이끌어간다.

그의 손을 잡고 시 세계로 들어선 일이 있었다

물론 모든 점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책을 접했을 적엔 어딘지 못마땅한 감상이 든 것도 사실이다. 살았을 적 품은 뜻과 담긴 글이 있으면 그만이지 이미 죽은 시인들 생가를 찾아 무엇 하느냔 생각도 없지 않았다. 책 사이사이 시인의 생가를 묻는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스꽝스럽고 한심하다는 듯 묘사하는 대목을 읽고 난 뒤였다.

그러나 그 모두는 이 책이 품은 미덕에 비한다면 채 한 줌도 되지 않는 아쉬움이 아닌가. 교과서를 통해서 밖에 접하지 못했던 죽어버린 시인들을 역시 교과서를 통해 접하였던 살아있는 시인이 일일이 찾아 대면하는 모습은 결코 흔치 않은 일이다. 그로부터 오로지 문제를 맞히기 위하여 이해했다 믿어야 했던 시와 시인들을 나는 새로이 만날 수 있었다.

개중 마음 깊이 들어온 시가 있다. 개중 마음 밖으로 밀려난 시인도 있다. 신석정 시인의 '산산산(山山山)'과 신동문 시인의 '내 勞動으로'는 때로 때때로 꺼내어 읽는 시가 되었다. 신경림의 작업이, 이 책이 아니었다면 결코 없었을 일이다. 나는 그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1000편의 시를 외운다던 시인 신경림이다. 일천 편의 시를, 어쩌면 그보다 많은 시를 수없이 읽어낸 결과로써 그는 한 편의 시란 작품을 넘어 시인의 삶과 사상, 그가 산 배경까지를 이해한 뒤에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시와 시인을 오로지 교과서로 접할 뿐인 불운한 대중들을 향하여서 신경림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를 맞잡는다면 당신은 이제껏 만나지 못한 길을 통하여 한국 시 세계로 접어들게 될 테다.

시인 신경림 선생이 오늘 오전 8시17분께 별세했다는 소식이다. 이 조잡한 글은 내게 손을 내민 이 시인에 대한 나름의 애도다. 고인이 평안하시기를. (본보 제휴 <오마이늏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4년 5월 27일, 월 6:3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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