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나는 의사들의 파업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그들을 파악하는데 집중했다. 최대집이 의사협회의 회장이었을 때는 그가 서울대를 나왔지만 전문의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토록 용감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내 나름으로 이해할 수 없는 그를 이해하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런데 의사들의 파업을 통해 나서는 사람들이 최대집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순화되지 않았고, 그들의 주장을 통해 드러나는 그들의 인격이 우리가 병원에서 존경의 마음을 담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또 다른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었고,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한 기득권자들일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아무리 외운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들은 0.1%의 경쟁의 관문을 뚫은 대단한 사람들로서 무조건적으로 사회가 인정하는 암묵적인 권력가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기반으로 자신들의 분야에서 군림하는 독재자들이며, 신격화되고, 오만증후군에 감염된 우리 사회의 지배자들이었다.

한 마디로 윤 정부가 잘못 건드린 것이었다. 그들이 또 다른 우리 사회의 강력한 지배자들이라는 사실을 권력에 취해 간과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벌집을 쑤셔놓았고, 이제는 그 수습이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소득이 있었다. 의사라는 흰 가운에 감추어져 있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들은 능력주의를 신봉하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들이며 순진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지배자이며 독재자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는 법대와 의대의 충돌이라는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의 한계를 눈으로 확인했다. 능력주의와 엘리트주의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평생에 걸쳐 불평등을 연구해온 사회학자 에드워드 로이스는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합법적 권력은 가난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라는 책에서 가난이나 빈곤에 관해 현재 통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논리들이 그 전제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부의 불평등이 심해지는 이유도 우리가 시장경제의 원리로 돌아가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이유는 기껏해야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게 고작이라고 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불평등의 가장 큰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가 “불평등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에게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갖다 바쳤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가난과 경제 제도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배포하며, 불평등과 가난이라는 문제를 모두 경제라는 테두리 안에 가둔다. 이들이 말하는 경제라는 것이 진정한 자본주의, 진정한 시장경제와는 한참 먼 데도 말이다.

에드워드 로이스는 “불평등의 가장 큰 이유가 불평등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에게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권력을 갖다 바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정말 핵심적인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일과 현실에서 그것을 바꾸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만일 선거에 능력 있는 사람과 평범한 사람이 경쟁한다면 누가 이기겠는가. 유권자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라. 당신은 누구를 선택하겠는가. 누구라도 어쩔 수 없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과거나 고시와 같은 권력 위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결국 검·판사 출신이나 관료출신의 후보자를 찍을 수밖에 없다.

나는 늘 유럽의 의회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이웃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나라를 꿈꿔왔다. 왜 우리나라는 그런 사람들을 선택하지 못하는가를 오래도록 생각해왔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어느 문명이건, 어느 사회건 이런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정치제도를 선택해도 결과는 동일하다. 권력을 쟁취한 자가 결국엔 모든 이득을 취하게 된다. 그래서 모든 문명이 “희생의 체제”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모든 문명은 “희생의 체제”가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이 인간들보다 지혜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시려는 것인가. 아니다. 이 말씀을 통해 인간들이 ‘도토리’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사는 ‘도토리 키 재기’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도토리가 권력을 쥐든 결과적으로 그들은 지배하고 다스린다. 다시 말해 모든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며, 약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다는 것이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지배해왔던 모든 문명, 다시 말해 “희생의 체제”라는 문명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를 제시하신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감격인가. 희생의 체제가 아닌 다른 사회, 다른 세상, 다른 나라가 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제자들의 사회이며, 교회인 하나님 나라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말씀에 담긴 의미를 알아듣는 그리스도인들이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와 교회를 조직으로 만들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공교한 희생의 체제를 구축했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그리스도인 지도자가 아니라 마구 내리누르고 세도를 부리는 권력자들이 되었다. 그곳에서 소외가 일어나고 차별이 일상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도교와 교회가 권력이 없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이방 사람들의 나라가 되었다.

에드워드 로이스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런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 그 대안이 바로 복음이다. 복음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바로 엘리트주의와 능력주의를 극복하고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희생양이 없는 평화의 나라다.

복음은 혁명이다. 무혈 혁명이며 평화 혁명이다. 세상의 저항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목숨을 내 주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온 인류와 온 피조세계를 구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