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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런종섭'-채 상병 순직 수사외압... '워터게이트'와 닮은꼴
[분석] 대통령은 직접 관여 않았지만 은폐·조작 가담은 비슷... 한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있을까

(서울=오마이뉴스) 오태규 기자 = 이종섭 주호주대사 사건이 점차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사임으로 몰아넣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9일 사임했습니다. 의회에서 탄핵이 확실해지자 스스로 물러난 것입니다. 사실상 탄핵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1974년 8월 9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백악관 직원들에게 고별 연설을 하고 있다. 옆에는 가족이 서 있다(칼 슈마허 촬영, 메릴랜드주 칼리지 파크 소재 닉슨 대통령 자료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제공). ⓒ wiki commons

워터게이트 사건은, 1972년 6월 17일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가 민주당 후보의 약점을 캐내려고 워싱턴D.C.의 워터게이트에 있는 민주당 후보 사무실 도청을 시도한 데서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사무실에 뭔가를 훔치러 들어간 범인들이 경비원에 붙잡힌 단순 절도 사건인 듯했습니다. 그러나 범인들의 인적 사항을 보고 수상하게 여긴 <워싱턴포스트>의 새내기 기자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가 첫 보도를 하면서 사건은 닉슨 진영이 조직적으로 계획해 실행한 정치 사건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 사건에 처음부터 직접 관여하지도 않았던 닉슨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 중앙정보국에 수사를 방해하고 은폐하라고 지시하면서 스스로 목을 조르는 대형 정치 추문에 휘말렸습니다. '배관공'으로 불린 범인들의 재판과 상원 조사위원회의 조사에서 빼도 박도 못하는 수사 방해와 은폐 사실이 드러나며 닉슨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탄핵당할 치욕적인 상황에 몰렸고, 궁여지책으로 사임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가장 큰 교훈은 '대통령이라도 수사를 방해하고 거짓을 하면 쫓겨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폐와 거짓이 탄핵 대상...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


▲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9월 15일 인천항 수로 및 팔미도 근해 노적봉함에서 열린 제73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식에서 이종섭 당시 국방부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종섭 사건'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닮은꼴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먼저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것이 아닙니다. 채 상병이 속해 있던 해병대 1사단장이 업무상 과실치사죄의 피의자로 수사 대상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게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고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의 이름을 피의자 명단에서 빼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는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을 주호주대사로 갑자기 임명한 일입니다.

그러자 대통령 또는 대통령실의 개입 사실을 감추기 위해 그 사실을 알고 있고 폭로할 가능성이 있는 이 전 장관을 대사로 임명해 해외로 도피시키려 한다는 의혹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피의자 신분이라 검증에서 통과될 리가 없는데도 윤 대통령이 그를 대사로 임명한 점, 공수처에서 출국금지 조치가 취해진 상태인데도 법무부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출금 조치를 풀어준 점, 정식 신임장도 없이 사본만 들고 서둘러 나간 점, 주호주대사는 장관급이 임명된 적이 없다는 점 등 숱한 의문점이 뒤따랐습니다.

그의 대사 임명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는 보도가 나오자, 대통령실은 조직적으로 여론 조작 공작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3월 14일 익명으로 '공수처와 야당, 친야 언론이 결탁한 공작'이라고 규정했고, 바로 그날 오후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공수처가 수사를 안 하고 오랫동안 출금 조치를 한 것을 공개 비판했습니다. 15일엔 황상무 시민사회 수석비서관이 출입 기자와 점심 자리를 이용해, '엠비시(문화방송) 잘들어'하면서 회칼 테러사건을 언급했습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들의 일련의 언동을 보면, 매우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언론 압박을 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도피 출국' 논란에 휩싸인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1일 오전 인천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대통령실과 여당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종섭 '도주 대사' 사건을 보는 일반 시민의 날카로운 눈은 흐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대사가 10일 남의 눈을 피해 도둑처럼 호주로 피했으나, 여론의 압박에 못 이기고 11일 만에 귀국했습니다.

하지만 귀국 이유가 너무 황당합니다. 22일치 주요 중앙 일간지의 사설을 보면 <조선일보>을 제외하고는 모두 방위산업 관련 공관장회의를 급조해 들어온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화상회의나 4월 말로 예정된 전체 공관장회의 때 해도 충분한 회의를, 이종섭 한 사람을 위해 급조한 것에 대한 매서운 질타입니다. 정부의 감세정책과 긴축재정으로 한 푼이라고 예산을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할 상황인데, 비즈니스 좌석표를 끊고 특급호텔 객실을 제공해야 하는 공관장을 다섯 명이나 허투루 불러들이는 코미디 같은 짓을 눈뜨고 지켜보기 어려웠을 겁니다. 다만,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들보다 하루 늦은 23일 '출발부터 엉크러진 이종섭 호주 대사 제 역할 할 수 있겠나'라는 사설을 내보습니다.

이종섭 1인 위해 공관장회의 '급조'... 모든 언론 동시 비판


▲ 이종섭 주호주대사 귀국 관련 주요 신문 사설(2024년 3월 22일치). 이보다 하루 늦은 3월 23일 <조선일보>는 '출발부터 엉크러진 이종섭 호주 대사 제 역할 할 수 있겠나'라는 사설을 실었다. ⓒ 오태규

이종섭 주호주대사 귀국일(21일) 다음날인 3월 22일 기준으로 봤을 때, <조선일보>만 빼고 거의 모든 신문이 이종섭 대사의 명분 없는 귀국을 비판했습니다. 국내 여론이 하나로 통일된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이 대사의 귀국을 두둔하기에 바쁩니다. 대통령실과 이 대사는 오히려 이 대사가 국내에 머무는 동안에 소환 조사를 하라고 지시까지 하고 있습니다. 수사기관에 대한 압박이자, 수사 방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참패한 뒤 '국민이 늘 옳다'고 반성의 말을 했는데, 말과 행동이 다르거나 <조선일보>를 보는 독자만 국민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 대사의 편법 귀국에도 채 상병 수사에 대한 윤 대통령과 이 대사의 개입에 대한 의혹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거짓에 거짓을 더하고, 수사를 방해하는 일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이 대사 사건을 워터게이트 급으로 키우는 일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끝까지 진실을 파헤친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 같은 기자가 있었지만, 한국 미디어에는 그런 기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4년 3월 26일, 화 5:1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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