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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4년 4월 14일, 일 2:28 pm
[종교/문화] 종교
 
[가슴이 부서진 이들의 예배] 예배의 상처
4·16 가족의 신학, 두 번째 이야기

(세월호 참사 후, 그리스도인 유가족과 연대인들은 예배팀을 구성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을 외치며 거리에서 기도회를 열어 왔습니다. 2024년 4월 참사 10주기를 맞아 지난 10년간 예배팀의 기록을 돌아보고, 세월호 가족들의 신학과 신앙을 살펴봅니다. 가족들과의 대담을 정경일 원장(심도학사)이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서울=뉴스앤조이) 정경일

공감 능력을 잃은 교회

세월호 참사 후 많은 그리스도인 유가족이 다니던 교회를 떠났다. 재난 속에서 가장 믿고 의지했던 교회에서 위로가 아닌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재난은 인간의 최악과 최선을 모두 드러내는데, 세월호 참사 때 교회가 보인 모습은 경악할 정도로 최악이었다. 마치 공감과 위로 능력을 상실한 집단 같았다.

고난주간 수요일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그 주 일요일은 부활주일이었다. 부활의 아침에도 고난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과 부활의 기쁨을 이야기해야 하는 절기적 관성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당황했다. 게다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월호 참사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공공연히 소리 내어 설교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호하기보다 고통을 주는 하나님을 변호하는 데 더 몰두했던 것은 설교가 아닌 '설화(舌禍)'였고 '2차 가해'였다.

그리스도인 유가족을 절망케 한 또 하나의 교회발 상처는 교회의 모바일 인스턴트 메시지가 유가족을 비방하는 혐오 발언과 사태를 왜곡하는 유언비어의 유통망으로 기능했다는 사실이었다. 2014년 한국교회는 유가족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 결여도 모자라서 반감과 혐오 행태까지 보인 것이다.

예수는 강도 만난 자를 발견한 사람들의 태도를, 피해자를 보고 다가가 돌본 선한 사마리아인과 피해자를 보고도 서둘러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 같은 방관자들, 두 부류로 대조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결코 간과해선 안 될 또 하나의 부류가 있다. 가해자인 강도다. 무고한 자를 공격하는 게 강도가 하는 짓이라면, 2014년의 한국교회는 어느 부류에 속했던 것일까.

그리스도인 유가족은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했던 만큼 교회의 배신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참사 당시 그리스도인 유가족이 76명이었는데, 그들 중 다수가 교회를 떠났고, 그들 중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돌아가고 있지 않은 이들도 있다. 도대체 그때 교회는 무슨 일을 저질렀던 것일까.


2018년 7월 안산 화랑유원지 오토캠핑장에 마련한 컨테이너에서 열린 기도회. 참가자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기도 중인 모습. 뉴스앤조이 박요셉

유가족이 되어 드린 예배의 기억

그리스도인 유가족이 같은 그리스도인 정체성을 의식하며 서로를 만나게 된 때는 2014년 겨울, 합동 분향소에 기독교 예배실을 마련하면서부터였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때 이미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인 유가족이 꽤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이들의 교회와 예배 경험에는 부끄러움과 고마움과 분노와 실망감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순영 어머니 / 참사가 일어난 후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뒀다는 부모들이 꽤 있었어요.

시찬 아버지 / 많았죠.

지성 어머니 / 지성이 아빠가 딸 둘, 사위 하나 데리고 팽목항에 내려갔어요. 근데 나보고는, 당신은 집을 지키래.

예은 어머니 / 똑같네.

시찬 아버지 / 놀랄까 봐….

지성 어머니 안명미 씨. 사진 제공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조선재

지성 어머니 / 집에 막내도 있으니까, 당신은 여기서 돌아가는 상황을 나한테 얘기를 해 줘,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단원고 강당에 가 있었어요. 근데 거기만 있으려니까 정말 애가 타는 거야. 밤 11시, 12시까지 앉아 있는데, 무슨 정신으로 앉아 있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교회 목사님이, 이제 집에 가시죠, 그래서 집으로 왔어요.

그리고 아침에 교회 가서 혼자 기도하고 돌아오는 걸 계속하며 지냈어요. 참사 다음다음 날 부활주일에 교회에 갔는데, 전도사님이 맨 앞줄 신앙생활 오래 하신 할머니 권사님들 계신 곳에 나를 데려다 앉히시는 거예요. 그리고 이 집사님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내 이야길 하시는 거예요.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내가 지금 위로받을 그런 마음이 아니었으니까요. 근데 또 목사님이 단상에 설교하려고 올라오셨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라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왜 여기 있지?' 이런 표정으로 앉아 있었어요. 그 첫 주일, 부활주일인데, 부활… 그거는 뭐라고 해야 되지? 너무 창피한 거예요. 진짜 내가 막 쪼그라지는 듯한 그런 심정인데, 나를 그 앞줄에 데려다 앉혀 놓았으니 나올 수도 없는 거예요. 진짜, 눈치 없이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저기 뭐야… 기둥 뒤에 숨고 싶은 거예요. 왜 그러냐면 내 마음이… 애를 잃어버린 엄마… 그러니까 내 마음이… 그런 마음이야. 못난 엄마야. 이런 엄마인데, 그 앞에다가 데려다 놨으니,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느낌인 거예요.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그 뭐야, 사람들 앞의 광대 같은 모습이었어.

시찬 아버지 / 어떻게 보면 발가벗겨진 것처럼 느껴지고 창피했죠.

지성 어머니 / 그렇죠. 그런 모습으로 꼼짝없이 그 시간을 보냈어요. 팽목항에 오지 말라고 그랬으니까. 그리고 그다음 주 수요일 예배에 또 갔어.

예은 어머니 / 그러고도 또 갔어? 대단하다, 언니….

지성 어머니 / 왜 그랬냐면, 정말 가고 싶지 않은데도, 그런 마음 있잖아. 나는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해야 된다는, 그래야 지성이 만나니까…. 그래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고 싶지 않아도,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여도, 내가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해야 우리 아이가 빨리 돌아온다, 그런 마음으로 가서 기둥 뒤에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15일 지난 수요일에 연락을 받은 거예요, 애가 올라왔다고. 그때 어떤 마음이었냐면, 애가 얼마나 추웠을까…. 예배를 드리는지 마는지, 그냥 엎어져서 울고 있었어요. 계속 울고 있었어요. 어쨌든, 창피한 모습이지만, 애를 위해 창피를 무릅쓰고 하나님 앞에 갔던 거예요. 나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갖고 있던 신앙은, 하나님 앞에 가야만 문제가 해결된다는 마음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수치스러운 느낌도 들긴 해요.

예은 어머니 박은희 씨. 사진 제공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조선재

예은 어머니 / 나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 내가 벌을 받은 건가? 수치스러웠어요. 내게 뭔가 죄가 있나? 물론 그런 게 아니라고 늘 배우고 가르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이런 일을 겪으니까, 나한테 무슨 큰 죄가 있나….

지성 어머니 / 잃어버린 게 창피한 거야, 애를 잃어버린 게….

시찬 아버지 / 나중에 느낀 건데, 한국교회가 진짜 위로할 줄 모른다, 사람에 대해 이해할 줄 모른다, 그걸 느꼈어요.

예은 어머니 / 이번에 은정 언니(희생자 조은정 어머니 박정화 씨. 아이들과 늘 함께하고 싶어 하는 부모들은 아이들 이름을 붙여 서로를 부른다)가 <시사IN> 인터뷰에서, 교회 갔더니 교인들이 하나님이 필요해서 데려가셨을 거라고 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잖아요.

시찬 아버지 / 맞아, 예수님 옆에서 찬양하고 있다고 했다는… 그따구 소리를 위로라고….

예은 어머니 / 네, 그게 위로래…. 도저히 위로도 안 되고 너무 화가 나고 견딜 수 없어서 교회 밖으로 뛰쳐나왔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순영 어머니 정순덕 씨. 사진 제공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조선재

순영 어머니 / 은정이 엄마가 진도서 바로 내 옆에 있었거든. 은정이 아빠는 은정이 찾아다니고, 그냥 나중엔 목이 다 쉬더라고. 내가 계속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은정이 엄마가 나보고 밥 먹어라, 죽 먹어라, 그리고 일어나라, 그랬어요.

(재난 피해자 가족이, 그것도 그리스도인 가족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야 할 교회에서 수치심을 느꼈다는 것은 '재난 이후의 재난'이었다. 물론 그것이 교회의 악의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시찬 아버지 말처럼, 교회가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할 줄 몰랐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지성 어머니 / 교회 말고 다른 데서 드린 예배는, 팽목항 천막에서 드린 게 기억나요. 그때의 내 모습에는 습관적인 그런 것도 있었어요. 주일날이니까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하지만 그때는 말씀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하나도 안 들어왔어. 도움의 손길을 주어도 내 교회 아니다, 그런 게 그냥 몸에 배어 있었어요. 그랬는데, 기독교 부스에 있으면서 같은 세월호 가족으로서의 그런 마음이 생겼어요. 전에는 기독교인이 아니면 관계를 안 맺었어요. 근데 이렇게 서로 관계를 가지면서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게 되고, 그 사람의 신앙도 존중해야 되는구나, 배우게 된 거예요. 마음을 열었다고 해야 할까?

예은 어머니 / 제가 전도사잖아요. 전도사면 설교할 때 하나님 믿으면 복 받는다,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면 복이, 은혜가 주어진다, 이런 걸 얘기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근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생긴 게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내가 전도사를 계속할 수 있을까?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감히 하나님을 믿으세요, 하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부활주일에 어찌어찌 예배는 갔는데, 사람들 만나는 게 너무 무서운 거예요.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고…. 지금 생각하면 그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난 전도사니까 하나님이 지켜 준다, 그런 생각도 있었고, 우리가 신앙생활 잘하면 모든 것으로부터 안전하리라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예요. 근데 그게 확 무너지니까… 갑자기 그냥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무섭더라고요.


시찬 아버지 박요섭 씨. 사진 제공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조선재

시찬 아버지 / 예전에 목사님들이 욥에 대해 설교 되게 많이 하셨잖아요. 나중에 욥이 더 축복받고, 자식도 더 많아지고, 그래서 잘되었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참사를 겪고 나서는 완전히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욥은 참 불행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먼저 간 자식들을 잊을 수 있었을까, 나중에 아무리 재물이 많아지고 자식이 많아진들 그게 축복이라고 생각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목사님들은 그런 설교 하시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지성 어머니 / 욥은 행복하지 않았을 거야.

시찬 아버지 / 예, 행복하지 않았을 거예요.

순영 어머니 / 그 애하고 간 애는 다르니까….

시찬 아버지 / 그렇죠. 근데 목사님들은 항상 뒤에 몇 배의 축복을 더 받았다고, 하나님이 더 주셨다고만 강조하지, 그 사람의 고유성과 고통에 대해서는 잘 얘기를 안 해 주시는 것 같아요.

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예배에 중독돼 있었던 것 같아요. 예배 안 드리면 죽는 줄 알았어요. 처음에 딱 부활주일이었잖아요. 미치겠더라고요. 얘도 안 돌아와서 미치겠는데, 주일에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막 돌아 버릴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다음 주인가 본 교회에서 왔는데, 제가 담임목사님한테 요청했어요. 교역자 한 분만 좀 내려보내 주시라, 저 미치겠다. 내가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근데 그걸 들어주지 않으시더라고요. 예배에 대한 내 갈급함을 모르셨던 거죠. 그래서 가까운 진도의 교회를 갔어요. 지금 돌아가셨지만, 그 교회 목사님이 계속 도와주시고 그랬어요. 아무튼, 부활절날 못 가고 그다음 주일에 갔는데, 예배고 뭐고 다 필요 없더라고요. 맨 뒤에서 그냥 엎어져 계속 울다가 왔어요.

예은 어머니 / 저도 맨 뒷자리에 딸들 데리고 가서 앉아 있는데,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싶더라고요.

시찬 아버지 / 그다음부터는 못 가겠더라고요. 그러고 몇 주 지나고 나니까 그 중독 증상에서 조금 벗어나더라고요. 오히려 그렇지 않았으면 계속 중독되어 살고 있었을 거예요, 지금까지도….

유가족끼리 모여서 드린 예배는 진도 팽목항 기독교 부스에서였어요. 우리는 거의 끝까지 진도 체육관에 남아 있었거든요. 애도 늦게 돌아왔고, 또 이제 우리 나가면 빈자리일 텐데…. 우리가 아이들 돌아오지 않은 부모들을 끝까지 지켜 주자, 시찬 엄마랑 둘이 얘기를 해 가지고, 시찬이 찾은 다음에도 그냥 계속 내려가 있었거든요.

그때 제 신앙관이 많이 변화됐어요. 처음엔 타 종교에 대해서는 아예 배척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었어요. 비구니 스님들이 오셔서 진심으로 대해 주는 거 보니까, 마음이 열리더라고요. 그래서 그분들하고 서울도 가고, 병원도 다니고, 그랬어요. 타 종교에 대한 선입견이 그때 거의 다 깨졌어요. 교회들은 처음엔 그럴싸하게 보여 주다가 언제부턴가 싹 사라졌거든요. 또 이단이라는 어느 교회도 팽목항에 왔는데, 천막을 쳐 놓고 끝까지 남아 있었어요. 너무 정갈하게 밥도 챙겨 줬고요. 이단일지언정 그 본심은 고맙더라고요. 교회는 다 떠났어도 이분들은 남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에….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의 유가족은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에는 대부분 매우 복음주의적인 신앙인이어서, 이웃 종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과 태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연대하는 이웃 종교인을 만나면서 이웃 종교에 대한 편견이 깨어졌다고 고백한다. 종교의 교리나 의례보다 중요한 게 자비요 사랑이기 때문일까. 4·16 그리스도인 가족은 공감할 줄 모르는 그리스도인보다 함께 우는 이웃 종교인, 비종교인에게서 더 깊은 유대감을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찬 어머니 오순이 씨. 사진 제공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조선재

시찬 어머니 / 저도 바로 진도로 내려가, 거기 체육관에 있으면서 첫 주일에 예배를 드렸는데, 그때 기억이 안 나요. 힘들었던 기억이 다른 기억을 다 지워 버렸는지 모르겠어요. 그날 진도 동네를 돌아다닌 기억은 있어요. 기도해야 되겠다고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시찬이를 찾게 해 달라고. 그때는 며칠 안 됐으니까, 시찬이가 살아 있다는 희망으로 교회를 돌아다녔는데, 교회를 가서 기도했는지 기억이 안 나요. 나중에 체육관에 있을 때 개인적으로 아는 목사님이 오셨어요.

시찬 아버지 / 다니던 교회 부교역자로 계셨다가 개척해서 나가신 목사님이세요.

시찬 어머니 / 그분이 오셔서 다윤이 엄마하고 우리하고 같이 예배드렸어요.

예은 어머니 / 다윤이 엄마랑 같은 교회 다녔지?

시찬 어머니 / 다윤이 엄마도 나도 같이 교회 다닐 때는 몰랐어. 거기 가서 안 거야.

시찬 아버지 / 교회가 워낙 커 가지고….

시찬 어머니 / 활동하는 데가 완전히 달랐거든요. 나는 교육부 유치부에 있었고, 다윤 엄마는 새신자여서 만날 일이 없었어요. 근데 거기서 만났고…. 우리 아이 나온 다음에도 늦게까지 팽목항에 있게 된 것도 그래서였어요. 그래서 그 목사님하고 한 달 정도 예배드렸던 것 같아요.

안산에서 예배드리기 전에는 진도 교회에 많이 갔던 것 같아요. 진도읍에 있는 교회에요. 당시까지만 해도, 그래도 주일은 교회에 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맨 뒤에 앉아서 그냥 울다 오는 날도 있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오는 날도 있고, 그랬던 것 같아요.

창현 어머니 / 창현이는 일찍 나왔어요. 17일에 발견돼서, 바로 다니던 교회로 와서 장례를 치렀는데, 교회에서 장례식을 잘해 줬어요. 애들부터 어른까지, 전체 교회가 정말 잘해 줬어요.

시찬 아버지 / 우리도 그랬어요. 병원이 교회 바로 옆이어서, 시찬이 친구들이 관을 들고 교회 본 성전까지 들어가게 해 줬고, 교회 집사님 한 분이 자작곡 노래도 불러 주고, 그런 거 다 했어요.

창현 어머니 / 저는 교사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애들이 장례식장에 와서 남겨 준 손 편지 하나하나 지금도 다 가지고 있어요. 그 뒤로도 교사를 계속했어요. 아이들과의 만남이 제겐 중요했거든요.

시찬 아버지 / 그때 그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 그 자리를 지켜 주는 게 창현이를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교사 위치를 계속 지키고 있었다고….


창현 어머니 최순화 씨. 사진 제공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조선재

창현 어머니 / 근데, 2015년 특별법 시행령 싸움이 있었을 때, 삭발을 하고 교회를 갔더니 "그러고 어떻게 애들 앞에 설 거냐" 이런 얘기를 담임목사님이 교회 부장 집사님을 통해 하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꼭지가 확 돌아 버려 교회를 나와 버렸어요. 그래도 장례식을 너무 잘해 줬고 애들과의 약속이라 계속 다녔는데, 그런 일로 교회를 나오고 나서는 예배에 대한 갈망, 그런 거 없었어요. 그냥 물음표? 도대체 내가 기독인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일을 겪고 어떻게 살아야 되나. 지금까지도 물음표인 것 같아요. 이거를 따져 묻지 않았고, 하나님도 침묵하시고 나도 침묵하고, 그런 상태로 있는데, 저는 사람들을 통해서 더 많이 보고 체득하고 느꼈던 것 같아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형식적인 예배 틀을 갈망하지 않게 된 건 너무나 잘된 일인 것 같아 좋은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는 계속 고민 중이에요. 참사 초기에 특별히 생각나는 예배는 없고, 신학생들이 찾아와서 말해 준 게 되게 신선하고, 그들의 예배 형식이 교회에서 드렸던 예배와 완전히 다른 게 새롭게 다가왔던 기억이 나요.

시찬 아버지 / 가족들이 다들 새롭게 처음 접하는 그런 예배였어요.

창현 어머니 / 네, 그래서, 하나님을 이렇게 믿는 사람들이라면 너무 좋다… 생각했어요.

시찬 아버지 / 안 그랬으면 하나님을 떠났을 거예요.

창현 어머니 / 네, 그랬을 것 같아요. 저의 기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잡아 주는데 신학생들 역할이 되게 컸어요. 장신대 '하나님의선교' 친구들이 뛰어들어 준 거예요. 지금까지 그 끈이 계속 연결돼서, 그때 신학생들이 4·16합창단도 같이 하고 있고, 결혼한 친구들도 있고, 그래요.

시찬 아버지 / 아무도 할 사람들이 없으니까 그 친구들이 발 벗고 나섰던 거야.

창현 어머니 /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게 참 좋았어요. 아무튼, 어떤 예배라기보다,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저한테는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시찬 아버지 / 하여튼 저는 예배의 틀이나 형식에 중독되었던 것에서 벗어났다는 게 너무 좋아요. 옛날엔 예배 안 드리면 다리 부러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걸 깨닫게 된 게 너무 좋아요.


2019년 7월 생명안전공원에서 열린 기도회에서 참석자들이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최승현

지성 어머니 / 저도 그렇게 형식에 매이지 않는 예배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물론, 교회가 우리를 대한 것들로 인해, 교회가 왜 이러지, 하는 의문점을 가졌지만, 계속 이전의 형식으로 예배를 드려왔더라면 내가 가진 틀을 깨야 되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을 거예요. 세월호 예배의 신선함에서 저도 많이 고민했던 것 같고, 틀을 깨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런 걸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가 그 안에서 계속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깨어져서 정말로, 정말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까, 이런 생각을 했죠. 그냥 '교인'에 그치지 않고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겠다, 그런 생각을요. 전에는 틀에 맞춰야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일 거라고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은데, 이런 형식 없는 신선함 때문에 그런 생각을 깨려고 몇 년을 나름 참 많이 고민하고 노력했어요.

시찬 아버지 / 여기 계신 분들은 다 그 틀을 깼어요. 왜 그러냐면, 생명 안전 공원 예배가 형식을 완전히 탈피했거든요. 교회의 형식적 예배로 보면, 우리 예배는 설교자 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문제점투성이거든요. 하지만 그 틀을 다 깼으니까 이렇게 있는 거죠.

예은 어머니 / 4·16 생명 안전 공원 예배가 제일 마음이 편해….

*

교회와 예배에서 상처 입었던 그리스도인 유가족은 합동 분향소 컨테이너 박스 기독교 예배실에서, 4·16 생명 안전 공원 부지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며 위로와 치유를 경험해 왔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의 예배가 아픔을 공감하고 나누고 동행하는 이들의 예배였기 때문이다.(계속)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4년 3월 18일, 월 5:2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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