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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가슴이 부서진 이들의 예배] '세월호 이전' 예배의 기억
4·16 가족의 신학, 첫 번째 이야기

(세월호 참사 후, 그리스도인 유가족과 연대인들은 예배팀을 구성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을 외치며 거리에서 기도회를 열어 왔습니다. 2024년 4월 참사 10주기를 맞아 지난 10년간 예배팀의 기록을 돌아보고, 세월호 가족들의 신학과 신앙을 살펴봅니다. 가족들과의 대담을 정경일 원장(심도학사)이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서울=뉴스앤조이) 정경일

고통받는 이들에게 절실한 건 연민이 아니라 연대다. 연대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직접성·구체성·지속성이다. 이 중 가장 어려운 것이,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이 '지속성'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한국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적 가족이었다. 참사의 고통 앞에선 보수도 진보도,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힘 있는 자도 힘없는 자도 모두 한마음이었다. 그리스도인도 안산에서, 진도 팽목항에서,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앞에서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유가족과 연대하면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은 이가 자신의 눈물과 약속을 잊고 유가족 곁을 떠나갔다. 사람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유가족을 향한 무관심과 혐오가 독버섯처럼 번졌다. 그 고통의 봄날에 함민복 시인은 "숨 쉬기도 미안한 4월"을 비통하게 노래했는데, 그해 가을 진은영 시인은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고 탄식했다. 유가족이 가장 두려워했던 '기억의 유실'이 급속히 일어난 것이다. 사실 망각의 조짐은 이미 그해 여름부터 나타났다. 2014년 7월 24일, 세월호 참사 후 100일째 되던 날 시청광장에서 열린 추모 문화제 제목은 '네 눈물을 기억하라'였다. 1000일도 아니고 100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가 흘렸던 눈물을 기억하자고 절박하게 호소했던 것은 사회적 망각의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의 망각이 문제인 것은 그것이 '재난의 반복'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가 "사건은 일어났고 따라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한 것은, 근본적 성찰과 반성과 전환이 없으면 재난은 언제든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재난의 책임에 대한 법적 공소시효는 있지만, 사회적 기억에는 시효가 없다. 20세기 제주 4·3, 6·25와 민간인 학살, 광주 5·18의 기억 투쟁은 21세기인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억은 신앙의 심장이다. 교회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억에서 시작했고, 그 기억을 2000년이 넘도록 재현해 온 역사적 기억 공동체다.

재난의 반복을 막으려면 재난을 기억해야 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은 개인만이 아니라 교회와 사회에서도 진실이다. 그동안 예배와 기도회를 중심으로 연대해 온 유가족과 그리스도인은 시간이 갈수록 4·16의 기억이 유실되는 것을 안타깝게 목격해 왔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특히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2024년을 맞으며, 그동안 한국 그리스도인이 죽은 이들을 애도하고 유가족과 연대해 온 집단 경험을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기억의 유실을 막고 같은 재난을 반복하지 않게 할 교회적·사회적 성찰의 토대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기록 작업을 위한 여건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역사 자료화 관련 정부 기관과 그리스도교 단체에 문의해 보았지만, 긍정적 답을 받지 못했다. 속수무책으로 있을 수만은 없었던 4·16 그리스도인 가족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기억의 기록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단지 연대기적 기술이 아니라 신앙과 삶의 기술이 될 수 있도록 '4·16 가족의 신학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첫 주제를 '예배'로 정했다.

4·16 그리스도인 가족의 예배와 신학


2015년 1월 8일 안산 합동 분향소 컨테이너 박스에서 처음 열린 목요 기도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4·16 가족의 신학 첫 주제를 '예배'로 정한 것은, 지난 10년 동안 예배가 4·16 그리스도인 가족의 고통과 저항과 희망을 오롯이 담아 내고 있기 때문이다. 4·16 가족에게 예배는 하나의 종교적 의례나 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에게 항의하고, 하나님에게 의지하며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는 신앙의 현장이었다. 또한 4·16 예배는 고통받는 이들과 그들 곁을 지키는 사람들이 만나 성서 해석, 사회 분석, 영성, 연대의 실천을 함께한 공동체적 사건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욥기'요, '시편'이요, '복음서'요, '행전'이었다.

그리고 '신학'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것은 신학이 전문 신학 교육을 받은 목회자나 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존 캅이 말한 것처럼 신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도적 사고"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학(theology)'이란 "하나님(theos)에 대해 말(logos)하는 것"이므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묻고, 때로는 항의하는 그리스도인의 말이 곧 신학이기 때문이다.

욥기의 결론에서 하나님은 엘리바스와 두 친구에게 분노하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 "욥처럼 옳게 말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욥기 42:7). 그들은 경건하고 정교한 '신학'으로 욥을 비난하고 정죄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해 옳게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신학은 공감과 사랑이 빠져 있는 '나쁜 신학'이었다. 욥의 신학은 초지일관 하나님에 대한 '항의'였다. 그 항의가 하나님에 대해 옳게 말하는 신학이었던 것은, 항의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존재를 믿었던 욥의 처절한 신앙 때문이었다. 이 시대의 '욥들'인 4·16 그리스도인 가족의 신학이 바로 그렇다. 이들이 지난 10년 동안 하나님에게 묻고 항의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자비롭고 정의로운 하나님을 굳건히 믿었기 때문이었다. 신앙 없이는 항의도 없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에게 항의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마태복음서 27:46) 이에 대해 한 신학자는 "십자가는 하나님에게 버림받았지만 하나님을 버리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했다. 유가족과 신학 대화를 나누면서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지성 어머니가 깊은 한숨과 함께 "우리가 그렇지…"라고 말했다.

4·16 가족과 그리스도인은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몇십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 고통의 봄날 이후 씨름해 온 신학적 주제들, 즉 예배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기도란 무엇인가, 영성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을 기억하고 기록해 나가기로 했다. 앞으로 이야기할 4·16 가족과 그들 곁을 지키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예배에 관한 신학을 교회와 사회와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항의이며 확고한 신앙의 표현으로 들어 주면 좋겠다.

첫 번째 이야기: '세월호 이전' 예배의 기억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은 이름에 장소를 특정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인 가족이 중심인 예배 공동체로 이해하면 된다. 2015년 1월 4일, 안산 합동 분향소 컨테이너 박스 기독교 예배실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린 것으로 시작해, 2018년 4월 29일까지 거기서 매주 예배를 드렸다. 2018년 봄 분향소가 철거된 후, 2018년 5월부터 지금까지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오후 5시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배를 이어 왔다. 이 예배에선 그달 숫자에 해당하는 단원고 각 반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들 하나하나의 삶과 꿈을 낭독한다. 가슴이 부서진 이들이 빈 들에서 드리는 예배는 교회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아프면서도 아름답게 보여 준다. 예수와 함께했던 사람들이 예수를 기억하며 교회를 이루었던 것처럼,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 곁의 그리스도인도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4·16 교회'를 이루어왔다. 예배팀의 4·16 가족은 예배에 '진심'인 것 같다. 예배를 단 한 번도 빠트린 적이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렸다. 이들에게 참사 전의 예배와 참사 후의 예배는 어떤 의미였을까.


예은 어머니 박은희 씨.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예은 어머니(박은희) / 세월호 참사 전에 생각했던 예배는 늘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였어요. 교회라는 공간에 설교자가 있고, 찬양대가 있고, 기도와 고백 같은 순서가 있는 그런 예배요. 그래서 예배에 어떻게 순서를 넣어야 할지, 뭐는 빼도 되고 뭐는 절대 빼면 안 되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했어요. 어려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제가 보아 왔던 예배 포맷이 늘 머릿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서 좀 벗어나면 예배 같지 않은 느낌이 있었어요. 또 뭘 빼려고 하면 주변에서 어떻게 예배에서 그걸 뺄 수 있냐, 하는 논쟁도 있으니까, 그런 건 최대한 피하고 기본 형식대로 예배를 드리려고 했어요. 그런 예배 안의 여러 요소를 통해서 내가 막연히 알고 있던 하나님을 좀 더 가까이 만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마음과 생각을 모아 가는 것이 예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순영 어머니 정순덕 씨.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순영 어머니(정순덕) / 저는 세월호 참사 전엔 교회를 안 다녔어요. 참사 후에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도 배워 가는 중이에요. 아직까지는 예배 참석하는 게 좋아요. 참사 초기엔 말씀이 간절하니까, 교회 가는 게 그렇게 좋았어요. 그냥 눈만 뜨면 교회 가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위로도 받고….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참사 터지고 한 달 반 만이니까, 5월 말인가 6월 초였는데, 너무나 교회가 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언니가 다니던 교회에 갔어요. 한 1년 다녀야지 했다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요.

지성 어머니(안명미) / 저는 주일이면 그냥 교회 가야 되는 거로 알고 살았어요. 아침 일찍부터, 주일은 당연히 교회 가서 있어야 되는 거로요. 어쩌다 교회를 못 가면 죄책감이 들었어요. 큰일 나는 줄 알았죠. 정말 개근상 아닌 개근상을 타러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교회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교회가 원하는 어떤 틀에 내가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서 엄청 노력했어요. 그 틀에 줄이고 늘리고 하며 맞춰야 하니까, 거기에 나를 막 갖다 넣으려 노력하고…


지성 어머니 안명미 씨.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시찬 아버지(박요섭) / 거기 못 맞추면 자책감이 생기죠.

지성 어머니 / 그랬죠. 마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처럼, 내 의견과 상관없이 그 틀에 들어간 거죠.

그래도 감사했어요. 나는 감사하게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어쨌든 간에 예배를 드려야만 일주일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느낌으로 지냈던 것 같아요. 모든 예배에 참석하려고 노력했고, 피곤할지라도 거기에 맞추려고 무진장 노력하면서 살았던 삶이었던 것 같아요.


시찬 아버지 박요섭 씨.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시찬 아버지 / 참사 전엔 저한테는 예배가 절대적이었어요. 예배 순서도 무조건 형식에 맞춰야 된다는 데 너무 쩌들어 있어서, 하나라도 바뀌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순서를 바꾼다거나 하면 이단으로 공격받기도 하니까, 예배 형식에 꼭 들어갈 요소들을 무조건 다 지켜야 하나님께 드려지는 진정한 예배라고 생각했죠. 그런 예배를 떠난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했어요.

주일날이면 첫 번째로 교회 문 열고 들어갔어요. 제가 예배를 다 준비하고, 그게 버릇처럼 그냥 그렇게 되어서, 그걸 못 지키면 뭔가 죄짓는 것 같고 뭔가 큰일 날 것 같았어요. 또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니,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게 맞는 것 같고, 그런 압박감 속에서 계속 예배를 드렸던 것 같아요.

성경 말씀처럼,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고 입술로는 그렇게 고백했지만, 실제로 제가 추구했던 예배의 삶을 보니까, 예배의 형식에 너무 매여 있었던 것 같아요. 예배를 더 화려하고 멋있게, 찬양과 설교도 진짜 어마어마하고 근사하고 기막히게 들리도록 음향 시스템을 좋게 해서, 사람들 귀에 굉장히 좋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꽉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아요. 입술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해야 한다고 얘기했지만, 정해진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그런 예배를 드렸던 것 같아요.

시찬 어머니(오순이) / 저는 초등학생 때 시골 교회에 다니면서부터 계속 예배를 드렸어요. 예배에 대한 생각은 지성 언니와 거의 똑같았던 것 같아요. 주일이면 항상 예배를 드리고, 봉사하고, 하루 종일 교회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있어서 어디를 가느라 예배를 못 드리게 되면, 그날은 내내 불안했던 것 같아요. 시찬 아빠도 얘기했는데, 신령과 진정, 그런 것도 잘 모르면서, 목사님들 인도로 드리는 예배가 다 옳은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거기에만 따라서 예배드렸던 것 같아요.


시찬 어머니 오순이 씨.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시찬 아버지 / 제 생각이 얼마나 경직되어 있었냐면요. 지방에 무슨 일이 있어 갔다가도, 본 교회에서 예배드리려고 밤을 새워서 돌아왔어요. 그렇게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주일성수하고, 또다시 지방으로 내려가는 거예요. 그냥 가까운 교회에서 예배드리면 되는데, 그걸 못했던 거예요.

지성 어머니 / 딴 교회에선 은혜가 안 되죠. 불안해서 은혜가 안 돼.

예은 어머니 / 간 김에 시골 교회를 가야지.

창현 어머니(최순화) / 은혜가 뭐예요?

지성 어머니 / 말씀이 마음에 안 들어와. 내 목사님 설교가 아니니까.

시찬 아버지 / 네, 내 교회가 아니니까. 주일성수 안 하는 것 같고…. 평소에 항상 듣던 그 틀에서 못 벗어났어요.

지성 어머니 / 딴 데 가서 들으면, 생각에, 아, 수준이….

일동 / 맞아, 맞아(웃음).

시찬 아버지 / 은근히 우리 목사님과 다른 목사님 설교를 비교했거든요. 다른 목사님은 성경 말씀의 앞뒷면만 보신다면, 우리 목사님은 착착착 돌려 가며 위아래도 보실 줄 아는데, 막 그렇게 판단하고 그랬어요, 되게 교만하게….

지성 어머니 / 네, 그렇더라고요. 비교해요. 귀가 맞춰져 가지고 다른 설교는 못 듣는 거예요.

순영 어머니 / 본 교회 아니고 다른 데 가면 비교 된다고….

예은 어머니 / 다른 교회 다니지 말라고.

일동 / 맞아, 맞아.

시찬 아버지 / 교인 뺏기니까.

순영 어머니 / 네, 그래서 내 교회만 쫓아다녔어요. 나중엔 급하니까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서 말씀 들어 보면서도, 내게 다가오는 말씀만 담았어요. 그렇게 처음엔 몰라서 그냥 '우리 교회 좋다' 그랬는데, 그게 아니다 싶은 걸 깨달았죠.

창현 어머니 / 저는 예배보다 교회 생활에 더 치중했던 것 같아요. 교회 생활에 맞춰서 살려고 무지 노력했어요. 저도 국민학교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시찬 아버지 / 국민학교가 뭡니까? 초등학교지(웃음)


창현 어머니 최순화 씨.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창현 어머니 / 중학교 때 신약성경을 되게 많이 읽었어요. 근데 말씀을 읽으면서 엄청 갈등이 심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나는 이렇게 못 사는데 어떡하지, 하면서요.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것들이 성경에 써 있는데, 그걸 내 삶과 비교하면서 엄청 고민했어요. 그래서 차라리 눈이 멀었으면 좋겠다, 말씀이 안 보였으면 좋겠다, 안 들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게 계속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교회는 계속 놓지 않았는데, 말씀이 들린 거는 20대 때 여기 안산, 그땐 반월이었지, 반월에 와서 어느 교회에 갔는데, 그때 귀가 뜨였다고 그럴까, 말씀이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교회를 놓을 뻔했다가 놓지 않았고, 계속 뭔가 끈이 이어졌고…. 그렇게 어떤 진짜를 찾아 헤맨, 많이 갈급했던 것 같아요. 극동방송도 엄청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처럼, 그런 게 다 껍데기가 아니었나 해요.

예배란 뭘까 생각해 봤는데, 그냥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닐까 해요. 형식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형식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1년에 몇 번 안 됐던 것 같아요. 그래도 진심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 그런 경험이 있어서 교회를 놓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간에 엄청 교회 생활을 잘하려고 애썼던 것들이 모두 껍데기였다는 생각이 들고, 세월호 참사를 겪고 나서는 그게 너무 확실해져요. 그래도 뭔가 있긴 있다 생각하는데,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형식적인 예배는 아닌 것 같아요. 그건 그냥 예배에 참석하는 거잖아요. 남들이 벌여 놓은 어떤 세팅에 들어가는 거, 그거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확실해요.

시찬 아버지 / 교회 다닐 때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창현 어머니 / 그때는 아니었죠.

예은 어머니 / 언니, 엄청 열심히 했잖아.

시찬 아버지 / 교사도 하고…. 교사 때 머리도 막 밀어 버리고…(웃음). (창현 어머니는 참사 1주기가 다가올 때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삭발식에 함께했다. 그가 다니던 교회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에게 교회학교 교사직 사임을 권했다. - 편집자 주)

예은 어머니 / (언니가) 전도사보다 더 열심히 했지.

시찬 아버지 / 교회에서 봉사직을 권고하잖아요. 저는 유일하게 교사만 거절했거든요. 왜 그랬냐면 저는 '교사는 모범을 보여야 된다', '애들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면서 내가 어떻게 애들을 가르칠 수 있나', '난 그렇게 못 살겠다' 그렇게 생각해서 거절했거든요. 교사였던 분들에 대해서 존경심이 있어요. 대단하신 분들이구나….

시찬 어머니 / 난 예배드리는 거를 되게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할머니 따라서 새벽 기도를 엄청 열심히 다녔어요. 그 어린 나이에도 꼭 그 시간 깨어서 같이 갔다 오고 그랬어요.


'세월호 가족의 신학'을 주제로 대담 중인 가족들과 연대인들. 사진 제공 정경일

시찬 아버지 / (아내는) 지금도 주일날 11시 되면 온라인으로 혼자 예배드려요.

시찬 어머니 / 어릴 때 그랬던 기억이 나고, 점점 그게 스며들어서, 계속 예배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몸에 배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예은 어머니 / 일상이 된 것 같아.

시찬 아버지 / 그러기도 하고, 일주일에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계속 교회에 가야 돼요. 교회를 일요일 한 번만 가서 되는 게 아니라 일주일 내내 매달려 살 수밖에 없었어요. 그걸 안 지키면 큰일 나는 것 같고…. 주일성수만 잘해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거 하나만으로는 안 된다, 모든 예배를 지키지 않으면 난리 난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창현 어머니 / 그런 게 기뻤어요? 즐거웠어요?

시찬 아버지 / 보람은 있었어요. 즐겁다기보다는 보람…. 내가 준비한 예배를 사람들이 드리는 걸 볼 때 은혜롭게 보이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한 보람이 있었어요.

정경일 / 시찬 아버님은 교회 음향을 다 맡아 하신 거예요?

시찬 아버지 / 음향만이 아니었어요. 저는 어떤 마인드로 살았냐면, "나는 평신도 사역자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어요. 지금은 CCM이라고 하는데, 20대 초엔 친구들과 선교단 갈 때 음반을 낼 정도로, 별짓을 다 했어요. 단기 선교도 하고, 다 해 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

이렇게 4·16 그리스도인 가족은 '보수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교회 생활에 열심이었고 예배에 헌신적이었다.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졌다.(계속)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4년 3월 11일, 월 1:2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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