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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누구 앞에서든 당당했던 손기정, 그가 은퇴를 결심한 이유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 영화 <1947 보스톤> 주인공... "왜 기미가요가 조선 국가입니까"


▲ 체육인 손기정의 묘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10호) ⓒ 임재근

(서울=오마이뉴스) 김선재 기자 = "Me Koren! not Japanese."

1936년 베를린에서 24살 조선인 청년이 외신 기자들을 향해 호소했습니다. 자신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는 제11회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었습니다. 일제의 핍박과 감시 억압 속에서도 조선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았던 그는 지금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10호에 잠들어 있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1912년 8월 29일 신의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손인석, 어머니 김복녀 사이에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중 막내아들이었습니다. 집안이 가난했던 탓에 낮에는 학교에 다니고, 저녁에는 장사를 해야 했습니다. 노점상을 했었는데요. 길거리에서 참외, 각설탕, 군밤, 옥수수를 팔았습니다. 한때 우동집에서 배달일도 했었습니다.

어린 손기정에게 놀이와 위로가 되어 주었던 활동은 다름 아닌 달리기였습니다. 집에서 약죽보통학교까지 2km 자갈길을 항상 뛰어다녔습니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달리고, 물을 마시면서 뛰었습니다. 손기정은 사실 스케이트 선수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스케이트를 살 돈이 없었습니다.

어머니 김복녀 여사는 아들이 운동보다는 공부로 성공하기를 바랐습니다. 어린 손기정에게 일부러 여자 어린이가 신는 작은 고무신을 신기기도 했는데요. 손기정은 고무신이 벗겨지지 않도록 새끼줄로 둘둘 묶어 달렸습니다. 새끼줄에 발목이 쓸려 피가 흘러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어린 손기정에게 육상화를 선물합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손기정은 불과 15살 나이에 신의주 대표 선수가 됐습니다. 당시 성인 선수와 함께 경쟁했는데요. 어릴 때부터 수천 번도 더 뛰었던 압록강 다리를 달려 여유롭게 1위를 차지합니다.

평안북도 대표, 거침없이 달린 손기정


▲ (왼쪽) 손기정 선수가 달린 압록강 다리 (오른쪽) 손기정 선수가 열차를 타고 건너간 압록강 철교 ⓒ 임재근

이제 손기정은 평안북도 대표로 성장합니다. 경주대회에 나가 1등 상품으로 쌀가마니를 들고 오기도 하는데요. 1931년 출전한 전국체육대회 5,000m 경기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에 세간의 주목을 받습니다. 손기정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1932년 3월 펼쳐진 제2회 동아마라톤대회 하프 마라톤에서 2위에 오르게 되는데요. 서울의 복잡한 지리 때문에 삼각지 로터리에서 길을 잃었던 탓에 아깝게 1위 자리를 놓칩니다. 하지만 이 대회 성적으로 그는 당시 국내 육상 명문이었던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합니다.

훈련은 혹독했습니다. 원래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를 챔피언으로 만든 요인은 피나는 노력이었습니다. 우선 모래주머니를 도입했습니다. 독립군이 모래주머니를 다리에 차고 군사 훈련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적용했습니다. 보폭을 재기 위해 운동화 밑바닥에 흰색 페인트를 칠했습니다. 보폭이 넓어지고 좁아지는 구간을 연구했습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신발 밑창을 깎아내고 유니폼을 잘라내기도 했습니다.

노력은 손기정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베를린올림픽 1차 예선이었던 1935년 전일본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26분 14초로 1위를 차지합니다. 2차 예선을 겸한 11월 제8회 일본 메이지신궁 마라톤대회에서도 2시간 26분 41초로 우승합니다. 그동안 마의 30분이라고 불리던 2시간 30분 벽을 최초로 깬 이가 바로 손기정이었습니다. 다만 당시 비서구권에서 열린 대회는 공식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기록은 비공인 세계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손기정이 일본 메이지신궁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할 때 일화가 있습니다. 비록 비공인이기는 해도 세계 신기록을 세운 손기정 선수는 우승자답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손기정 선수가 시상대에 오를 때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기 때문입니다. 손기정 선수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뚝뚝 흘릴 뿐이었습니다. 당시 신문은 '표창대 위에 올려진 손군은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고개를 숙이고 스탠드의 관중이 부르는 국가에 묻혀 조용히 눈물짓고 있었다'고 보도했지만 그 눈물은 서러움의 눈물이었습니다.

"어째서 '기미가요'가 조선의 국가입니까?"


▲ 1935년 메이지신궁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 ⓒ 손기정기념관

국가 연주가 끝나자 손기정은 인솔 교사에게 달려가 울부짖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왜 우리나라는 국가가 없습니까? 어째서 '기미가요'가 조선의 국가입니까?" 일본 기자들이 인솔 교사에게 왜 손기정 선수가 울고 있으냐 물었을 때, 선생님은 '베를린올림픽에 나가게 되어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둘러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1936년 5월 베를린올림픽으로 가기 위한 최종전이 펼쳐집니다. 당시 최종전에 오른 조선인 선수는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였습니다. 마라톤은 나라마다 최대 3명이 출전할 수 있었습니다.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3명 중에 조선인 2명이 반드시 들어가기 위해 작전을 짭니다. 일본 선수들의 체력을 빼기 위해 손기정 선수가 앞으로 치고 나갑니다. 일본 선수들은 페이스를 잃었고, 남승룡 선수가 1위 손기정 선수가 2위로 들어와 최종 올림픽 후보에 선발됩니다.

올림픽 개막을 두 달 앞두고 마라톤 선수들은 베를린으로 떠납니다. 마라톤 코스를 미리 답사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선수단보다 미리 출발하는데요. 1936년 6월 3일 아침 조선체육회장이었던 윤치호와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장 교감 선생님이 모여 손기정, 남승룡 선수 격려회를 엽니다. 손기정은 출전하는 포부를 이렇게 밝힙니다.

"반드시 훌륭히 싸우고 돌아오겠습니다. 저희들은 오늘 베풀어주신 여러분의 따듯한 격려에 보답하고, 해외에 살고 있는 많은 동포들의 뜨거운 응원과 기대에 부응하도록 늘 자중의 정신을 잊지 않고 힘껏 싸우겠습니다."

6월 4일 오후 3시 30분 서울역으로 인파가 몰려듭니다. 양정고등보통학교 전교생과 교직원들, 시민들이 몰려와 우렁찬 박수 소리를 울립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선전을 기원했습니다. 손기정 일행을 태운 기차는 국경을 넘어 단둥, 봉천, 하얼빈을 거쳐 6월 8일에는 소련과 인접한 만주리에 도착합니다. 이어 일행은 시베리아횡단철도로 갈아타는데요.

당시 조선 사람들은 해외로 가기 위해 철도와 배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배로 이동할 때보다 기차로 이동할 때 시간과 비용이 1/3가량이었기 때문에 기차가 인기가 높았습니다. 만주횡단철도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결된 서울역은 당시 국제열차가 다니는 국제역이었습니다.

손기정이 서울을 떠나 모스크바에 도착하는데 열흘이 걸렸습니다. 기차가 역에 멈출 때마다 손기정 선수는 기차에서 내려 철길을 따라 뛰었는데요. 열차에 있는 동안 몸이 굳을 수 있어서 몸을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기정은 소련 철도를 염탐하려는 스파이로 오인당하는 헤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1936년 손기정이 사용한 시베리아횡단철도 티켓 ⓒ 손기정기념관

14일 밤 모스크바에 도착한 손기정 일행은 15일 밤 다시 모스크바를 출발합니다. 폴란드 바르샤바를 거쳐 17일 아침 베를린 프리드리히 역에 도착합니다. 그들을 마중 나온 독일 주재 일본대사관 직원들은 '왜 마라톤에는 조선인이 두 명이나 끼어있느냐'며 핀잔을 줍니다. 손기정 남승룡 두 사람은 입술을 깨물며 실력으로 증명하리라 다짐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일본은 손기정 남승룡 둘 중 한 명을 떨어트릴 흉계를 꾸몄습니다. 마라톤 대표는 3명이었음에도 일본은 선수 한 명을 더 베를린으로 보냈는데요. 일본은 어떻게 해서든 조선인 선수를 떨어트리기 위해 전대미문 현지 선발전을 한 차례 더 치릅니다. 여차하면 조선인 선수 둘 중 한 명을 일본인으로 교체하기 위한 속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무리스러운 계획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일본인 스즈끼 선수가 중도 포기하며 탈락했습니다. 또한 시오아꾸 선수는 정해진 코스를 벗어나 지름길로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1등 손기정 2등 남승룡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손기정과 남승룡은 오로지 실력으로 일본의 계책을 무산시킵니다. 일본에서는 '조선인들이 일본제국의 대표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여론이 일었지만 실력 앞에 더 이상 뒷말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평소 남승룡 선수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알려졌지만, 손기정은 성격이 활달하고 시원시원했다고 합니다. 올림픽 선수촌에서 생활하며 다른 선수나 사람들에게 사인 요청을 많이 받았는데요. 사인을 할 때마다 그는 한자로 孫基楨이 아니라 '손긔졍' 한글로 적었습니다. 일본인 임원이 왜 한글로 사인하는지 따졌을 때 "한자로 손기정(孫基楨)이라고 쓰면 획이 많아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 글인 한글로 손기정이라고 쓰면 간단하기 때문이다"라고 받아쳤습니다.


▲ 한글로 서명한 손기정 ⓒ 연합뉴스

그뿐만 아니라 이름 옆에는 항상 'JAPAN'이 아니라 'KOREA'를 덧붙여 적었습니다. 후지산을 그려달라는 요청에는 금강산을 그려주곤 했고, 사인 옆에는 한반도 모양을 잊지 않고 그려 넣었습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는 일본이 지급한 일장기가 그려진 운동복을 마라톤 경기 직전까지 단 한 차례도 입지 않았는데요. 역시 일본인들이 '왜 일장기 달린 옷을 입지 않느냐'고 물어볼 때 "아껴서 가보로 놓아 두려고 그런다"고 답합니다.

손기정의 애국적인 행동에 주변 사람들은 올림픽에 나가지 못할 상황을 걱정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손기정은 "나를 올림픽에 안 내보내면 자기들만 손해지. 나를 출전 안 시키면 올림픽 우승은 없다"고 답했습니다. 세계 신기록 보유자 24살 조선인 청년 손기정은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 손기정의 결승선 통과 순간 ⓒ 손기정기념관

하지만 그토록 당당했던 손기정이 하염없이 땅만 쳐다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라톤 시상식장이었습니다. 1936년 8월 9일 오후 3시 전 세계에서 모인 56명 마라톤 대표 선수들이 42.195km 레이스를 출발했습니다. 관중들의 기립박수와 환호 속에 1위로 들어오는 선수는 다름아닌 손기정이었습니다. 2시간 29분 19초 2. 국제공식 대회에서 마의 30분 벽을 최초로 깨트린 기록이었습니다. 남승룡 선수는 경기 전 먹은 주먹밥이 탈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막판 무려 30여 명을 앞지르며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대기록을 세운 두 조선인 청년은 하지만 시상대에 올라 고개를 푹 숙입니다. 마라톤 챔피언이라고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을 고개 숙이게 한 이유는 유니폼 가슴팍에 박힌 일장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장기를 가리고 싶었던 남승룡 선수는 바지를 한껏 추켜올렸지만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훗날 남승룡 선수는 손기정 선수가 부러웠다고 회고하는데요. 금메달을 따서가 아니라 금메달 수상자에게 주어진 참나무 묘목 때문이었습니다. 손기정 선수는 참나무 묘목을 가슴팍 가까이 가져다 대어 일장기를 조금이나마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국가가 울려 퍼지고 일장기가 올라가며, 손기정 대신에 일본식 이름인 손 기테이(Son Kitei, そん きてい)로 호명됐습니다. 손기정은 나라 잃은 설움에 눈물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손기정은 다시는 일본을 위해 뛰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선수로서 은퇴하기로 결심합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10월 28일, 토 11:40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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