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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교회도 이 책으로 평화교육 시작하자
[탐독의 시간] 이용석 <평화는 처음이라>(빨간소금)

(서울=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

"평화는 무력이 있어야 유지된다. 나라는 칼과 창이 있어야 지켜지지, 무장해제하고 지켜지지 않는다."
"군대가 없으면 우리는 멸망합니다. 우리는 군대를 폐할 수 없습니다. 힘이 있어야 평화가 유지됩니다."
"칼과 창이 없는 정의와 평화는 최소한 동북아에서는 억지이자 궤변이다."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 소식을 전할 때마다 살벌한 댓글들이 달린다. '군대로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그의 주장에 반대하는 내용 일색이다. 글을 한번 읽어 보기라도 했는지 의심스러운 단순한 비아냥, 빈정거림은 논외로 치더라도, 위에 인용한 것과 같이 사회에서 '상식'으로 여겨지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비단 송강호 박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개신교 신앙을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택한 사람들이나, 아나뱁티스트 전통에 양심적 병역거부가 있다는 사실을 써도 비슷한 반응이다. 병역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라고 해도, 당장 군대를 없애자는 말도 아니고 모두 병역거부하자는 말도 아닌데, 달리 생각해 볼 여지조차 주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당황스럽다. 기사를 쓴 나조차도 '내가 지금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교회 갱신에 동의하는 '개혁적인' 개신교인 중에서도 평화에 대해서는 일반 대중과 별다를 바 없이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게 상식으로 통용되는 세상이니까. 그렇다면 성경에 쓰여 있는 하나님나라 -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b) 같은 모습은 현실 세계에서 구현할 수 없는 이상에 불과한 걸까.

좀 더 들어가 보면, 우리가 과연 교회에서 실제적인 평화를 배운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나도 교회를 30년 다녔는데 평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뭘 배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주 '평화의 하나님'이라 고백하고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는 산상수훈 말씀은 달달 외우지만, 정작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평화란 무엇인지, 어떤 평화를 추구해야 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배운 적이 없다.

가려운 곳 긁어 주는 질문 네 가지


<평화는 처음이라> / 이용석 지음 / 빨간소금 펴냄 / 198쪽 / 1만 2000원

평화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작은 책이 나와서 소개한다. 올해 4월 출간된 <평화는 처음이라>(빨간소금)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평화 입문서'라고 할 만한 책이다. 작고 얇은 데다가 저자가 독자에게 말을 걸 듯이 써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세상 이용석 활동가가 썼다. 기독교 서적이 아니라 평화에 대한 신학적인 내용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고민을 던진다.

마치 내 고민을 알고 있다는 듯 1부 '전쟁과 평화에 대한 네 가지 질문'부터 가려운 곳을 긁어 준다. 네 가지 질문은 이렇다. △전쟁과 폭력은 인간의 본성 아닌가요? △강한 군대가 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지 않나요? △모두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요? △절대악을 몰아내기 위해 불가피한 전쟁도 있지 않나요? 두 번째 질문은 이 글 맨 앞에서 인용한 날선 댓글들과 똑같은 내용이다.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가르치는 태도로 책을 쓰지 않았다. 질문 밑바탕에 깔린 의식을 차근차근 짚고, '상식'으로 통용되는 위와 같은 질문들을 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필요할 때는 데이터를 사용해 우리의 믿음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인용하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정해진 답이 있다는 게 아니다. 평화에 대해 우리보다 더 많이 고민해 온 한 평화운동가의 생각은 이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이 아닌 다른 것들이 우리의 삶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북한의 핵무기보다 코로나19가 더 무섭습니다. 북한의 미사일보다 포항 지진 같은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나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 재난이 시민들의 안전과 평화를 더 위협합니다.

그러니 국가가 요구받는 역할도 달라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조선의 임금은 백성들이 왜구나 오랑캐의 침략과 약탈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강한 군사력으로 국경선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의무였다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는 자연재해나 사회적 재난에 마주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피해를 최소화하며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안보의 개념이 달라지고, 안보에서 중요한 내용이 바뀌어 가고 있는 거죠." (54~55쪽)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지금까지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일을 군사적 수단에 크게 의존해 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방식은 명백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냥 실패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습니다. 전쟁 준비 때문에 쫓겨나고, 전쟁으로 죽고 다치고, 전쟁이 끝난 뒤에 찾아온 지독한 가난으로 죽음에 내몰렸습니다. 너도 나도 강력한 군대를 가지려고 노력한 결과,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 땅이 전쟁터가 되어 난민으로 내몰리고, 부자 나라의 사람들은 테러를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중략)

강한 군대로 평화를 지킨다는 군사 안보는 전쟁을 막지도 못했고, 피해를 줄이지도 못했고, 때로는 전쟁과 테러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명백한 실패를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실패를 인정한 뒤 다른 시도, 다른 노력으로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56~57쪽)

망치로 전투기를 부순 사람이 있다고?


한국은 20세기 전쟁의 피해자였지만, 21세기에는 가해자 쪽에 속한다.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갈무리

2부는 '전쟁을 가능하게 하는 세 기둥'이다. 여기에서는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핀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1부에서 다룬 질문 네 가지를 상식으로 인식하는 세상에서 누가 이익을 얻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또 한국은 더 이상 전쟁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 입장에 서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한국은 매해 엄청난 국방비를 쓰고 있으며, 한국 방산 업체가 만든 무기가 중동 여러 나라 내전에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보통 사람들의 힘'을 강조한다. 전쟁을 부추기고 일으키는 사람은 소수 권력자이지만,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평범한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심지어 독재국가라도 시민들이 전쟁을 반대한다면 함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사실을 역사적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자, 우리의 권리다.

"이처럼 시민들이 가진 힘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세계에 균열을 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아예 작은 균열도 못 내고 사그라지거나 겨우 작은 균열 하나를 만들어 내지만, 그 균열이 쌓이고 쌓여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전쟁을 멈추게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이 좀 더 명확해지지 않았나요?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고, 전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전쟁을 중단하자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젊은 남성들은 징집을 거부하고, 선생님들은 전쟁을 찬양하는 교육 커리큘럼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전쟁 물자를 생산하고 운반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고요. 우리는 그러한 일을 '평화운동'이라고 부릅니다." (150~151쪽)

평화운동은 때로는 현행법을 넘어선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1996년 영국에서는 평화운동가 앤지 젤터(Angie Zelter, 1951~)를 비롯한 여성 세 명이 군수산업체 공장에 몰래 들어가 망치로 전투기 조종석을 때려 부순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이들은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공장에 무단 침입해 망치로 기물(전투기)을 파손한 것은 분명 범죄지만, 더 큰 범죄인 전쟁범죄를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게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가톨릭 신부 대니얼 베리건(Daniel Berrigan, 1921~2016)과 필립 베리건(Philip Berrigan, 1923~2002) 형제는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병무청 사무실에 쳐들어가 징집 서류를 들고나와 불태워 버렸다. 1980년에는 군수산업체 공장에 잠입해 핵탄두 부품을 망치로 부순 적도 있다. 과격한 행동이지만, 전쟁을 막기 위한 평화운동의 시각으로 보면 이들의 행동을 범죄로만 재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이 환상일까, 무엇이 더 현실적일까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중략)

인류의 역사는 이 격언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수많은 정치인과 군인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강한 군사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물론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묵자나 인도의 간디 같은 이들은 강한 군사력으로 유지되는 평화가 아닌 다른 세계를 꿈꿨지만, 그런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점점 강해지는 무기는 이제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전쟁을 하면 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전쟁으로 이익을 챙기는 이들만 배가 불러 옵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래서 그렇게 했더니, 전쟁만 남고 평화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인류의 오랜 격언은 이제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중단하라!'" (142쪽)

'군사력으로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말은 급진 평화주의자들의 몽상이 아니다. 오히려 여전히 힘이 있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환상'에 젖어 있는 것일 수 있다. 국방이 아닌 다른 차원의 안보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우리가 더 평화롭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 아닐까. 이런 시각으로 보면 "칼을 쳐서 보습으로 창을 쳐서 낫으로" 만드는 일도 이상만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역할이 '평화의 사도'라면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평화교육은 제로베이스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평화는 처음이라>로 시작해 보자. 목회자들이나 교인들이 삼삼오오 독서 모임을 만들어도 좋고, 교회 차원에서 교재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이 입문서를 시작으로 교회가 말하는 평화가 구체적인 얼굴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8월 26일, 토 9:1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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