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용 카드 필요없음" 내건 상점도 등장

(올랜도=코리아위클리) 최정희 기자 = 플로리다에서 의료용 마리화나(medical marijuana)가 합법화 된 후, 주정부 라이센스를 보유한 의료용 마리화나 취급소가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해 '대마'로 불리는 헴프와 헴프의 주요 성분인 카나비디올(CBD) 오일을 다루는 가게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더 나아가 건물 외관에 마리화나잎을 그려넣고, '의료용 카드 필요 없음(No MED Card Needed)'이라는 문구도 과감히 내건 업소도 등장한 상태이다. 행인들은 이같은 업소가 과연 합법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곳인지 의구심을 품는다.

'마리화나'와 '헴프' 모두 대마초과에 속한다. 이 대마초과 식물들에는 다양한 천연 화합물(카나비노이드)이 함유되어 있으나, 법에 저촉되지 않는 일부 화합물만 추출하여 제조하기에 일단 합법성을 띠고 있다.

대마초과 식물에서 발견되는 화합물의 종류는 100개가 넘지만, 이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테트라하이드로카나비놀(THC)과 카나비디올(CBD)이다. THC는 항정신성 작용(환각)을 내지만, CBD는 환각 작용을 직접적으로 유발하지 않는다. 여기서 마리화나와 헴프의 큰 차이점이 나온다. 마리화나의 꽃과 잎에는 환각작용을 하는 THC가 약 20% 함유되어 있는 반면, 헴프의 꽃과 잎에는 THC가 0.3%미만이 들어 있다. 대신 헴프에는 CBD가 최대 15% 들어 있다.

결국 흔히 '마약'이라고 불리는 대마초는 환각을 일으키는 THC가 많이 포함된 마리화나를 일컫는다. 반면 헴프에 많이 들어있는 CBD는 환각 작용 없이 항염증, 항우울, 수면장애, 통증완화 등에 효과가 있어 여러 상품에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헴프를 이용해 '마리화나 상품'을 만들 수 있으며, 이는 엄연히 합법적이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모든 대마초 식물과 제품들을 통제하고 대마초 재배를 불법으로 규정했으나 2018년 제정된 농장법을 통해 헴프의 재배와 연구를 허용했다. 헴프는 섬유, 건축자재로 쓰일 뿐만 아니라 씨앗과 오일 등을 이용한 식품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피부 진정 및 항염 효과에 뛰어나 화장품에도 활용되고 있다.

마약성 헴프 상품 온상 된 플로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헴프를 '마리화나 상품'으로 만들고 팔 수 있는 것일까.

최근 <탬파베이타임스>는 세인트피터스버그 소재 '세인피 420'이라는 업소 탐방 기사를 통해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켰다.

마리화나잎 그림으로 건물 내외부를 장식한 상점에서는 '버드텐더(꽃순과 바텐터의 합성어)'라 부르는 종업원이 손님을 맞이하며 "어느 정도의 기분으로 맞춰드릴까요?"라고 인사한다. 베이프 카트리지(흡연 도구), 헴프 식품, 그리고 '꽃' 등을 둘러본 고객들은 상점이 '마리화나'를 다루고 있는 것에 놀란다. 이중 꽃은 작은 대마 덩어리로, 고객은 이를 갈아서 조인트, 그릇 혹은 봉으로 흡연을 할 수 있다. 물론 이곳에서 파는 제품들은 모두 헴프에서 나왔거나 법이 허락한 또다른 종류의 카나비노이드를 이용한 것이다.

연방정부의 농장법은 두 가지 조건하에서 대체 카나비노이드인 델타-9 THC를 상품에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두 조건이란 델타-9 THC를 헴프에서 추출해야 한다는 것과 중량 기준 0.3% 미만을 차지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은 식용 마리화나와 비슷한 젤리를 제조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즉 젤리를 크게 만들 경우 연방 중량 기준을 충족하면서도 델타-9 THC 성분을 더 많이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플로리다 법은 대체 카나비노이드는 제한하지 않는다.

<휘트니 이코노믹스>(Whitney Economics)의 올해 보고서에 따르면 플로리다는 주유소에서 담배와 베이프 가게, 식료품점과 조제실에 이르기까지 9500개 이상의 상점에 헴프 상품 취급 허가증을 발급했다. 플로리다에는 351개의 헴프 유통업체가 있으며, 이들은 델타-8과 같은 대체 카나비노이드가 함유된 제품으로 각각 연평균 약 500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또 대마초 연구 활성화로 헴프 추출물 종류가 매우 다양해진 것도 한 몫한다. 이들 성분은 서로 다른 특성과 효과가 있으며, 대부분은 정신 활동에 영향을 준다. 당연히 제품 생산업자들은 이들 성분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믹스 & 매치'를 해내기 위해 법률팀까지 구성하기도 한다.

의료용 마리화나 카드 소지자 대부분은 백인

한편, 주 보건부의 승인을 받은 지역 마리화나 재배농장과 회사를 포함해 라이센스를 소지한 의료용 마리화나 취급소들은 헴프의 활성화에 회의를 표한다. 의료용 마리화나 제품은 엄격한 수준의 규제를 받는데 비해, 헴프 제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주 보건부는 의료용 마리화나 판매자에게 중개인이나 계약자 없이 제품을 재배, 가공, 마케팅, 판매해야 한다는 준수 사항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를 충족시킬 만한 회사가 많지 않아 판매자가 적을 수 밖에 없다. 또 의료용 제품들은 THC 성분과 다른 불순물에 대한 엄격한 테스트를 받는다.

헴프 상품의 경우 플로리다 법은 성분분석 라벨의 부착을 요구한다. 라벨은 CBD, THC 및 기타 카나비노이드의 비율, 그리고 중금속, 살충제 및 여러 독소에 대한 제3자 테스트를 통과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헴프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의료용 마리화나 규제도 은연중 완화되고 있다. 이제 의사들은 의료 카드를 발급할 자격을 갖추기 위해 2시간의 교육만 받으면 된다. 의사들은 플로리다 법에 명시된 9가지 질환이나 상태에 속하지 않는 불안과 우울증 환자에게도 의료 카드를 발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 카드 발급에는 의사 진료비를 포함해 수백 달러의 비용이 들며, 카드 소지자 대부분은 백인이다. 플로리다 걸프 코스트 대학 연구원들이 발표한 2021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플로리다 의료용 마리화나 카드 소지자의 83%가 백인인데 반해 흑인은 2% 미만, 히스패닉은 8% 미만이다. 헴프 상품 취급업소는 저소득층 환자들이 많은 지역에 위치한다.

현재 플로리다에서 기호용 마리화나 합법화를 위한 노력은 주 대법원의 검토 단계에서 두 번이나 좌절된 바 있다. 올해는 플로리다에서 의료용 마리화나 시장을 가장 많이 점유하고 있는 트루리브(Trulive) 회사의 자금 지원에 힘입어 기호용 마리화나 허용 발의안이 다시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주 검찰총장이 이 발의안을 거부해달라는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해 아예 주민 투표지에 등재되기까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