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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그리스도인의 가난
[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 = 며칠 전 만났던 목사님이 헤어지며 내게 한 말은 내가 가난해보이지 않고 귀공자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젊어 보인다는 말도 했다.

그분은 내가 ‘거지 목사’라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고 귀공자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잘 생기지도 않았다. 그러니 귀공자라는 단어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분이 한 말의 의미는 내가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사실 이 말은 처음 듣는 말이 아니다. 우리 가족이 경매로 살던 집에서 쫓겨나 이사를 갔을 때 친구 목사님이 아내와 함께 찾아왔다. 식사를 하고 가면서 사십만 원을 내밀었다. 모르겠다. 그게 큰돈인지 아닌지. 하지만 통상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건네는 돈으로는 상당히 많은 액수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 목사님이 한 말은 ‘하나도 가난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분명 땡전 한 푼 없이 쫓겨난 것이 사실이다. 땅바닥에 나앉지는 않았지만 보증금이 없어 월세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은 분명하다. 2004년 당시 월세 50만 원은 분명 적은 돈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지를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려였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월세를 못 내거나 밀린 적이 없었다. 몇 년 후 집세가 전반적으로 올라 우리가 내고 있던 월세로는 그곳에 살 수 없어 집값이 더 싼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어쨌든 그곳에서도 월세가 밀리거나 못 내게 되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를 도와줄 확률이 가장 높은 친형제들은 우리에게 도움을 준 적이 거의 없다. 심지어 연락조차 없이 지냈다. 가난해졌지만 나는 형제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내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모르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분들도 많았다. 물론 그분들에게도 도움을 청한 적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도움을 까마귀로 이름 지었다. 하지만 까마귀조차도 바란 적은 없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거의 이십 년을 살아왔다. 그런 우리의 삶은 영적이라고 할 수도 있고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다. 나는 물론 그것을 영적인 삶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것을 영적인 삶으로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의탁한다는 것의 의미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사람은 자기의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심지어 상상의 영역에서도 그러하다. 인간은 자신이 본 것 이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나는 그것을 어느 심리학 책에서 보았고 정신과 의사의 글에서도 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에서 가난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가난 이해를 가지고 있다. 또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가난에 대해 설명할 수 없고 이해시킬 수가 없다.

내가 만났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가난한 적이 없었던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또 자신을 부자라고 생각하는 이들 역시 (거의) 없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부자도 아니고 부자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내 경험상 자신이 부자였다고 말하는 이는 뻥쟁이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난한 적이 있었고 지금도 부자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다.

나는 가난 역시 다른 건강이나 평화와 같은 단어들과 마찬가지로 협의의 정의와 광의의 정의를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인 개념이 들어가면 그것은 광의의 정의가 될 수밖에 없다. 시대 발전에 따른 가난 이해 역시 광의의 정의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협의의 가난은 절대적인 빈곤으로 아프리카의 가장 가난한 지역 사람들이나 난민들과 같은 사람들의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가난은 영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가난에 관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자끄 엘륄의 가난 이해를 내 가난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에 따르면 가난이란 “하나님 이외에는 그 어떤 희망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성서가 말하는 가난이란 단순히 물질적인 가난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적 사회적인 단절을 포함한다. 그러나 복잡하지는 않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남은 고립무원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노숙자 선생님들 역시 가난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분들에게는 구걸이나 뒤질 음식물 쓰레기가 남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성서가 말하는 가난이란 근본적으로 영적인 가난이 될 수밖에 없다.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청하던 엘리야의 상황이 바로 그런 가난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가 말하는 가난에 이르려면 다른 모든 도움을 스스로 거절해야 한다. 말 그대로 죽으면 죽으리라고 생각할 수 없다면 그런 가난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영적 가난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영적이라는 단어는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과 관련된 것으로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나는 그렇게 초월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을 제외하고 인간의 편에서 가능한 상태의 가난을 말하고 싶고 그것을 그리스도인의 가난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그리스도인의 가난은 단순이 물질적인 가난이나 사회적 통념으로서의 가난과는 다른 가난이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가난하지 않다. 그는 수시로 극한 가난의 상황 속에 처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결핍의 상황은 그에게 가난이 아니었다. 그는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 그는 비천해도 풍족해도, 배불러도 굶주려도, 풍족해도 궁핍해도 만족했다. 그런 바울이 자신을 가난하다고 생각했을까 부자라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바울처럼 자신의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자라는 생각 역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자신보다 못한 가난한 사람이 있는 경우 즉시로 자신의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부자인 상태에 머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까마귀를 보내주시고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자신이 까마귀가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더 많이 가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나라이면서 그리스도인의 가난은 더 많이 가지려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가 가능할 것이다.

자신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있다. 견딜 수 없는 결핍의 상황에 처한 경우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쉽게 자신이 가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 역시 결핍을 감사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조심스럽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부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스스로 욕망의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며 가난하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샬롬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무엇이라도 도모하려는 영적인 상태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가난 인식은 언제나 가변적이어야 한다. 만난 사람이 자신보다 더 가난하다면 자신은 부자인 것이고 자신보다 부자인 사람을 만나도 무언가를 얻기를 기대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태가 된 그리스도인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더 많이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나는 귀공자 같다는 말을 듣고 행복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귀공자(여)가 아니면 누가 귀공자(여)일 수 있겠는가. 그렇다. 나는 가난하지 않다. 그리고 나는 부자로 살 수 없다. 나는 감히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가난이라고 말하고 싶다.
 
 

올려짐: 2022년 7월 04일, 월 5:5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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