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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그리스도인과 직업
[호산나 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오래 전 일이다. 여행금지 지역이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목사 한 사람이 사살을 당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억류되어 있다가 돈을 내고 돌아올 수 있었던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억류되었던 사람들 가운데 직업이 투자유치회사 사원이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투자유치회사가 하는 주된 일은 상장이 되기 전에 상장이 유력한 회사의 주식을 사두었다가 상장이 되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처를 소개하는 회사이다. 그것을 정확히 투자유치회사라고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얼마 전 조국 사건을 통해 널리 회자되었던 사모펀드와 같은 종류의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죽음을 무릅쓰고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위험한 지역으로 선교여행을 떠날 정도로 신앙이 좋은 사람이 속칭 ‘엔젤’이라고 불리던 투자자들을 모으고 관리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나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도박과 같다. 정보와 판단을 요구하지만 그것은 결국 돈 놓고 돈 먹는 일을 하는 것이며 돈이 모든 것인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사실여부에 관계없이)사모펀드를 통해 조국의 부인이 질타를 받던 일을 생각해보라. 그것이 정당하고 도덕적인 일이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언장을 써놓고 선교여행을 갈 정도로 신앙심이 투철한 그리스도인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누군가 큰 이익을 얻는다는 것은 결국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많은 불의 속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런 일은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

내가 하는 말이 전근대적이거나 세상물정 모르는 목사의 철없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직업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장 먼저 성서적 가치관으로 판단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가장 먼저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이루어졌던 일이기도 하다. 초기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군인이거나 법관과 같은 직업을 버려야 했다. 그것은 폭력을 매개로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일을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폭력이나 사람의 생명과 관계없는 직업은 상관이 없었는가.

아니다. 성서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세리와 창기였다. 물론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유대교에서 이루어졌던 일이다. 세리는 유대인들이 가장 경멸하던 직업이었다. 사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동족들의 고혈을 짜내야 했다. 당연히 그 일을 하려면 폭력(공권력일지라도)과 강요가 필수적이었다. 그것은 약자들을 수탈하는 일이 었으며 결과적으로 그 일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 아니라 돈을 숭배하는 일이었다.

물론 우리는 세리의 기도를 통해 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동족을 수탈하고 로마에 충성하는 불의한 일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다. 그러한 그의 기도를 주님이 보셨고 주님은 자만심에 가득한 바리새파 사람보다 그 사람이 더 의롭다는 평가를 내리셨다. 그렇다면 그 세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세리의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다. 그는 세리의 직을 버렸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질문하지 말라. 그것이 바로 초기 그리스도교에서 이루어졌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앙은 각성을 기반으로 한다. 세리의 각성, 창기의 각성은 그들을 자신들이 살아온 직업으로부터 떠나도록 만든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대해 각성함으로써 자신들의 직업을 버리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을 택했다.

오늘날 역시 그것은 다르지 않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모두가 목사나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목적과 삶을 살게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인 됨을 모르거나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신앙의 자유 이후 평신도라는 계층이 그리스도교 안에 생겨났다. 그들은 성서의 가치관에 따라 살아야 하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성직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살인까지도 용인되었다(콘스탄티누스로 인해). 군인으로서 세례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후 80년이 지난 후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수도사라는 특별한 계층이 생긴 후에는 직업에 대한 거의 모든 제한이 그리스도교 안에서 사라졌다. 평신도는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도 좋다는 일종의 면죄부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을 벌어 교회에 바침으로써 교회를 유지하는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았다.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라는 새로운 그리스도교의 소명까지 부여받았다.

이것은 단순한 그리스도교의 변질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을 부인하는 그리스도교 아닌 그리스도교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직업에 대해 자유를 선언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의 직업은 철저히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구현해야 함은 물론 하나님의 정의에 반하는 일이라면 가차 없이 버려야 한다.

오래 전 나는 빵집을 하게 된 목사님 한 분이 올린 기도의 제목을 보았다. 그 중 하나가 만일 자신이 빵집을 하면서 종업원들을 착취하거나 못살게 구는 일이 있다면 빵집을 망하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나는 그 기도 제목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모름지기 그래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세상 한복판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는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에 생명을 걸고 선교를 하러 가는 사람도 돈이 모든 것인 회사에서 근무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곳이 되었다. 물론 그리스도교 역사의 변질로 인한 것이라고 변명할 수 있지만 그러나 이성이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그 잘못을 볼 수 있고 각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빵집을 열었던 목사님과 마찬가지로 그 일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 될 수 있도록 목적과 방법을 바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인간이란 합리화에 있어 거의 전능함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예민하게 반응할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기도가 그 일에 있어 절대적이라는 것을 두 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노파심에 한 마디를 덧붙이면, 돈 많이 벌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깨어 있기 위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말이다.

두아디라 성에 루디아라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주 장사가 있었다. 여기서 ‘자주’란 자주색 물을 들인 천을 의미한다. 그 천은 주로 그 성의 우상이었던 ‘아데마’라는 신상을 제조하는 데 사용되었다. 우상제조업자이거나 그 일에 재료를 제공하는 일을 하던 자신의 집을 기도처로 제공할 정도로 열심이었던 루디아는 자신의 직업을 계속 이어갔을까.

성서는 그 일에 대해 함구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직업을 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하는 일로 돈을 벌어 어려운 그리스도인들을 지원하는 일에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이 하는 일로 하나님께 대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더 겸손하게 경성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벌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아만은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결단했지만 자신의 직책상 어쩔 수 없이 림몬 신당에 들어가 왕을 수발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것을 엘리사가 용인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은 과도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직업은 천직이 되어야 한다.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지 않는 직업일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직업을 잘 선택해야 한다. 아니 잘 판단해야 한다. 과도기적으로 모순되는 일이라도 그것을 인지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 일도 버려야 한다.

자기 직업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그래서 오래 전 나는 모두가 흠모하던 미래가 약속된 대기업의 좋좋은 자리를 미련 없이 버렸다.)
 
 

올려짐: 2022년 4월 25일, 월 9:2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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