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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무속의 힘'을 믿나, '국민의 힘'을 믿나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87년엔 "집마다 불상두면 당선" 점괘도... 정치-무속의 이상한 관계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8일 서울 영등포구 사회복지사협회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사회복지사 처우 개선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무속 의존 논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천공스승과 손바닥 왕(王) 자에 이어, 이번에는 '건진법사'가 논란이다. 이로 인해 선거대책본부 산하 네트워크본부를 해산한다는 긴급기자회견이 18일 오전 열리기까지 했다(관련 기사: 국힘 "건진법사 관여 안했다"면서 네트워크본부 해산 http://omn.kr/1wxs0 ).

선대본에서 활동하며 윤석열의 일정과 메시지는 물론 인사문제에까지 개입한다는 의혹을 받은 건진법사는 마고할머니를 모시는 무속인으로 알려졌다. 올해 61세인 건진법사는 일광조계종에 속해 있는 것으로, 또 이 종파는 과거 소가죽을 벗기는 굿 행사를 벌여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소를 산 채로 신의 제단에 올리는 것은 고대 사회에 잘 어울린다. 살아 있는 소를 바친 뒤에 희생시키는 고대의 제례 풍경은 이미 죽여 조리된 소고기를 제단에 올리는 후대의 풍경과 대비된다. 굿에 소를 사용하는 것이나 소를 산 채로 바치는 모습은 건진법사의 신앙이 고대 사회의 그것과 가깝다는 걸 보여준다.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뿐 아니라 다른 정치인, 다른 정당도 무속에서 자유롭지는 못하겠지만, '국민의 힘'을 믿겠다며 당명을 바꾼 뒤에 이런 논란을 초래한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모습은 이 정당 선배들의 행적을 연상케 한다.

무속인 단체 만든다던 민자당

전두환의 민주정의당(민정당)을 모태로 하는 민주자유당(민자당)은 창당 5년이 지난 1995년에 정책정당을 표방하며 탈바꿈을 모색했다. 그런데 정책정당으로 가겠다며 내놓은 첫 대책 중 하나가 무속인 조직의 결성이었다. 그해 5월 5일 자 <동아일보> 기사 '민자, 점술-무속인 직능단체 만든다'는 이렇게 보도했다.

"민자당이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에 대비, 직능조직 강화 작업의 일환으로 전국 점술가와 무속인들로 구성된 '민자당 경신(更新)회'를 발족시킬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자당은 오는 8일 점술가와 무속인들의 전국 조직인 대한경신회연합회 간부들 중 민자당적을 가진 1백 30명을 회원으로 민자당경신회를 구성한 뒤 회원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 1995년 5월 5일 <동아일보> 신문 보도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1995년 6.27 지방선거와 1996년 4.11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다. 6.27 선거는 제1회 전국동시 선거였다. 이처럼 의미 있는 정치행사들을 눈앞에 둔 민자당이 정책정당으로 가겠다며 무속인 조직을 발족시켰던 것이다.

이같은 민자당의 모습을 보고, 지금은 국가정보원장인 박지원 당시 민주당 대변인은 1995년 5월 4일 "현 정권은 반시대적, 반과학적인 길을 가고 있다"는 논평을 내놨다. 다음날 발행된 <한겨레> 4면은 "민자당이 정책정당으로의 발전을 표방하며 조직해 나가겠다고 밝힌 각계 직능단체의 첫 작품이 하필이면 반공 포로단체와 점술가 무속인 단체로 나타난 것을 비아냥댄 것"이라고 전했다.


▲ 영화 <더 킹>의 한 장면. ⓒ 우주필름

비슷한 모습은 박정희와 민주공화당 정권에서도 나타났다. 1990년 12월 21일 자 <동아일보> '정치인과 점'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은 대통령선거·총선 등을 비롯한 주요 정치행사의 택일을 복술가에게 물어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중앙정보부 총무국장 출신인 이종찬 당시 국회의원의 발언을 인용해 "박 전 대통령은 유신(72년 10월 17일)을 단행하면서, 그 날짜를 당시 중앙정보부 판단기획실장 김성낙씨(유정회 1기 의원 역임)가 용하다고 소문난 세검정 점술가로부터 받아온 10월 17일로 정했다"고 말한다.

민정당의 경우

민정당이 집권할 때인 1987년의 대선 날짜도 그런 식으로 정해졌다고 위 기사는 말한다. 청와대 고위 참모가 서울 청운동 점술가를 찾아가 '노태우가 승리하려면 어느 날로 잡아야 하느냐?'고 묻자, 점술가는 "16일로 하면 표는 많이 나오나 자식이 적고, 17일로 하면 표는 적으나 자식은 많다"는 점괘를 내놨다고 한다.

'표가 많이 나오느냐'는 당장의 문제이고, '자식이 많이 생기느냐'는 차후의 문제이므로, 보고를 받은 대통령 전두환이 전자를 택해 12월 16일로 정했다고 한다. 이듬해 4월 26일 제13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뒤에, 전두환 측은 '자식'의 의미를 총선 당선자로 이해했다고 한다.

무속에 과도하게 의존한 박정희·전두환의 선례로 인해 '10원짜리 동전 문양은 노태우 당선을 위한 점술가의 예언에 따른 것'이라는 소문이 한때 강하게 나돈 적도 있다. 1995년 10월 31일 자 <매일경제> 7면 기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지난 87년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1노 3김이 대권을 놓고 각축을 벌일 때 노씨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10원짜리 동전에 불상을 넣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한 점술가가 노씨에게 그렇게 조언했다는 것이다."


▲ 1992년 4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이 청와대에서 민자당 김영삼 대표(오른쪽)와 이종찬 의원(왼쪽) 두 대권 경선 후보와 나란히 오찬장으로 가고 있다. ⓒ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점술가가 노태우에게 알려준 점괘는 이렇다고 한다.

"집집마다 불상을 모셔두게 하면 대통령이 된다. 불상은 3백만 개가 돼야 한다. 그러나 종교가 다르므로 가정마다 불상을 넣어둘 수는 없다. 가정마다 불상을 두게 하려면 10원짜리 동전 앞면에 도안된 다보탑 속에 불상을 그려야 한다."

한국은행 측은 10원 동전에 그려진 것은 불상이 아니라 돌사자상이며 노태우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이런 해프닝이 일어난 것은 독재정권 시절의 과도한 무속 의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무속의 효과를 믿는 사람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치에서까지 무속에 의존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국민의 의사가 무엇보다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군주는 하늘의 대리인이며 하늘의 뜻을 물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인식되던 옛날에는 정치와 무속이 친밀한 관계를 갖기 쉬웠다. 하지만 오늘날은 국민의 뜻을 물어 정치를 해야 하는 시대다. 국민의 뜻을 알려 하고 '국민의 힘'에 의지하려 해야 하는 시대다. 대선후보가 무속과 자꾸 연관되는 것 자체가 매우 퇴행적인 일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월 18일, 화 1:2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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