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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2년 5월 17일, 화 3:56 am
[종교/문화] 문화
 
한밤에 벌어진 우정총국 변란
[홍범도 장군 실명소설: 저격 18]

(서울=오마이뉴스) 방현석(소설가)


▲ ⓒ FDH

9

군영 안에 남아 있던 제1사 병사들이 달려 나왔지만 우리를 쫓아온 전영 병사들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언제나 기세등등한 제1사 병사들은 달려나가 맞붙을 태세였다. 일촉즉발의 순간에 나타난 것이 박한 초관이었다.

"뭐하는 짓들이야?"

전영 병사들은 자기네 동료를 때린 놈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고, 우리 쪽에서는 먼저 시비를 건 놈들이 누구냐고 맞섰다. 박한 초관은 차고 있던 칼을 빼 들고 양쪽을 향해 차례로 그어 보였다. 양쪽이 모두 모두 잠잠해지자 박한 초관이 전영의 병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돌아가라."
전영의 병사들은 야유를 퍼부으며 물러서지 않았다.

"우영의 영창에 들어가고 싶은 놈은 들어오고, 아니면 지금 즉시, 돌아가라."
전영의 병사들이 물러날 리 없었다. 자기네를 때린 놈을 내놓기 전에는 못 물러나겠다며 되려 군영 정문으로 바싹 다가드는 전영 병사들에게 박한 초관이 말했다.

"그래, 좋다."
박한 초관은 우리를 향해 돌아보며 명령했다.

"저놈들과 싸운 놈들 다 앞으로 나와."
득의만만했던 우리는 표정이 굳었고, 전영의 병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나와 백무현이 앞으로 나서자 함께 외출했던 나머지 패거리들도 따라 나왔다. 모두 일곱 명이었다.

"야, 초병!"
박초관은 들고 있던 칼을 칼집에 집어넣으며 정문 경비를 맡은 초병 셋을 불렀다.

"탄환 장전해!"
초병이 들고 있는 총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박초관이 먼저 자기가 차고 있던 짧은 마상총을 뽑아들고 장탄을 하자 초병 셋도 서둘러 탄환을 장전했다. 초병들이 장탄을 완료하자 박초관은 하늘을 향해 들고 있던 마상총을 앞에 선 우리 일곱을 향하여 겨누었다. 당황한 나는 박초관이 겨눈 마상총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음 순간, 박초관은 밖에 선 전영의 병사들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이번에는 전영 병사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며 긴장했다.

"넌, 이놈들."
오른손에 마상총을 든 채 박초관은 왼손으로 맨 왼쪽에 선 초병과 우리 패거리 일곱을 차례로 가리켰다.

"그리고, 너희 둘은 저놈들."
박초관은 남은 두 초병과 정문 밖에 서 있는 전영의 병사들을 가리켰다.
"하나, 둘, 셋. 내가 셋 하면 모두 쏴버려."

박초관은 다시 정문을 사이에 두고 선 우리와 전영 병사들을 차례로 겨누며 말을 이었다.

"임금님을 지키고 외적을 물리치라고 길렀더니 서로 쌈질이나 하는 이놈들은 다 역도들이니까 모두 처결한다."
초병 하나는 우리를 겨누고 둘은 정문 밖의 전영 병사들을 겨눴다.

"하나, 둘..."
박초관의 입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탕. 박초관이 방아쇠를 당겼고, 우리와 전영 병사들 사이를 가로지르면 날아간 탄환에 정문 기둥에 얹힌 유리 등을 박살났다. 박초관의 입에서 '셋'이 떨어지기도 전에 전영 병사들은 몸을 돌려 필사적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리 패거리로부터 경위를 들은 박한 초관은 의외로 태연했다.

"머리는 왜 숙여. 죽을 죄지었어?"

우리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서로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제1사 내에서 병사들끼리 싸움을 벌이면, 힘이 남아돌아서 그런다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완전무장으로 군영을 돌게 하는 박한 초관이었다.

"이거 봐라."
박한 초관은 맨 앞에 선 내게 다가와 살이 드러난 옆구리를 들춰보았다. 놈들이 휘두르는 칼에 쾌자가 찢긴 자리였다. 흘러내린 피가 바지춤을 적셨지만 깊이 스치지는 않아서 피도 멈춘 상태였다.

"옷도 한 벌뿐인 놈이 이제 뭐 입을래?"
"그걸...."
"이거 말고 다른 거 입은 적이 있어?"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자."
박한 초관은 우리를 한 번 둘러보고는 앞장섰다. 사고를 친 것이 우리만은 아니었다. 하사금을 나눠 들고 의기양양하게 외출했던 제1사의 병사들은 곳곳에서 전·후영의 병사들과 충돌한 모양이었다. 날마다 거듭한 격기훈련으로 개인 무력이 최고인 데다 진법훈련으로 다진 철통같은 단결력을 자랑하는 제1사는 친군우영 안에서도 고슴도치 같았다. 자기도 다칠 생각을 하지 않으면 건드릴 수 없는 부대가 우영 제1사였다. 파총 앞에는 이미 세 명의 초관이 사고를 친 병사들 앞에 도열해 있었다.

"이놈들은 어떻게 된 거야?"
파총의 물음에 제2초관이 부하들을 돌아보며 변명을 했다.

"우리 병사들을 일본병사들이 먼저 때려서 붙은 싸움이라고 합니다."
전·후영의 병사들과만 싸움이 붙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왜?"
2초관 뒤에 선 병사 하나가 대답을 했다.
"배오개 장거리에서 왜놈들이 왜노래를 부르고 지랄을 하길래... 여긴 조선이잖아요."
"그래서?"
"맞기는 우리가 더 맞았습니다."
"뭐?"
정태신 파총이 앞에 선 제2초관을 노려보았다.

"한심한 놈들, 왜구들한테 얻어맞고 다녀?"
제2초관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가. 완전무장하고 100바퀴."

제2초의 무관과 병사 전원이 뛰어야 했다. 병사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연무장 100바퀴면 날샐 때까지 뛰어야 했다.

다음은 제1초관의 차례였다.
"이놈들은 또 어떻게 된 거야?"
"청병들하고 시비가 붙어서 서로 치고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

1초관 뒤에 선 병사가 대답을 했다.

"청나라 놈들이 길가는 아녀자를 희롱해서 좋게 타일렀는데..."
"청나라 말을 알아?"
"하지 마라. 조선말로 하고, 또 손으로도 이렇게 했죠."
1초의 병사는 두 손을 펼쳐 들고 막는 시늉을 했다.

"그래서?"
2초에 100바퀴가 떨어지는 걸 보았던 1초관은 병사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나섰다.
"맞은 만큼은 때려주고 왔답니다."

제1초는 우리가 5초로 편입되기 전까지는 우영의 최강 전투단위였다.

"자랑이다. 명색이 제1초가."
1초관이 고개를 떨궜다.

"싸움질을 왜 해? 했으면 오랑캐들한테 확실히 본때를 보여주던지... 가."
정파총은 1초관을 바라보며 혀를 쯧쯧 찼다.
"완전무장에 50바퀴."

다음은 우리였다.

"너희들은 또 뭐야?"
정파총은 앞에 선 박한 초관과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전영 병사들과 칠패시장에서 붙었다고 합니다."
박한 초관이 자세를 꼿꼿이 하고 대답했다.
"왜?"

이번에는 내 옆에 선 백무현이 나섰다.
"북촌에서부터 까불어서 손을 좀 봐줬는데, 남대문까지 따라왔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가라, 그랬더란 말입니다. 그런데도 쇠를 든 왜놈 건달들까지 데리고 너절하게 덤비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손을 봐줬더니 떼거지로 여기까지 따라왔단 말입니다."

"몇 놈이나 됐나?"
파총의 물음에 머뭇거리는 백무현 대신 내가 대답했다.

"군영까지 쫓아온 놈들이 오십삼 명이었습니다."
"정확히 오십삼? 그걸 어떻게 알아?"
칼에 쾌자가 찢긴 내 허리에 눈길을 주며 파총이 물었다.

"산에서 꿩 사냥 나가면 한눈에 다 세야 합니다."
"자식, 쓸데없는 건 잘해. 표적 전문이면서."
파총의 농담이 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바퀴가 떨어질까, 나의 관심은 거기에 집중되었다.

"가."

우리 일곱만 뛰는 게 아니고 제5초 전체가 완전무장하고 뛰어야 했다. 초관도 열외가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라고."

우리는 어리둥절해서 밖으로 나왔다. 이미 완전무장을 하고 연무장을 뛰고 있는 다른 초를 바라보던 우리는 박한 초관을 쳐다봤다.
"가. 가자고."
박한 초관은 우리군영을 가리켰다. 우리는 불끈 쥔 두 주먹을 치켜들며 일제히 뛰어올랐다. 그리고 외쳤다.

친군영! 최고!
제1사! 최강!

박한 초관이 우리 숙소에 들린 것은 그날 밤 취침 나발 소리가 들리기 전이었다.

"그거 가져다 버려."

피 묻은 쾌자를 꿰매고 있던 내 앞으로 새 쾌자 한 벌을 던졌다.
"파총이 준 거니까 또 찢어먹지 말고."


10

난데없는 나발소리가 한밤의 군영을 뒤흔들었다.
빰빠빠밤, 빰빠빠밤.
비상이었다.
두두두둥, 두두두둥.
큰북이 받아치며 잠든 군병들을 깨웠다.

"우영 전군 비상!"

초병이 군막에 뛰어다니며 비상령을 전달했다. 한밤의 전군 비상훈련은 처음이었다. 사전 예고도 없었다. 옷을 입고 무장을 찾아드는데 본영의 전령이 군막에 들이닥쳤다.

"경위감 집합! 무장 집합!"

훈련용 비상이 아닌 것 같았다. 지금까지 경위감을 따로 훈련에 동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소총을 집어 들고 달려나갔다.

정태신 파총은 연무대에 올라서서 우영 전체를 지휘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우영사 민영익은 경복궁 앞에 있는 삼군부 총무당에서 주로 머물렀고, 우영은 선임 파총인 정태신이 맡아서 통솔했다.

"영사님이 당했다. 경위감은 우정총국으로 가서 영사를 경위한다."
"무슨 상황입니까?"
"자세한 건 나도 모른다."
"많이 다치셨습니까."

박한 초관이 연무대 위를 향해 소리쳤지만 몰려나온 군병들이 떠드는 소리에 묻혀 파총이 알아듣지 못했다.

"가서 어떻게 합니까?"
박한 초관이 연무대 턱 밑으로 달려가 다시 물었다.

"현장 상황을 보고 판단해라."
정태신 파총은 경위감에 기마병을 붙였다. 기마병이 우리를 하나씩 등 뒤에 태우고 우정총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박한 초관만 단독 행마였다. 창경궁과 우정총국 주변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야금 시간인데도 길목마다 사람들이 몰려나와 웅성거렸다. 여덟 마리의 군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우정총국까지 내달렸다.

우정총국은 난장판이었다. 입구부터 여기저기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고, 나뒹구는 음식과 그릇들이 흥성했던 연회의 시간에 멈춰 있었다. 하인들은 넋이 반쯤 빠진 채 연회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죽동궁에서 만났던 홍영식의 겸종 이흥완을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얼굴보다 이마에 박힌 크고 검은 점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녀석은 우리 일행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박한 초관이 나를 바라보며 눈짓으로 누구인지 물었다. 박한 초관은 우영사의 죽동궁에 왔던 대감과 영감들은 이력까지 꿰고 있었지만 겸종들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홍영식 총판의 겸종 이흥완입니다. 죽동궁에 왔던 놈입니다."
박한 초관이 이흥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영사님은 어디 계시느냐?"
이흥완은 박한 초관을 아래위로 훑어보며 이마를 찡그렸다.
"......"

박한 초관이 칼을 빼어들며 다시 물었다.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다."

이흥완이 박한 초관을 마주 노려보고는 겁에 질린 하인들을 돌아보며 지시했다.
"어서 치워라."
"이 자식이!"

박한 초관이 칼을 치켜드는 순간 백무현이 몸을 날려 발차기로 이흥완을 가격했다. 쓰러진 이흥완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며 백무현이 이흥완에게 속삭였다. 뻥쟁이, 너 죽고 싶냐. 자신의 목에 칼끝을 겨누고 있는 박한 초관을 노려보는 이흥완의 이마가 꿈틀했다.

"우리 총판께서 우영사를 구해주셨소."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
"목인덕 고문 댁에 있소."
"외교고문 뮐렌도르프?"

이흥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 전복을 차려입고 고종의 옆자리에 앉아 친군영의 교열행사를 지켜보던 코쟁이가 목인덕이었다.

"어떤 놈들이냐. 너희 총판이 구했다면 해친 놈들이 있을 것 아니냐?"
"난 모르오."
"총판영감은?"
"김옥균 영감과 함께 주상의 영을 받고 입궐하셨소."
홍영식총판이 김옥균과 함께 임금의 영을 받아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박한 초관은 칼을 칼집에 집어넣으며 돌아섰다.
"가자!"

우정국에서 길 하나 건너 두 번째 골목에 있는 뮐렌도르프 외교고문의 집 앞에는 상한들이 지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혜상공국이 관리하는 보부상단의 상한들이었다.

"우영 경위감에서 왔다. 비켜라!"
"여기는 우리가 지킵니다."
"우리 영사님을 왜 네놈들이 지켜!"
박한 초관이 호통을 쳤다.

"총판 영감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칼자루를 비껴잡은 상한들의 기세와 눈매가 만만하지 않았다.

"우정국 총판과 우영사 중에 누가 위인가? 영감과 대감도 구별을 못 해?"
"목인덕은 주상의 외교 고문이고, 외교 고문의 일에는 주상께서만 간섭할 수 있습니다." 임금을 들고 나오자 박한 초관도 주춤했다. 잠시 골똘히 생각하던 박한 초관은 내게 물었다.
"시각이 얼마나 되었나?"

나는 시월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곳곳에서 치솟던 불길은 잦아들고 열이레의 차오른 달이 밤을 밝히고 있었다. 견우성과 직녀성을 좌우로 거느린 은하수의 기울기가 인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시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코쟁이 하나가 나타난 것은 한 식경이 지나서였다. 청나라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소란스럽게 골목에 들어선 코쟁이를 먼저 막아선 것은 보부상단에서 나온 상한들이었다. 청군들은 청나라 말을 했고, 코쟁이는 코쟁이 말을 했고, 상한들은 조선말을 했다. 손짓 발짓으로도 말이 통하지 않자 상한들을 물러서고, 박한 초관이 단검을 뽑아 땅바닥에 한자를 적었다. 청군도 단검을 뽑아 마주 적었다. 보름이 가까운 달빛에 드러난 글자의 절반은 나도 아는 것이었고 절반은 내가 모르는 것이었다.

"이 코쟁이가 목인덕 고문이 불러서 온 미국 의원 안연이란다."

米國, 安連은 나도 읽을 수 있었다. 스무 살 조금 넘어 보이는 자가 의원이라는 말에 나는 코쟁이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어린놈이 수염을 잔뜩 기르고 동그란 안경까지 쓴 것이 우스꽝스러웠다. 상한들의 두목이 집안으로 들어가 조선옷을 입은 코쟁이 고문을 데리고 나왔다. 목인덕의 뒤로 의원과 의녀들이 보였다. 목인덕의 바로 뒤에 선 의원이 박한 초관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가로막는 상한들을 밀치며 박한 초관이 물었다.

"김내원, 영사께서는 어찌되었소?"
"위중하오."
둘 사이를 가로막으려 드는 상한들을 나와 경위감원들이 팔꿈치로 밀쳐냈다.

"우영의 정파총이 보낸 경위감이 와 있다고 전해주시오."

의원은 두 코쟁이를 따라 들어가며 보일락말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식경이 더 지나서 의녀 하나가 소반에 약식을 내어왔다. 남색 치마와 옥색 저고리에 흰색 앞치마를 받쳐 입은 독특한 차림새를 한 의녀로부터 약식 하나씩을 받아든 상한들은 입이 벌어졌다. 갈래머리를 묶은 자주색 댕기와 정수리에 쓴 흑단색 머리쓰개가 은은한 달빛을 받아 의녀의 자태를 더 빛냈다. 돌아서는 의녀의 뒤태에 더 눈이 팔린 상한들은 접힌 종이를 약식 밑에 받쳐 박한 초관에게 전하는 걸 보지 못했지만 내 눈을 속이진 못했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상대가 뭘 하려는지를 보려면 손과 발에서 눈을 떼면 안 된다. 입과 눈은 상대를 속이지만 손과 발은 제가 하려는 일을 속이지 못한다. 신포수의 말이 귓전을 울렸다.

약식과 함께 의녀로부터 건네받은 종이를 움켜주고 자리를 피하는 박한 초관을 따라갔다. 의녀와 약식에 눈이 팔린 상한들이 자리를 비운 화톳불 옆으로 가 종이를 살펴본 박한 초관의 얼굴이 굳어졌다.

"파총님께 가져가야 할 것인가요?"
박한 초관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어떻게 봤어?"
"손이 하는 일을 왜 알지 못하겠습니까. 제가 군영에 다녀올까요?"
박한 초관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변란이야. 내가 직접 다녀와야 할 일이다. 다녀올 동안 저놈들이 영사님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게 지켜라."
박 초관은 자기네들끼리 시시덕거리고 있는 상한들을 향해 눈길을 던지고 나서 말을 이었다.

"전, 후영 놈들한테도 절대 영사님을 내줘서는 안 된다. 그놈들도 한 패일 것이야."
"변란이라면, 저희도 사정을 좀 알아야 하지 않을지요?"
박한 초관이 상한들이 보지 못하게 돌아서며 종이를 다시 꺼내 보았다.

金朴洪徐(김박홍서)
賣國背宗 世道飜換 (매국배종 세도번환)
以夷制夷 隨命從御 (이이제이 수명종어)

영사의 밀지를 쥔 박한 초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김박홍서가 주상을 배신하고 나라를 팔아 세상의 질서를 뒤집어엎으려고 하니, 적은 적으로 물리치되 주상의 뜻을 받들어 움직여라."
"김박홍서라면?"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니들이 말하는 개화파."
"그자들은 다 영사께서 지난번에 죽동궁에 불렀던 자들인데, 어떻게..."
"영사께선 어떻게든 개화파와 완고파의 힘을 함께 모으려고 했는데, 개화파가 변란을 일으킨 거야. 저놈들도 변란에 가담한 것이 틀림없는데 내가 있으니까 아무 말도 않는 것이다. 다녀올 동안 저놈들을 잘 지키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어라."
"그럼 이 집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지금 우리가 치고 들어가서 지켜야 하는 것 아녜요?"
"개화파는 일본을 등에 업고 있고, 뮐렌도르프는 청나라를 등에 업고 있으니까 집 안에서는 뮐렌도르프가 영사를 지켜줄 거야."

박한 초관이 대기 중이던 기마병으로부터 넘겨받은 말을 타고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홍영식의 겸종 이흥완이 나타났다. 상한들이 일제히 깎듯이 이흥완에게 인사를 했다. 나이도 어린 겸종에게 할 예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 뻥쟁이 새끼 뭐냐?"
백무현이 눈을 껌뻑거리며 내게 물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월 04일, 화 5: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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