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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복음에 기초한 세계관은 '혐오' 아닌 '환대'(하)
[탐독의 시간] <세계관적 성경 읽기>(성서유니온) 저자 전성민 교수


전 교수는 기독교 세계관을 드러내는 방식은 사랑·겸손·감사여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서울=뉴스앤조이) 김은석 기자

(지난호에서 이어짐) - 앞서 구글 알리미 말씀을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들을 보신 건가요?

"유튜브에 들어가서 '기독교 세계관'이란 키워드로 검색하신 뒤 '민춘살롱' 영상을 빼놓고 보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느낌이 오실 거예요. 그런 모습들은 세계관이라는 개념 자체가 지닌 내재적 위험성이 한국 맥락 안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난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세계관이라는 게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내가 세계를 이해하겠다'는 거잖아요? 이건 '세계를 통달하겠다'는 굉장한 프로젝트인 거고, 어찌 보면 전체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 거죠. 과거 구소련이나 히틀러도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굉장히 많이 썼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기독교라는 종교적 권위까지 얹으면 그렇게 작동할 위험이 굉장히 커지는 건 사실 같아요.

그렇다면 이제 질문 두 개가 떠오르죠. '세계관이라는 게 그런 위험과 억압성을 필수적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는 개념인가?' 만약 그렇다면 세계관이란 개념을 써서는 안 되죠. 거기에 기독교를 붙여 봐야 기독교를 오해하게 만드는 거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세계관을 오용하고 오해했을 뿐이니 그걸 바로잡아 의미 있게 사용할 수 있겠느냐?'가 남아요. 저는 후자를 택했어요. 이론적 근거도 있지만 현실적인 고민 때문이에요. 만약 제가 세계관이라는 개념이 지닌 위험성 때문에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한국교회가 그 개념을 안 쓸까요? 혐오와 차별, 독선과 대결의 근본주의신학이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으로 퍼지는 콘텍스트가 사라질까요?

아니죠. 신앙이 개인적 의미 너머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통치를 어떻게 드러낼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분들은 여전히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을 만나게 되잖아요. 기독교 세계관 개념을 포기하면, 그분들이 잘못된 혹은 적절치 못한 기독교 세계관을 접하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어요. 그러니 세계관이라는 개념을 붙들고 어떤 기독교 세계관이 더 성경 전체의 정신과 가까운지 공정하고 정직하고 치밀하게 시비를 가리며 논쟁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전 교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민춘살롱'은 기독교 세계관에 관한 여러 콘텐츠를 다룬다. 민춘살롱 유튜브 채널 갈무리

- 그런 시비 가리기의 방법으로 교수님이 들고나오신 게 '성경 읽기'일 수 있겠네요. 책에 보면 세계관적 성경 읽기를 "우리의 세계관을 변화시키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성경 읽기"라고 정의하셨어요.

"네. 성경 읽기가 우리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세계관적 설교> 첫 장에서도 한 얘기예요. 영화 '매트릭스'의 비유를 들자면, 성경 읽기는 빨간 약과 파란 약 중에서 빨간 약을 먹는 것이어야 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통념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진짜 세상을 직시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읽기여야 한다는 식의 얘기를 했지요. '변화'라는 말은 좀 의도적으로 썼어요. 그 대상을 '세계관'이라고 한 이유도 있어요. 보통은 기존 세계관이나 큰 틀은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잘못된 부분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성경 읽기를 하잖아요. 그게 아니라 틀 자체를 고민하는 성경 읽기를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 표현에 담고 싶었어요. 개인적 삶의 행위들뿐만 아니라 세계에 대한 고민이 성경 읽기를 통해서 더 생기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 드라마 이야기가 책 곳곳에 나와서 재미있었어요. '송곳'의 대사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미스터 선샤인'에 나오는 대사 "가시오. 그대가 가는 방향으로 내가 걷겠소"를 인용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세계관은 관점이잖아요. 관점은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그러니까 다양성을 꼭 염두에 둬야 하죠. '송곳'의 대사는 그걸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고요. 내가 어떤 관점을 얘기할 때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전제하죠. 그렇기 때문에, 설령 기독교 세계관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말하고 있는 나의 삶의 자리가 어딘지 돌아보고 인식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가 세계 바깥에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세계 안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겸손해질 수 있고, 다른 관점을 가진 이와도 대화할 수 있어요. 전체주의적‧억압적인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거죠.

'미스터 선샤인'의 대사는 나중에 찾은 거예요. 우리는 모두 100% 객관적인 관점을 가질 수 없고, 관점이 나의 자리를 전제하고 있다면 나는 어디를 바라볼 것인가? '방향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그 대사로 표현한 거죠. 제가 맨날 반복하는 말이 '기독교 세계관을 논할 때 우리에게 어떤 자리와 어떤 방향이 요구되는지를 돌아봐야 한다'라는 말이에요."

- 그리스도인에게는 요구되는 자리와 방향이 있다는 거죠?

"그렇죠. 자리만 두고 보면 '경계에 있는 삶'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경계는 자리죠. 하지만 경계에 서면 중심을 바라볼 수도 있고, 바깥을 바라볼 수도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세계관은 방향이 있지요. 설령 기독교 세계관이라 하더라도 중립이 아니라 방향이 요구된다고 생각해요."

- 그래서였는지 기독교 세계관이 나아갈 방향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셨어요. △지성 너머 욕망의 제자도 △중심이 아닌 경계의 삶 △혐오를 이기는 환대의 복음 △대결이 아닌 대화의 세계관 △교회 너머 인류를 위한 사명이었죠. 다른 키워드들은 선명하게 다가오는데, 개인적으로 '욕망의 제자도'라는 표현은 좀 갸우뚱했어요.

'"~의'라는 조사가 갖고 있는 다양한 층위 때문에 애매할 수 있겠네요. 욕망이라는 말 자체가 우리말에서는 좀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기도 하고요. 제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단순해요. 우리의 욕망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대상이 돼야 한다는 거죠. 예전에 나온 제임스 사이어(James W. Sire, 1933~2018)는 <지성의 제자도>(IVP)에서 우리가 예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좁은 의미에서 종교적 회심뿐 아니라 지성의 영역까지도 그리스도의 주재권 안에 놓이는 것이라고 얘기했어요. 그와 같이 우리의 욕심‧욕망 역시 신앙 안에서 통제돼야 된다는 이야기를 "욕망의 제자도"라고 표현한 거죠. 우리가 어떤 결정·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할 때는 옳고 그름뿐만 아니라 '욕망'이 작동하죠. 가령 누군가 책을 쓴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동시에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도 있거든요. 그걸 솔직히 들여다봐야 해요. 그리스도인이 삶에서 분명히 씨름해야 할 영역이죠.

그런데 우리 신앙이 고민해야 할 부분을 욕망의 영역에까지 넓혀 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중심을 향한 욕망이 나의 삶을 추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맞닥뜨리게 되죠. 거기서 저는 '중심을 향한 욕망을 내려놓고 경계를 넘는 용기를 내자'고 제안해요. 두 번째 방향인 거죠. 용기 내어 경계를 넘어서면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돼요.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복음에 대한 이해죠.

제 동료인 최종원 교수님이 <초대교회사 다시 읽기>(홍성사)에서 표현한 것처럼 '민족과 인종의 경계를 초월한 공동체'는 기독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거든요.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포용했듯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행 1:8) 복음이 전파될 때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복음은 경계를 넘어서 사람을 환대하는 힘이 되거든요. 그러니 우리가 나아갈 방향은 '혐오의 율법'이 아니라 '환대의 복음'인 거죠. 그 복음에 기초한 세계관은 '대결'이 아니라 '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요.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일반 은총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대화가 필요해요. 기독교가 '구원의 진리'는 독점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많은 영역의 진리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가질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배워 가야 하니까요. 대화를 통해 좁은 의미에서 '교회의 번영'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류와 세계의 번영'을 이뤄 가야죠."

- 책을 읽으면서 '겸손'이라는 단어가 계속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오늘날 기독교인이 가장 결여하고 있는 성품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겸손'과 함께 두루 쓴 키워드로 '사랑', '감사'가 있어요. 이 세 키워드를 스티브 윌킨스와(Steve Wilkens) 마크 L. 샌포드(Mark L. Sanford)가 쓴 <은밀한 세계관>(IVP)에서 만나게 됐어요. 저는 '기독교 세계관을 왜 공부하는가?'를 저한테도 물어보고 같이 공부하는 분들에게도 물어봐요. 지금까지는 그야말로 '대결'이었어요. 뭐가 틀렸는지 분별하고 기독교 세계관으로 잘못된 걸 고치고 전쟁을 하는 게 세계관 공부의 목적이었던 거예요. 그런 전제 아래에 있다면,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모든 걸 다 설명해 내며, 모순 없이 우리 삶에 잘 적용되는 게 좋은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은밀한 세계관> 저자들은 그런 완벽한 체계를 갖춘 세계관은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요. 그러면 좋은 세계관은 무엇이냐? 그 세계관을 가진 사람을 더욱 겸손하게 만들고, 더욱 사랑하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세계관이라고 해요. 그걸 보고 '아! 이거 되게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자꾸 제안하고 있어요."

- 다른 종교인들에 비해 특히 기독교인들은 우월함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봤지? 기독교가 최고야. 기독교는 너희들보다 완벽해" 라는 식의 태도가 몸에 밴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얘기를 했던 시대의 산물이고, 지금도 누가 저한테 '기독교가 최고의 세계관이고 가장 논리적이고 가장 정합성이 있는 거 아니야?'라고 물으면 '그렇지'라고 대답해요. 제가 참 좋아하고 한국에도 소개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책 중 하나가 제 석사과정(Th.M.) 지도교수셨던 이안 프로반 교수님(리젠트칼리지 석좌)의 <Seriously Dangerous Religion: What the Old Testament Really Says and Why It Matters>란 책이에요. 구약성경의 세계관을 풀어놓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안 프로반 교수님도 이 책에서 악의 문제, 이웃의 문제, 소망의 문제,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 등에 있어 다른 세계관들과 비교했을 때 구약에 토대한 기독교 세계관이 훨씬 더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이 세상의 번영을 가져오기에도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 내거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은 사랑·겸손·감사여야 한다는 거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라는 말씀처럼, 완벽함이나 당당함을 내세우기보다는 겸손과 온유로 얘기해야 하는 거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우리의 세계관이 형성된다면 겸손한 사람이 돼야 맞는 거잖아요."

- VIEW에 공부하러 오시는 분들이 주로 복음주의 배경의 목회자·평신도일 텐데, 이런 말씀을 그분들에게 나눴을 때 반응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네요.

"다양하죠. 그동안 했던 고민을 해결할 단초를 찾았다는 분들도 계시고, 알던 것과 좀 달라서 소화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는 분들도 계셔요."

- "그건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는 분은 없었나요?

"예전에 간혹 있었는데 요새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기독교 세계관뿐 아니라 양승훈 교수님의 '오랜 지구론'조차 힘들어하는 분도 계셨죠. 저희 학교가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을 내걸기 때문에 실제로 기독교 세계관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오세요. 그런데 그분들이 관심 갖고 접했던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 세계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근본주의신학인 경우도 있지요. 새로운 배움을 대하는 사고의 유연성이나 그런 고민을 했던 실존적인 경험 여부에 따라서 반응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 책 결론부에서 "기독교 세계관은 결국 평화의 세계관이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앞서 언급한 다섯 주제도 '평화의 세계관'이라는 말로 아우를 수 있다고 하셨고요. 책에 보니 성경에 평화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샬롬'은 209절에 237번, 헬라어 '에이레네'는 91절에 99번 등장한다는데, 평화라는 단어가 이렇게 성경에 많이 쓰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요. 한국교회의 미래를 여는 키워드로 평화의 세계관을 제시한 셈이신데, 어떻게 이런 결론에 이르셨나요?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하나는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성경에 '평화'가 정말 많이 나와요. 그동안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을 얘기할 때 주로 '창조, 타락, 구속'의 틀로 얘기했잖아요. 저는 송인규 교수님이 쓰신 <새로 쓴 기독교, 세계, 관>의 가장 중요한 기여 중 하나가 이 틀 대신 골로새서 1장 16-20절을 토대로 '창조, 보존, 화목'이라는 틀을 제시한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의 타락보다, 타락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붙드시는 하나님의 보존이 훨씬 더 중요하거든요.

송인규 교수님은 책에서 '왜 타락은 얘기 안하는가?라는 예상되는 비판에 대해 '보존은 타락을 전제한 개념'이라고 설명하시죠. 그렇지만 보존은 어떤 면에서 타락을 덮는 더 큰 개념이죠.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창조와 더불어서 붙잡아 주는 거니까요. 그리고 구속이 아니라 '화목'이라고 하신 건 골로새서에 '화목하게' 하셨다는 표현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기독교 세계관을 창조, 타락, 구속이 아니라 '창조하심, 붙드심, 화목하게 하심'으로 이해한다면 세 번째 화목하게 하심, 즉 '평화'가 기독교 세계관의 방향이 되는 거죠.

평화는 창조의 궁극적 지향인 거예요. 타락하지 않았더라도 이 창조된 세상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적으로 이루어져 갈 때 우리가 경험하게 될 형태라는 거죠. 그것을 '샬롬'이라고 부르는 것이고요. 그런 면에서 평화는 성경의 큰 목표, 방향을 담아내는 가장 중요한 개념인 것 같아요. 이렇게 성경 자체에서 우리가 지금껏 너무 많이 놓친 평화의 중요성·궁극성을 회복하고 싶었던 거고요.

또 하나는 약간 전략적인 건데요. 제가 '여러분이 이야기하시는 기독교 세계관은 기독교 세계관이 아니거나 오용한 것입니다'라고 지적했을 때, '그럼 뭐가 기독교 세계관이냐'라는 질문을 듣게 되잖아요? 그럴 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반대되고 그걸 뒤집을 수 있는 말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은 평화의 세계관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약간 프레임 선점 같은 거죠. 지금은 '기독교 세계관' 하면 '창조, 타락, 구속' 이렇게 나오지만, 앞으로 '기독교 세계관은 평화'라는 말이 각인될 수 있다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배제와 혐오, 독선과 대결의 근본주의신학이 기독교 세계관의 이름으로 퍼지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적인 구호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거예요."

- VIEW에서 '세계관과 평화학 M.div. 과정'을 개설한 것도 그런 큰 그림에서였나요?

"그렇다고도 할 수 있고, VIEW가 지난 20여 년간 한 경험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기도 해요. VIEW는 ACTS Seminary라는 학교에 자리잡고 있는데 하나의 교단 신학교가 아니고 네 개의 교단 신학교가 컨소시엄을 이루고 있거든요. 침례교가 두 곳이고 캐나다복음주의독립교단(Evangelical Free Church of Canada)이라는 교단이 있고 다른 하나는 메노나이트 교단이에요. 소위 좁은 의미의 장로교 개혁주의 교단들은 없어요.

이 네 신학교가 공통 커리큘럼을 운영하는데 거기에 필수 과목 중 하나로 교회신학(Believer's Church Theology)'이 있어요. VIEW에서도 그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 돼요. 여기서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 전통과 함께 평화주의를 배우게 돼요. 또 저희 과목 중에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회 문제들'이라는 수업이 있어요. 예전에 로널드 사이더 교수님이 오셔서 수업해 주신 걸 저희가 녹화에서 재사용하는데, 그분도 아나뱁티스트여서 수업 중에 평화주의 관련 얘기를 하시죠. 그러니까 저희 학생분들은 공부하면서 평화주의 얘기를 반복해서 듣게 되면서 고민하고 씨름할 수밖에 없어요. 저희도 통역하면서 '아, 이게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거나, 관심을 충분히 쏟지 못하는 주제였구나' 깨닫게 됐고요.

학생분들 얘기를 들어 보면, 한국에서 이단이라고 들었던 아나뱁티스트 전통을 필수로 가르친다는 말에 처음엔 너무 놀랐다가 수업을 들으면서 '아 내가 정말 많은 부분을 놓치고 있었구나' 하고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M.Div. 과정을 만들 때 너도나도 하는 똑같은 것 말고 우리가 공헌할 수 있는 영역을 찾자 생각했는데, '세계관과 평화학 과정'을 하면 그게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원래 기독교 세계관은 개혁주의 전통에서 나왔어요. 평화학은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 비롯됐고요. 역사적으로 개혁주의와 아나뱁티스트는 원수지간이었잖아요. 두 전통을 창조적으로 잘 통합해 낼 수 있다면 굉장히 흥미로운 신학적 실험이 성공을 거두게 되는 거죠."


VIEW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된 '세계관과 평화학 목회학 석사 과정'. VIEW 홈페이지 갈무리

전성민 교수는 자신이 세계관과 관련된 세 번째 책을 쓰게 된다면, '평화의 세계관'을 더 구체적으로 진술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전 교수의 말대로, 기독교 세계관은 평화의 세계관이 되어 한국교회에 새로운 미래를 가져올 수 있을까? 사실 책만 읽고서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기독교 세계관이 근본주의신학의 포장재로 쓰일 만큼 질척한 현실이 가져다주는 피로감이 너무 컸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가, 매일 성경을 읽지만 혐오와 차별, 독선과 대결의 신앙을 벗어나지 못하는 독자들로부터 압력을 받아 한 경제학자의 연재를 중단시킨 곳이라는 현실도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정리하면서 의구심은 기대감으로 변했다. VIEW가 지속해 나갈 신학적 실험은 어떤 열매를 맺게 될까. 그리고 전성민 교수가 한 걸음 더 내디딘 후 써 내려갈 '평화의 세계관'은 어떤 모습일까.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1월 21일, 일 8:2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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