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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한강에 몸 던진 '간첩'의 아들, 언론은 어찌할 것인가
[기획 - 바로잡습니다] 프롤로그

(서울=오마이뉴스) 변상철 기자

(언론 불신의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권력으로의 편향된 시각과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진실의 편에 서지 않은 언론의 과거가 큰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합니다. 국가폭력피해자들의 과거를 통해 우리 사회의 언론이 진실을 추구하고 공정한 보도를 위해 노력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한 학생이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사망한 이는 박종철이었다. 대공분실 수사관들의 물고문에 의해 학생이 질식사한 이 사건은 언론사 기자의 용기 있는 기사 한 줄로 인해 세상에 드러날 수 있었다.

당시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였던 신성호 기자는 서울지검 공안4과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박종철 학생이 고문으로 인해 쇼크사 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를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1987년 1월 15일 자)라는 사회면 2단 기사로 작성해 신문에 실었다. 이 기사의 파장은 일파만파로 번졌고 군부독재 정권의 종말을 맞게 한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 영화 <1987>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처음 보도한 중앙일보 사회부 신성호 기자역을 맡은 극중 윤상삼 기자(이희준 분)가 나온다. ⓒ CJ ENM

우리 사회를 바꾼 것은 비단 박종철 고문 사건 보도만이 아니었다. 몇 해 전 촛불 물결을 일게 한 '태블릿PC' 보도와 같은 영향력 있는 기사도 있었다.

언론의 한 줄 보도는 작은 지역 공동체뿐만 아니라 정권의 운명을 가를 만큼 그 영향력이 실로 막강하다. 이렇게 막강한 힘을 지닌 언론은 공적 책임을 다하면서 한편으로 공정성·공익성·객관성·정확성·책임성 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편향적이고 부정확한 보도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미칠 악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언론이 무거운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고문과 사투... 밖에선 선동적인 기사가 춤을 추고

지난 2010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1기) 활동이 종료된 이후 현재까지 파악된 고문 등 반인권적 국가 폭력 피해자는 사망자 포함 300여 명 가까이 되며 사건 수로는 146건 이상이다(평화박물관 자료). 이들은 과거사위원회의 결정이나 법원의 무죄 판결로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범죄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사람들이다.

피해자들은 감옥에 다녀오고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기까지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가? 벌레같이 취급하며 테러집단, 파렴치범, 적대 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사회에서 괴롭고 힘든 삶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피의자로 연행된 피해 당사자들은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수개월간 수사기관에 구금되어 있어야 했다. 이 시간 동안 외부와 차단된 채 모진 고문을 받고는 수사관들이 원하는 범죄 사실을 허위로 인정해 범죄자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긴 시간 고문을 동반한 비인도적이고 폭력적인 조사를 받은 이들은 완전한 범죄자가 되어 검찰로 송치된다. 피해자에게는 검찰에서의 조사 과정 역시 공안수사기관에서 받은 조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압적인 조사로 여전히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사기관에서 피해자가 극한의 고문과 싸우며 생명을 이어가는 동안 수사기관 밖에서는 신문과 방송을 통해 '대규모 간첩단 사건', '간첩단 일망타진' 등의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제목의 기사가 춤을 추었다. 범죄의 인정 여부를 다투는 재판 전인데도 언론의 무차별적인 악의적 보도로 인해 이미 피해자는 흉악한 붉은 마수가 되어 있었다.

기사 내용에는 피해자들의 범죄 사실 이외에도 사진과 나이·주소·직업·직장 정보 등이 가감 없이 노출되었다. 이들이 구치소나 교도소에 수감된 뒤 법원에서 진행되는 재판의 법정 사진이 그대로 노출되기도 했다. 이렇게 범죄자로 낙인 찍힌 피해자는 출소 후에도 여전히 간첩으로 살게 된다.


▲ 남영동대공분실에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1970-80년대 고 김근태 의원, 고 박종철 열사 등 많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해서 악명 높았던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인권보호센터)이 26일 오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관식을 했다.. 사진은 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받고 사망한 509호실. 2018.12.26 ⓒ 권우성

'간첩 자식'은 한강에 몸을 던지고

남아 있던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피해자 가족들은 수사기관에 끌려간 피해자를 걱정할 틈이 없었다. 이들은 이웃과 친척으로부터 '간첩 집안', '흉악한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에 더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지만 '간첩의 가족'에게 일자리를 내줄 곳은 많지 않았다.

아이들은 '간첩 자식', '빨갱이 자식'이라며 따돌림을 당했다. 미래에 대한 꿈을 일찍이 접어야 했던 자녀들 중 일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학교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에요. 반공사상이 투철했던 당시 신문에 '울릉도 거점 간첩단 47명 검거'라며 아빠 이름이 맨 위에 올랐어요. 그때까지도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언론 발표 이후 주위에서 저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죠. 나를 친구로 대하지 않는 무리도 있었고, 발표도 안 시키고 숙제 검사도 안 하고 투명인간 취급하는 선생님도 있었죠.
- 울릉도간첩단 사건 피해 자녀 전00, 2016년 '지금여기에' 진술

...'아버지, 이만했으면 제가 아버지께 자식 놈이 해야 할 도리는 다 한 거 같네요. 이제 저 올라가면 아버지하고 저하고 부자 인연 끊을 랍니다.' 아들놈이 경찰대학 시험을 봤는데 필기는 수석으로 합격하고도 신원조회에서 나 때문에 떨어졌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더 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떠난 아들은 얼마 후 한강에서 투신하여 벽제의 납골당에...
- <오마이뉴스> 2017.12.15. "부자인연 끊을랍니다" '간첩자식'은 한강에 몸을 던졌다 http://omn.kr/1rgb8

그렇게 수사기관, 법원, 언론의 칼날 앞에 피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파괴되었다.

있지도 않은 파출소, 확인만 했더라면

언론은 정확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엄격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당시 기사를 썼던 기자나 언론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공안기관의 보도자료와 법원의 판결을 보도했을 뿐이라고. 그러나 피해자들의 범죄 사실이 사실인지 언론은 따져 보지 않았다. 사실을 따져 묻는 것은 언론의 몫이다. '왜?'라는 문제의식이 없는 기사는 시중에 떠도는 풍문과 다름없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재판 당시 고문과 가혹 행위로 허위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언론은 적어도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에게 이렇게 질문해야 했다. '사실인가', '왜 허위 사실을 자백한 것인가'

만약 이런 과정이 있었다면 불법 수사였음을, 이들에 대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범죄 증거라는 것 또한 조금만 들여다보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근안 수사관으로부터 간첩으로 조작된 인천의 김흥수씨의 경우 북한에 보고하기 위해 탐지했다는 파출소가 당시에는 아예 없었다. 누구라도 파출소에 가봤다면 금방 확인되는 사항이었다.


▲ 1999년 1월 구속이 결정된 이근안 전 경감이 성동구치소로 이송되기 전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자신의 심경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수사기관의 보도 자료를 인용하는 수준을 넘어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사건의 피의자가 재판을 통해 죄가 확정되기도 전에 범죄자로 단정하고 논평한 것은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사설은 언론사의 주장으로 사회의 이익에 부합해야 한다. 거짓에 기반을 둔 언론사의 사설은 그 주장 자체가 사회에 해가 될 수 있다.

언론은 사실과 진실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부정의한 권력에 맞설 용기가 있어야 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인해 민주화 운동의 불을 지폈던 신성호 기자가 2015년 박근혜 정권의 청와대 홍보특보로 임명되어 정윤회 문건 보도 당시 세계일보 사장을 만나 보도에 외압을 행사하고 사태를 무마하려 한 의혹을 받았던 것은 87년 민주화의 경험을 한 우리 사회에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2016년 12월 국회 탄핵소추안 내용 중).

'기획-바로잡습니다'를 통해 현재 논의되는 언론중재법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아울러 우리 사회의 언론이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지 언론·정치권·시민사회 모두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1월 08일, 월 5:4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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