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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어린 것들 죽여서 뭐하냐" 아수라장에도 사람이 있었다
[기억전쟁]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족 충남 태안 소원면 정만호 이야기


▲ 만리포 해변 ⓒ 신문웅

(서울=오마이뉴스) 박만순 기자 = 콜록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났다. 창고 안은 캄캄했다. 그나마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서 가까이 앉은 사람을 식별할 수 있었다.

"엄마, 배고파요." "이것아, 이 난리 통에 배고픈 것이 대수냐!" 어린 자식에게 핀잔을 주었지만 애틋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이곳 모항초등학교(충남 태안군 소원면) 창고에 갇힌 이틀 동안 먹은 게 하나도 없다 보니 모두가 허기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 머릿속에는 배고픔보다는 '우리가 살아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늦가을의 쌀쌀한 날씨도 마음을 위축시켰다. 11월 초 서늘한 날씨인데도 창고 안에는 이불은 고사하고 덮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창고 안에 갇혀 있는 사람 30명 중 마음 편히 잠든 이는 하나도 없었다.

"어린 것들 죽여서 뭐하냐! 당장 풀어 줘"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창고 문이 열렸다. 흐릿하게 사람 형체가 보였고 누군가 소리쳤다. "전부 일어섯!" 엉거주춤 일어나는 행렬 중에는 정만호(1938년생)를 포함한 소년 셋이 있었다. 정만호와 송사성, 정석영은 또래 친구들이었는데 특히 정만호와 정석영은 자신들이 갇혀 있는 모항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제 죽으러 가는구나'라고 생각한 이들의 얼굴은 침울해졌다. 소년들은 백짓장 같은 어른들의 얼굴을 보니 덩달아 얼굴이 하얘지고, 몸이 덜덜 떨렸다.

함석지붕의 창고 입구에는 소원지서장과 경찰들, 치안대원, 아낙네와 청·장년이 서있었다. 그들 앞을 지나가는 정만호는 마치 저승사자 앞을 가는 듯했다. 그런데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게 아닌가.

"어린 것들 끌고 가서 어쩌려구 그래? 얘들은 당장 풀어줘!"

이렇게 외친 이는 박일옥의 아내(이름 미상)였다. 그 외침에 놀란 건 창고에 갇혀 있던 이들만이 아니었다. 입구에 서 있있던 경찰과 치안대원들도 놀랐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의 남편 박일옥(당시 38세)은 다름 아닌 인민군과 지방좌익에 의해 학살된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박일옥은 인민군이 후퇴하기 직전 태안내무서(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인민군과 지방좌익에 의해 서산경찰서에서 동남 방향으로 5Km 거리에 위치한 양대리 해변에서 학살되었다.

박일옥의 아내처럼 남편이나 자식이 인민군과 지방좌익에 의해 학살된 이들은 '부역혐의자'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데 동원되었다. 그러니 박일옥의 아내가 한 말에 눈이 휘둥그래질 수밖에... 대부분 사람들은 '저놈의 패거리들 때문에 우리 가족이 죽었다'며 울분에 차 있었다.

하지만 정만호를 비롯한 12, 13세의 소년들은 원수일 수도 없었고, 빨갱이일리도 없었다. 그렇기에 박일옥 아내의 말에 누구도 제동을 걸 수 없었다. 결국 지서장은 부하들에게 소년들을 풀어 주라고 했다. 1950년 11월 1일 밤 12시경의 일이었다. 아수라장에서도 사람이 있었다.

밤새 울다가 다음날 죽은 '간난이'

박일옥 아내의 구명에 힘입어 소년 정만호, 송사성, 정석영은 살아났지만 나머지 27명은 약 2시간 후에 죽음을 면치 못했다. 지서장이 앞장서고 정만호의 어머니 가씨와 송사성의 어머니 김귀옥을 포함한 여성과 10대 후반 소년들이 뒷결박 당한 채 따라갔다. 맨 뒤에는 죽창을 든 치안대원들이 있었다.

'죽음의 행렬'은 모항초등학교에서 출발해 현재 태안군 소원면에 있는 만리포해수욕장 근처로 갔다. 수동너머 모래밭 언덕에는 집채만한 웅덩이가 군데군데 있었다. 이곳은 해당화 군락지로 여름이면 붉은 꽃이 사방을 붉게 물들였다. 가씨와 김귀옥 등 27명이 웅덩이 위에 세워졌다. 지서장이 하늘을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사살 신호였다. 경찰들의 카빈 총구에서 불이 뿜었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사람들이 짚단 넘어지듯 쓰러졌다.

잠시 후 "확인해"라는 지서장의 말에 치안대원들은 주검을 향해 발자국을 뗐다. 그들은 죽창으로 쓰러진 주검을 쑤셔댔다. 가슴, 복부, 얼굴, 팔, 다리 가리지 않았다. 피가 뿜어져 나오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11월 2일 날이 밝고 '만리포에서 사람들이 죽었다'라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해변에 모여들었다. 정만호도 세 살 위 누나 정채임(1935년생)과 함께 갔다. 커다란 모래구덩이에 피로 물든 시신들이 쌓여있었다. 정만호는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했지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소원지서 경찰들이 총구를 들이대며 "가까이 오면 모두 죽을 줄 알아!"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오후에 유가족들이 다시 왔을 때 다행히 경찰들은 보이지 않았다. 정만호는 옷과 뻐드렁니를 보고 어머니를 찾았다. 그는 누나와 함께 어머니의 팔을 하나씩 잡고 시신을 끌어낸 후 근처에다 가매장했다. 송사성도 어머니 김귀옥의 시신을 가매장했다.

당시 송사성의 여동생 '갓난이'는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상황이었다. "으앙." 아기는 엄마가 죽은 걸 알았는지 밤새 울어댔다. 할머니가 미음을 쑤어 먹이려 했으나 갓난이는 거부하고 울기만 했다. 그렇게 밤새 울어댄 갓난이는 다음날 엄마 곁으로 갔다. 이름도 없었다. 그저 '갓난이'로 불린 아기였다.

교통호 파는데 동원된 마을 사람들

1950년 10월 말 경찰이 수복한다는 소식에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사람들은 피난짐을 싸기 시작했다. 인공(인민공화국) 시절 모항리 사람들 전체가 인민군의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현재의 만리포해수욕장 바닷가에 교통호(방공호)를 파는 부역이었다. 교통호는 폭 1m에 성인 어깨 높이로 팠는데, 바닷가에 접해 있는 소원리는 모두 그들 담당이었다. 인근 파도리, 의항리 사람들도 모두 방공호를 팠다.

마을 사람들이 전부 동원된 이 작업은 인민군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주민들은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피난짐을 쌌다. 정만호의 어머니 가씨도 셋째 딸 채임과 막내 만호에게 보따리 하나씩을 주고 자신의 친정인 원북면 동해리로 출발했다. 그녀는 출발하면서 장남 남호(당시 25세)에게 "니는 태안 가서 동생(구호, 당시 19세) 데리고 외갓집으로 오니라"라고 말했다.

장남 남호와 헤어진 가씨 일행이 동해리 고개를 막 넘어갈 때였다. "꼼짝 마!" 그들은 10월 30일 소원지서 옆 농협창고에 구금되었고, 남호·구호 형제도 같은 날 저녁에 붙잡혀 왔다. 다행히 다음날 새벽에 만호와 채림은 '어리다'는 이유로 석방되었다. 하지만 풀려난 지 하루도 안 돼 정만호는 도로 모항초등학교 창고로 끌려갔다. 거기에는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다음날 저승길로 가기 직전 정만호는 박일옥의 아내 덕택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소년단에 가입했다고 죽어


▲ 증언자 정만호 ⓒ 박만순

하지만 소원지서 옆 농협창고에 구금되어 있던 정남호·구호 형제는 11월 4일 태안군 소원면 신덕리 염전 원뚝 방조제에서 학살되었다. 정씨 형제는 머리와 가슴에 여러 발의 총상을 입었는데, 동생 채임과 만호, 집안 일가가 지게를 가져가 시신을 수습했다. 정만호의 친구 송사성은 형 옥순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렇다면 정씨 형제는 어떤 이유로 학살되었을까?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의 자료에 의하면 정남호는 1950년 4월 22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정구호는 1950년 6월 19일 상해죄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죄(?)가 경미해 불기소 처분되었다.

정만호는 "형들이 인공 시절 소년단에 가입했던 것 같다"고 증언한다. 하지만 소년단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적법한 절차 없이 19, 25세의 청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정만호의 어머니와 형들이 죽은 뒤에도 소원면 모항리의 공포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수복 후 치안대 사무실로 쓰인 정낙설 집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1950년 11월 초 부역혐의자를 집단학살한 이후에도 잔존 부역자들을 색출해 처벌한다는 명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치안대 사무실로 끌려가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정만호 역시 누나 채림과 함께 끌려갔다. 열세 살 소년 정만호는 한참을 매에 시달렸지만 그의 입에서는 나올 얘기가 없었다.

사망신고를 조작한 경찰과 공무원

1951년 말 정남호는 어머니와 형들의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 소원면사무소에 갔다. 그는 호적계에 가서 "사망신고 하러 왔는디유"라고 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깜짝 놀랄 소리를 들었다. "이미 사망신고가 돼 있는데." "그럴 리가 없는디유?" 공무원이 내민 서류에는 '가씨와 정남호·구호 형제가 1950년 10월 15일 상오(오전) 2시에 (태안군) 소원면 신덕리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1950년 10월 15일에는 가씨와 정씨 형제가 모두 살아 있었다. 가씨 모자는 각각 11월 2일과 4일에 학살되었으며 장소도 달랐다. 그런데 죽기 17~20일 전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처리된 것이다. 사망 신고일은 1951년 7월 12일로 되어 있었다.

이런 황당한 일은 어떻게 발생했는가? 소원지서가 부역혐의자로 학살된 이들에 대한 기록을 정비(?)하면서 실제 사망일시, 장소를 다르게 기록한 것이다.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인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고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기 위한 조직적 진실 은폐 작업이었다.

이 허위 사망신고는 후일 명예회복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서산경찰서에서 나온 <신원기록 심사보고>에 기초해 가씨와 정만호·구호를 '피해자'로 확정했는데, 재판부는 '근거 없다'며 패소판결을 내렸다. 거기에는 조작된 '사망신고서'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국가가 학살하고, 사망신고를 위조하고, 죽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잡아뗀 형국이다. 경찰·치안대, 공무원, 사법부의 불의(不義)의 합작품이다.


▲ 정만호의 어머니와 형들의 사망사실이 조작된 신고서 ⓒ 박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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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21년 9월 20일, 월 9:5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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