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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천국엔 계단이 있을까?: 당신을 위한 하늘나라 가이드
[탐독의 시간] 폴라 구더 <마침내 드러난 하늘나라>

(서울=뉴스앤조이) 김영환

1. 들어가며: '하늘나라'가 아니라 '하나님나라'라면서요!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성서 속 인물들이 꿈꾸던 하늘나라를 생각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사실 '하늘나라'보다는 '하나님나라'가 익숙해진 지 꽤 오래다. 예수가 가리킨 '하늘나라(Heaven)'는 곧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가 아니었던가? 예수는 로마 황제의 전유물인 '유앙겔리온'을 통해, 로마 황제의 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지 않았던가?

확실히 신학을 공부한 이후로는, 교회에서 준 심방용 밥상에 그려진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천국 이미지(이를테면 뭉게구름 위에서 천사들과 나팔을 불며 보좌로 나아가는 장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졌다. '하늘나라'를 논하며 하늘 위 수많은 천사, 하나님의 보좌 등을 논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이뤄 낸 오늘날 상식과도 맞지 않다. 그렇다 보니 더 이상 '천국'·'하늘나라'·'하나님나라'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어 하늘을 올려다볼 일도 없어졌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2. 폴라 구더의 하늘나라 가이드

"이 책은 하늘나라에 대한 '일반적인 가이드'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27쪽)

차세대 '톰 라이트'라고 불리는 영국의 신학자 폴라 구더(Paula Gooder)는 <마침내 드러난 하늘나라>(학영)에서 본인의 표현처럼 하늘나라의 '가이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그의 논지를 따라가다 보면, 하늘나라의 낯선 곳을 잘 탐방할 수 있으며,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하늘나라의 이모저모를 통해 잘못된 하늘나라 인식을 교정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마침내 드러난 하늘나라> / 폴라 구더 지음 / 이학영 옮김 / 학영 펴냄 / 284쪽 / 1만 6000원

1) 가이드의 필요성

폴라 구더가 가이드를 작성한 이유는, 하늘나라가 말 그대로 가이드를 필요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가이드 없이 하늘나라를 상상한 이들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언정, 실상은 수많은 '썰'에 근거한 빈약한 상상에 머무르기 마련이다.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해진 일반적인 정보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선별되지 않은 이미지(내 경우에는 집에 있는 교회 심방용 밥상)로 하늘나라를 상상하게 된다.

하늘나라에 익숙하지 않는 이들은 더욱이 훌륭한 가이드가 필요하다. 초행길일수록 좋은 길잡이가 중요한 법. 폴라 구더는 우리가 가진 다양한 하늘나라 이미지들의 근거를 점검하고 이를 새로운 의미 체계로 엮어 낸다. 구더의 목표는 하늘나라 이미지들을 단지 개인의 사후 세계가 아닌, 이 땅 너머의 '새로운 차원'이자 '현실을 바꿔 내는 가능성'으로 제시하는 데 있다.

"따라서 하늘나라에 대한 개념들을 소개하는 동시에 하늘나라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실천에 있어서 어떠한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다룰 것입니다." (27쪽)

2) 가이드에 등장하는 이미지들

구더의 가이드에는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일상에서는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 이미지들이 등장한다. 스랍과 그룹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 실제 성서 속 인물들이 생각했던 '하늘에 있는' 나라, 하나님의 보좌와 그 주위를 둘러싼 병거, 하늘로 들려 올라간 이들까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꽤나 익숙한 이름·이미지들이지만 익숙한 만큼 정체가 모호한 것들이기도 하다. 어째서 하늘나라를 설명하며 이런 이미지들을 나열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구더는 하늘나라를 빗댄 성서 속 수많은 이미지가 '은유' 차원에서 서술된 것임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것은 인간의 경험에서 나온 언어이며, 인간이라는 그릇에 무한한 것을 담으려고 하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59쪽)

성서 속 인물들은 "탁월한 시적 상상력"(47쪽)을 통해 실재하는 하늘나라를 은유적으로 전달했다. 이 방식은 구약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신·구약 중간기를 거쳐 신약 시대로 올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일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자신이 '세 번째 하늘'에 다녀왔다고 증언한다. 하늘나라에 대한 이러한 상상력은 요한의 계시록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전해진다. 그러나 성서 속 하늘나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오늘날 현실에서 꺼내기 어려운 다양한 이미지들로 가득 차 있다. 이 지점을 현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 준다는 점에서 구더의 가이드는 전시회장의 도슨트처럼 빛을 발한다.

3) 가이드에 등장하는 이야기들

구더는 수많은 이미지를 검토하며 먼저 하늘나라의 '실재성'을 강조한다. 어떤 어린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슈퍼맨'으로 소개했다고 치자. 그때 그 아이에게 '슈퍼맨은 가공의 인물이니 네 부모도 가공의 인물'이라고 다그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실제 '하늘에 떠 있는 나라'가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되지 않는다고 해서 하늘나라가 실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은유'는 실재를 기반으로 삼는다(59쪽). 구더는 성서 속 수많은 인물이 다양한 방법으로 가리킨, '마침내 드러난 하늘나라'의 실재성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자 한다. 그리고 시적 언어로 구성돼 추상적이고 모호해 보이는 이 하늘나라 이미지가, 오히려 현실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역동성을 부여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만일 하늘나라가 땅만큼이나 실재(reality)한다면, 그렇다면 하늘나라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모든 시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54쪽)

구더는 하늘나라의 실재성이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의 실재성과 동등하고 말한다. 야곱의 환상은 이 땅과 하늘이 사다리로 연결돼 있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이들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땅과 하늘이 연결돼 있다는 상상은 요한복음 1장 51절1)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이미지로 재해석된다. 구더는 하늘나라의 실재성이 결국 '예수'라는 통로를 통해 땅의 실재성과 연결된다고 말한다. 구더가 가이드를 통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명료하다. "하늘나라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세계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그러한 세계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끌고 오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256쪽)한다는 것이다.




3. 가이드의 몇 가지 특징

1) 어려운 듯 쉬운 가이드

"저는 이 책에서 학문성과 대중성 사이를 걷는 어려운 길을 택했습니다." (27쪽)

구더의 가이드는 어려운 듯 쉽다. 먼저 다루는 문헌이 매우 폭넓다. 구약성서에서 외경, 신약성서, 사해문서, 유대-기독교 묵시문학, 랍비 문헌 까지 방대한 양의 문헌을 통해 하늘나라 이미지를 톺아 간다. 이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불쑥불쑥 등장하는 학자들 이름과 원어로 제시되는 개념어들, 시적으로 표현된 묵시적인 장르를 다룬다는 것을 감안하면 난이도는 더욱 올라간다. 그럼에도 이 책이 '쉽게' 읽힌다는 것이 놀랍다. 구어체로 서술된 것이 제대로 한몫한다. 약간의 낯섦을 참고 읽는다면, 실력 있는 도슨트의 섬세한 안내를 받으며 고대 문헌의 행간을 넘나드는 일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 '하늘나라' 팩트체크

더불어 구더의 가이드는 독자에게 상상력의 '레퍼런스'를 제공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하늘나라의 근거가 과연 무엇인지, 그 근거가 정당한지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다. 종종 우리의 이미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근거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디에서 보고 들었던 글·그림·설교·대화 등을 통해 '하늘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쌓이고, 시간이 지나 그 이미지들에 확신이 생기게 된다. 구더의 가이드는 '썰'이 아니라 문헌에 근거한 '팩트체크'다. 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읽으며 하늘나라에 대한 내 상상력과 근거가 얼마나 빈약했는지 느꼈다. 마음에 품은 이미지는 확실했지만 근거는 형편없었다.

3) 공정한 가이드에 사이다는 없다

구더는 자신의 가이드를 서술해 가며 줄곧 공정한 학자의 면모를 보여 준다. '사이다'를 기대했던 독자들에게는 약간의 아쉬움을 남길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구더의 가이드가 '고구마'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 이매모호함(?)은 책 서문에 등장하는 다음의 멘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2가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하늘나라에 대해 성경 전체가 말하는 바를 딱 잘라 단정 짓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장 초기의 문헌에서부터 가장 후대의 문헌에 이르기까지 (하늘나라에 대해) 단일하고 명확한 전개 방향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관한 성경의 생각은 다양하고도 복합적이며 또한 유동적입니다." (29쪽)

이를테면 구더는 부활·승천·죽음·지옥에 대한 견해를 내비치지만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게 "A=B"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공정한 태도로 하늘나라 이미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적 가능성을 풀어 줄 뿐이다. 구더는 감춰진 하늘나라의 '마침내 드러난' 부분들을 차분하고 겸손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성경의 저자들은 언어와 이미지를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역을 묘사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곧 그들과 같은 일을 해내는 것입니다." (263쪽)

4. 나가며: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나라를 상상한다는 것

때로는 너무 화창해서, 때로는 너무 우중충해서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게 '하늘'이다. 이런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나라'를 상상할 수 있을까? 구더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조국의 멸망과 함께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던 다니엘도, 갖은 핍박을 당하며 옥중에 있던 바울도 하늘을 바라보며 소망을 품었다. 더 엄밀하게 표현하자면 '하늘'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하늘나라를 바라봤다. 그들의 또렷한 상상력은 손에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하늘의 나라'를 마치 손에 쥔 듯한 '구체적 현실 속 실재'로 만들었다.

어찌 보면 '하늘을 통해 하늘나라를 상상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조금 수정돼야 한다. 반드시 하늘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하늘'은 하늘나라를 가리키는 '손가락'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신앙의 선조가 하늘을 통해 하늘나라를 가리켰다면, 우리는 '현대인의 시적 상상력'으로 하늘나라를 가리킬 수 있다. 그 뿌리가 '하늘'로 대표되는 구약성서로부터 내려오는 상상력에 근거하고 있다면 말이다. 구더의 가이드는 성서의 전통에 등장하는 수많은 묵시적 이미지를 하나씩 검토하며 '마침내 드러난 하늘나라'를 선명하게 만든다. 독자들에게도 이 전통 안에서 새로운 상상력으로 실재하는 하늘나라를 표현해 낼 것을 권한다.

물론 하늘나라에 대한 '아무 말'이 가능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내가 갖게 된 하늘나라에 대한 편견도 상상력을 가장한 '아무 말'에서 비롯했기 때문이다. 이를 염려하듯, 구더는 자신의 가이드를 다음과 같은 말로 마친다. 이 말이 특히 매 주일 하늘나라를 '말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경종으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단어나 이미지, 시(poetry)가 부족함을 느낀다면, 어쩌면 가장 표현이 뛰어난 언어는 곧 침묵일 수도 있겠습니다." (263쪽)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9월 13일, 월 4:4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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