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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풍산개 산돌이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3]




5.

올해도 똑같았다. 아비가 먼저 도라지 한 뿌리를 찾았고, 다음엔 내가 한 뿌리를 찾았다. 두 뿌리 다 내가 먹었다. 그리고 아비가 산삼 한 뿌리를 찾았고, 내가 캤다.

"이거 몸에 좋은 거잖아. 아비 먹어."

아비에게 배운 대로 잔뿌리 하나 상하지 않게 캐낸 산삼을 내밀었지만 아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진사어른 가져다드려야 해."
"왜? 아비는 작년에도 진사어른에게 이거 가져다 바쳤지만, 진사어른은 우리에게 감자 한 알도 더 주지 않았잖아. 올해는 아비가 먹어."
"그러면 안 돼."
"왜 안 돼? 산삼을 찾은 건 아비고, 캔 건 난데."
"이 산이 진사어른의 것이니까, 이 산에서 나는 것도 다 진사어른의 것이지."
"에이, 그럼. 아까 내가 먹은 도라지는 뭐야."
"......"
아비는 대답을 못했다.
"이 산에 사는 토끼, 멧돼지는 뭐든 다 뜯어먹는데?"
"짐승이 먹는 거야 괜찮지."
"난 짐승 아닌데?"
"......"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굴만 붉어진 아비가 내 눈길을 피하며 산돌이에게 소리쳤다.

"이놈아, 길이 아닌 곳으로 뛰어들면 어떻게 해. 대가리를 디밀어도 길을 보고 디밀어야지."

내가 산삼을 캐는 내내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을 맴돌던 산돌이는 아비의 꾸중에도 아랑곳 않고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산 아래쪽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비도 산돌이의 반응은 살피지도 않고 딴 생각을 하는 사람처럼 느릿느릿 산삼을 바랑에 챙겨 넣었다.

산돌이 갑자기 맹렬하게 언덕 아래로 돌진한 건 호미를 바랑에 집어넣고 일어서려는 찰나였다. 말릴 겨를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녀석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비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산돌이 사라진 숲속으로 따라 들어가던 우리는 눈이 더 커졌다. 산돌이 산토끼 한 마리를 물고 의기양양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산돌은 우리의 발 앞에 물고 온 토끼를 내려놓았다. 산돌이 뒷덜미를 놓자 죽은 줄 알았던 토끼가 갑자기 풀쩍 뛰어 일어나 쏜살같이 도망쳤다. 하지만 열 걸음도 뛰기도 전에 산돌이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풍산개가 다르긴 다르구나."
죽은 토끼의 피를 빼고 마른 칡넝쿨로 목을 묶는 아비의 표정이 어두웠다.

산돌의 솜씨에 감탄했던 나는 아비의 반응이 이상했다.

"아빠는 산돌이가 토끼 잡은 게 안 좋아?"
"좋지. 그런데 산삼 밭에서 피를 본 게 좀 그렇구나."
"왜?"
"산삼은 신령한 곳에서만 자라거든."
"그럼... 도라지 밭이라고 하면 괜찮잖아. 도라지가 더 많으니까."
"그래, 그래도 되겠구나..."

아비는 말끝을 흐리며 토끼를 허리춤에 차고 가려고 칡넝쿨을 한 바퀴 감아 돌렸다.

"내가 차고갈래."
"함부로 피 묻은 짐승 만지는 거 아니다."

나는 입을 삐쭉 내밀었다.

"아빠는 만져도 돼?"
"난 무슨 일 있으면 네 엄마한테 가면 되지."
"그럼, 범돌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비의 눈에 물기가 그렁거렸다. 마주보는 내 눈을 피하며 아비는 등을 토닥였다.

"가자."

아비의 말이 떨어지자 산돌이 거만한 걸음걸이로 앞장을 섰다. 뒤따르는 아비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몇 걸음 가다 말고 아비가 뒤를 돌아보며 내게 말했다.

"범돌아, 여기를 잘 기억해둬라. 아무한테도 이곳에 산삼밭, 아니 도라지밭이 있다고 말해선 안 된다."
"그래서 작년에도 마름아저씨와 진사어른께 산 너머에서 캤다고 한 거야?"

나는 아비가 거짓말 하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응, 산삼 나는 곳은 자식한테도 안 알려주는 거야."
"범돌이. 아비 자식 아냐? 아비는 왜 나한테 알려주는데?"

어둡던 아비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번졌다.

"자식이지. 하나뿐인, 아주 특별한."

나는 아비의 눈길을 쫓아 엎드린 소의 등짝같이 생긴 바위를 중심으로 도라지밭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앞서가던 산돌이도 돌아와 아비의 허리에 매달린 자신의 전리품과 토끼의 숨통을 끊은 전적지를 한 번 더 확인했다. 핏물이 스민 흙은 아비가 마른 나뭇잎으로 덮어 흔적이 없었지만 산돌은 정확히 그 자리를 기억했다.

아비는 도라지밭을 벗어나며 다시는 오지 못할 사람처럼 몇 번이나 돌아봤다. 그때마다 나도 아비를 따라 도라지밭을 돌아봤다.

"저쪽으로 가야지."
지난해까지는 도라지밭에 들린 다음 송이를 따러 능선을 타고 갔는데, 올해는 산꼭대기로 향했다.

"다 컸네, 우리 범돌이. 작년의 길을 다 기억하는구나."
아비는 안심이 되는지 내 머리를 다시 쓰다듬었다.

"오늘은 진사어른이 쓸 약초를 뜯으러 가야 한다."
아비가 하루에 두 번씩이나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는 처음이었다. 아비의 손길을 더 받고 싶어서였을까. 아비의 허리춤에 매달린 토끼를 보며 나는 불쑥 물었다.

"그럼, 이 산에서 나는 약초도 다 장진사 꺼야?"
아비는 등을 보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 토끼도 장진사 꺼야? 우리 산돌이가 잡았는데."
아비는 비로소 화난 사람처럼 나를 돌아보았다.
"장진사 아니고, 진사어른이다."
나는 입술을 잔뜩 내밀고 아비를 쳐다봤다.
"바보! 전부 다 장진사 꺼래. 그럼 우리 껀 모야?"
아비는 못들은 척했다.
"아이 씨. 이렇게 큰 산에서 우리 건 풀 하나도 없냐구."
"자꾸 엉뚱한 소리 하려면 산돌이 데리고 내려가라."
"그럼, 아비도 같이 내려가."
아비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아비가 타고 오르는 산줄기는 아주 가팔랐다. 칠부 능선부터는 크고 작은 돌덩이와 바위 투성이인 돌산이었다. 드문드문 눈꽃을 피운 소나무만 외롭게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아비는 돌덩이를 건너 디디고 가파른 바위를 타고 넘으며 앞서갔다. 고개를 치켜들면 앞서가는 아비의 등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짚신 바닥이 올려다 보였다. 나는 몇 번이나 미끄러졌다.

맨 앞에 가던 산돌이는 내가 미끄러질 때마다 돌아보며 희고 토실토실한 꼬리를 흔들어보였지만 바로 앞에 선 아비는 걸음을 멈추었을 뿐 돌아보지 않았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에 발 디디지 말라고 했잖아."
아비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내가 눈 위를 어림짐작으로 밟은 것을 알았다.

"보이는 곳을 밟고 가도 미끄러지는 것이 산이라고. 내가 밟는 곳을 따라 밟으란 말이야."
아비는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게 그런 적이 없는 아비였다.
"칫." 조금 휘청거리기만 해도 손을 내밀어 잡아주며 산 타는 법을 자상하게 일러주던 아비였다. 나는 아비의 말을 거역하고 싶어 일부러 아비가 밟은 곳을 피해 발을 디뎠다.

내가 크게 미끄러진 것은 구부 능선의 바위벼랑을 눈앞에 두고였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 난 틈새는 너무나 가팔라서 똑바로 서서 올라가는데도 바닥이 가슴에 닿았다. 나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바위 모서리와 나뭇가지를 잡고 겨우 아비를 쫓아갔다. 이를 악물고, 아비가 디디고 잡는 것을 쳐다보지도 않고 쫓아가는데 도무지 발을 붙일 곳도 손으로 잡을 곳도 마땅치가 않았다. 손이 겨우 닿을 곳에 굵은 나무 등걸이 보였다. 오른팔로 나무 등걸을 잡으며 발을 떼는 순간 나무 등걸이 맥없이 쑥 뽑혔다. 나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한 길 아래로 미끄러져 내렸다.

아비가 뛰어내려와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웠다. 아비보다 먼저 날듯이 달려온 산돌이 내 뺨을 핥았다. 바위에 갈린 턱과 무릎, 손바닥에게서 피가 났지만 팔과 다리는 탈 없이 움직였다. 아비는 마고자를 벗어 바위에 깔고 나를 비스듬히 눕힌 다음 바랑에서 곰의 뼛가루를 꺼내 상처에 뿌렸다.

"썩은 등걸을 잡지마라."
아비는 나와 함께 굴러 떨어진 굵은 나무 등걸을 쳐다봤다.
"썩은 등걸을 잡느니 풀잎을 잡는 게 나아. 아무리 굵은 나무도 썩으면 살아있는 풀잎 하나만 못하다."
"썩은 등걸도 살아 있는 풀잎도 어차피 다 장진사 꺼잖아."
비스듬히 누운 내 눈앞으로 강흥벌이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아비는 화를 내지 않았다. 말 없이 내 옆에 앉은 아비가 내 시선을 따라 강흥벌을 바라보았다.

"그렇구나. 저 넓은 벌에도 발 하나 올려놓을 내 땅은 없구나."
강흥벌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였고, 서쪽으로 감아 돌며 흐르는 순화강만 길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 것은 없고, 나에게 속한 것은 너 하나고 너에게 속한 건 나 하나인데 내가 네 아비여서 미안하구나."
"......"
"그래도 난 네가 내 아들이어서 좋았다."

아비와 나는 오래, 눈이 경계를 지운 강흥벌과 아직 얼지 않고 흐르는 순화강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소나무 가지에 핀 눈꽃을 우리의 눈앞으로 날려 보냈다. 오후 햇살이 따스한 겨울이었다. 그것이 성한 아비와의 마지막 시간인 줄 알았으면 나는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산돌이가 우리 강아지여서 좋아."

6.

골쇄보는 바위의 갈라진 틈을 타고 가며 담쟁이 줄기처럼 뿌리를 뻗어갔다. 나도 같이 바위를 타려고 했지만 아비는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 미끄러워."
아비는 얼었다 녹고 있는 바위를 발로 밀어보였다.

아비가 혼자 벼랑 위에서 바위를 타고 내려가며 골쇄보의 뿌리줄기를 뜯어 바랑에 담는 동안 나는 벼랑 사이의 바위틈에 산돌이와 쪼그리고 앉아 바람을 피했다.

아비의 비명과 거의 동시에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건 내가 깜빡 졸음에 빠졌을 때였다. 산돌이가 먼저 내달렸다. 바위에 미끄러지고 벼랑에 부딪치며 내가 달려내려갔을 때 피투성이가 된 아비는 꼼짝도 못하고 쓰러져 있었다.

나는 바보처럼 아비를 부르며 울기만 했다.
"범돌아..."
죽은 줄 알았던 아비가 입을 떼며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아비의 어깨에서 바랑을 벗겨내고 아비를 등에 들쳐업었다.

"삼, 골쇄보. 가져가야지."
아비는 구부정한 손가락으로 내가 벗겨 내던진 바랑을 가리켰다.
"저딴 게 뭔데."

아비는 힘 빠진 손으로 내 팔을 잡았다. 나는 바랑을 집어 내 어깨에 멨다. 아비를 업었지만 내 키가 모자라 아비의 발이 바닥에 끌렸다. 업고, 끌고, 넘어지며 내려왔지만 7부 능선도 못미처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산중의 겨울 해는 짧았다. 저녁 어둠을 헤치고 앞장 선 산돌이를 따라 길을 더듬으며 내려가는 것도 잠시였다. 곧 산은 어둠에 완전히 잠겼고,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었다. 나는 아비를 누이고 불을 지폈다.

불을 지피자 여기저기서 산짐승이 울기 시작했다. 산돌은 귀와 꼬리를 세우고 울음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방어태세를 취했다. 천천히, 그러나 잠시도 멈추지 않고 우리 주변을 맴돌던 산돌이 어느 순간 멈춰 섰다. 그리고 짖기 시작했다.

컹컹, 산돌의 울음이 계곡에 메아리쳤다. 컹-컹. 산돌은 메아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려 다시 짖었다. 컹컹. 그렇게 얼마나 짖었을까. 산돌이를 바라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컹컹, 산돌이가 입을 다물고 있는데 산돌이의 울음이 들렸다. 그건 산돌이의 것이 아니었다. 컹컹. 이번에는 산돌이었다. 컹-컹. 메아리였다. 그리고 다시 들려오는 다른 산돌이의 울음, 컹컹. 산돌이는 입을 다물고 귀를 세운 채 그 소리를 들었다. 산돌이와 마주 짖는 개의 울음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신포수를 데리고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산돌이의 아비 풍산개였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9월 07일, 화 6:1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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