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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내 남자의 유년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




(서울=오마이뉴스) 방현석(소설가)

1장

내 유년은 지옥이었다.
일곱 살에 고아가 되었던 내가 평양 서문시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기적이었다.
아니다. 열두 살이던 내 오빠 백무현이 나를 지켜냈다.
다섯 살 위인 내 오빠의 열두 살은 매일 피투성이 전쟁이었다.
그해 아홉 살이었을 내 남자의 유년을 나는 모른다.
그의 유년은 나보다 덜 지옥이었을까.
- 백무아 <비망록>

1

나는 아홉 살에 단독자가 되었다. 그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단독자로 살아가기로 선택한 것은 열네 살이었다. 아비가 죽었기 때문에 단독자가 된 것은 아니다. 아비는 이미 그 전부터 나의 보호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머슴일 뿐이었다. 그는 상머슴 나는 꼴머슴. 이름은 달랐지만 주인 일가가 시키는 무슨 일이든 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으로 아침저녁을 얻어먹고, 감자 한 알로 점심을 때우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비의 목숨이 아직 붙어 있던 아홉 살의 겨울을 잊지 못한다. 폭설이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덮였던 아침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 아비의 다리가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대청마루에 서 있는 장문환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래서?"
"의원을... 한 번만 청해주십시오."
더듬거리는 나를 장문환은 딱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네 아비가 그러라더냐?"
"아니옵니다. 제가..."
"그러면 네가 부르면 되지 않느냐."
"제가 두 번이나 가서 부탁을 드렸는데... 아니 된다고 해서..."
"못 온다는 의원을 내가 강제로 끌고 올 수는 없지 않느냐."
나는 서러움으로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러쥔 작은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고 마당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꿇어본 무릎이었다.
"제 아비는 이제 아무것도 삼키지 못합니다."
장문환은 혀를 끌끌 차고 나서 갑산댁을 불렀다.
"내 인정이 그렇지 않거늘, 미음이라도 쑤어먹이도록 좁쌀 한 되 내어 주거라."
고개를 들며 일어서는 내 눈에 장문환의 버선발이 보였다. 그의 표정이 보고 싶어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장문환이 등을 보이고 돌아선 다음이었다.
"아이고, 범돌이 안 되서 어쩐다니."

갑산댁이 부들부들 떨고 서 있는 나의 팔을 잡아끌며 행랑채로 갔다. 하얀 눈밭으로 변한 행랑채 앞마당에서 뛰어놀던 새하얀 산돌이가 하얀 입김을 뿜으며 나에게 달려왔다. 여느 때처럼 손을 뻗어 앞발을 받아주지 않자 녀석은 내 가슴팍으로 더 높이 뛰어올랐다. 갑산댁은 됫박을 들고 안채로 좁쌀을 타러 가고, 나는 행랑채 부엌 문턱에 걸터앉았다.

"오늘따라 무슨 연기가 이렇게 많이 난다니."

나와 눈이 마주친 옥희가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을 얼른 훔치며 아궁이로 장작 하나를 집어넣었다. 옥희 뺨의 물기는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붉은 장작불이 말렸고, 내 뺨의 물기는 산돌이가 혀로 핥아 지웠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만 부엌을 울렸다.

"아주마니. 한 움큼만 끓여주세요."

미음을 끓이려던 갑산댁이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좀 넉넉히 끓여야 너도 한 술 먹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남은 좁쌀을 보자기에 쌌다.
"어디에 쓰려고?"
"의원한테 가려고요."
범돌아, 행랑채를 나서는 나를 갑산댁이 불러세웠다.
"그거로야 되겠니."
갑산댁이 보리쌀 두 되를 내왔다.
"우리도 모아둔 게 없네. 얼마 되진 않지만 이거라도 더 가져가봐라."

2

눈길을 헤치고 시오리 길을 걸어가는 동안 눈물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나는 사람에게 그토록 많은 눈물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김의원댁에 도착한 나는 눈 쌓인 마당에 엎드렸다. 김의원이 방문을 연 건 두 식경이 지나서였다.

"그래, 장진사는 뭐라더냐?"
"좁쌀 한 되를 내주었습니다."
"헛, 이게 그것이냐."
문 앞에 놓은 보자기를 내려다보며 김의원이 물었다.
"좁쌀은 한 되에서 한 움큼이 모자랍니다. 한 움큼은 아비의 미음으로 썼습니다. 보리쌀 두 되는 행랑채 아주마니에게 빌렸습니다. 제발 한 번만 제 아비를 보아주시면 그 은혜를 반드시 갚겠습니다."
"너 몇 살이냐?"
"아홉 살입니다."
"식구는?"
"아비와 저, 둘입니다. 오마니는 절 낳고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한참을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던 김의원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일어나라."
"한 번만 보아주십시오."
오늘은 그냥 일어서지 않으리라 작정을 한 나는 엎드린 채 머리를 조아렸다.
"이놈아, 일어나야 갈 것 아니냐."

내가 일어서자 주변을 맴돌던 산돌이 달려들어 다리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왕진가방을 챙겨나온 김의원이 방문 앞에 놓인 보자기를 향해 턱짓을 했다. 나는 보자기를 들어 마루 안으로 밀어넣었다.

"들고 가야지."

나는 무슨 뜻인지 몰라 의아한 눈빛으로 김의원을 쳐다봤다.

"이놈아, 먹을 게 없는데 치료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올 때는 내 뒤에서 따라오던 산돌이 돌아갈 때는 앞장 서 눈길을 헤쳐 나갔고, 김의원이 그 뒤에 서고, 내가 끝에 섰다.

3

김의원은 굵고 긴 대침을 아비의 오른쪽 허벅지 깊숙이 박았다. 아비는 얼굴을 찡그리며 시커멓게 변한 입술을 깨물었지만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다. 김의원이 천천히 대침을 뽑아내자 아비의 허벅지에서 입술보다 더 시커먼 피가 흘러나왔다. 김의원이 이번에는 왼쪽 허벅지에 한 뼘이나 되는 대침을 박아 넣었고, 나는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엎어라."

상체를 일으키려고 애를 쓰는 아비의 어깨를 누르며 김의원이 아비의 하체를 턱으로 가리켰다. 김의원은 나에게 눈길을 돌리며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김의원이 상체를, 내가 하체를 잡고 아비를 굴렸다. 김의원은 엎드린 아비의 허리를 왼손으로 지긋이 눌러가며 침 꽂을 자리를 찾았다. 한참이 걸려서야 대침의 절반 남짓 되는 침 하나를 꽂았다. 김의원은 다음 침 꽂을 자리를 찾아 아비의 허리를 눌러가며 반응을 살폈다.

"혈도 잡히지가 않는데, 이빨까지 앙다물고 있으면 어떻하나!"

끙, 그제서야 아비가 처음으로 신음을 뱉었다.

"아, 아!"

김의원은 아비의 신음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침을 꽂아나갔다.

"입으로 삼켜서 가장 독이 되는 게 뭔지 아는가?"

다시 아비가 입술을 깨물자 김의원은 손끝으로 침 꽂을 자리를 찾으며 아비에게인지, 어린 나에게인지 모르게 물었다.

"신음일세. 신음에는 오장육부에 쌓인 독이 담겨 있네. 그걸 토해내지 않고 삼키면 오장육부가 다 상하는 것이야."

김의원은 아비가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침 하나를 꾸-욱 찔러넣었다.

"으, 아"
"고름을 뽑지 않으면 살이 상하고 어혈을 내버려두면 혈이 막힐 뿐이지만, 오장에 쌓인 독은 스스로 토해내지 않으면 그 독이 육부로 퍼져서, 의원이 고칠 수 없는 것이 되네."
"으, 으아악!"
"신음을 삼킨 채 죽으면 송장도 검게 썩는다네."

열 개가 넘는 침을 아비의 허리에 꽂은 김의원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했다. 야멸차게 왕진을 거절했던 김의원에 대한 원망을 잊어버린 내 눈에 물기가 울컥 차올랐다. 마지막 한 개의 침을 찔러 넣었을 때 아비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비명을 질렀다.

"으악, 으아악-"

그건 신음이 아니라 울부짖음이었다.

"대체 벼랑에는 왜 기어 올라가서 이 지경을 당했나 그래?"

끙, 끙. 아비는 신음을 낮게 토해냈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던 그 질문에 나는 말하고 싶었다.

"골쇄보를 뜯으러 갔지요."
"누가 골절을 당했나?"
"아니요. 장진사가 쓸 약이라고, 서리가 내리고 바위가 얼기 시작할 때 것이 제일 약효가 있다고 해서요."

허헛, 김의원이 헛웃음을 쳤다. 나는 그때까지 골쇄보가 어떤 효능을 가진 약초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남자의 가운데 뼈에 효험이 있다는 걸 알리는 더욱 없었다.

4

아비는 가을걷이가 끝나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강막골로 갔다. 강막골산의 장진사네 선산은 대흥군에 있는 전답을 관리하는 마름이 돌보고 있었지만 장진사는 겨울마다 상머슴인 아비를 보내 살펴보게 했다.

"진사께서 해마다 조상을 이렇게 정성으로 모시는데 어찌 전답이 나날이 늘어나지 않겠나."

장진사네 식객들은 해마다 상머슴을 보내 선산을 돌보는 정성을 치켜세웠지만, 아비가 강막골에 가서 하는 일은 마름이 소작료를 중간에서 빼돌린 게 없는지 확인하고 선산의 나무를 재목이나 땔감으로 몰래 내주지나 않는지 세어보며 돌아보는 것이었다. 나는 여섯 살 나던 해부터 아비를 따라 강막골로 가 겨울 두 달을 보냈다. 너무 좋았다. 거기에서는 아비가 상전 대접을 받았고, 나도 아비 옆에서 마름과 겸상으로 밥을 먹었다. 우리가 밥상을 물려야 마름네 남은 식구들이 남긴 밥을 국에 말아 먹었다. 낭림산맥과 북대봉산으로 이어지는 강막골산은 산세가 우거지고 약초가 유명해서 봄부터 가을까지 산꾼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겨울에도 송이를 따려는 사람들이 산지기 마름의 눈을 피해 계곡으로 스며들어 능선을 타고 다녔다. 올해도 지난해와 다르지 않았다. 서리가 내리고, 나는 아비를 따라 강막골로 갔다. 논밭을 둘러보고 소작료를 셈하는 일은 나흘 만에 끝났다. 장진사네 선산을 둘러보는 일도 사흘이 걸리지 않았다. 마름 김씨가 미리 묘를 잘 다듬어 놓아서 할 일이 따로 없었다. 아비는 나무를 베어낸 흔적이 보이면 미간을 조금 찌푸리고 김씨에게 물었다.

"땔감은 임자 없는 깊은 산에 가서 해야지, 삼부능선도 안 되는 여기서 나무를 잡으면 되겠수?"
"누가 나무를 잡았다구 그러우. 바람에 넘어갔기에 도끼질을 해서 치웠지."
나는 아비와 마름의 얘기를 들으며 다른 것이 궁금했다.
"나무를 어떻게 잡아요?"
"어떻게 잡다니?"
김씨는 엉뚱한 걸 묻는 내가 고마운지 무릎을 굽혀 나와 눈을 맞추며 되물었다.
"토끼나 멧돼지를 죽이는 게 잡는 거잖아요. 근데 어떻게 나무를 잡아요?"
"허어, 글쎄다... 나무도 살아있는 걸 죽이면 잡는 거지. 죽은 걸 찍어내는 건 잡는 게 아니고. 숨이 넘어간 멧돼지를 해체하는 걸 잡는다고 하지 않잖아."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름은 환하게 웃으며 아비를 돌아보았다.
"거 보시오. 범돌이도 우리가 나무를 잡은 게 아니라잖우."
"봄에 진사양반 시제 지내러올 때 눈에 띄지 않게 잘 좀 처리해요."
아비는 도끼자국이 선명한 나무 둥치에서 눈길을 거두며 발걸음을 옮겼다.
"걱정마시우. 그 때는 이미 잡목이 우거져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우."
"그럼, 걱정 않을 테니 먼저 내려가시우."

아비는 그날도 같이 가겠다는 마름을 기어코 돌려보내고 약초를 캐러갔다. 길도 없는 마른 숲을 헤치며 아비는 나와 산돌이를 데리고 산을 탔다. 나는 방향조차 가늠하지 못한 채 그저 아비의 등만 바라보며 숨이 차게 뒤따라갔다. 산돌이는 때로 아비보다 앞섰다가, 내가 여러 걸음 뒤처지면 내게 달려와 뒤를 지켜주기도 했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온몸에 땀이 흥건해졌을 때 아비가 작은 바위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느냐?"

고개를 가로젓는 내 눈에 엎드린 소처럼 생긴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아, 맞다. 도라지."

지난해 아비는 여기서 도라지 두 뿌리를 캤다. 첫 번째 도라지 앞에서, 말라서 잘 보이지 않는 줄기를 찾고 뿌리가 상하지 않게 캐는 방법을 아비는 자세히 일러주었다. 그리고 두 번째 도라지는 내게 직접 찾아서 캐도록 했다.

"배고프지? 먹어라."

내가 한 뿌리를 씹어 먹는 동안 아비는 남은 한 뿌리에 묻은 흙을 깨끗이 털어냈다. 아비는 그것도 내게 내밀었다.

"아비도 먹어."
"난 배 안 고파."

그러면서 아비는 마른 도라지 줄기를 아작아작 씹었다. 도라지 두 뿌리를 먹는 사이에 등줄기의 땀은 다 식었는데 뱃속은 뜨뜻해졌다.

"뱃속이 이상해. 뜨뜻해."

아비는 흐뭇하게 나를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서다 말고 손가락으로 마른 풀줄기 하나를 가리켰다.

"저게 뭐냐?"
"도라지네."
"그래?"

아비는 그 도라지에 눈을 바짝 들이대고 들여다보더니 깜짝 놀랐다.

"범돌아, 이건 산삼인데."

나도 얼굴을 들이밀고 마른 줄기와 잎을 살펴봤다.

"에이, 도라진데. 아까 것하고 같잖아."
"아니다. 아까 것과 이건 아주 비슷하지만 잎의 모양이 다르다."

내 눈에는 똑같았는데 아비는 아니라고 했다. 바싹 마른 잎사귀의 모양이 어떻게 다른 지 알 길이 없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캐는 방법은 같다."

나는 아비가 도라지를 캘 때 가르쳐준 방법으로 산삼을 캤다.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8월 23일, 월 3:0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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