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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1년 11월 27일, 토 5:23 pm
[종교/문화] 종교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회적 영성…코로나19와 미얀마 사태 앞에서
[탐독의 시간] <질병과 슬픔 앞에서 손 모아> 저자 김응교 교수

(서울=뉴스앤조이) 박요셉 기자 = 사람들은 기도할 때 손을 모은다. 손바닥을 맞대거나 깍지를 끼는가 하면, 한 쪽 엄지를 반대쪽 검지와 엄지 사이에 넣고 양손을 서로 포개기도 한다. 가끔 팔짱을 끼거나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드는 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기도라는 행동은 손을 모으는 것으로 표현"(312쪽)되고, 이 모습은 종교를 막론하고 비슷하다.

어릴 때 교회학교에서 마치 국어문법을 가르치듯 기도 방법을 알려 줬다. 모든 글에 기승전결이 있듯, 기도에도 감사·고백·간구라는 3요소를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달리 어떤 기도는 옛 선지자들의 노래같이 형식·내용에 구애받지 않는다.

가수 홍순관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 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조율', 124쪽)"라며 다윗처럼 노래하고, 동화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권정생은 "하느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중략) 하느님이 지으신 세상에 평화가 이루어지자면 우리가 모두 동지가 되어야 합니다('하느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210쪽)"라고 이사야처럼 읊조린다.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을 잃은 손양원 목사와 이동원 목사(지구촌제일교회)는 뭇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감사 기도('열 가지 감사기도'·142쪽, '아들과 작별하며 드리는 열 가지 감사'·150쪽)를 드렸다. 민중을 위해 라틴어 성경을 체코어로 번역하고 그 죄로 화형당한 종교개혁가 얀 후스는 "주님이 아니면, 저는 주님을 위하여 잔인한 죽음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제 생명을'·180쪽)라는 고백을 남기기도 했다.

약하고 불우한 이들을 위해 기도가 된 삶도 있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밀알 한 알'·270쪽)." 기독 청년 전태일은 삼각산기도원에 올라가 일기장에 이 기도문을 남기고 세 달 뒤 불덩어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 김응교 교수와 천상병 시인 동상. 어린이 조각상은 실제 마을 아이들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시인이자 평론가 김응교 교수(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는 이 시들을 모아 <질병과 슬픔 앞에서 손 모아>(비아토르)를 펴냈다. 그는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감리교회에서 교육전도사를 하다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든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감옥에서 웨슬리의 책을 탐독하여 감리회신학교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지만 목사 안수를 받기 전 중퇴했다.

도쿄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연구하고 와세다대학교에서 10년간 객원 교수로 일했다. 저서로는 <그늘 - 문학과 숨은 신>·<곁으로 - 문학의 공간>·<시네마 에피파니>(새물결플러스), 세 권의 윤동주 시인론 <처럼 - 시로 만나는 윤동주>(문학동네), <나무가 있다 - 윤동주 산문의 숲에서>(아르테), <서른세 번의 만남, 백석과 윤동주>(아카넷) 등이 있다.

<질병과 슬픔 앞에서 손 모아>에 수록된 시 52편은 선지자 같은 인물들이 자연·일상·이웃·공동체 등을 주제로 쓴 기도·묵상·노래들이다. 윤동주·기형도·천상병·권정생·정지용·김수영·김종삼 등 국내 문인을 비롯해 칼 바르트, 에밀리 디킨슨, 로버트 프로스트, 알베르트 슈바이처, 츠빙글리, 카뮈 등 해외 시인·소설가·신학자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 중에는 그리스도인도 있고 비그리스도인도 있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상도 천차만별이다. 종교·시대·지역을 넘어 이들의 고백은 상통한다. '고난당하는 이들의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김응교 교수를 6월 23일 서울 노원구 수락산 입구에 있는 '천상병공원'에서 만났다. 천상병 시인이 여생을 보낸 상계동의 시민들이 고인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 공간이다. 마른 체구였던 시인을 닯은 볼품 없는 동상이 나무 평상 위에 앉아 환히 웃으며 우리를 맞이했다. 김 교수는 "사람들은 기인이라고 우습게 봤지만, 아이를 닮은 천상병 시인은 그 누구보다 하늘과 깊이 연결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 교수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천상병=기인'이라는 말은 폐기되어야 한다.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다람쥐처럼 수락산 계곡에 몸을 담갔던 사람이다. 라디오 교양 방송을 즐겨 들었으며, 최저 재산제를 주장하고, 그러면서 자연과 아이 같은 마음과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반복하여 노래했다. 사실 천혜의 자연과 평등한 인간 사회를 잊고 물신의 욕망에 절어 있는 우리 자신이야말로 이상한 기인들 아닌가. 천상병은 깨진 유토피아 구조를 복원하려 한다. 그의 시에는 자연과 인간과 절대자가 모두 만나 어우러진다." ('귀천 - 주일', 108쪽)

사회적 영성을 담은 시선집, 고통받는 자들 향한 위로와 연대

- 기도집 같은 시선집을 내놓으셨어요. 닳는 것도 아닌데 한 편 한 편 아껴 읽고 싶더라고요. 이 시들을 고르는 데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요?

"제가 좋아하는 분들의 시를 넣었어요. '기도'라는 단어를 들으면 개인 영성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회적 영성을 균형 있게 강조하고 싶어서,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실천했던 분들의 기도문을 절반 이상 넣었어요. 츠빙글리, 쉼보르스카, 카뮈, 윤동주, 김수영, 본회퍼, 천상병, 한돌, 키르케고르, 도스토옙스키, 소사, 가가와 도요히코, 박두진, 권정생, 톨스토이, 슈바이처, 미가 등. 그런데 시를 다 넣고 보니까 사회적 영성의 삶을 살았던 분들이 80% 가까이 돼요.(웃음)"

- 계절과 달을 목차로 만드신 게 인상적이에요. 매주 1편씩 1년에 52편을 읽도록 구성하셨더라고요.

"그달에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을 넣었어요. 그 기간에 돌아가셨거나 태어난 분들의 시를 배치했죠. 가령 '2월' 챕터에는 2월 16일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숨진 윤동주 시인의 시를, '4월'에는 4월 9일 돌아가신 본회퍼의 시를 넣었고요.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9월 9일, 도스토옙스키는 11월 11일 태어났거든요. 이들의 글은 각각 '9월', '11월'에 뒀죠. 특별히 한국 작가의 글을 매달 한 편씩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 시들이 전체적으로 위로와 공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질병과 슬픔 앞에서'라는 부제를 다신 것도 의미가 있을 거 같은데요.

"질병은 '코로나19', 슬픔은 '미얀마 사태'를 의미해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특히 요즘 저를 가장 괴롭게 하는 건 미얀마 사태예요. 매일 현지 뉴스나 시민들이 올린 영상을 보거든요. 하도 신경을 써서 그런지 꿈에도 나왔어요. 쿠데타를 일으킨 장군이 제 코에 총부리를 대며 못 알아들을 말로 위협해서 깜짝 놀라 깼어요.

현지 상황을 전해 들으면 시민들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받고 있어요. 꼭 전쟁통을 겪는 사람들 같아요. 아니 전쟁 중이죠. 현지 시민들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그 가족까지 두려움과 걱정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심각하거든요. 주변에 목숨을 잃은 분들이 한두 명씩 꼭 있고요. 이분들에게 위로와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데, 충분히 잘 전해졌는지 모르겠어요."

김응교 교수는 올해 2월 미얀마 사태가 발생한 뒤 지금까지 이 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후원을 요청해, 여러 시민들과 작가들에게 받은 1400여 만 원을 미얀마 내 여러 단체에 전달했다. 3월에는 한국작가회의 회원들과 대전역 앞에서 미얀마 군부를 비판하고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미얀마는 숲이 울창한 나라다. 나무는 서로 거리를 두고 저마다 힘껏 자란다. 신기하게도 위에서 드론으로 숲을 보면 그 많은 나무들 높이가 비슷하다고 한다. 흙 속에서는 뿌리끼리 연대하고, 서로 격려하며 나무들은 비슷한 높이로 자란다. 이 지구의 만물이 이러하거늘, 죽어 가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미얀마를 떠올리며 숲을 생각한다. 만나서 대화해 보면 미얀마 사람들은 의연하고 당당하다. 그 당당한 다중多重, Multitude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찾으리라 기대하고 기도하며 함께한다." ('밍글라바 사람들은 대단해', 82쪽)

- 교수님께서도 코로나19로 가족을 잃으셨다면서요.

"누님이 지난해 5월 돌아가셨어요. 원래 지병이 있었는데 코로나19가 가장 기승을 부렸을 때 돌아가셔서 가족들이 임종을 지키지 못했어요. 매부만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 누나를 배웅할 수 있었죠.

그때 제가 조금 위험했어요. 새벽에 소식을 듣고 혈압이 너무 올라가 위험할 정도였어요. 이후에도 안정을 찾았지만, 계속 예민하고 불안했죠. 누나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너무 힘들고 슬퍼서요. 책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해요. 누군가를 위로하기보다 제 자신을 위해 썼어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제게 위로를 준 건 이동원 목사님의 기도였어요. 이 목사님은 기도문에 아들 이름을 넣었는데, 저는 거기에 제 누님 이름을 넣었어요. '유머가 있던 누님을 허락해 주시고 덕분에 재밌게 살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여러 번 읽고 나니 마음이 괜찮아지더라고요."

"유머가 있던 아들로 인해 부부가 기쁨을 누리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순간도 불평 없던 그의 아내와 손자를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려서부터 게임을 좋아하더니 게임회사 변호사가 된 것도 감사합니다." ('아들과 작별하며 드리는 열 가지 감사', 150쪽)


▲ 많은 이에게 상실과 아픔을 가져다 준 코로나19. 김 교수도 지난해 사랑하는 누이를 잃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학교 선배 기형도 형과의 추억, 오줌 냄새의 향긋함을 알려 준 윤동주

<질병과 슬픔 앞에서 손 모아>에 실린 해설 중 일부는 기존에 발표했거나, 썼지만 발표하지 못한 원고를 다시 수정해서 게재한 글이다. 2016년 KBS 라디오에서 진행한 시 해설 원고와 2017년부터 2년 6개월간 '세계의 신앙시'를 주제로 <목회와신학>에 연재한 칼럼을 모았다.

- 라디오 프로그램은 어떻게 진행하게 된 건가요?

"KBS 국제부 라디오에서 출연 요청이 왔어요. 시를 선정하고 해설을 내레이션하는 일이었는데요. 성우가 시를 낭송하고 나면 제가 시를 설명했죠. 담당 PD가 북한 주민들이 심야나 새벽에 우리 방송을 들을 수 있다고 하셔서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나요. 혹시 나중에 남쪽으로 내려오는 분들이 제 방송을 들었다고 할 수도 있잖아요.(웃음) 사실 제 가족들이 아직 북한에 남아 있기도 해서 그분들이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절실한 마음으로 방송을 진행했던 것 같아요."

- <목회와신학>에도 오랫동안 연재를 하셨어요.

"2년 반이란 긴 시간 동안 두란노에서 귀한 지면을 내주셨어요. 고마운 일이죠. 다만 '세계의 신앙시'를 주제로 칼럼을 썼는데 발표할 때 제한이 조금 있었어요. 가톨릭・불교 관련 작가들, 김교신, 우찌무라 간조, 가가와 도요히코, 함석헌, 전태일 등의 시는 실을 수 없었어요. 게제하지 못한 원고가 계속 쌓였어요. <질병과 슬픔 앞에서 손 모아>에 미처 넣지 못한 글들로 두 번째 책 <잠잠히>(가제)를 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에요. 이들 중 교수님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분을 꼽는다면 누구를 선택하시겠어요?

"너무 많아요. 모두 제가 매우 좋아하는 분들이에요."

- 음… 그렇다면 책에 기형도 시인과의 일화가 나오잖아요. 학교 선배였다면서요.

"형도 형은 2년 선배였어요. 연세문학회라는 서클에서 알게 됐는데, 문학회 출신 중 많은 분이 등단해서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죠. 선배들이 후배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는데 형도 형은 제게 산문을 알려 줬어요. '시를 잘 쓰려면 산문을 잘 써야 한다'는 말이 지금도 생생해요.

형도 형은 어릴 때부터 교회와 성당을 자주 왔다 갔다 했어요. 기독교 관련 시도 많이 썼고요. 누님 두 분 모두 신학을 하셨어요. 제가 신학과라서 그런지 형과 성경 이야기를 자주 나눴어요."

하지만 신앙인이었던 기형도 시인은 나중에 종교를 버린다. 김응교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던 기형도는 이후 종교를 버렸고, 그 대신 염세적 실존주의 철학자라 할 쇼펜하우어와 키르케고르의 철학에 빠져들었다. 기형도의 시에는 안개와 먼지와 가난과 어둠이 서려 있다. 거기서 끝나지 않은 게 기형도 문학의 숨은 비밀이다. 그 가난과 어둠과 죽음은 빛을 향해 비밀스럽게 열려 있다." ('램프와 빵', 252쪽)

"기형도는 어둠, 겨울, 절망, 죽음을 얘기하면서 다음 시대에도 어둠, 겨울, 절망, 죽음이 이어지리라 말한다. 그러면서도 기형도는 '겨울'로 대표되는 어둠에서 '고맙습니다'라며 희망을 발견한다. 숱한 절망들이 우리에게 '겸손하게 만들어 주십니다'라는 역설적 힘을 주며 희망으로 다가온다." (같은 장, 256쪽)


▲ 김응교 교수(둘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와 학부 지인들. 그의 우측에는 '빈자의 친구'로 알려진 고 김흥겸 전도사가 앉아 있다. 사진 제공 김응교

- 선생님께서는 국내에 윤동주 전문가로 알려져 있어요. 일본과 국내에서 윤동주 시인과 관련한 저술이나 강연 활동도 오래 하셨고요.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 윤동주 시인의 어떤 부분이 선생님께 영향을 많이 끼쳤나요.

"사실 저는 윤동주 시인을 우습게 봤어요. 청소년들이나 좋아하는 '만들어진 우상'쯤으로 여겼죠. 그렇게 제가 무식하고 교만했습니다. 남이 좋아하면 그게 뭐가 대단하냐고 혼자 거리 두는 그런 모난 부분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제 스승인 오무라 마스오 교수(와세다대학교)께서 제게 윤동주 시인과 관련한 연구 자료를 매번 전해 주시며 관심을 갖게 했어요.

2007년 일본어 저서 <韓國現代詩の魅惑한국현대시의 매혹>(新幹社)이란 책을 출간하고, 저자 강연 요청을 받곤 했어요. 대부분 윤동주 얘기를 해 달라는 거예요. 일본 사람들도 시인을 좋아해요. 교과서에 시가 실려 있거든요. 윤동주 얘기를 하면 일본분들이 심각하게 들어요. 그러던 중 후쿠오카대학교에서 강연하고 난 뒤, 한 할머니가 눈문을 글썽이며 다가왔어요. 미안하다면서 '우리 일본인이 맑디 맑은 한국 시인을 죽였어요'라고 하시는데. 그때 시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깨달았어요."

- 그때부터 윤동주 시인을 다시 보기 시작한 건가요?

"특별한 경험이 하나 있어요. 일본에 있을 때 도쿄 우에노, 오사카 니시나리에서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활동을 했어요. 자원봉사자들과 오니기리(주먹밥)를 만들어 나눠 줬는데요. 냄새가 너무 지독한 거예요. 노숙인들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잖아요.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토요일에 밥을 나누고 오면 거의 일주일 동안 그 썩어서 쉰 듯한 냄새가 몸에서 안 떨어지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예수님 주변에도 악취를 풍기는 떠돌이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고 말이에요. 예수님은 그들을 내쫓지 않으셨어요. 뭐라 하지도 않으셨고요. 그런데 나는 왜 이럴까. 무작정 견뎌 봐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런 생각을 갖고 노숙인들 틈에 앉아 있는데 이상한 체험을 했어요. 그분들 주위에서 썩은 냄새가 아니라,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가게 있잖아요. 그 향기가 나는 거예요.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때 그 문장이 이해가 됐어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서시」에 나오는 이 시구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거든요. 이런 표현은 사랑을 다룬 어느 고전에도 나오지 않아요. 플라톤의 <향연>,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아가서', '고린도전서'에도 없어요. 아직 죽지 않았지만 죽어 가고 있는 존재는 무엇이며, 그런 대상을 사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노숙인들과 함께하면서 깨달았어요. 이거구나. 이건 공부해서 나오는 구절이 아니구나. 부잣집 청년이 이곳에서 이런 체험을 했구나. 그때부터 시인을 다시 보게 됐어요."

김응교 교수는 이 '냄새 사건'을 시로 남기기도 했다. 시제가 '성聖 지린'이다.

"집 없이 산다는 것
애완견 대신 오줌 냄새 품고
쓰레기통 베갯머리 삼아
피부병과 동상을 가족 삼는 것

오줌 냄새랑 친해지려고 나도 무진 애썼다
홈리스 곁에 앉아 다꽝을 한 달쯤 삭히면 날 만한
시궁창 이빨 앞에서 내 욕망의 다비식도 해 봤다
여물 닮은 성 지린 증기여!

앗싸, 코끝에
발효 나는 오줌 냄새가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으로 풀리던 날
나도 나도
예수님에게도 아슴지린 오줌 냄새
석가님에게도 달콤지린 오줌 냄새" [김응교, <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천녀의시작), 69쪽]
루터가 싫었던 기독 청년
위로와 연대는 결국
'그가 누운 자리에 눕는 것'


- 교수님은 언제 신앙을 갖게 되셨어요?

"저는 모태신앙으로 자랐어요. 20대 초반엔 부모님의 신앙에 반항하는 시절이 있었고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야고보서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는 신앙을 갖게 됐어요. 전도사로 지내면서 야고보서 강해를 즐겨 하곤 했으니까요.

감옥에 몇 개월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읽은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가 참 좋았어요. 저는 20대 때 잘 모르고 루터가 그냥 싫었거든요. 16세기 토마스 뮌처가 독일 농민 혁명을 일으켰을 때, 루터는 영주들의 편에 섰다고 생각했어요. 잘 알지도 못하고 루터를 미워했죠. 수많은 농민이 학살당하고 뮌처는 처형되죠. 이 혁명은 동학농민운동에 비견되는 상징적인 사건이에요. 15~16세기 루터·칼뱅과 달리 18세기 웨슬리는 생각부터 다르더라고요. 그는 벌써 기독교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았으니까요."

- 감옥에는 학생 운동을 하다가 들어가신 건가요?

"그 전에 불구속 기소로 몇 번 어려운 고비가 있었어요. '백민'・'한솔'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책을 냈는데 반정부 책이라는 이유로 구속됐죠. 지금 생각해 보면 감옥에서 성경을 읽으며 균형을 잡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교회가 더 이상 사회를 고칠 수 없다는 회의감에 전도사를 관두고 고 김근태 의원이 만든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에서 활동하기도 했죠.

모두 지난 이야기들이에요. 지금은 외부 활동을 최대한 줄이고 바울처럼 글을 쓰는 것을 제 소명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지만 김 교수는 어려운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에 지금도 주저하지 않고 나서고 있다. 와세다대학교 교수직을 내려놓고 한국에 귀국한 후에는 노숙인을 위한 '민들레 문학 교실' 등에 강사로 참여했다. 매년 2월 16일 윤동주 시인의 기일이 다가오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모아 독거노인들에게 연탄을 나눠 준다.

- 교수님께서는 '사회적 영성', '참여하는 신앙'을 계속 강조하고 계시는데요. 책에서는 궁극적으로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연대한다는 건 단순히 말과 행동 그 이상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저는 교회가 자신들과 세상을 둘로 구분 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교회가 무언가를 잘 준비해서 좋은 것을 세상에 나눈다거나 베푼다는 식의 메시지는 아닌 것 같거든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빛이다",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이다"가 중요한 거죠. 교회가 빛과 소금으로 세상 안에 존재하고, 장애인이든 성 노동자든 재소자든 그들 가운데 머무르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숭실대 기독교대학원에서 강의하면서 수업을 듣는 목사님들을 만날 수 있어 기뻐요. 요즘은 책이나 인터넷에서 좋은 내용을 참고해 설교를 준비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좋지만 저는 목사님과 교인들이 함께 일상을 보낸 이야기가 교회 안에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번 주 우리 교회가 광화문 세월호 천막에서 봉사 활동을 했어요', '우리 청년부가 미얀마 청년들과 교제하며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했어요' 등.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한 이야기가 설교가 돼야 하는데, 좋은 차 타고 호텔만 다니니까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메시지만 난무하게 되는 거 같아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김 교수는 이 메시지야말로 윤동주가 강조한, 이 재앙의 시대에 꼭 필요한 자세라고 말했다.

"윤동주가 '병원'으로 시집의 제목을 짓고 싶었던 이유로 '지금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라고 한 것이 눈에 띈다. '병원'은 시인 이상화가 사용하던 밀실이나 동굴과 전혀 다른 공간으로, '아픈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는 연대의 공간이다. (중략)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아픈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이 문장은 과연 윤동주 시의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으로 그 아픔에 함께하며 치료를 위해 연대하고 실천하겠다는 다짐이다." ('병원', 139쪽)


▲ <질병과 슬픔 앞에서 손 모아 - 아침에 읽는 시 이야기 1> / 김응교 지음 / 비아토르 펴냄 / 320쪽 / 1만 6000원

-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수없이 많이 강조된 이 메시지를 분명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재앙의 시대를 보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었어요.

"교회가 자신들이 말하던 '세상'과 밀착돼 있지 않았던 게 드러난 거죠. 오히려 이 기간을 보내며 실망과 상처만 줬으니까요.

오니기리를 나눠 주거나 연탄을 독거노인들에게 놓아 드린다고 무언가 베푸는 것이 아니지요. 그건 그저 '일상의 예배'거든요. 주일예배 축도가 끝나면 본예배가 시작해요. 일요일에 열심히 찬양한다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일상의 예배가 기다리고 있는 거죠. 사회적 영성을 바탕으로 주변 이웃들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 모습을 윤동주, 얀 후스 같은 이들의 삶에서 발견하게 돼요.

현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이 그런 말을 했어요. '언어란 세상을 그려 내는 그림'이라고요. 교회 안에서 사용되는 언어가 달라져야 해요. 제가 예전에 CBS TV '크리스천NOW' 라는 방송에서 사회를 진행할 때 목사님이나 신학자가 패널로 나오면 가끔 답답했어요. '종말론적', '어린양의 피', '보혈' 같이 어려운 말을 쓰는데, 누가 알아듣겠냐고요. 2000년 전 예수님은 그런 전문용어를 쓰지 않으셨어요. 어린아이들도 이해하기 쉽게 말하셨죠. '저 새를 보세요', '이 겨자씨를 보세요'라고요. 그런데 요즘 교회 언어는 너무 스스로를 게토화하는 거 같아요."

"예수의 삶은 늘 새롭다. 예수님의 말씀은 시멘트 벽 안에서 전해 온 것만은 아니다. 기쁜 소식은 웅장한 찬양이 있어야 꼭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손짓은 거대한 성전에서 울려 퍼진 공허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저기 들에 핀 백합화를 보세요. 공중에 나는 새 떼를 보세요.'

그의 목소리는 따스한 눈길, 자연 그대로 전해도 느껴지는 진한 지성, 너무도 가까운 심려, 간절하게 모은 두 손으로 전해 온다. 어떤 건물 안에서 특정한 정해진 시간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상의 예배다. 새벽이 흔들어 깨운 아침부터 새들이 잠드는 저녁까지, 온몸으로 온 생애를 기도와 지성과 노동으로 하루하루 감사하는 일상, 그것이 예배다." ('주일에 교회 모임을 멈출 수 있습니까', 111쪽)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8월 09일, 월 4:3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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