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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엘리트주의자 이준석, 그에게서 이 남자의 냄새가 난다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미디어의 호들갑이 빚은 위험한 팬덤

(파리=오마이뉴스) 목수정 기자 =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준석"이란 낡은 신인을 둘러싼 소란에 좀처럼 관심이 가지 않았던 것은 내가 서울로부터 9000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그가 속한 당에 눈곱만한 기대도 없고, 누가 당권을 가진들 긍정적 변화를 기대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탄핵 당한 박근혜와 함께 휩쓸려가지 않으려 분당까지 했던 그들은 어느새 스리슬쩍 한 지붕 밑에 살림을 차렸고, 그 사이 우리가 맞이한 건 현 정부의 화려한 실정의 날들이다. 끌려나간 세력은 제자리로 돌아와 기득권을 조용히 지키고 있고, 새로운 권력도 무능과 부패를 드러낼 때 국민들에겐 어떤 선택이 남아있을까?

국민에게 선거는 최악을 피하거나, 매를 들어 썩어 문드러진 속을 분풀이하는 행위로 회귀했고, 다음 선거는 집권 세력을 혼낼 가장 센 회초리 자루를 구하는 게임이 되었다. 출마 선언도 한 적이 없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지지가 모인다는 사실이 국민의 이 같은 심정을 대변한다.

그런 와중에 대학 졸업 1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대표 이력이 '하버드 졸업'인 박근혜 키드를 띄워주는 한국 언론의 '정성'이 굳게 닫고 있던 내 창문까지 두드려왔다. 요란한 소리에 잠시 무슨 일인가 들여다본 나는, 5년 전 본 낯익은 장면을 목격한다.

2016년 마크롱, 2021년 이준석


▲ 지난 23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1위를 차지한 프랑스 중도신당 '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 2017.4.23 ⓒ EPA/ 연합뉴스

2016년 8월 재경부 장관을 사직하던 순간부터 30대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을 만들어 내기까지 8개월간 풀가동되던 프랑스 언론의 특급작전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국립행정학교 졸업 후 로스차일드 은행에서 일하다가 사회당과 인연을 맺고 올랑드 정부에서 재경부 장관직을 수행하던 마크롱은 대선 8개월을 앞두고 대권에 나섰다. 낯선 이름, 미심쩍은 과거를 지닌 39세 마크롱의 도박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언론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약 20년 전부터 언론사들을 인수합병 하며 프랑스 미디어를 분할 소유하게 된 10여 명의 부자들덕이었다.

광고를 줘서 기사를 사던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아예 프랑스인들이 접해야 할 정보가 뭔지를 스스로 통제하고 결정하는 권력을 소유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8개월 동안, 고개만 돌리면 어디서든 마크롱 얼굴을 5분 안에 만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을 만들었다.

이들의 마크롱에 대한 낯 뜨거운 미사여구와 타 후보에 대한 중상모략·난타질의 결과, 마크롱은 1차 투표에서 24.1%를 얻으며 극우 후보와 나란히 결선투표에 진출할 수 있었다. 누구든 극우와 결선에서 맞붙으면, 큰 차이로 낙승하는 것이 지난 20년간 프랑스에서의 선거 룰이다. 그는 역대 가장 많은 기권표를 기록한 대선 결선투표에서 극우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우파도 싫고 좌파한테도 질리셨죠.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미지의 엘리트 정치 신인에게 기회를 한 번 줘보시라' 꼬시던 그는, 당선 직후 부유세(ISF)를 폐지하며, 즉각 자신을 밀어준 슈퍼리치들에게 보은했다. 그가 만든 당 '앙마르슈(En Marche)'는 "작동하는" 혹은 "일하는"이란 의미다. 뚜렷한 가치의 방향성도 제시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다짐 속에 출발한 마크롱 정권은 지난 4년간 신자유주의를 강화하고, 프랑스 사회가 2차 대전 이후 쌓아온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파괴하며, 국정 깊숙한 부분까지 미국계 다국적 기업들과 논의하는 위험한 행보를 지속해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분배가 시장을 통해 작동해야 한다"고 믿고 "공정경쟁 토대가 마련된다면 승자독식도 공정"하다고 믿는다고 <한국경제>(6.13)와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시장을 통한 분배, 승자독식도 공정이라는 그의 발언은 레이건도 울고 갈 신자유주의의 끝판왕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다. 신자유주의로 사회 혁명을 이루겠다는 마크롱의 말처럼 그 자체로 모순이자, 거기에 공정이란 어휘를 섞어 대중을 현혹하는 사기적 언술이다.

노회찬의 죽음 앞에 통곡했고, 이정희를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꼽았던 이준석은 우리가 알던 꼴통 보수들과 많이 다를까. 이준석은 당 대표 취임 직후 "차별금지법 시기상조, 사회적 합의 불충분"을 말했다. 황교안이나 홍준표, 박근혜에게서도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말이 나왔을 것이다.

엘리트주의자 이준석에겐 능력별 대우, 성과에 따른 배분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인 듯하다. 어떤 자리, 어떤 조건에서 출발하든 1등에만 도달하면 다 가져도 좋다는 그의 논리가 "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던 정유라의 사고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앙상한 엘리트주의


▲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를 예방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준석과 마크롱 두 사람에겐 언론의 폭풍 같은 펌프질로 벼락 출세한 젊은 남자라는 점 외에도 지독한 엘리트주의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기차역은 성공한 사람과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마크롱은 대통령 취임 1개월 후 역에 설치된 청년 스타트업 캠퍼스 개장식에서 위와 같은 발언을 한 바 있다. 이 말은 "성공한 사람과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그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엑스레이처럼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는 이후 이어질 마크롱 시대의 불길한 전주곡 같은 것이었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이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 때문에 불편을 느끼지 않아도 좋을 세상의 고속도로를 깔기 위해 전력을 다했고, 그것은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킨 연금법 개악과 노동법 개악 등으로 드러났으며, 2018년 가을 전국적으로 분출한 노란조끼 운동으로 시민들의 저항은 구체화되었다.

"저는 기본적으로 실력 혹은 능력이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고 봐요 (…) 저는 엘리트가 세상을 바꾸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26살에 하버드란 간판 하나 달고 박근혜 키드로 발탁되면서 정치에 입문한 36세 야당 대표의 말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능력주의는 시험으로만 평가 되나 보다. 시험 때문에 말라 죽어가는 청춘들의 이 슬픈 시험 공화국에서 말이다. 그는 현재 모든 정당들이 삼고 있는 공천의 룰이기도 한 청년·여성 할당제를 폐지하고, 기초자격시험제 도입, 토론 배틀로 '대선 주자를 뽑겠다'고 천명한다.

책 <공정한 경쟁>에서 그는 중학교 시절 "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진 무한 경쟁"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회고한다. 이미 기성 정치인으로 살아온 지 10년이 되었지만 그의 신념에 가까운 경쟁에 대한 가장 고운 기억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 대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미디어의 포커스를 아낌없이 누리는 특혜 속에서도, 총선에서 내리 3번 낙선했다. 이 같은 경험은 그의 기억에서 삭제된 걸까. 세 번의 실패에서 그는 무엇을 얻은 것일까?

이준석은 지난 정치 인생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쓸모를 확인시켜줄 그 어떤 기회도 국민에게 제시한 바가 없다. 이런 저런 방송에 나와 시사평론이나 토론을 벌이긴 하였으나, 기억에 남는 정치 철학을 제시한 적은 없다.

정치인의 말이 갖는 능력은 토론 배틀에서 치고 빠지며 일시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잔재주를 입증하는 데 있지 않다. 시대와 역사를 통찰해 공동체가 한걸음 더 진전할 수 있도록 하는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있다. 이 같은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이란 오지선다 문제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데서 발휘되던 학창시절의 실력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인류가 수천 년의 역사를 거쳐 오며 그럭저럭 합의에 도달한 민주주의라는 정치 제도는 그것이 가장 많은 사람이 만족하고, 최소의 사람이 불행해질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준석이 말한 방식의 공정은 다른 말로 하면 약육강식이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글의 법칙이다. 인류의 역사는 정글의 잔인한 법칙을 인본적 방식으로 극복하고자 부단히 전진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이준석 외에도 하버드 간판을 달고 정치권에 왔다가 사라진 두 인물에 대한 기억이 있다. 강용석과 홍정욱. 정치인 강용석과 홍정욱의 능력은 대한민국 시민의 행복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정치판을 떠났고, 다시 돌아오기 힘들어 보인다.

빗나간 현실 감각, 결핍된 공감 능력


▲ 프랑스를 비롯해 20여국에서 번역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의 프랑스어판 표지. ⓒ L’Edition 10/18

이준석으로 하여금 '이대남'의 반짝 지지를 끌어내며, 능력주의와 함께 셀링 포인트(selling point,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징)의 핵심을 구성해준 이슈는 '안티 페미니즘'이다. 이것은 이준석의 정치 감각과 공감 능력이 얼마나 처참한 지경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준석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여성의 기회 평등이 침해받는 이슈가 '있다면'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것이다. 다만 2030 여성들이 소설과 영화 등을 통해 본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피해의식을 가지게 된 점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그 예로 든 것이 <82년생 김지영>이다. "작가는 '자신이 걷기 싫어하는 이유가 여성이 안전하지 않은 보행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는데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 아닌가"라고 그는 말한 바 있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19%(IPU, 국제의원연맹 기준)다. 200대 기업에서 여성임원의 비율은 2020년 기준 4.5%이며, 남녀의 임금격차는 2019년 기준 136.2:100으로 OECD 최고치다.

이런 현실에서 이준석은 여성의 "기회평등이 침해받는다면"이라는 단서를 달며, 자신은 남녀 간의 불평등을 자각하지 못하겠다는 듯 말한다. 대기업 여성 임원의 수가 4.5%밖에 되지 않는 것은 기회가 균등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남성들이 여성에 비해 그만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투영되는 말이다.

대한민국 여성이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남성보다 높아진 지는 15년이나 되었고 그 비율은 점점 더 높아져 간다. 2019년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남성보다 7.9% 높지만 고용률은 20% 낮다. 이준석이 알고 있는 가장 공정한 룰인 시험에서 여성들은 남성보다 우수함을 입증했으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들에게 기회를 확실히 덜 제공하고 있다.

맞벌이 가구에서 하루 평균 가사 노동의 시간은 여성이 남성보다 2시간 13분 많다. 똑같이 바깥 일을 해도 집안 일의 대부분은 여성이 맡는다. 엄청 평등하다. 여성의 46%가 '밤길에 마주치는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준석이 <82년생 김지영>에서 본 내용은,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 아니라, 대한민국 여성 절반이 겪고 있는 현실이다.

자신이 겪지 않은 일, 겪을 가능성이 없는 일에 대해 공감하고, 사회적 약자가 차별받지 않고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고, 그걸 잘하는 사람이 능력 있는 정치인이다. 이준석은 그 부분에서 철저하게 부족한 자신의 능력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실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절반은 여성이지만 국회에선 오직 19%만이 그들을 대변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여성의 삶은 앞으로도 철저히 불평등에 놓일 수밖에 없다. 명백한 통계들이 여성이 겪고 있는 구조적 불평등을 절규하듯 표하고 있는데도, 제1야당의 대표는 이 절반의 인구가 겪는 자명한 불평등에 무지하고 무감하다.

슈퍼리치들의 눈에 들어, 엘리제궁에 앉아 그들의 이해를 대변할 협력자로 낙점된 마크롱이 30대에 이룬 자신의 "성공"에 도취되어, 1% 부자들을 위해 99%의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깔아 뭉개온 지난 4년 동안 프랑스 사회는 곳곳이 폐허였다. 미디어의 호들갑이 북치고 장구 치며 거품뿐인 지지율을 만들어내더라도, 한국사회가 헛된 꿈을 좇지 않기를 바란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6월 21일, 월 10:3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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