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진담] 한인회 회칙, 그리고 회칙 개정의 'ㄱㄴㄷ'(상)

(올랜도) 김명곤 기자 = 지난 10월 23일자 본보 4면 "6개월 짜리 올랜도한인회장을 구합니다" 제하 기사와 관련하여 여러 독자들이 의견을 주셨습니다. "오랫만에 시원하고 확실한 기사를 내 주셔서 고맙다"고 한 분들이 있는가하면,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한인회 관계자 두 분은 낱말까지 자세히 풀어서 쉽게 다시 써달라는 부탁도 해 오셨습니다. 처음엔 딱딱한 회칙 문제이다 보니, 또는 지난 기사들을 잘 읽지 않아서 연결이 잘 안 되어 그런가 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요, '개정'이나 '보선'이 뭔지 '조항'이 뭔지 모르는 분들이 있으니 제발 눈높이에 맞춰 기사를 써달라는 호소를 듣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선 항상 쓴소리를 해주는 분들이 필요한 듯합니다.

해서 앞으로 몇차례에 걸쳐 연재될 <취중진담>에서는 지난 기사를 동네사람 얘기하듯 풀어서 써 드리려고 합니다. 마치 낫을 옆에 두고 기역자를 그려주듯 그렇게 말입니다. 딴은, 지역 한인회장님들을 포함하여 한인사회 지도자님들께서 까맣게 잊고 실수할 수 있는 사안이기에 다시 풀어쓰려는 것이니 괜히 건너짚기식 곡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계모임-딱지치기에도 규칙은 있다

어느 집단이든지 모두가 지켜야 하는 '규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가는 물론 학교, 회사, 교회에도 규칙이 있습니다. 마을이나 가정에도 규칙이 있고, 부부관계나 부모 자식 관계에서도 느슨하나마 어떤 규칙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깡패들끼리도, 도박꾼들 사이에서도, 계모임이나 사채놀이에도 신사협정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과거에 어린아이들이 즐겨하던 딱지치기에도 규칙이 있습니다. "'암행어사'는 대장을 비롯한 누구나 다 이긴다, 그런데 '빛나는 일등병'은 암행어사를 잡는다"와 같은.

요컨데, 하나하나 배워서 알게되는 규칙이 있는가 하면,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되는 규칙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 규칙들을 서로 인정하고 지켜서 나의 이익도 지키고 이웃의 이익도 지키게 됩니다. 특히 미국사회는 다른 사람에게 절대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는 사회적 약속이 잘 지켜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쑤시개 부딪치는 정도의 소리가 나는 기침을 하고도 익스큐즈미! 를 내뱉습니다.

특히 이런 규칙들 가운데는 여럿이서 머리를 맞대고 오랫동안 논쟁도 하고 합의하여 이것은 지키고, 저것은 금하고, 요것은 다시 고쳐서 쓰자 그러며 문서로 만든 규칙들을 지키지 않으면, 단체에서 쫓아 내기도 하고 감옥에도 보내고, 심지어는 목숨을 앗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마디로, 느슨한 규칙이든 빡빡한 규칙이든 규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인데요, 이게 귀찮아서 폭력을 써서 제멋대로 고친 분들이 세상에 참 많이 있습니다. 뭐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대로 적어보면, 오래전의 히틀러, 무솔리니는 물론 비교적 최근의 우간다의 이디아민, 중앙 아프리카의 보카사, 칠레의 피노체트,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미얀마의 네윈, 필리핀의 마르코스, 그리고 우리의 박정희-전두환 각하 등 세계인 누구나 인정하는 독재자들이 즐비합니다.

만인이 세운 규칙을 뭉개버린 독재자들

이런 분들의 특징은 아이고 규칙이고 뭐고 왜 이리 복잡해, 일 못해 먹것네! 이래갖고 어느 천년에 발전하겠어, 쉽게 쉽게 빨리 빨리 해 뿌러! 그러며 군대를 동원거나 일류대학 나온 모사꾼들을 주변에 두어 규칙을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분들 가운데는 그럴 듯하게 '경제적 업적' 등 무슨무슨 업적이라는 걸 남겨둔 분들이 있는데요, 이와는 별개로 역사는 이분들을 희대의 독재자들 이라는 기록을 지우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뜻이 모아져 담긴 규칙 을 깨고 자기 뜻대로 한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인권을 억압하고 고문하고 내쫓고 학살을 자행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뭐 이런 독재자들 밑에서 '나 죽었다' 그러며 고분고분 주는 밥이나 먹고 그럭저럭 사는 삶도 있겠지요. 그런데요, '배부른 돼지로 사느니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사는 게 낫다'며 예나 지금이나 '아니되옵니다!' 라고 목젓 세우는 골아픈 존재들이 늘 있어 왔다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실감나는 예를 들지요. 모두가 아시다시피 우리의 박 대통령 각하께서는 갖은 꼼수를 동원하여 이번 딱 한 번만 그러며 삼선개헌을, 이번에는 정말 또 한 번만 그러며 유신헌법으로 법을 바꾸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깡패를 동원하거나, 중앙정보부 요원들을 시켜서 이제 더이상 돼지가 되기 싫다 는 여당 의원의 수염을 뽑거나 다리 몽뎅이를 부러 뜨리거나, 야당 의원들의 경우는 빨간 딱지를 붙이거나 돈으로 매수하는 무리수를 두었는데요, 국회에서, 그리고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 을 고쳤고, 이를 만천하에 공표하여 '합법화' 시켰습니다. 이걸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하지요?

우리 모두가 아는대로 그것도 법이라고 우리의 각하께서는 1979년 10월 26일 밤까지 엄격하게 지키다 돌아가셨습니다. 법을 고치자(개정) 는 말만 꺼내도 15년형은 너끈하던 당시, 제 고향친구는 유신 체육관법 을 어겼다가 남산에서 두들겨 맞아 반 병신이 되어 30 수년을 어리버리하게 살았을 정도로 법은 잘 지켜졌던 것입니다. 친구는 배고픈 소크라테스들의 줄기찬 민주화 투쟁으로 법이 개정된 한참 후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

상당수의 역사가들과 정치인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걸 아마 들으셨을 겁니다.

"박 대통령이 삼선개헌을 하기는 했지만, 유신헌법으로 가지만 않았다면 위대한 대통령으로 남았을 것이다."

한 번 어긴 것은 봐줄만 했지만, 유신 때문에 용서받지 못했다는 것인데요, 이런 시각 조차 위험하기 짝이 없는 '물타기'라 할 것입니다. 휴전선을 지켜야 할 군인이 총을 들고 뛰쳐나와 겨우 1년된 합법 정부를 뒤엎었다는 것부터가 일단 못된 짓이고, 군으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가 이를 어기고 정치판에 뛰어든 것, 그도 모자라 삼선개헌을 강행하고, 종국에는 머리 좋은 모사꾼들을 동원하여 나혼자 대통령 을 가능케 한 유신까지... 그리고 청와대를 들락거리며 이를 그대로 보고 배운 친아들 같은 군인이 다시 총들고 나오게 했고. 아마 '민주의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각하께 이렇게 호통을 쳤을 듯합니다.

"네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자, 이번 호의 <취중진담>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이겁니다. 지도자가 솔선하여 지키고 국민도 지키자, 지키지 않으면 그 자신도 이웃도 사회도 역사도 난장판이 된다, 이거지요.

한인사회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동안 미주한인사회는 물론 다른 해외한인사회들도 회칙 대로 하지 않아 어떤 때는 총질도 하고 패싸움도 하고 법정에도 가고 한 소식들을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어오셨을 겁니다. 가깝게는 수년 전 플로리다한인회연합회가 그러했고, 지금도 일부 한인회와 미주한인회총연합회가 회칙 위반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지금 한국땅은 대통령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한치앞도 내다보기 힘든 정국이 전개되고 있는 중입니다.

다음 호 <취중진담>은 지키라고 만든 법이 현실에 안 맞거나, 악법이라는 결론이 나왔을 때 어떤 절차를 거쳐 고칠 수 있는지에 대해 크게는 헌법과 작게는 한인회 회칙 등의 실례를 들어 소상히 설명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