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 역작 소장한 세인피터스버그 달리 뮤지엄

(올랜도) 최정희-김명곤 기자 = 플로리다가 관광의 고장 일뿐 아니라 예술의 고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않다. 따뜻한 기후와 세계적 오락 공원 그리고 수많은 해변들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 반면, 생업에서 벗어난 부유한 은퇴노인들의 예술에 대한 탐닉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부유 은퇴촌이 집중된 곳에는 연중 예술행사가 끊이지 않는 예술의 전당들을 끼고 있는데 미국에서도 손꼽는 은퇴지 사라소타가 지척에 있는 세인피에 위치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뮤지엄'도 그 중 하나이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고전음악 시대의 대표주자인것 처럼, 달리 또한 초현실주의 미술 시대를 대표하는 세계적 화가이다. 플로리다를 무심코 방문했다 달리 뮤지엄이 이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 '나는 행운아' 라고 외치는 관광객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의 이름이 미술계에서 얼마나 독보적인 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달리의 그림들 중 일부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기도 하나 대부분의 그림들은 플로리다 달리 뮤지엄과 지금은 박물관으로 개조된 달리의 스페인 고향집에 집중되어 있고 몇몇 작품은 뉴욕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미술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일 지라도 이곳을 한 번 방문해 볼 필요가 있다. 달리의 실제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자랑거리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100여개가 넘는 페인팅을.

"내가 바로 초 현실주의 그 자체"

"초현실주의 화가들과 내가 다른것이 있다면 '내가 바로 초현실주의 그 자체' 라는 것이다"


이 말은 세계적 화가 달리가 자신의 화풍을 정의하며 뱉은 말이다. 달리가 이 같은 말을 했을 때 이미 초현실주의 그룹에 속해 있던 쟁쟁한 화가들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달리가 화가세계에 나타났을 당시 모든 사람들은 그의 그림앞에서 쇼크를 받았다. 그의 기묘하고 기상천외한 화풍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은 초현실적주의의 극치를 달린다. 다시 말해 뭉게 뭉게한 환상의 세계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것을 초월하고 있는 '초 현실적인' 것이다.

달리는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피게라스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유산을 경험했던 부모에게서 태어나 그들의 과잉보호아래 극히 자기중심적인 아이로 성장한다. 그리고 소년기를 보내며 비정상적인 예민함과 기피증까지 형성되는데, 이러한 성장과정이 자신의 감정을 그림을 통해 편집증적으로 표현하는데 일조했는 지도 모른다.

공부시간에는 천정에 우연히 나있는 얼룩자국들을 보며 그 불규칙한 패턴 속에 빠져 상상의 날개를 펴곤 해서 정상적인 수업을 받기가 어려웠는데, 지금도 그의 그림 일부를 보면 당시 개발된 일련의 모션적 감각을 감지할 수 있다.

한편 달리 부모와 가까이 지내던 화가가 어느날 그의 미술적 자질을 보고 그를 가르키기 시작한다. 그 화가는 그의 첫 스승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소년 달리는 자라면서 학교에서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화장을 하고 다니는가 하면 공중으로 비상하겠다고 몇십개의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내리곤 했는데, 결국 '비정상아' 라는 판단을 받아 퇴학당한다.

이런 와중에 그는 미술책을 탐독하며 풍경화, 자상화 그리고 인상파적인 그림들을 계속 그려나가면서 14세 때부터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며 미술에 헌신하기로 결심한다.

프로이드 만난 달리 "내 그림을 평가하지 말라"

이후 달리는 프로이드의 역작 '꿈의 해석'을 읽고 정신분석학에 빠져들며 의식 속의 꿈과 환상의 세계를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테크닉이나 페인팅을 실험해 가면서 점묘파·미래파의 특질을 터득하고 입체파나 피카소의 형이상학적 회화 등을 이해한다.
1925년 달리는 드디어 바르셀로나에서 첫 전시회를 열고 피카소나 미로의 관심을 끌면서 자신을 얻기 시작했는데, 교수들로부터 자신의 그림을 채점받기를 거부해 미술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한다.


이후 군대에 입대해 있는 동안 작품활동을 쉬면서 미술가로서의 미래를 다시 한 번 다지는데, 이후 달리가 그린 그림은 이제껏 그려왔던 그림과는 전혀 달랐다.

달리는 이때부터 그의 독특한 초현실적 화풍을 개발하는 과정에 들어서는데 달리 뮤지엄에 있는 '어패러투스 핸드'(Apparatus Hand) 도 그 과정에 들어있는 그림중 하나이다.

달리는 1928년 파리로 가서 초현실주의 화가나 시인들과 교유하였고 이듬해 초현실주의파의 대표적인 화가 브르통에 의해 정식적인 '멤버' 로 인정되었다.

이즈음 혈기왕성한 청년 달리는 그의 수줍음으로 인해 성적 충동을 표출하지 못하고 심한 정서적 고통을 당한다. 이 때 그가 그린 그림중에는 여성의 모습과 기이한 형체들, 피흘림, 자위를 자책하는 모습 등이 많은데, 이는 모두 그의 성에 대한 욕구와 감정들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결국 여자를 만난다. 러시아 여성 '갈라'는 당시 초현실주의 시인의 아내였으나 달리의 그림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던 터에 그가 정신이상으로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겸 달리를 방문한다.

그러나 그녀는 달리에게서 광기대신 길잃은 어린아이와 같은 애처로움을 감지, 모성애를 발하고, 평상시처럼 미친듯이 키득거리고 있던 달리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다가오고 있는 갈라를 응시하다 그녀의 발앞에 몸을 던지고 만다.

러시아 여인 갈라, 달리 화풍에 '성애'를 담다

이후 갈라는 평생동안 그에게 있어 여신이자 아내요 친구였다. 달리의 그림에 갈라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갈라를 만난 이후 달리의 히스테리는 점점 물러갔는데, 대신 그녀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을라 치면 그녀에 대한 갈망과 성충동을 이기지 못해 그림으로 폭발해 내곤 했다. 이러한 그의 그림들로 인해 달리의 명성은 더욱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된다.

한편 기성관념에서 탈피해 해방을 추구하던 일부 초현실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도 해방을 꿈꾸며 공산주의에 접속되나, 결국 초현실주의 이론과 공산주의 이론의 일치에 실패하여 분열을 일으킨다.

이후 달리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는데 그의 수많은 작품들의 기저가 되는‘편집광적·비판적 방법’이라 불리는 화법이 그것이다. 즉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환각이 그의 그림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면서 나타나는 것으로 달리만의 독특한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자리잡게 된다.





예를 들어 그는 밀레의 '만종' 그림에 유달리 편집광적 집착을 보이는데, 일반인들이 종교적 성스러움을 느끼는 그 그림속에서 달리는 고뇌와 더불어 잠재된 성적 충동을 보고 그의 수많은 그림속에 기도하는 부부와 수레를 기이하게 투영한다.

또 그의 손안에서 그려지는 모든 것들, 즉 자위, 호색, 히틀러에 대한 동경, 레닌, 해골, 피아노, 시계들은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환각속에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자책하거나 비판하는 감성을 띠게 된다. 또 전혀 관계가 없는 듯한 물체들을 한데 어울리게해 기상천외한 이미지를 표출하게 되는데, 달리는 이를 두고 '비현실에 대한 정복' 이라 명명한다.

이같은 독특한 그림들이 인기를 끌면서 달리는 대중적인 화가로 변하여 갔고 초현실주의자들과는 거리가 생기게 된다. 브르통은 달리가 계속 히틀러를 지지하고 돈에 대한 탐욕이 지나치다고 판단, 그동안 달리의 작품과 그의 지적인 총명성에 대해 찬탄을 보내던 것을 중지하고 관계 또한 단절하기에 이른다.

초현실주의 그룹과 거리가 멀어진 달리는 스페인에서 시민전쟁이 일어나는 계기를 맞아 본국을 떠나 이태리를 여행하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라파엘, 비너스, 건출물 등 르네상스 문화에 영향 받아 고전주의로 복귀하려는 욕구가 커지며 그의 편집광적.비판적 화풍에 고전주의적 이미지를 더해간다.

이후 2차세계대전이 터지고 미국으로 건너온 달리는 뉴욕에서 또다시 "내 자신이 바로 초현실주의다" 라고 당당하게 못박으며 대대적인 언론의 관심을 산다. 단번에 명사가 된 그는 미국적 분위기에 휩쓸리며 상업적 부를 즐긴다. 그의 손이 닿는 영역은 차츰 많아져 장신구 제작, 초상화, 자서전 쓰기, 발레의상, 무대장치 그리고 심지어 사이코 영화의 대부 히치콕과도 함께 일하게 되는데, 이로인해 그의 초현실주의적인 감각은 한때 물러가는 듯한 위기를 보인다.

그러나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사건은 그에게 다시 충격을 주었고 또다른 화풍을 제시해준다. 이때부터 그는 프로이드식의 정신적인 것 보다는 원자이론과 같은 물질적 세계에 흥미를 느끼고 물질세계의 원자구조를 재해석해 그림을 그린다.

'신'에게 도달한 달리

'기억의 지속(Persistence of Memory) ' 이라는 그림은 달리가 그즈음 그린 대표적 작품으로,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물질의 성질을 분해해 실제 모양을 망가뜨리는 핵분열식 페인팅 이다.

그러나 그는 원자에 대한 근원까지 파헤치는 집착을 보이다 결국 신에게 도달한다. 1949년부터 달리는 그의 핵 분열식 그림에 종교적 색체를 가미하기 시작하는데 바로크시대의 종교 분위기가 그의 독특한 화풍에 접속된다.

이후 DNA 발견등 과학이 발달하며 달리는 3차원적 입체 영상속에 뛰어들어, 초기의 비현실적인 초월과는 달리 현대감각적 초월로 발전, 결국 영원한 초현실주의자로 그의 예술을 접는다.

달리 뮤지엄은 달리의 오일페인팅 화풍의 변화를 기본 으로 초창기 시대 (1917-1927) , 변천 과정 시대 (1928) , 초현실주의 번성 시대(1929-1939) 그리고 고전 복귀 시대(1940-1970)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네 곳을 차례로 감상하다 보면 화가 달리가 그의 그림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시대상황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 왔는지를 얘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정물화 풍경화를 그려대던 심상치 않은 학생 시절, 프로이드에 빠져 초현실파로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 20대 젊은 날의 성에 대한 욕구와 자책, 그리고 그가 숭배했던 아내 갈라에 대한 얘기를 듣는 듯 하다. 또 이태리 여행후엔 르네상스 고전 예술에 한동안 심취하다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온갖 잡다한 상업문화에 빠지는 달리.

또 원자폭탄 발명에 충격을 받아 원자물리학 등에 관심을 두고 물질간의 불연속성을 그려내고자 멀쩡한 사물을 구부려 놓거나 분산시켰던 그. 또한 원자의 근원에 집착하다 결국 신에게 얼굴을 돌려 종교적 화풍에 심취하다 마침내 3차원 입체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띄우는 달리를 보게 된다.

한편 달리의 영원한 연인 갈라는 1982년에 먼저 세상을 등졌다. 그녀가 죽은후 달리는 갈라를 위해 지었던 성으로 몸을 숨겼다. 그러다 2년 뒤, 성에서 불이나 그곳을 뛰쳐나오는 바람에 드러난 그의 모습에 세상은 다시한번 쇼크를 받았다. 건장한 체구였던 그의 모습이 기아상태의 깡마른 노인으로 변화 되어 있었던 것.

이후 1989년 사망 직전까지 달리는 자신의 고향집 다락에서 창문 밖 돌담을 바라보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평생동안 끝없는 변화를 추구하며 살았던 달리는 어느날 방문객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말이지 저 돌담 돌맹이들 모습이 매일 변한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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