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산나 칼럼] 목회자, 꽃이 아니어도 좋아라 [print]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된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대사도 바울은 복음의 사신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성직의 일선에서 활약하였으나 언제나 자기 앞에 보이는 위험한 함정을 느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자기를 다스린다. 주의와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반성과 자책을 깊이 하며, 겸손히 자기를 쳐 복종케 하기를 쉬지 않았다.

언제나 목회자들 앞에는 함정과 올무가 기다리고 있다. 유능하다고 소문난 목회자일수록 더 위험한 올무가 있다. 일단 이 함정에 빠지면 남에게는 전파하여도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목회자의 삶 저체에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게 된다.

세상에는 어떤 물건이든 반드시 유사품이 있기 마련이다. 진짜 물건은 비싸고 구하기 힘든데 가짜 물건은 쉽게 구할 수 있다. 값도 싸다. 목회 생활도 마찬가지다. 진짜 목회가 있는가 하면 유사 목회라는 것도 가능하다. 그런데 목회는 어렵고 힘든 일인지라 허술하고 용이한 유사 목회를 만져본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설교, 교회 관리 등 목회활동이 함정의 나락으로 빠져 버린다.

참된 종교를 해치는 자는 비종교인이 아니라 유사 종교인이요, 참 신앙을 해치는 것은 불신앙이 아니라 유사 신앙이다. 마찬가지로 참 목회를 해치는 것은 유사 목회라 하겠다. 그런데 유사 목회는 알지 못하게 자란다. 그것이 바로 목회자의 무서운 함정이다. 잠시 목회 생활에서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목회자의 함정은 숭고, 지성(거룩함) 등을 무감각하게 관습적으로 다루는 일이다

목회자는 너무나 쉽게 성소, 지성소를 출입한다. 너무나 경솔히 하느님 보좌 앞까지 드나든다. 너무도 자주 버릇없이 하느님의 말씀을 다룬다. 그러노라니 차츰 온당한 태도를 상실하는 수가 있다. 목회자는 거룩한 사실, 거룩한 것에 대하여 야단스럽고 분주하면서도 실은 거룩하신 주님을 경찬하는 마음은 잃고 있다는 것이다.

목회자가 영적인 행사에 매우 바쁘면서도 정작 자신은 영적이지 못한 경우가 너무도 많다. 목회자는 서서 길을 가리키는 사람일 뿐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고 만다. 목회자는 너무 말을 많이 하다 보니 말씀을 받아먹는 일을 잊어버린다. 이러한 일은 목회 생활에서 가장 흔하면서 비참한 함정이다.

감격과 경외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거룩한 진리를 이제는 아무 감각 없이 다루고 지껄이는 것이다. 거기에는 해골만 남아 있고 생명의 숨결이 없다. 불타고 재만 남아 있고 뜨거운 불은 꺼진 상태다. 자연히 설교할 주제를 잃고 만다. 그러니 딴 놀음이라도 해야 한다. 무서운 타락이요, 함정이다.

목회자의 함정은 일상적인 삶에 대한 무관심이다

실상 목회자의 삶이란 하늘과 땅, 진리와 실생활, 복음과 행위, 하느님과 인간 이 양자 중간에서 이 둘을 화합하는 일이다. 목회자란 사람을 하느님의 무릎 앞으로 안내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인간의 현실에 소개하는 일이다.

만일 목회자가 거룩을 알되 평범을 모르거나, 영원을 이해하되 시간을 무시하거나, 하느님을 알되 사람을 등한히 하였다면 그것은 어느 한 쪽도 아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목회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제2의 함정이다. 목회자의 입에서는 큰 술어들이 튀어 나온다. 그런 말이 다만 우리의 사소하고 평범한 생활 경험 속에까지 스며들게 될 때에야 의미가 있다.

목회자는 끊임없이 신도들의 일상을 살피고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한다. 복음과 진리의 물줄기가 저들의 사소한 생활에까지 침투하고 있는가를 엿보아야 한다. 저들의 현실적인 삶의 고민과 문제와 요구를 찾아봄이 없이 옳은 소리만 쏟아 놓는다면, 이는 상아탑 속의 종교는 될 수 있을지언정 삶을 이끄는 복음일 수는 없다.

목회자의 함정은 비 정상적 감정에 함몰된다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어느 정도 날카로운 정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정서의 나사가 도를 넘으면 비정상적 감정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목회자의 정서 생활의 함정이다. 신령한 목사가 되기 위해 이상스런 모양을 하고, 일종의 병적이고 신경쇠약 환자 같은 풍모를 지니고, 감정이 정상적이 아닌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들을 보게 된다. 이런 사람을 신령한 목사라고 오해한다.

신도의 감정을 쉽게 잡아 흔드는 설교는 마치 바다 위를 불어치는 광풍과 같아서 신경에 커다란 작용을 일으키며 격양시킨다. 그것을 성령의 역사인 것으로 밀어 붙이지만, 실은 성령의 작용이기보다 스스로 자기도취에 빠져 자칫하면 악마가 침입하기 쉬운 절호의 기회가 되는 일이 더 많다.

목회자의 함정은 '세속적 영광의 매력' 이다

목회 생활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인기, 영광, 지위 등에 대한 강한 열망을 말한다. 목회자를 유혹하는 함정은 세상 어디든지 있다. 마치 콜레라균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이런 세속주의 경향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타협주의다. 일명 회색주의-기회주의 처세다. 수단과 방법을 중요시하고 때로는 권모술수도 사양하지 않으며 형편에 따라 농간을 부린다. 이것이 그대로 간악의 꼬리 를 달고 있다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고상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아첨을 겸손으로 가장하고, 권모술수를 슬기로 가장하고, 비굴을 양보라고 한다. 이러한 가장이 있음에도 타협주의는 결국 그 자신의 영적 도덕적 이상을 저급한 표준으로 끌어 내리는 일이요, 자기의 고상한 신념을 하나의 세속 의견에 영합하는 놀음에 불과하다.

세속주의 경향 중에 또 한 가지 목회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성공을 노리는 초조한 움직임이다.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여기에 목회자의 함정이 있다. 우리 주님이 광야에서 당하신 마귀의 유혹은 저가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끈기있게 주님을 따라 다니며 괴롭혔다. "네가 내게 꿇어 절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영광을 주리라."

복음운동의 첫걸음부터 이 마귀의 꾐은 계속 따라 다닐 것이다. 아니 벌써 이미 목회자의 삶 어느 구석에 알을 숨겨 놓았는지 모른다. 길가에서 손쉽게 잡을 수 있는 허화시의 유혹 때문에 십자가의 영광이 무색해졌는지도 모른다. 이는 목회자들의 함정중의 함정이다.

목회, 목회는 어렵다. 다른 직업 모양으로 어떤 기술만 습득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소명감에서 온 출발이 있어야 한다. 길 옆에는 조금만 한 눈을 팔면 굴러 떨어지는 함정이 있다. 행여 이런 함정에 빠지지 말자.

햇봄, 앞산은 온통 화사한 꽃으로 충만하다. 목회자의 삶이 어찌 꽃과 같겠는가. 꽃이 아니어도 좋다. 바울의 말씀처럼 내 몸에서 오직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된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 박 철 목사 (부산 좋은나무교회)
올려짐: 2005년 4월 24일, 일 11:0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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