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daughter, who can't come back to Pyongyang, lost her sight 120419 [print]

평양 못 돌아오는 딸, 엄마는 시력을 잃어갔다
[신은미의 북한 이야기 - 신의주에서 평양까지⑧] 려명거리 그리고 김련희씨 가족


▲ 평양 "려명거리" 입구. ⓒ 신은미

(서울=오마이뉴스) 신은미 기자

여명의 도시

2017년 5월 22일, 브로커에 속아서 남한에 오게 됐다면서 북송을 요구하는 탈북동포 김련희씨 가족을 만나는 날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우선 '려명거리'로 향한다. 우리가 탄 차가 거리의 입구에 다다르자 옅은 녹색의 초고층 빌딩들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가 완공된 지 한 달 조금 더 지났단다. 2016년 4월에 착공해 2017년 4월에 완공했다. 하지만 그 사이 3개월은 공사를 중단했다. 모든 인력과 물자들이 함경북도 홍수 피해 지역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란다. 실제 공사기간은 9개월이라고.

며칠 전 갔던 '미래과학자거리'도 1년여 만에 완공했다고 해 믿어지지 않았는데, 이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건물들을 9개월 만에 지었다니, 이게 건축공학적으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 2017년 "려명거리"의 모습. ⓒ 신은미

파스텔 톤의 옅은 빌딩 색깔이 말해주듯 려명거리는 친환경을 지향한다고 한다. 지열을 이용해 일부 난방도 하고, 건물 안에 온실을 만들어 채소를 생산한다. 여기 저기 넓은 녹지대를 만들어놔 도심지에 있다는 느낌이 전혀 안 든다. 도심 속에 공원이 있는 게 아니라, 공원 속에 도시가 있는 인상이다.

'미래과학자거리'와 마찬가지로 건물 외부엔 페인트칠을 하지 않고 모두 타일로 시공했다. 도시란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리의 모습이다.

이곳 역시 철거민들, 공사 중 사망하거나 심한 부상을 입은 건설일꾼들이 우선 입주했고, 그밖에 김일성대학 교원들, 모범 노동자들이 살고 있단다. 김일성대 교원들을 위해 두 동의 고층 아파트를 몇 년 전 지었지만 모두 수용하지 못했는데, 이번에 '려명거리'를 완성해 모든 교원에 최고의 살림집을 마련해줬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은 초등학교 선생부터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국가는 그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 아파트 내부를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집주인에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아 이내 마음을 접는다.


▲ 탈북동포 김련희씨의 딸이 요리사로 일하는 "려명거리 온반집". ⓒ 신은미


▲ 북한 려명거리의 식당 대성산에서 먹은 음식들. ⓒ 신은미

대신 '려명거리'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마침 이 거리에 있는 식당 '온반집'에서 탈북동포 김련희씨의 딸 김련금씨가 요리사로 일한다고 해서 찾았다. 그런데 오늘은 휴일이란다. '려명거리'에도 '미래과학자거리'만큼이나 상점과 식당이 많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여기저기 상점에 들어가 구경한다. 한 식료품점에 들르니 상점과 식당을 겸하고 있다.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경미는 육개장, 남편은 전복죽, 나는 돌솥비빔밥을 주문한다.

음식을 받고 깜짝 놀란다. 달걀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돌솥비빔밥 위에 얹어놨다. 사회주의는 실용을 중시한다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미적 감각도 충분히 고려한다. 비빔밥 위의 달걀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얹는 식당은 북한의 이 '대성산식당'이 처음이다.

동포의 정을 느끼다


▲ 수기치료 의사 선생님과 작별을 하며. ⓒ 신은미

'평양친선병원'으로 향한다. '려명거리'에서 시간을 지체해 약속시각보다 15분 정도 늦을 것 같다. 오늘이 이번 여행 중 마지막 치료다. 내일 하루 더 시간이 있지만 지방 여행이 예정돼 있다.

그 사이 의사 선생님과 정이 듬뿍 들었다. 매일 1시간 이상 온 정성을 다해 지압 치료를 해주셨다. 나는 "다시 오겠다, 곧 또 만나자"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그녀는 "병원이란 자주 올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라면서 내 팔을 걱정해준다. 통증이 계속될 경우에 대비해 이런저런 운동을 하라면서 처방해준다.

헤어지는 순간까지 잡은 손을 놓을 수 없다. 그녀는 힘든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배웅한다. 고마운 동포여, 부디 안녕하시라!

절망 속의 흐느낌


▲ 필자를 반갑게 맞아주는 김련희씨 남편과 딸. ⓒ 신은미

병원을 빠져나와 김련희씨 부모님 댁으로 향한다. 아파트 문앞에 도착하니 김련희씨의 남편과 딸 김련금씨가 우리를 맞는다. 이번이 두번째 만남이다. 련금씨가 손을 내밀면서 인사를 한다.

"안녕하십니까, 녀사님."
"아이구, 련금아. 그러지 않아도 아까 려명거리 '온반집'에 갔었는데 문을 닫았더라고."
"그러셨습니까. 오늘은 열지 않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요."


▲ 슬픔에 젖어 눈물 흘리는 탈북동포 김련희씨의 어머니. 이 어머니는 김련희씨가 남녘에서 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 시력이 약화되고 있다. ⓒ 신은미

집안에 들어서니 노부부가 서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김련희씨의 부모님이다.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김련희씨 어머니는 김련희씨가 남녘에서 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부터 충격으로 인해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 겨우 희미하게 물체를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치료를 받고 있지만 실명할 수도 있단다. 김련희씨의 남편이 의대 교수라서 정성껏 치료를 뒷받침하고 있지만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은 분위기다.

휴대전화를 꺼내 페이스북 메신저를 열고 김련희씨를 부른다. 화면에 김련희씨가 나타났다. 휴대전화를 가족들에게 돌린다. 이내 눈물바다가 돼 서로를 부른다. 김련희씨가 남으로 간 뒤 6여 년만에 처음으로 하는 통화다.


▲ 탈북동포 김련희씨와 그의 가족이 나눈 페이스북 메신저 대화 내용. ⓒ 신은미


▲ 김련희씨 부모님댁에 걸린 가족사진. ⓒ 신은미

2015년 10월에는 딸 김련금씨와 김련희씨를 문자로 연결해줬다. 그러나 이번엔 화상통화로 서로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다. 연결 상태가 좋지 않다. 문자전송으로 전환해 계속 대화를 주고받는다. 차마 옆에서 볼 수가 없다.

메신저 대화로 끝나고도 한참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침묵 속에 흐느낌만 메아리친다.

응접실 벽에는 행복했던 순간이 박제된 채 덩그러니 걸려 있다. 허탈한 마음만이 허공을 맴돈다. 아무도 말이 없다. 김련희씨가 남으로 간 지 6년이 지났다. 그까짓 6년 아무것도 아니다. 10년도, 20년도 기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건 김련희씨가 영원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다.

식당에 가니 미사일 영상이... 불안한 2017년


▲ 평양 "천지" 식당 벽면 걸린 TV. 미사일 관련 홍보 영상이 계속 나왔다. ⓒ 신은미

'천지'라는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중국 북경에도 '천지'라는 북한 식당이 있는데 평양의 이 식당이 본점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식당 안 벽면에 걸린 TV에서는 여러 종류의 미사일 시험 장면이 음악과 함께 펼쳐진다. 트럭에 달린 둥그런 원통에서 미사일이 툭 튀어 나오더니 공중에서 불길을 품고 쏜살같이 솟구친다.

"경미야, 저런 미사일은 처음 보네."
"잠수함에서도 저런 식으로 쏴올립니다. 물 속에서 튕겨나와 물 밖에서 점화되어 날라갑니다."

온 나라가 '미사일 잔치'라도 하는 듯 하지만 실제 사람들의 표정은 비장하다. 올해(2017년)는 어두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경미 이야기로는 앞으로도 계속 '탄도로케트(미사일)'를 시험 발사할 것이라는데,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더구나 미국 대통령은 예측불허의 트럼프다.

불안불안한 마음을 안고 호텔로 돌아온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12월 06일, 금 10:1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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