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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고난은 그 자체로 그리스도인의 적극적인 삶의 방식

살다보면 뚜렷한 이유 없이 아픔과 고통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 아픔 자체보다도 죄 없는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그 이유 없음 에 더 힘들어진다.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하나님의 존재가 의심스러워진다. 폭풍을 만나 수해로 가족을 잃고 집과 재산을 잃어버린 사람들, 태어날 때부터 모진 불치병에 고통 받는 사람들, 그리고 전 세계에 기아(飢餓)로 죽어가는 뼈만 앙상한 어린아이들의 고통을 보면 눈시울이 뜨겁다.

나의 모태가 그 문을 닫지 않아 내 눈이 마침내 고난을 보게 되었구나 는 욥의 고백은 고난이 얼마나 존재론적인지를 보여준다. 태어날 때부터 고난은 인생에 스며 있다(욥 3:24~26). 또한 욥의 고난 이야기가 주는 깨달음 중 하나는 고난이 고난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고난에 뜻 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이 하나님의 뜻은 아니지만, 그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원망하기 이전에 그 속에서 피어나는 고난의 뜻을 찾아야 한다. 그 뜻 중의 하나가 사랑의 완성 이다. 고난은 우리를 참 사람으로, 참 사랑으로 태어나게 한다. 작은 것의 의미를 깨닫고 소중히 여기게 하고, 현재의 살아 있음에 감사하게 한다.

고난 속에서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사람이 사랑이어야 함을 뼛속 깊이 깨닫게 하는 고난의 신비를 누릴 수 있다. 우리 눈에 이유 없는 고난으로 비춰질지라도 그것으로 인해 비로소 사랑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은총을 맛볼 수 있다면 그 고난이 더 이상 우리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고난의 영성이다.

우리의 영성을 정제하고 단련시키는 고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간다는 바울의 고백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자리잡고 있는 고난의 특성을 보여준다. 이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난은 의를 위하여 싸우다 박해를 당하는 고난을 말한다. 고난은 죄의 결과가 아니며,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의 방식이다. 이 고난은 수동적으로 감수해야 될 운명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를 소유한 자들의 적극적인 삶으로 말미암은 당연한 결과다. 이 고난은 그 고난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함석헌은 일찍이 이 고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꿰뚫어보았다. 고난이란 무엇인가? 영이 물질에 대하여, 양심이 욕에 대하여, 생명이 사망에 대하여 항쟁하는 일이다. 그 반대물을 완전히 극복하는 때까지 고난은 없을 수 없다. 고난이란 살았다는 말이요, 생명이 자란다는 말이다. 도덕적으로 진리적으로 자란다는 말이다. 고난 없이 혼의 완성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고난을 통해 생명의 확충을 경험한다.”

고난은 인생과 역사를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끈다. 고난은 인생을 하나님께로 이끈다. 궁핍에 주려보고야 아버지를 찾는 버린 자식같이 인류는 고난을 통해서만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을 찾았다. 사람은 고난을 당해야만 실꾸리를 감게 되고 그 실꾸리를 감아 가면 영원의 문간에 이른다. 이것은 단순한 고통(pain)이 아니라 뜻있는 고난(suffering)이다.

고난은 우리에게 생명을 줌으로써 우리의 존재를 변화시킨다. 그러기에 예수는 자신으로 인해 고난당할 때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마 5:12)

마더 테레사는 "고난이 따르지 않는 일은 사회사업이나 매우 선하고 유익한 일은 될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될 수 없고 구원의 일부도 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예수의 정신을 따라 이 사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이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와 다른 삶의 양식과 가치로 점철되어 있기 때문에 예수 정신은 저항받기 마련이고 따라서 고난은 불가피한 것이다.

고난은 우리 영성을 정제하고 단련시킨다. 우리는 의를 위해 고난을 많이 당해본 사람들의 얼굴과 삶 속에서 깊은 영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 어떤 위협이나, 궁지에서 의연한 그들의 영적인 힘은 바로 고난을 통해서 단련된 것이다. 그들에게는 요동이 없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낮아짐, 비움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팔복 중 처음의 가난함과 마지막 고난을 통해서 받은 복이 같은 하나님나라 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고난과 자기를 비우는 영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고난을 통해서 자기를 비우게 되는 체험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당할 고난을 대신 당하고 있는 사람들

고난의 영성을 지닌 사람은 남의 고통과 고난을 지나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당하는 고난과 함께하고 고통을 나누어 가지려 한다.

이사야가 전해준 고난 받는 종에 대한 묘사는 남을 위해 대신 고난을 기꺼이 받아내는 이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예수의 삶은 인간의 고난을 대신 당하신 고난의 영성을 지닌 사람의 전형이다.

"그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박고 가까스로 돋아난 햇순이라고나 할까?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주었구나. 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나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트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구나.”(사 53:2~5)

오늘날 우리는 자신의 잘못이나 악한 행동이 때문이 아니라 큰 뜻을 품고 옳은 일을 할 때 고난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의(義)를 위해 힘쓰다 감옥에 갇힌 수많은 사람을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을 대신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고난이 가져온 생명력 있는 영성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우리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의를 위해 힘쓸 때 닥쳐오는 고난을 의연하게 맞이해야 한다. / 김진 목사 (크리스챤 아카데미 선임연구원)
 
 

올려짐: 2005년 4월 18일, 월 12:2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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