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Weekly of Florida   로그인  등록하기

 현재시간: (EST) 2020년 7월 07일, 화 8:55 pm
[종교/문화] 종교
 
[호산나 칼럼] '모순된 가르침'이 교회교육 죽인다
'믿음'과 '행함'구분하는 이분법적 가르침 지양해야

교회에서 교육이 없게 되는 이유는 교회의 가르침이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 구별된 것처럼 강조하면서 사실은 세상과 분리된 것을 가르치고, 동시에 세상의 가치관과 동일한 관점에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 안(in the world)에 살면서 세상을 너머(beyond the world) 살아야 하지만, 마치 세상 바깥(ouside the world)에 살면서 세상에 속해(belong to the world) 사는 것을 강조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고난받는 예수' 선포 불구 고난과 멀리 있는 삶 동경


지극히 작은 자 하나와 동일시하신 예수님을 강조하지만, 머리 둘 곳도 없으셨던 예수님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대형교회를 성공의 잣대로 판단하고 부와 권력과 명예를 터부시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러한 것을 축복의 증거로 바라볼 뿐 아니라 기대하는 것이 사실이다. 고난 받는 예수를 선포하지만 고난과 멀리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됨'을 강조하지만 교파 간의 분열, 지역 사회 내의 교회 간의 경쟁을 통한 분리됨, 교회 내의 여러 가지 이유로 나뉘는 현실을 방지나 해소하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방조하는 것들. 때로는 이러한 현실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을 가르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섣부르게 말하는 등. 교육의 내용이 너무도 많은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이 뿐인가?

아직도 교회에서는 '오직 믿음으로'의 가르침을 반복하고 있다. 믿음으로만 구원이 가능하며 실천이나 삶은 구원에서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설교강단에서는 끊임없이 실천을 강요한다. 의무를 강조 하기보다는 강요 한다. 성수주일이 그것이다. 십일조 강조가 그것이다. 새벽기도회·철야기도회 등 교회의 집회에 열심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교회 조직 내에서 봉사를 강조하지만 교회 조직 바깥의 이웃을 향한 봉사에 대하여 강조를 별로 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술과 담배'를 금하는 것은 열심이지만 탈세, 부정직, 약한 자에 대한 포악, 말로 상처주기, 쉽게 판단하기, 거룩의 이름으로 당짓기나 편가르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조심스레 청종하기 보다는 만장일치를 은혜로운 것으로 생각하는 것 등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 모른다.

믿음과 행함은 하나일 뿐

과연 '오직 믿음으로'인가? 분명히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한다. 이미 용서받은 사람(1만 달란트 소유자)도 다른 사람(100데나리온 소유자)를 용서하지 않을 때, 그의 용서는 무효화되었음을 선언한다. "영생을 얻는 방법을 구하는 자"에게 "계명을 지켰느냐?"고 물으시고,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Just do it)고 말씀하신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고 단언하신다. 믿음과 행함, 이는 어느 것이 서로 앞선다고 말할 수 없다. 그저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오직 믿음으로'를 외치는 한 "철저하게 윤리적이어야"함을 강조해야 한다. 성경적 윤리는 "약한 이웃을 돌보고 먼저 용서할 뿐 아니라 사랑으로 허물을 덮고,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겸손한 자세로 섬기는 일"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있다. 이러한 성경적 윤리는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세상 안에서도 실천되어야 할 성격의 것이다. 이러한 윤리를 실천하는 것은 믿음의 부수적인 행동이 아니라 바로 믿음의 행위임을 말한다.

오늘날 교회가 생명력을 잃어가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목사를 섬기라고 강조하고 교회를 섬기라고 강조하지만, 예수님 닮는 일을 우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닮아야 하는데, 예수님 앞에서 목사가 앞에 서 있어 예수님이 가려져 있거나 교회가 아닌 교회 조직 혹은 예배당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는 모순 아닌 역설적 진리 가르치는 곳

교회는 모순이 아닌 역설적인 진리를 일관되게 가르치는 교육이 있을 때 산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국내와 해외로 나눈다거나, 편견을 가지고 사람 사이에 선을 긋는다거나, "누구나 다 오라"고 외치지만 장애를 가진 자, 병든 자, 가난한 자, 외국인 노동자 등이 접근하지 어려운 물리적 구조, 심리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스스로 모순된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모순된 진리는 진리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세상과 정반대로 배치된다 해도, 때로는 고난과 핍박이 다가온다 해도, 때로는 외로운 길로 걸어가는 길이라고 해도 일치된 말씀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단지 일방적인 가르침, 교수 중심의 강의, 강론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토론하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변화시키기에 동의하는 속에서 성령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목사·장로·권사·집사·선교사 등 모두가 죄인이라는 가르침 앞에서 헐벗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현장이 될 때 교회 교육은 살아있게 된다.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냉소주의가 판을 치던 시대에 지성인을 향한 설교를 통해서 많은 이들을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 비결은 진솔함에 있었다. 인간의 벌거벗을 몸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진실함에 그 비결이 있었다. 교회 교육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진솔한 교육은 때로는 정치적일 수도 있고, 때로는 경제적일 수도 있다. 지나치게 사회적일 수 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삶이 당시 정치, 종교지도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 것처럼. 따라서 교회 교육은 진솔한 모습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행함 있는 믿음의 내용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뉴조 축약)
 
 

올려짐: 2005년 3월 14일, 월 5:19 pm
평가: 0.00/5.00 [0]

답글이 없습니다.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3800
www.sharingkorea.net
www.ksm.or.kr
www.smiledentalfl.com
www.koreahouseorlando.com
www.koramtour.net
www.minsolaw.com
www.easybeautysalon.com/
www.umiwinterpark.com
www.metrocitybank.com/
www.RegalRealtyOrlando.com
www.ohmynews.com
www.newsm.com
www.newsnjoy.or.kr
www.protest2002.org
www.biblekorea.org
dabia.net/xe
www.saegilchurch.net
get FireFox
www.korean.go.kr/front/foreignSpell/foreignSpellList.do?mn_id=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