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K목사님께 드리는 편지

우리는 자식이 굶어 죽는 것을 보고 엄마가 따라 죽었다"는 북녘소식을 1년도 훨씬 전에 들었고, "식량을 구하러 월경하다 아버지가 총맞아 죽었다"는 어느 꽃제비 소년의 소식은 1년전에 들었으며, "수삼일 굶은 뒤에 눈앞에 어른 거리는 강아지를 삶아먹고 보니 자신의 자식이었다더라"는 도저히 믿기도 듣기도 괴로운 방북 목사님의 전언을 들은 것은 몇개월 전이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등교하지 않아 집을 찾아 갔더니 일가족 모두 굶어 죽어 있었다더라"는 귀순자의 증언을 들은 것은 십수일 전이요. "먹을 것이 없어서 부모가 아이를 목졸라 죽이고 자신도 따라 죽었다더라"는 처절한 소식과 개성과 통천의 어떤 마을에서는 매일 한 두명씩 굶어 죽는다더라"는 소문을 또다른 귀순자로부터 전해 들은 것은 불과 며칠전의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WCC.NCC 계열의 기독교단체들을 비롯하여, 세계식량기(WFP), 식량농업기구(FAO) 등 각종 국제 단체들이 북한을 돕겠다고 발벗고 나선지가 오래되었다. 이런 마당에 '먼저 4자회담에 응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주겠다 안주겠다 딴죽을 걸고 있는 우리정부의 '피도 눈물도 없는' 현실 외교논리라는 것과, '도와주면 군량미로 들어간다'는 우리 사회의 레드 컴플렉스 환자들의 소심증에 우리는 양심을 짓누르며 발만 동동 구르며 살아야 할 것인가. 사회주의 이상론, 자본주의 현실론, 사회주의.자본주의 '잡탕론' 으로부터 나온 각종 경제 이론과 정책, 그리고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나온 외교정책 따위는 인간의 생명을 살리는데 얼마나 터무니 없는 쓰레기들이냐!


목사님! 앞에 길게 인용한 내용은 6년여 전에 밀려드는 북한의 참상소식을 듣고 다급한 마음에 제가 어느 신문에 쓴 칼럼 내용중 일부입니다. 저는 그 글에서 역사 이래로 인류의 발전과 복지를 위해 만들어 낸 최고. 최선의 이론이라 자처하는 대 경제이론들이라는 것이 '부의 재분배'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얼마나 취약하고 허황된 것인가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리 좋은 분배이론 분배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고 실천해야 하는 인간의 가슴이 열려있지 않으면 그야말로 '빚좋은 개살구' 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끝내 '노골적으로' 토하고 싶었던 것은 이러한 가슴을 여는 일을 주로 해야 할 사람과 기관이 종교인과 종교기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종교가 인간의 가슴을 열고 생명을 살리는 데 실패한다면, 그 좋다는 신학이론과 돈독한 신앙이라는 것도 정말 '빚좋은 개살구'가 될 것이라는 경고를 해 두고 싶었습니다.

물론, 목사님께서도 인간 개인의 가슴을 여는 일에, 영혼을 살리는 일에 헌신적으로 종사해 오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구령사업' 이 개개인에게 사적인 수준의 만족을 가져다 주는 데 머물고, 타인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손을 놓아버리게' 만들거나, 속수무책이라면 정말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요즈음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을 근저로 성립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온 우리가 '개인'의 영원복락을 강조하는 종교와 만날 때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의 끝자락에 '개인 영혼의 구원' 이라는 것이 맞 닿았을 때, 그것은 좀더 고차원적인 형태의 탐심과 이기심의 충족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요샛말로 '오버'일까요?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또한 컨텍스트(상황속에서 깊게 통찰되고 검증되지 않은 죄(성), 자유, 구원의 이해가 정말 올바르기나 한 것입니까?

'뜨거운 감자'로서의 북한은 어떻습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북한이라는 '타자'를 우리에게 던져서 속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한국교회와 한국교회 크리스챤이 북한을 비켜 세워 놓고 '죄' 와 '자유'와 '구원'을 맘놓고 말할 수는 있는 것입니까? 한국교회는 북한을 말할 때 '선교' 보다는 끝없는 증오에 대한 회개와 화해를 먼저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원을 용서하고 자신의 아들로 삼은 손양원 목사는 우리 영혼의 액자 틀속에 아름답게 보관해두고 즐기는 그림같은 분입니까?

목사님! 이번 <북한어린이돕기오픈골프대회>는 모인 숫자로 보면 목사님이 '예언처럼' 말씀하신대로 '안해도 그만!'인 대회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정말 이민교회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고, 타자를 잃어버린 '돈독한' 신앙의 의미를 다시한 번 깨달을 수 있게 한 값진 대회였음을 일성으로 목사님께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영혼구원의 전문가'이시며 이를 위해 노심초사하실 목사님께 외람되게 보수신학이나 신앙의 폐혜를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람이 살아 있어야 보수를 전하던 '고리짝'을 전하던 할게 아닌가 하는 단순 논리를 진지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북한은 올해 풍년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1992년 이래 누적된 흉년으로 올해만 140만톤가량의 식량이 부족한 형편입니다. 현재 아프간 사태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식량원조가 예년처럼 원활하지 못해 내년봄쯤 다시 집단 아사자가 발생할 것으로 국제 구호단체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1불이 북한에서 100불이 될 수 있음을 상기한다면, 애바트게 열고 있는 '오병이어' 대회를 가리켜 '안해도 그만!'인 대회라는 '쪽박깨는' 발언은 한 생명을 가장 귀중히 여겨야 할 목사님이 뱉을 수 있는 말은 적어도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이번 대회에는 몇몇 목사님들과 신도들 그리고 교회들의 직,간접적인 협조가 크게 도움이 되어 적은 숫자로 모인 대회임에도 제법 큰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당초 참가를 약속했다 사정이 있어 참가치 못한 어떤 분은 '책임을 통감한다'며 상당 금액을 기부해 주셧습니다. 특히 맞벌이 형편에 부부싸움을 두려워 하지 않고 '토요대회'에 참가해 주신분들의 성의에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었습니다. 여러모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낸' 아름답고 소박한 대회였습니다.

목사님, 교회에 신도가 적게 모인다고 해서 목사님이 목회를 포기하실 수 없는 것처럼, <북한어린이돕기> 대회에 숫자가 적게 나온다 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는 신나는 일을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 부디 가슴을 열어주십시오. 어려우시겠지만 미국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백-투-베이직(Back-to-basic)'를 깊게 상념해 주십시오. 주일성수에 대한 고정관념과 골프에 대한 편견도 이 기회에 깨뜨려 주신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목사님, 몇년후에 북한의 문이 활짝 열리면 가급적 제일 나중에 들어 가시는 '예의'만이라도 갖춰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김명곤 기자 (2001.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