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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 ①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상)
'제자 훈련' 상징에서 '교회 분쟁' 상징으로…10년 전 '마당 기도회' 태동한 이유

(<뉴스앤조이> 연중 기획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는, 교회 분쟁이나 목회자와의 갈등으로 기존 교회를 떠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분쟁 중에 있는 상태라 표면적으로는 그 교회에 속해 있어도, 그 실질은 이미 교회를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포함합니다. 분쟁과 갈등의 양상보다는, 목회자의 비행 때문에 겪은 교인들의 아픔과 이후 회복의 과정 등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이야기입니다. (상), (중), (하) 3편으로 나눠 매주 월요일 발행합니다. - 기자 주)



▲ 10년 전 '마당 기도회'로 시작한 사랑의교회갱신위원회는 3년 전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교회를 꿈꾸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서울=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 = 예전에 사랑의교회는 '제자 훈련'의 상징이었다. 설립자 고 옥한흠 목사는 만인 제사장 원리에 따라 일반 신자들도 목회자와 동역하는 관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신도를 깨운다는 목표로 제자 훈련을 정립했다. 사랑의교회에서 파생된, 혹은 옥한흠 목사의 제자를 자처하는 목회자들은 저마다 교회에서 제자 훈련을 시행했다. 사랑의교회가 단순히 규모만 큰 대형 교회들과는 조금 다른 '점잖은' 이미지였던 이유는, 이 제자 훈련이라는 트레이드 마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랑의교회는 제자 훈련보다는 '교회 분쟁'의 상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3년 1월 터진 오정현 목사의 박사 학위논문 표절 사태로 교인들은 갈라졌다. 그해 11월 사랑의교회는 서초 예배당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러나 오정현 목사의 회개를 촉구하며 '마당 기도회'를 해 왔던 교인들은 강남 예배당에 남았다. 이후 수년간 물리적·법적 충돌이 계속됐고, 2023년 지금까지 사랑의교회 교인들은 서초와 강남 예배당에 따로 나뉘어 있다. 사랑의교회와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한 지붕 두 가족(?)이 된 상태다.

사랑의교회를 교회 분쟁의 상징이라고 표현한 것은 오명일 수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만큼 조직적으로 담임목사의 비위를 밝혀낸 곳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분쟁 대부분이 담임목사의 문제로 시작된다. 교단을 불문하고 교회법적으로 교인들이 담임목사를 내보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담임목사가 버티면 교인들은 방법이 없다. 담임목사 권력에 쫓겨나거나, 몇 년 싸우다가 지쳐서 교회를 떠나거나, 좀 더 버틴 경우라면 아예 교단이나 법원이 나서서 교회 재산을 갈라 주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때로는 개혁의 주체가 그 정신을 잃어버리고 개혁의 대상이 되는 일도 있다.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는 지난한 법적 싸움을 통해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칠 만한 결과를 많이 이끌어 냈다. 회계장부 열람 소송에서 이겨, 아무리 초대형 교회라도 교인들에게 재정 장부를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을 상기시켰다. 오정현 목사가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자격이 없다는 소송을 걸어 그의 인생 내내 불투명했던 이력을 드러냈다. 서초 예배당 공공도로점용 소송을 도와 초호화 예배당이 불법으로 건축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대한 사랑의교회와 소속 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의 대처는 실망스럽기만 했으나,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의 성과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간 사랑의교회 사태는 법적 공방을 위주로 보도됐다. 사랑의교회 분쟁을 누구보다 밀착 취재해 온 <뉴스앤조이>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중요한 소송들이기는 했다. 그러나 정작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안에서 계속해서 사랑의교회 본질 회복 운동을 벌여 온 교인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이번 기획을 통해 사랑의교회 분쟁이 이들의 신앙과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들어 봤다. 올해는 마침 '마당 기도회'가 시작된 지 10년이 되는 때이기도 하다. 지난 2~3월,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교인 5명을 인터뷰했다.


▲ 사랑의교회 강남 예배당 마당. 마당 기도회가 시작된 곳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1.

'이게 옳은 건가….' 그 시절 임현희 권사(71)의 머릿속엔 이 생각뿐이었다. 오정현 목사의 박사 학위논문 표절이 수면 위로 드러난 2013년 초, 오 목사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예배당 마당에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을 때다. 이들은 오 목사가 설교하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 본당에서 진행하는 금요 철야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예배당 마당에 모였다. 처음에는 대여섯 명이 모여 기도하고 답답한 마음을 이야기했다. 이후 점점 사람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마당 기도회'가 됐다.

사랑의교회 강남 예배당은 특이하게 본당이 지하에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1층에는 넓은 공간(마당)이 있어, 교인은 물론 교인 아닌 사람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예배가 끝나면 교인들은 마당으로 나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했다. 교인들은 자연스럽게 교제가 일어나는 마당을 사랑했다. 이런 구조는 2013년 11월 완공된 사랑의교회 서초 예배당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몇 배는 커지고 일부 공간은 공공 도로 지하를 불법으로 점유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임현희 권사는 금요일 저녁마다 본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 서서 생각했다. '이게 맞는 걸까.' 이렇게 금요 기도회를 보이콧하는 것은 어쨌든 교회가 가고자 하는 길을 반대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것인가, 나는 순장(사랑의교회 소그룹 리더)이기도 한데 담임목사를 반대하는 게 맞는 것인가…. 그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많은 교인은 오정현 목사의 허물이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잘못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목사님도 사람이야."
"성경에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말도 있잖아. 왜 목사님 용서를 못 해."

그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어찌 됐든 계속 금요 기도회를 나가지 않고 마당에 있는다는 건, 수십 년간 매주 얼굴을 보고 신앙생활을 한 다른 교인들과 불편한 관계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건 임 권사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마당에 서서 기도했다. "나 자신에게, 하나님께 계속 물었어요. 순장으로서 담임목사를 반대하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 '용서하라'는 성경 말씀이 이 상황에 이렇게 적용되는 게 맞는 것인지…."

임현희 권사는 1952년, 개신교를 독실하게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이다. 외할아버지가 그 옛날 일본 고베에서 신학을 공부하셨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어머니를 통해 신앙이 3대째 이어져 내려왔다. 임현희 권사의 말마따나 "디모데의 가정 같은" 곳에서 자랐다.

그런 임 권사에게 '목회자'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의식하기 전부터, 자아가 싹트기 전부터 그런 문화에 젖어 버렸기 때문에…. 어떤 다른 문화에 곁눈질할 틈이 없는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어요." 그렇게 40년을 살다가 1991년 이사와 함께 사랑의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이전부터 옥한흠 목사를 알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의 설교를 들으며 올곧은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사랑의교회에 정착했다. 20여 년을 사랑의교회에 다니면서 순장 등을 맡으며 봉사했다.

2003년 오정현 목사가 부임했을 때도 거부감은 전혀 없었다. 옥한흠 목사에 비하면 설교 수준은 확실히 떨어진다고 느꼈지만, 오정현 목사만의 강점도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옥한흠 목사는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새벽 기도를 인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오정현 목사는 부임하자마자 '특별 새벽 기도(특새)'를 인도했다. "센세이셔널했죠." 임현희 권사는 그 시절 오정현 목사에 대한 호감도는 높았다고 회상했다. 당연히 오정현 목사도 신뢰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60년을 살아온 임현희 권사에게 오정현 목사는 인생 최대의 걸림돌이 됐다. 오 목사의 박사 학위논문 표절이 드러나면서, 60 평생 굳어져 있던 목회자에 대한 신뢰에 처음으로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표절뿐 아니라 오 목사의 반복되는 거짓말과 이를 자꾸 덮으려 하는 교인들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목사가 하는 말에, 교회가 하는 일에 반대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 임현희 권사. 현재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운영위원이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2.

모태신앙으로 따지자면 김근수 집사(63)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김근수 집사는 태어나 보니 무려 4대째 기독교 집안이었다. "100년간 제사를 지내지 않은 집안"이라고 소개할 정도다. 어렸을 적 전해 들었던, '왕고모'라고 불리던 고모할머니가 목격한 백증조부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경북 의성(김근수 집사는 '의성 김 씨氏'다)에서 한량처럼 살던 백증조부가 어느 날 경북 청도에서 선교사를 만나 세례를 받은 것이 그의 집안에 복음이 들어오는 통로가 됐다.

그 선교사는 훗날 숭실대학교를 세운 베어드(William Martyn Baird·배위량, 1862~1931) 선교사였다고 한다. 백증조부는 그 길로 베어드 선교사와 함께 의성으로 돌아왔다. "그때 말을 타고 왔다." 왕고모의 말은 전설처럼 전해 내려왔다. 그렇게 백증조부의 집에서 베어드 선교사가 교회를 시작한 것이 120여 년 역사를 간직한 비봉교회의 태동이다. 비봉교회는 1900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김 집사의 백증조부가 베어드 선교사를 데려와 집에서 예배를 시작한 것은 그보다 몇 년 전이다.

말 그대로 '대대로' 교회 섬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집안에서 자란 김근수 집사에게도 목회자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는 1992년 사랑의교회를 다니게 된 후 옥한흠 목사와 오정현 목사를 존경했다. '경북 의성'과 '비봉교회' 때문에 오정현 목사에게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다. "오정현 목사 고향이 의성이에요. 그리고 언젠가 설교 시간에 비봉교회 이야기를 한 적도 있어요. '와, 비봉교회를 아시네' 하면서 저 혼자 뭔가 좀 특별한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죠." 물론 그때는 아직 그의 논문 표절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전이었다.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은 김근수 집사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 2012년 말 오 목사의 박사 학위논문이 표절이라는 소문이 교회에서 본격적으로 돌기 시작했을 때, 당시 순장이었던 김 집사는 순장들만 볼 수 있던 교회 홈페이지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올렸다. 오 목사의 논문이나 재정 사용 등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하며, 사실일 때는 그를 해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글은 오정현 목사의 부정不正에 끓어오르던 교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게시 글은 삭제됐고, 이내 사랑의교회 한 부목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집사님, 이 글은 담임목사님을 비난하는 내용이라 삭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내 신앙 양심으로 쓴 거니까 그냥 두시면 좋겠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보시고 혹시 뭔가 깨달으실 수도 있잖아요."

김근수 집사는 다시 글을 올렸다. 다시 지워졌다. 또다시 올렸다. 결국 순장 게시판 자체가 사라졌다. 하지만 당시 오정현 목사에게 문제를 제기하던 온라인 카페에 누군가 김 집사의 글을 퍼 갔고, 그 글은 교인들 사이에 퍼지게 됐다. 글을 보고 여러 사람이 김 집사에게 연락해 왔다. 그를 욕하고 비방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 마당 기도회를 시작했다. 그때 김 집사는 어찌 보면 순진했다. 이쯤 하면 오 목사가 회개하고 물러날 줄 알았다. 잘나가던 회사의 임원으로 바쁘게 살던 그가 앞으로 10년간 지난한 투쟁의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집안으로 보자면, 4대째 이어 오는 믿음의 가문에서 최초로 목사에게 정면으로 대항하는 이가 나온 것이다.


▲ 김근수 집사. 현재 사랑의교회갱신공동체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3.

"오정현 목사님… 좀 이상하지 않아?"

주일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서정식 집사(58)는 아내에게 물었다. 언젠가부터 오정현 목사에게 불편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2008년 옥한흠 목사가 오정현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썼듯 "소리 없이 쌓이는 불신의 먼지"였다. 어느 한 사건이 문제였다기보다는 2003년 오 목사가 부임한 이래 수년간 누적돼 온 불편함이었다. 처음 오 목사가 왔을 때는 환영했다. 그것은 오 목사에 대한 신뢰였다기보다는 그를 택한 옥한흠 목사에 대한 신뢰였다. 하지만 무언가 빗나갔다는 느낌이 갈수록 강해졌다. 비록 다른 교인들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아내와는 전부터 오 목사의 자질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해 오고 있었다.

"그러게, 갈수록 이상하네…."

서정식 집사는 언젠가 오정현 목사가 설교 시간에 경영학자이자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 1909~2005)를 언급한 일을 기억하고 있다. 오 목사는 드러커의 사상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경영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서정식 집사가 봤을 때, 오정현 목사가 경영학의 대가 드러커를 직접 만나 이야기까지 나눴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차치하더라도 당시 이미 드러커의 저서를 섭렵했던 서정식 집사는 오정현 목사가 그를 잘 모르고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설교 시간에 하는지, 그때 서 집사는 알지 못했다.

박사 학위논문 표절이 드러나기 전에도 오정현 목사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낀 사람은 서정식 집사뿐만이 아니었다. 법률가로 사랑의교회 법조선교회에서 활동했던 김성만 집사도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김 집사의 습관은 설교를 메모하는 것이다. 누구의 설교든지 일단 예배 시간에는 항상 펜과 종이를 가지고 임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사랑의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매주 옥한흠 목사의 설교를 빼놓지 않고 메모했다. 당연히 모든 설교를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메모를 해 놓으면 나중에 그것만 봐도 설교의 핵심 메시지가 떠오르곤 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설교를 메모하는 일을 놓지 못했다.

오정현 목사가 부임했을 때만 해도 "쌍수를 들고 환영한" 김성만 집사였다. 오 목사가 정식으로 부임하기 전부터 그의 저서를 구입해 읽는 열정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오정현 목사의 주일예배 설교는 메모하기가 곤혹스러웠다. 수년간 매주 설교를 정리해 온 김 집사도 오 목사의 설교는 당최 무슨 내용인지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가끔은 오 목사가 정말 설교 내용을 알고 말하는 건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핵심 메시지가 명확하게 정리되던 옥한흠 목사의 설교와는 딴판이었다. 이는 단순히 원로목사의 훌륭한 설교에 길들어져 후임 목사의 설교가 마땅치 않은 수준이 아니었다. 무언가 본질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저는 사람을 볼 때 어떤 큰 하나의 사건보다는 평소 그가 하는 행동을 보는데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오정현 목사는 확실히 옥한흠 목사와 달랐다. 옥한흠 목사는 가끔 교회 서점에서도 만날 수 있었고, 그런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대형 교회 담임목사인데도 성품이 부드럽고 목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정현 목사는 일요일에도 교인들과 접촉하기를 꺼리는 듯 보였고, 외부 일정을 다닐 때면 마치 대기업 CEO처럼 부목사를 여러 명 대동했다. 무엇보다 오 목사 부임 후 교회에서 정치인들이 많이 보이고 강단에서 소개됐다. 이런 모습들이 김성만 집사의 안테나에 탁탁 걸렸다. 그는 교회가 변질되고 있다고 느꼈다.


▲ 2003년 오정현 목사(오른쪽)가 사랑의교회에 부임했을 때는 모두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4.

오정현 목사의 박사 학위논문 표절은 사실로 확인됐다. 사랑의교회 장로들은 TF를 구성해 2012년 6월부터 오 목사의 논문 표절 문제를 조사해 왔고, 2013년 1월 당회원들에게 결과를 발송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오 목사의 논문이 표절이라는 점도 그랬지만, TF 조사 과정 중 반복된 오 목사의 거짓말이 더 큰 문제였다. 오정현 목사가 사랑의교회에 부임한 후 10년 동안, 교인들이 가랑비에 옷 젖듯 느꼈던 그 '이상함'의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반복되는 거짓말은 오 목사의 인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었다.

믿음이 무너져 내렸다. 서정식 집사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간이 찌푸려진다. "한 달 넘게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당연히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출근을 해도 신경이 온통 교회와 오정현 목사에게 가 있었다. 시도때도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뭔가 새로운 글이 올라오면 읽었다. 읽고 충격받고 우울해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오 목사의 논문 표절은 팩트였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오 목사의 인간됨을 보며, 수년간 느꼈던 불편함의 퍼즐이 맞춰졌다.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더 이상 오 목사의 설교를 듣기가 어려웠다. 결국 본당 대신 마당을 택했다.

김성만 집사에게는 가정과 직장과 교회가 삶의 기초였다. 오정현 목사의 거짓말은 그에겐 교회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삶의 ⅓이 무너져 내린 거죠. 삶의 기초가 와르르 흔들리는 것 같았어요. 1년 반에서 2년 정도는 좀 심하게 힘들었죠." 사랑의교회에서 가족들과 함께 신앙생활 한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자부심이자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근간이었다. 그랬던 그에게 오정현 목사의 비위는 그간 자신이 믿어 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토록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여겨 온 그 믿음의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게 했다. 그 역시 마당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오정현 목사를 믿을 수 없게 된 교인들이 마당으로 하나둘 모였다. 그렇게 점점 사람이 많아지자 이들은 2013년 3월 22일 금요일부터 정기적으로 마당에 모여 기도회를 하기로 했다. '사랑의교회 본질 회복을 위한 마당 기도회.' 첫 마당 기도회에 260명이 넘게 모였고, 기도회가 지속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몇 달 후에는 수백 명으로 늘어 마당에 사람이 빼곡할 정도가 됐다. 안수집사들을 중심으로 사랑의교회회복을위한기도와소통네트워크(사랑넷)를 조직해 오 목사의 회개를 촉구하는 교인들의 의견을 모으고 대책을 세웠다.

오정현 목사와 그를 지지하는 교인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오 목사는 TF 조사 당시 "논문 표절이나 대필이 발견되면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표절이 사실로 드러나자 말을 바꿨다. 그는 2013년 2월 10일 주일예배에서 교인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참고 문헌을 쓰는 과정에서 일부 미흡했다"며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는 한편, TF 위원장이었던 권영준 장로가 "48시간 이내에 사임하지 않으면 언론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식으로 말했다. 또 거짓말이었다. 그러면서 1~4부 예배 때 모두 같은 지점에서 눈물을 흘렸다.

오정현 목사의 눈물은 교인들 사이를 빠르게 갈라 놓았다. 오 목사의 사과 아닌 사과는 그를 지지하는 교인들을 결집하는 효과가 있었다. 오정현 목사를 옹호하는 교인들은 몇몇 장로와 집사가 조직적으로 오 목사를 끌어내리려 한다는 음모론을 신봉했다. 설사 오 목사가 "참고 문헌을 쓰는 과정에서 일부 미흡했"을지라도, 사과했으니 용서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마당 기도회'에 모이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들' 정도면 양반이었다. 대놓고 '교회를 파괴하는 세력', '이단', '신천지'라고 말했다. 이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수십 년간 함께 신앙생활했던 교우들에게.

그때를 생각하면 임현희 권사는 지금도 눈물이 난다. 마당 기도회에 참석하는 것이 옳은 건지 고뇌하던 그는, 기도 중에 확신을 얻고 난 뒤 담대함이 생겼다. 오정현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이 비난하고 부목사들이 감시하듯 지켜봐도 오히려 떳떳하고 당당하게 마당 기도회에 임했다. 오 목사에게 속지 않고 마당 기도회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도 단 한 가지, 몇 주 전까지 함께 신앙생활했던 교인들의 관계 단절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었다. 기도하면서 많이 울었다. 임현희 권사는 대형 교회 목사의 책임감에 대해 생각했다.

'아… 한 사람 때문에 이렇게 큰일이 벌어지는구나. 한 사람 때문에 이 많은 영혼이 이렇게 상처를 입는구나.'

(계속)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5월 15일, 월 2:3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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