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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교회에서 정치 이야기, 해도 될까요?
[김동환의 길의 가장자리에서] 신앙이 촉발하는 정치적 상상력의 다양성과 교회가 해야 할 일

(서울=뉴스앤조이) 김동환(길섶교회 목사)

1.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4월 9일, MBC '100분 토론'에서 생각해 볼 만한 여론조사 결과가 소개됐습니다. '정치 성향이 완전히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는데요. 응답자 1000명 중 과연 몇 %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응답했을까요? 절반 정도인 50.9%였습니다.

'정치 성향이 완전히 다른 사람과 연인이나 부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각각 36.7%, 35.7%의 사람들이 '가능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사회자가 토론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도 두 토론자 모두 선뜻 가능하다고 말하지는 못했지요. 한 토론자는 좋은 매너를 갖추면 넓은 의미에서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개척교회를 4~5년 하고 보니, 처음 교회를 시작했을 때 누군가 제게 아래와 비슷한 질문을 던져 줬다면 도움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치 성향이 (완전히) 다른 사람과 교회에서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가까운 친구든, 넓은 의미의 친구든,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친구가 될 가능성을 높이려면 교회에 어떤 규칙과 매너가 필요할까요? 목사는 소셜미디어나 설교, 교회 소그룹에서 현실 정치 이슈에 대해 말할 때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물론 4~5년 전의 저는 이런 질문을 받아도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말하고 싶어서 개척교회를 하는 건데, 그런 매너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할까?'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넘어갔을 것 같네요. 그렇게 개척 이후 처음 1~2년은 제 정치적 입장을 소셜미디어나 교회 모임에서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당시에는 종교와 정치는 분리할 수 없는 영역이고, 정부에 대한 입장과 선호 정당을 이야기하는 것이 교회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개척교회 초기 구성원 중에는 정치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분도 있었고, 관련 일을 하지는 않지만 특정 정치 이념을 강하게 갖고 있는 분도 있었습니다. 반면, 현실 정치 이슈에 관심이 많지 않은 분도 있었지요. 선호 정당이나 정치 이념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함께 지내는 경험이 적다 보니, 이야기하며 생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교회를 떠나는 분도 종종 있었습니다. 정치 이슈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그 이야기의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교회를 떠나기도 했고요.

20명이 안 되는 작은 교회 모임이었지만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구성원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정치 이슈를 종교 모임에서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지', '대화할 때 어떤 매너를 지켜야 할지' 충분히 고민하고, 모임 참여자들과 합의를 통해 좋은 규칙들을 만들어 나갔다면 좋았을 텐데요. 그러지 못한 부분이 가장 아쉽습니다.

저는 신학에도 다양한 입장이 있기 때문에 직업 종교인이 공적 공간이나 교회 모임에서 현실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지도가 높은 목사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말을 자유롭게 해도 교회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데 문제가 없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정치적 성향이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요. 물론 교회가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될 확률도 높아지겠지만 말입니다.

반면에 저처럼 인지도 없는 목사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도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이 적은데 현실 정치 이슈까지 자꾸 이야기하면 교회에 편히 놀러 올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제 신학적 성향과 정치적 성향을 둘 다 인정해 줄 수 있는 분을 찾는 데 별로 자신이 없거든요. 정부·정당·정책 등 현실 정치 이슈에 관한 이야기는, 모임 구성원들이 '예수님 앞에서 싸우지 않겠다'는 피의 서약(?)을 하고, 기도를 충분히 하고 나서, 따뜻한 조명을 준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비로소 조심스럽게 꺼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 페이스북은 왜 전쟁터가 됐을까?

제 기억에 페이스북은 5년 전만 해도 목회자와 평신도 그리고 다양한 세대 간 대화가 가능한 공간이었습니다. 저도 청년 사역을 하던 시절 페이스북을 활용해 소통하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몇 년 사이에 페이스북에서 목회자와 평신도, 5060세대와 2030세대 간 대화가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신학의 입장 차이보다는 현실 정치 이슈에 대한 입장 차이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예전에 알았던 교회 청년분을 오랜만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요. 제가 수년 전 포스팅한 정치 관련 글을 언급하더라고요. 제가 자꾸 정치 이슈 이야기를 하니 답답해서 페이스북 친구를 끊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바로 이야기해 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정치 이슈에 빠진 목사와는 대화가 어려울 거라 판단한 것 같습니다. 사실 페이스북에서 대화하다가 관계가 끊어진 청년분들이 또 있었습니다. 이게 다 제 전적 타락으로 인한 참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20~30대분들이 다른 소셜미디어로 이사(?)를 많이 갔기 때문에 목사님들이 정치 이야기를 자주 올려도 큰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좋아요' 눌러 주며 친교를 나누는 효과는 있겠지만,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새로운 합의점을 찾는다거나 하는 실제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독교 관련 단체나 목회자분들이 페이스북과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사람 간에 갈등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것을 보는 경우는 드물다 보니 페이스북 진입 장벽도 높아지는 것 같고요. 솔직히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는 '진보 기독교'를 생각하면 '갈등'이나 '분열'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오랫동안 친교를 나눴던 교회 청년분들이 저와 팔로우를 끊고 거리를 뒀던 이유도, 정치 이야기를 하는 목사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봅니다. 제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이야기를 해서 거리가 생겼던 건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이 전제가 잘못됐을 수도 있지만, 제 해석이 맞다면 목사가 현실 정치 이슈를 이야기해도 될지, 한다면 어떤 톤과 매너로 해야 할지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3. 예수님은 실패한 정치 활동가?

신앙과 정치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는 '역사적 예수 연구'도 함께 다룰 수밖에 없는 주제입니다. 기독교 신앙을 '예수님 닮기'로 이해할 때, 결국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가 모든 것의 중심 질문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분이셨을까요? '정치적'이란 말을 직업으로서의 정치 활동과 대비되는 표현으로, 즉 일상에서 자유와 평등의 철학이 적용되는 활동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예수님은 '정치적인 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가 죄인으로 규정한 사람들을 만나서 용서의 말씀을 전하고, 치료하고, 함께 식사하고 연대하며, 그들에게 자유를 주고, 그들을 평등한 존재로 대해 주셨으니까요.

이런 맥락에서는 우리는 교회 공동체 또한 '정치적인' 공동체라고 철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라는 특수한 공간에 입장할 때는 사회적인 관습과 신분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식수준이나 경제 능력, 직업의 종류 등 다양한 사회적 지위가 우월한 힘으로 작동하지 않는 공간으로 교회를 만들어 갈수록, 교회는 1세기 성찬 공동체와 닮아 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500년 전의 성찬 논쟁, 그러니까 '성찬을 집례하는 과정에서 은혜의 통로인 예수님의 육체와 피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가'를 토론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함께 식사하는 신앙 공동체의 공간이 사회적 지배 체제의 관습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질문하고, 거기에 참여하며 새로운 규칙이 작동하는 공간을 만들어 간다는 의미에서 '정치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 활동'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요. 역사적 예수 연구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18세기 독일 루터교 목회자 라이마루스(Hermann S. Reimarus)의 해석이 그런 경우입니다. 라이마루스는 예수님을 다윗과 같은 군사적·정치적 혁명가로 봤는데요. 그에 따르면 예수님은 '실패한 정치 활동가'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의 압제와 유대교 종교 지도자들의 타락에 맞서려 했으나 개혁에 실패하고 십자가 처형을 당한 정치 활동가라는 것이지요.

라이마루스는 부활 이야기도 제자들이 그들의 선생님이었던 예수님의 정치 활동을 이어 가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라이마루스 생전에 이런 이야기가 공론화한 것은 아니고, 그의 사후에 발견된 글에 이러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의 해석은 기적과 부활을 가정하지 않고 기독교의 발생을 재구성해 보려는 최초의 시도 정도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 연구자들은 학문적으로 훨씬 진중하게 접근했으니까요. 라이마루스의 해석을 시작으로 이후 역사적 예수 연구에서 나타나는 반복적인 패턴이 있는데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역사성과 중요성을 낮추면 낮출수록 예수님을 정치 활동가로 이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구원 활동의 의미가 죽음 이후의 세계 혹은 죽음 자체와의 싸움보다는 현실 세계의 변혁에 있다는 데 더 중점을 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을 과학적·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부활은 신앙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활 개념을 '실제 있었던 일로 개연성 있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강조하는 한, 과연 예수님을 '실패한 정치 활동가'가 아닌 다른 존재로 변명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르게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자체의 어떠한 효과도 인정하지 않게 되면, 예수님을 일상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활동했으나 실패한 정치 활동가로 이해해거나, 혹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자유를 위해 독립운동을 했으나 실패한 정치 활동가로밖에 볼 수 없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신학적) 실제성을 전제하지 않고 '의미'만을 무리하게 강조할 때, 저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상실감과 우울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이 어떤 면에서 현실적인 힘이 있는지 와닿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자체에 특별한 효과(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가 있다고 믿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세기 유대 민족의 독립을 위한 '정치 활동'에 국한되지 않고, 세상의 회복과 인류의 자유·평등을 촉진하는 구원 활동을 벌이셨기 때문에, 그분의 활동은 '정치적인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4. 정치-중립 공간으로서의 교회

예수님을 정치 활동가는 아니지만 정치적인 분으로 믿는다는 것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과 '특정 정당인이 된다'는 것은 다른 뜻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정치와 종교는 층이 다르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사람을 자유롭게 하고 평등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구원자로서 활동하셨고 또 죽음과 부활로서 구원의 효과를 일으켰다면, 우리는 신앙으로 인해 발생한 정치적 상상력을 우리가 속한 세속 사회에서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에 관해 다양한 해석 옵션을 갖게 됩니다.

아주 단순화해서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이 주신 '자유'가 현실 정치에서의 정치적 자유와 유사성이 있고, 또 보수 정당의 이념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면 기독교 신앙으로 보수 정당에서 활동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평등'이 현실 정치에서의 정치적 평등과 어울린다고 판단하고, 진보 정당의 이념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면 기독교 신앙으로 진보 정당 활동을 할 수 있겠지요.

현실에서 정당이 이념과 분리돼 작동된다면, 어떤 정당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게 신앙이 촉발하는 정치적 상상력에 부합하는지 판단해 볼 수 있겠습니다. 혹은 거기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대안적 시민 활동을 하는 데서 효능감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직접적인 정치 활동보다는 일상의 '정치적인' 활동이 신앙과 어울린다고 해석할 수 있고, 그런 활동 속에서 신앙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령 환경문제를 신앙의 상상력과 연결 짓는다면, 환경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고 여겨지는 정당에 가입해 활동할 수도 있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환경문제를 연구하거나, 걷거나 뛰면서 쓰레기를 줍는 '줍깅' 같은 활동을 할 수 도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신앙의 상상력이 어떤 정치적 활동을 촉발하는 힘으로 지속적으로 전환되려면, 그 활동이 주는 효과를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활동이 나의 신앙과 연결되고 또 나에게 효능감을 줄 수 있을지는, 목사나 교회 공동체가 선택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만의 신앙 여정에서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며 찾아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따라서 구성원들의 신앙에 기반한 자유로운 정치적 활동 가능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 교회는 특정 정치집단에 대한 편향성을 최대한 갖지 않는 '중립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지향하는 게 어떨까 하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가벼운 상상을 해 보자면, 정치-중립 공간으로서의 교회와 보수든 진보든 특정 정치색을 강조하는 교회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 게 이상적일까요? 정치-중립 공간으로서의 교회가 80%, 특정 정당이나 정치철학을 강조하는 교회가 20% 정도면 어떨까, 혼자만의 상상을 해 봅니다.

교회가 정치적인 활동(정치 활동이 아니라)을 한다면, 저는 그 참여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활동의 빈도가 높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문제(환경문제, 젠트리피케이션, 차별·혐오 문제, 전쟁, 노동문제 등)를 나열만 하고, 어떠한 효능감도 없이 십자가만 지고 가라는 식으로 구성원들을 몰아붙이기만 한다면 교회는 '우울 공동체'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붙잡고 부딪혀 보고 싶은 십자가가 사람마다 한두 가지 정도는 있을 것인데, 그것이 어떤 주제인지는 스스로 정해야 하는 일입니다.

제가 만나는 교회분들 중에는 각자 삶에서 아슬아슬한 정치적 분투를 감당하고 있는 분이 많습니다.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진심으로 참여하는 분들도 있고, 개인의 정치적 활동에 충실한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구성원분들의 다양한 정치적 활동을 존중하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전에는 같은 정당을 좋아하고 특정 정치인에 대한 평가도 비슷해야 가까운 신앙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 경험상 누군가의 정치적 의견을 바꾸는 데 성공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치적 입장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정치에 대한 관점과 정치 이슈에 관한 관심도·참여도가 다른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교회 공동체가 '친구 됨'을 키워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치적 입장이 달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종교의 효과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이번 주제는 저와 가까운 분들도 저마다 생각이 다르실 텐데요. 많은 비평 부탁드립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4월 14일, 금 9:4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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