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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나는 신이 아니다(I Am Not God)
김영봉 목사 3월 19일 주일예배 설교문

(서울=뉴스앤조이) 김영봉 목사(와싱톤사귐의교회)

형제자매 여러분, 내 마음의 간절한 소원과 내 동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내 기도의 내용은, 그들이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나는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씀으로써,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셔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의가 되어 주셨습니다. (성경 본문: 로마서 10장 1~4절)

1.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기독교 계열의 이단 종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3월 3일, 이 작품은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시청률 1위의 자리에 올랐고 지금도 관심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대략 아는 내용이어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언론 매체와 저의 SNS에 올라오는 관련 글들을 보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첫 회를 틀었다가 몇 분 지나지 않아 멈추었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나 더럽고 역겨웠기 때문입니다. 보긴 보아야겠는데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는 사이에 며칠이 지났습니다. 아내는 영혼이 더러워질 것 같아서 안 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의 책임감에 다시 시청을 시작했습니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끝까지 보기에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며칠 동안 나누어 보았습니다. 내면에서 소화할 여유가 필요했습니다. 다 보고 났을 때 저의 미간에는 주름이 깊이 패어 있었고, 제 영혼은 지저분한 잔상들로 인해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씻어 내는 데 시간이 좀 필요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이 작품을 보신 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굳이 보라고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 김영봉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현실은 소설보다 더 잔인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작품이 소설이나 영화였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과장이 지나치다"거나 "현실감이 떨어진다"고 비판했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종교를 악용하여 추종자들을 노예로 만들어 부정한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했습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사이비 종교 현상은 이상한 일도 아니고 놀랄 일도 아닙니다. 그런 일은 기존 종교들 안에서도 일어났고, 그 영역 바깥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그런 현상은 때로 거대한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문제가 불거지면 잠잠해졌다가 얼마 후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다루어진 사교들의 상황은 그 규모와 사악함의 정도에 있어서 특별합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경을 도구로 이토록 사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현실이 있었다는 사실은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용기 있는 사람들을 통해 이 거대 악의 실체의 일부가 드러나게 된 것은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들의 용기와 헌신과 희생에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2.

이 작품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심하게 병들어 있는지를 뼈아프게 보여 줍니다. 이단이나 사이비 현상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이토록 거대한 스케일로, 이토록 참담한 양상으로, 이만큼 악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 안에 기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심하게 병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교는 언제나 사람들의 병적 심리와 사회의 병리적 현상 안에서 기생합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감안해 보면, 앞으로 이보다 더 심한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음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것을 종교의 문제로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의 인간성의 문제요, 사회적 질병의 문제입니다. 절대적인 존재에게 자신을 온통 내어 맡기지 않으면 불안하고 공허하여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뜻입니다. 종교 사기꾼은 그런 환경 속에 비집고 들어가 자신의 왕국을 건설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듬어 주고 다독여 주고 안심시켜 줄 관계의 안전망이 그만큼 망가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찾는 돌파구는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믿는 이들은 이 작품을 한층 더 진지하게 대해야 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오늘의 시대에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라고 받아들입니다.

먼저, 저 같은 목회자들에게 이 작품은 위기의식을 가지게 합니다. 내가 복음을 바로 믿고 있고 바로 전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반성하게 만듭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는 그런 악이 없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 작품에서 다뤄진 네 명의 교주는 악의 극단까지 간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토록 지독한 악마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작은 악을 하나씩 허락하다 보니 악의 화신이 된 것입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주저하면서, 혹시나 벌을 받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면서 그 악을 행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 마땅한 악을 행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어느 순간부터는 대놓고 악을 행했을 것입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었겠지만, 악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부터 믿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은 이용해 먹기에 가장 쉽고 유익한 도구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작은 악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감추기 쉽습니다.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합리화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은 악을 선으로 미화시키는 데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날카롭게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면서 악의 길로 향하는 자신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네 명의 교주는 작은 악을 소홀히 하면 누구나 그런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목회자들 중 네 명의 교주가 행해 온 거대한 악을 작은 스케일로 반복하여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목회자들의 이야기가 가끔 뉴스에 오르곤 합니다. 재정 비리, 성적 비행, 권력 남용 같은 문제들입니다. 그것은 작은 정명석, 작은 김기순, 작은 이재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발각되어 드러나지 않은 악을 포함한다면 얼마나 더 많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도 잊을 만하면 목회자의 비리에 관한 소문이 나돌아 다닙니다.

제가 지금 누워서 침 뱉고 있는 거 맞지요? 이렇게 말하면 "세상에 믿을 만한 목사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겠지요. 실제로 믿지 않는 사람들 중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목사와 교회에 대해 대놓고 의심하고 기피하려 한다고 합니다. 제가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해도 그랬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개 빳빳이 세우고 "나는 그들과 다릅니다" 하고 외쳐 보아야 소용없습니다. "당신도 같은 종류지?"라는 비난과 조롱을 우리 시대의 목회자들은 아무 말 없이 감수해야 합니다. 그런 악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목회자들은 진심으로 이 사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자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면서 자신도 언제든 넘어질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매일 하나님 앞에서서 그분의 은총을 구하여 거룩하게 살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안전할 수 있다면 오직 하나님 앞에 깨어 있을 때뿐입니다. 그럴 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그런 목회자들을 통해 복음의 빛을 다시 일으켜 주시고 교회를 거룩한 신부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작품을 보고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여러분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런 엉터리 같지도 않은 교주의 말과 행동에 넘어가다니, 도대체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그 말의 배후에는 "나는 그 사람들처럼 어리석지 않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그분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교주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악하지 않았던 것처럼, 신도들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절박하게 찾고 바라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혹시나!' 하면서 작은 어리석음을 하나씩 허용했을 뿐입니다. 그 작은 어리석음이 쌓이고 쌓이다 보니 거대한 어리석음이 되어 버렸고, 헤어날 수 없는 구덩이에 빠져 버렸습니다.

사교의 지도자들은 인간의 부정한 탐욕을 무한 긍정하고 부단히 자극합니다. 그리고 그 탐욕을 채워 줄 것을 약속합니다. 그 과정에서 온갖 사술을 동원합니다. 탐욕에 사로잡히면 판단이 마비됩니다.

추수감사절 다음 날에 Black Friday Sale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욕심에 수많은 사람들이 개장 시간보다 수시간 일찍 나와 줄을 서서 추위에 떨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개장이 되는 동시에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그 오픈런의 모습은 "탐욕에 눈멀다"는 말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사교의 교주들은 사람들의 탐욕을 자극하면 어느 순간 모든 이성적 판단이 정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심리를 악용하는 기술을 터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배의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욕망을 채우기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아닙니까? 탐욕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더 가까워지려는 진지한 열심으로 예배의 자리를 찾는 사람들보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더 쉽게, 더 빠르게 얻고 싶고 채우고 싶어서 나온 사람들이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누군가 그럴듯한 말로 그 욕망을 자극하면서 그것을 채워 줄 것 같은 사람을 보면 솔깃해집니다. 이단 종파가 기존 교인들을 우선적인 표적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따라서, 목사인 제가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교주들과 그리 멀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거기 나오는 광신도들과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과연 나는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탐욕을 비우기 위해 힘쓰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엄밀하고 냉정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믿음을 바로잡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기대하시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사람은 제아무리 신묘막측한 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나타나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영적 사기꾼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 낼 수 있습니다.


▲ '나는 신이다' 1~3화는 JMS·섭리로 알려진 기독교복음선교회 교주 정명석 이야기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갈무리

3.

이 작품에 나오는 네 명의 교주는 모두 신이 되고 싶어 했고 신과 같이 누렸습니다. 그들은 추종자들로 하여금 자신을 신으로 믿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의 사기술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은 교주들만이 아니라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보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전이(transference)'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교주나 아이돌에 대한 추종 현상을 설명해 왔습니다.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을 이룰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절대 권력자가 되거나 교주가 되거나 아이돌이 됩니다. 반면, 그 욕망을 이룰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신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 맡김으로써 그 욕망을 대리 만족하려 합니다. 만사를 제쳐 두고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따라다니는 열성 팬도, 절대 권력자에 빌붙어 아부를 일삼는 정치꾼들도, 그리고 교주의 측근이 되어 온갖 불의와 부정을 행하는 사람도 전이 현상의 예입니다.

그 욕망, 신이 되고 싶고 신처럼 살고 싶은 욕망이 저에게도 있고 여러분에게도 있습니다. 그 욕망을 잘못 다루면, 우리는 누구나 그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가 그들처럼 되지 않은 것은 우리의 환경이 그 욕망에 지나치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큰 복을 받은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욕망에 사로잡혀 세상을 어지럽게 하고 인생을 망친 사람들을 비난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도 어느 정도는 환경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욕망에 매몰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 욕망을 쉽게, 빠르게 이룰 수 있다는 말에 쉽게 흔들릴 정도로 절박한 상황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이 태초에 첫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모든 인류에게 전해졌다고 가르칩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도록 하와를 유혹하자, 하와가 그것을 먹으면 정녕 죽게 될 것이라고 하나님이 경고하셨다고 답합니다. 그때 뱀이 이렇게 답합니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창 3:5)

예수님은 사탄을 '거짓의 아비'라고 부르셨습니다. 뱀은 하와에게 그럴듯한 거짓말로 하와의 마음에 신처럼 되고 신처럼 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합니다. 그는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한 세상 안에서 그냥 놀면 되었습니다. 위로는 창조주 하나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생명들을 돌보며 살도록 정해 주신 질서 안에서 즐기고 누리면 되었습니다. 그 질서를 따라 자신의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조화롭고 아름답고 선한 세상에 악이 들어온 것은, 사탄이 인간에게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질서를 부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거부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사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판단으로 좋고 나쁜 것, 선하고 악한 것, 아름답고 추한 것을 선택하여 사는 것이 더 복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었고, 하나님을 떠난 결과 인간의 이성은 망가지고 심성은 굳어졌습니다. 반면에 신이 되고 싶고 신으로 살고 싶은 욕망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 상태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왜곡되고 깨져 있기에 때로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은 정도 이상으로 강해집니다. 과학자들은 첨단 과학 문명으로 그 욕망을 이루려 하고, 정치인들은 권력을 극대화하고 영구화하여 그 꿈을 이루려 하고, 자본가들은 거대 부를 이루어 그 꿈을 이루려 합니다. 연예인들은 세상 사람 모두의 추종을 받으려 몸부림치고, 종교인들은 자신만의 왕국을 이루어 신의 권력을 누리려 합니다.

그런 능력이 없는 우리 보통 사람들은 작게라도 그 욕망을 실현할 기회를 찾아 두리번거립니다. 직장에서 힘없는 직원들에게 행하는 갑질도 그 한 방법이고, 가정에서 행하는 언어 폭력과 신체 폭력도 그 한 모습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신이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한 좌절감과 패배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심한 사람들은 중독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은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 '나는 신이다' 7~8화는 만민중앙교회 교주 이재록 이야기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 갈무리

4.

이렇게 본다면, 이 다큐멘터리는 역설적으로 기독교 복음이 왜 오늘날 더 절실해졌는지를 반증합니다. 이 작품이 충격적으로 전하는 인간의 원죄 — 신처럼 되고 싶고 신처럼 살고 싶은 욕망 — 를 해결하는 길이 바로 복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 교주들과 신도들은 모두 믿는다는 사람들인데 왜 저렇게 되었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싶겠지요? 그분들은 안타깝게도 믿음을 오해했습니다. 교주들과 그들의 협잡꾼들에 의해 복음을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믿음 안에서 그 욕망을 내려놓는 것인데, 그 욕망을 긍정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 힘썼습니다. 신을 추구하되 잘못 추구하니 그들이 추구한 신에게 버림받은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다큐멘터리의 부제를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부제는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주들을 생각하면 '신을 배신한 사람들'이라고 해야 옳다 싶습니다. 아마도 작가는 교주들에게 이용당하고 버려진 추종자들의 입장에서 제작한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믿고 따랐던 신에게서 배신당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이 정말 신에게 배신당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신을 찾았지만, 그들이 찾은 신은 그들의 욕망을 채워 주는 신이었습니다.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은 그런 신이 아닙니다. 그러니 배신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신에 의해 배신당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욕망에 배신당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유대 광야에서 받은 시험을 기억하십니까?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그분은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십니다. 그때 그분은 사탄에게 세 가지 시험을 당하십니다. 그분이 받은 세 가지 유혹은 한 가지 목적을 향합니다. 신이 되어 신으로 행세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그 유혹에 털끝만큼도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높아지고 강해져서 신이 되는 길이 아니라 낮아지고 약해져서 종이 되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 선택은 결국 그분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했습니다. 그분은 사람이 되셔서 사람으로서 이를 수 있는 가장 낮은 곳까지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신이 되고 싶고 신으로 살고 싶은 욕망을 온전히 장사 지내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태어납니다. 믿음은 그 사랑 안에서 만족을 얻고, 그 사랑을 누리고, 그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비우고 낮추게 합니다. 빛나는 곳이 아니라 어두운 곳으로 가게 합니다. 강해지기를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약해지기를 추구합니다. 높은 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은 자리로 가게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당신을 그렇게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약속을 지키십니다.

오늘 저는 순서를 따라 바울 사도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동족 유대인들을 두고 쓴 글을 읽었습니다. 여기서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구원에 대한 열망도 있고 하나님께 대한 열심도 있지만 구원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마음 아파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 마음의 간절한 소원과 내 동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내 기도의 내용은, 그들이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나는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씀으로써,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롬 10:1-3)

악의 화신이 되어 버린 교주들에게 속아 인생을 망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바울 사도가 유대인들에게 가지고 있던 동일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구원에 대한 그들의 갈망이 얼마나 절실했습니까?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그들의 열심이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 열망과 열심을 채워 줄 바른 지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전 재산과 인생을 바치고 얻은 것은 배신과 파멸뿐이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필요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은혜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무력하게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저 그 사랑을 인정하고 그 사랑에 자신을 맡기고 그 사랑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온전히, 철저히 그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 사랑은 우리를 예수님이 걸으신 길로 인도합니다. 작아지는 길, 낮아지는 길, 섬기는 길, 희생하는 길 — 곧 십자가의 길로 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올곧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만 신이 되고 싶고 신처럼 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진 십자가의 영광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이 말씀을 묵상하는 동안 '이 모든 일들을 지켜보시는 주님께서 어떤 마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이룬 십자가의 영광이 인간의 더러운 욕망에 의해 더럽혀진 이 사태로 인해 얼마나 마음 아프실까 싶었습니다. 당신이 먼저 걸으셔서 열어 놓으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기를 거부하고, 신이 되고 싶고 신으로 살고 싶은 욕망을 채우는 요술 방망이로 만들어 버린 우리를 보시고 그분은 다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는 고통을 겪고 계시다 싶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죄스러웠는지요! 그 영광스러운 십자가가 오물에 덮이도록 한 죄에 대해 저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깊이 고개 숙여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윗이 시편 51편에서 기도한 것처럼, 저의 심령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제 안에 제가 허락한 작은 악, 작은 어리석음까지 씻어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의 회개에 동참해 주시기를 교우들께 호소합니다. 그것이 지금 주님께서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4월 03일, 월 1:4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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