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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생활 에세이
 
1350원으로 함께 만들 수 있는 길
장애인이동권 시위가 가르쳐 준 내 안의 모순과 생각의 지평

(서울=오마이뉴스) 김수안 기자

[신문광고 참여하기] 장애인권리예산∙입법 투쟁을 지지하며 함께 합니다. 2023년 1월 22일 오이도역 장애인 추락 참사 22주기를 앞두고, 전국장애인차별연대의 장애인권리예산∙입법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함께 1월 20일(금) 게재를 목표로 신문광고를 추진합니다. 평등의 길을 내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세요!

페이스북을 훑다가 페친이 공유한 '장애인을 위한 신문광고' 관련 페이지에 시선이 멈췄다. 함께 나눌 수 있는 단톡방에 공유를 하고 은행 계좌를 열었다. '서울시 성인 지하철 1회 요금 1,350원으로 신문광고 연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지만 진짜 1,350원을 입금할 순 없었다.


▲ 신문광고 함께하기 포스터 페이스북에서 확인했던 '장애인 권리예산, 입법 투쟁'을 지지하며 신문광고 참여를 알리는 포스터 ⓒ 김수안

얼마를 보내야 적절할까? 생각지 못했던 이번 달 지출 내역들을 떠올리며 '얼마를 보낼까요?' 입금액을 묻는 화면에서 나는 망설이다 결국 2만 원을 송금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망설였던 그 순간은 재작년에 경험했던 '내 안의 모순'을 다시 소환했다.

내 안의 모순

2021년 설 연휴 전날 지하철에 난리가 났다. 평소 3분 간격으로 들어오던 열차가 30분이 넘어도 소식이 없다며 한 아주머니가 투덜거렸고 플랫폼은 어수선했다. 안내 방송이 나왔지만 방송 상태가 고르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때마침 플랫폼으로 내려오던 직원에게 상황을 물었더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4호선 당고개역부터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시위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열차가 언제 들어올지 가늠할 수 없으니 바쁜 일이 있으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게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역을 빠져나와 버스를 탔고 늦지 않게 약속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는데, 문득 '아, 오늘 설 연휴 전날이라 고향 가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기차를 놓친 이들이 꽤 있겠다. 명절 기차표라 다시 끊을 수도 없을텐데, 왜 하필이면 설 연휴 전날, 그것도 서울역으로 가는 4호선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물었다. '그럼 시위는 언제 해야 하는데? 오늘은 명절 연휴라 기차를 이용할 사람들이 많을 테니 안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최대한 주지 않는 시간과 장소를 잘 선택해서 시위를 했어야 했나?' 그날 나는 나에게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6월 초, 기시감이 느껴질 만큼 똑같은 상황이 서울역에서 재현되었다. 꼭 참여하고 싶었던 행사가 곡성에서 있어 큰마음을 먹고 조퇴까지 하며 표를 끊었던 터였다. 서울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려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 또 무슨 일이 생겼구나' 싶었다.

어수선한 분위기, 명확하진 않지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방송 멘트. 단박에 장애인 시위가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다행히 꽤 여유 있게 나왔고, 서울역에서 용산역까지는 4km 내외, 택시를 타도 10분이면 족히 도착할 수 있을 법한 거리였기에 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유유히 역을 빠져나와 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택시를 탔다.

그런데 이게 웬일! 도로가 주차장이었다. 1, 2분이면 쌩하니 통과할 숙대입구역까지 10분이 넘게 걸렸다. 기차 시간은 다가오고 택시는 정말 말 그대로 거북이 걸음. 다음 기차표는 매진이었고 버스편은 아예 없었다. 플랫폼을 나설 때의 너그러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속상한 마음만이 요동을 쳤다. '왜 하필이면 오늘, 그것도 이 시간에!' 하며 짜증이 올라왔다.

도로 사정을 봤을 때 택시로 시간 안에 용산역에 도착하기란 100% 불가능이었다. 마음을 접고 우회전한 택시가 남영역 신호등 앞에 정차했을 때 후다닥 내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하철역으로 올라갔다.

용산역까지는 딱 한 코스. '지금 열차가 들어와 준다면 예매한 기차를 탈 수 있을 텐데' 하며 플랫폼에 들어서는 순간 안내전광판에 서동탄행 열차가 전전역을 출발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침착하려 애썼지만 나도 모르게 발이 동동거려졌다. 조금만 빨리, 조금만 빨리.

지하철은 기차 출발 4분 전에 용산역에 도착했고, 100m 22초 기록을 가진 나는 그날만큼은 날렵한 치타가 되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무사히 기차에 탑승했지만 예기치 못한 빠른 움직임으로 놀랄 대로 놀란 다리 근육은 벌벌 떨렸고 온몸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열차 내 시원한 에어컨 바람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 가뿐 숨은 잦아들고 심장 박동이 평소 리듬으로 돌아왔다. 그제서야 바깥 풍경이 눈에 들어왔고 40분간 내게 일어났던 '일'과 그 일에 대한 나의 '생각, 감정'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생각과 행동의 괴리, 머리와 가슴의 지극히 큰 간극을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아주 오래전, TV프로그램에서 프랑스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 시위와 그것을 바라보는 한 시민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거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고, 그 옆을 지나가던 한 시민에게 지금의 시위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들의 시위로 대중교통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매우 불편하다. 하지만 그들은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로 인해 불편함을 겪고 있긴 하지만 필요한 일이므로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을 무너뜨린 후예답게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준 그들에게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그렇게 생각하며 행동할 수 있길 바랐다.

30분의 사회적 비용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가 19일 오후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장애인 권리예산을 촉구하는 지하철행동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출근길 장애인 시위가 확대되면서 작년 한 해 지각하는 교사와 학생이 늘었다. 수업 시간 이 문제가 화두가 되었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한 인간의 삶에 있어 생존권 못지않게 중요한 게 이동권인데 장애인들은 너무나 오랜 시간 그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왔어. '불편하다', '불합리하다'라고 판단하기 이전에 그들의 외침에 먼저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라며 고상하게 말했던 적이 있다.

설 연휴 전날 내가 고향으로 가는 부산행 티켓을 끊었었다면, 곡성에 내려가던 날 기차를 놓쳐 기대했던 모든 주말 일정이 어그러졌다면 그날의 '장애인 시위'를 나는 과연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들의 외침을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어쨌든 나는 설 연휴 전날 기차료를 예매하지 않았고, 곡성에도 무사히 다녀왔으니 그러지 못했을 때의 내 '생각과 감정'은 또 결국 허상이다. 다만, 그럴 뻔했던 상황에서의 내 모습을 유추해 보건데 나는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그 프랑스 시민 같진 않았을 것 같다.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머리와 가슴이 따로 놀 때, 생각은 고상한데 행동이나 감정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도 나의 이해(利害)가 충돌하는 순간 큰 이기심이 작동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마냥 부끄럽고 한없이 작아진다.

깜냥이 안 되면 고상한 척을 말던가, 실천이 어려우면 번지르르한 생각을 말던가. 이렇게 나를 자조하게 되는 것이다. '신문광고 참여하기' 포스팅을 접하며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며,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이체하는 금액 앞에서 얼마를 보내야 할지 머리를 굴렸던 찰나의 내 행동에 또 한 번 '에이그'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작년 어느 날, 이 화두에 대해 귀감이 되었던 글을 접했다. 의사이자 작가인 남궁인씨의 포스팅이었는데 안양에 있는 고등학교에 강의를 하러 가던 날, 장애인 시위로 약속된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던 이유를 설명한 글이었다. 그는 준비했던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많은 장애인들이 동시에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열차 운행이 지연되겠지요. 그들도 모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시적으로 보여주어야지만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이 30분입니다. 이 시위가 없었다면 여러분이 이런 이야기를 듣는 일도 없었겠지요. 우리는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아서 30분의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것입니다. 방금 30분은 그런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남궁인씨의 글을 보며 머리를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그의 일화를 통해 내 모습을 반추하며 생각을 다시 가다듬을 수 있었다. 물론 이것 또한 '생각'이다. 하지만 때론 역설적이게도 '생각의 지평'을 확대함으로써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시위'와 나의 이해관계가 대치를 이룬다면 나는 또 '내 안의 모순'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간극은 이 글을 접하기 전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불평과 함께 마음 한 켠에 '30분의 사회적 비용'을 함께 떠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내 안의 모순들과 조우하게 될까? 실제적 경험과 삶에서의 부딪침으로 끊임없이 내 안의 불일치, 모순을 발견하게 되겠지만, 감히 그런 모순이 모두 싹 사라지기를 바라진 않는다.

이론과 실천이 하나로 연결되는 삶이란 지구상에 존재했던 '성인(聖人)의 그것'이거나 어쩌면 신의 영역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애써 생각해본다). 다만 매번 부끄럽고 한없이 작아지는 경험을 통해 자조하는 간극이 조금씩 좁혀져가길 바란다. 아울러 삶에서 체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 그것이 내 실천적인 삶과도 꾸준히 연결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3년 1월 21일, 토 6:1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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