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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생활 에세이
 
하얀 지팡이 들고 있는 사람에겐 이렇게 해주세요
[시력 잃고 알게 된 세상] 알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은 시각 장애인에 관한 상식

(서울=오마이뉴스) 김승재 기자 = '상식', 보통 사람이 으레 알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판단력. 그런데 요즘은 이 상식이 진짜 상식이 아닌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내 주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데, 저 높은 곳에서 나라를 위해 밤낮으로 애쓰신다는 분들은 전혀 모르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반대로 누군가가 상식이라고 강조하는데 난 금시초문이거나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때도 있다.

나 같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장애인들의 상식도 마찬가지다. 10여 년 시각 장애인이란 꼬리표를 달고 다니다 보니 내 주변 사람들은 적어도 시각 장애인에 관해서는,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상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조금만 더 나아가다 보면 정말 의외인 경우를 흔히 만날 수 있다.

요즘은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일반 학교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참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직업 교육이나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모를까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웬만하면 격리해서는 안 된다. 함께 어울려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그래야 공감도 하고 소통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장애인은 절대로 혼자만의 세상에서 살아서는 안 된다. 나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남을 만나고, 남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살아가야만 그 지독한 우울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희망의 불씨도 꺼뜨리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장애인 본인의 의지만큼이나 중요한 게 '남'의 도움이다. 그런데 그 '남'이 장애인에 대한 상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그렇다면 아마도 제대로 도울 수도 없을 것이고, 설령 도우려 한다고 해도 그게 오히려 방해가 되고 상처를 주는 행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소개하려 한다. 어쩌면 너무도 상식적이지만, 더욱 확실한 상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쓸데없는 잔소리 같지만 난 모든 장애인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할 수도 없다. 그냥 시각 장애인, 그것도 중도에 시력을 잃은 장애인의 입장이란 걸 감안해 주면 좋겠다.


▲ 시각 장애인의 눈이자 상징인 하얀 지팡이 ⓒ 김승재

하얀 지팡이

몇 해 전 연말 동창회여서인지 유달리 많은 친구들이 모인 적이 있다. 친구들은 대부분 꾸준히 동창회에 참석해서 내가 시력을 잃은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난 탓에 그걸 모르는 친구들도 간혹 있었다.

요란하고도 기분 좋게 1차 모임을 끝내고 2차 맥줏집으로 이동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하얀 지팡이를 확 낚아채 갔다.

"야, 인마. 넌 뭐, 이런 중국집에 오면서도 등산 스틱을 들고 오냐?"

얼마 만인지도 모를 만큼 꽤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한 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놈하고는. 야, 넌 그게 등산 지팡이로 보이냐? 장난치지 말고 내놔."

그런데 그 친구는 내 하얀 지팡이를 돌려주기는커녕 오히려 이리저리 흔들고 바닥에 두드려 보면서 더 크게 말했다.

"뭔 등산 스틱이 이렇게 허술해. 이거 힘도 하나도 못 받잖아. 악!"

"야, 넌 하얀 지팡이도 모르냐? 그게 승재한텐 얼마나 소중한 건데."

우리 뒤를 따라오던 다른 친구가 그 친구의 뒤통수를 갈기며 한마디 내뱉었다. 모두가 웃었고, 그제야 자기 실수를 깨달은 그 친구는 정말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또 빌었다.

여전히 얇은 접이식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는 시각 장애인도 있지만 요즘은 좀 더 튼튼한 걸 많이 가지고 다니는데, 이게 어찌 보면 등산 지팡이처럼 보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구별하기 쉽도록 오직 시각 장애인용 지팡이에만 하얀색을 쓰기로 약속했다. 그러니까 하얀 지팡이 혹은 흰 지팡이는 시각 장애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하얀 지팡이를 들고 서 있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멀쩡해 보이더라도 그 사람은 시각 장애인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필요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면 정말 정말 좋겠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얀 지팡이는 시각 장애인에게는 눈과 같은 존재다. 장난은 말할 것도 없고, 안내를 위해서라도 하얀 지팡이를 잡는 건 좋지 않다. 가장 좋은 안내법은 시각 장애인이 안내자의 팔을 잡는 것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어깨를 잡게 하거나 팔짱을 끼고 안내해 줘도 좋다. 중요한 건 안내자가 시각 장애인보다 반 발짝 앞서 걸어가며 장애물이 없다는 걸 말과 행동으로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이나 팔을 잡고 끌듯이 안내하거나 뒤에서 밀듯이 안내하는 건 절대 사양한다. 두렵기도 하지만 진짜 짜증 난다. 왜 그런지 궁금하다면 눈을 감고 딱 3분만 걸어 보시길.


▲ 손뼉이나 무언가를 두드려서 알려줄 수도 있겠지만 시각 장애인을 비롯한 사람에게는 말이 훨씬 좋다. ⓒ 김승재

청각

이번엔 시각 장애인의 청력에 관한 잘못된 상식이다. 언젠가 친구들과 김치찌개 전문 식당에 갔었다. 본 요리인 찌개가 나오기 전, 맛깔스러운 밑반찬 예닐곱 개가 양은 그릇에 담겨 나왔다. 본 요리인 찌개는 물론 밥공기도, 개인용 앞 접시도 모두 양은으로 만든 것이어서 꽤 인상적인 곳이었다.

"야, 반찬이 다 맛있구나."

한 친구가 내 손을 잡고 반찬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종류를 말해 줬다. 난 그럴 때마다 하나씩 맛을 보고 반찬 위치를 대충 기억해 뒀다. 그런데 커다란 찌개 냄비가 나오면서 모든 반찬 그릇의 위치도 변해 버렸다.

"계란말이가 어딨더라?"

모든 반찬 그릇의 위치가 바뀐 탓에 난 좋아하는 계란말이를 찾지 못하고 그냥 허공에 젓가락만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종이 울렸다.

땅땅.

불이 난 것도 아니고, 무슨 공격 명령을 내릴 것도 아닌데, 정말 너무 크게 반찬 그릇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당황해서 머뭇거리자 계란말이가 든 양은 그릇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던 친구는 더욱 크게 그리고 좀 더 빨리 그릇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땅땅땅땅땅땅땅땅.

식당 안이 온통 그릇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찬 것만 같았고, 모든 사람이 앞 못 보는 날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순간적으로 당혹감을 넘어 약간의 모멸감까지 밀려왔고, 계란말이의 위치를 알아차리기는커녕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악의가 있던 것도, 실제 큰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었다. 근데 난 창피하단 생각에 더해 조금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멀쩡한 입으로 말을 하거나, 처음 친구가 한 것처럼 가볍게 내 손을 가져다주면 될 텐데, 무슨 동물한테 밥 주는 것도 아니고.

청각이 시각을 대신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때와 장소가 있고, 정도가 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양은 그릇을 그렇게 크게 두드리면 좁은 공간에 소리가 울려서 오히려 찾기가 더 어렵다. 말로 할 수 있다면 말이 훨씬 좋고, 손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시각 장애인의 청각과 후각이 예민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만능이 되는 건 아니다. 말로 할 수 있는데, 조련사가 동물 부르듯 손뼉을 치거나 물건이나 그 주변을 두드려서 소리로 알려주는 건 솔직히 무시당하는 기분이다.

또 한 가지. 대화할 때 우리가 상대방 뜻을 알아듣는 데는 당연히 말이 큰 역할을 하겠지만, 표정과 몸짓 그리고 상대의 눈빛도 그에 못지않은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나 같은 시각 장애인은 시끄러운 공간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기가 더 어렵다. 말하는 이의 입 모양도, 표정도 눈빛도 볼 수 없기에 말하는 이의 소리도 주변의 소음 중 하나일 뿐이다.

주변이 말소리가 듣기 어려울 정도로 시끄럽거나 지나치게 울리는 곳이라면 시각 장애인에게는 좀 더 신경을 써서 말해주면 정말 너무너무 고맙겠다.

그리고 청각은 나머지 세 개의 감각, 그러니까 후각·미각·촉각보다도 압도적으로 시각의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이렇게 자판을 두드려서 맘껏 수다를 떨 수 있는 것도 화면의 모든 글자를 음성 프로그램이 읽어주기 때문이고, 내가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나를 둘러싼 소음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청각을 통해 시각을 대신하고 있을 때, 갑자기 끼어드는 다른 소음은 마치 눈앞에 끼어드는 방해물과 같다. 시각 장애인이 음성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의 음성 인식 시스템을 이용해 뭔가를 하고 있는데, 말을 걸거나 크게 음악을 틀어 놓는 것은 정상적인 시력을 가진 사람의 시야를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컴퓨터를 쓰고 있는데 모니터 화면을 손으로 가린 것이고 영화를 보고 있는데 그 화면 앞을 알짱거리는 것과 같다.

가능하다면 뭔가를 듣고 있는 시각 장애인에게는 먼저 의사를 표시한 후 그가 눈길을 돌렸을 때 이야기하고, 근처에서는 큰 소음을 자제해 주면 고맙겠다.

본의 아니게 또 투정을 부린 것 같아 쑥스럽다.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정말 이런 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해 상식 취급도 못 받는 것 같다. 다음에는 반대로 내 가상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과 입이 어떻게 나 같은 시각 장애인을 미술관에 가게 하고, 멋진 경치를 보게 하고, 영화를 보게 하는지 말하려 한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덩달아 막걸리 생각도 나면서.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1월 15일, 화 1:0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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